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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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최근연재일 :
20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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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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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사막양 (2)

DUMMY

헤진 로브로 온몸을 감싼 존재는 키가 크고 날렵한 체격을 가진 것 같았다. 물론 뒷모습만으로 판단한 것이라 확실하지는 않았다.


주아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돌아서는 상대를 응시했다. 깊게 눌러쓴 후드, 검정 천으로 가려진 하관, 보이는 거라고는 눈구멍 두 개뿐이었다.


심지어 장갑과 소매가 이어진 부분도 붕대 같은 것으로 둘둘 말려있었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눈가 주변이 유일했다.


해가 지지만 않았어도 좀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을 아쉬움을 뒤로 하고, 주아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합리적인 의심을 내던졌다.


“나를 잡으러 온 거야!?”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들려온 건 비에 젖은 땅처럼 축축한 목소리였다.


“도망 나온 건가?”


“날 잡으러 온 거냐고!”


주아나가 두 발짝 전진하여 사납게 소리쳤다. 그리고 시선을 맞추는 순간,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이질 않았다. 검은자위 안에 무언가 다른 색상들이 휘돌고 있었다.


신비로움 때문이 아니었다. 좀 더 근원적인 문제였다. 비슷한 상황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게 언제였을까? 기억을 더듬으려 하자 자동으로 오른쪽 눈이 찡그려졌다.


몇 초라는 짧은 시간이 기억 속에서는 한없이 길게 느껴졌다. 괴물이 스쳐 지나가고, 어둠 속에서 먹이를 노리던 늑대가 떠올랐다. 작은 짐승이 거대한 포식자를 마주했을 때, 바로 그것이었다.


한참이나 서로를 바라보던 초점이 어느 순간 어긋났다. 그걸 주도한 건 상대였다. 주아나는 자신을 억누르는 무언가가 사라졌음을 느끼고 얼결에 고개를 돌렸다.


지평선조차 잠식되어버린 대지, 가시거리라고 해봐야 십 미터 전후였다. 아무것도 없다는 걸 확인한 주아나는 다시금 상대를 봤다.


상대는 아직도 먼 곳에 시선을 둔 채였다. 잉크통 같은 풍경에 무엇이라도 보이는 것일까? 물어볼 수가 없으니 다시 한번 고개를 꺾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지금은 빛 하나가 점처럼 찍혀있었다. 홀린 듯이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미세한 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횃불과 말이 바람을 가르면서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질주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모습이 초 단위로 커졌다. 얼마 안 있어 기수 모습도 보였다.


순간 사고가 정지한 주아나는 앞을 보기도 하고 뒤를 보기도 하면서 안절부절못했다. 몇 번이고 주변을 둘러봤지만 황량한 벌판에 숨을 데가 있을 리 없었다.


‘달아나야 해.’


그런데 어디로? 어디로 달아난단 말인가. 눈빛에 절망이 스치던 그때,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존재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마족 땅이었다. 노예가 저런 차림새로 돌아다닐 확률보다야 근처 주민이거나 여행자 마족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주아나는 허무하게 잡혀 죽느니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아까 느꼈던 두려움이 거짓된 공포이기를 바라면서 단검을 치켜들었다. 그러자 상대가 흥미로운 눈길로 쳐다봤다.


주아나는 살짝 거리를 두고서 뒤쪽으로 돌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단검을 등허리에 댈 때까지도 상대는 가만히 있어 주었다.


이윽고 먼지구름을 일으키면서 다가온 말들이 십여 걸음 정도를 두고 멈춰 섰다. 병사로 보이는 마족들이 말에서 내리자마자 창갑에서 창을 빼 들었다.


“다가오지 마! 더 접근하면 이자를 죽이겠어!”


넓게 포진해서 다가오는 병사들을 향해 주아나가 소리쳤다. 등허리에 대고 있던 단검을 옆구리로 옮겨서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거짓으로 증명했다.


한 마족이 병사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섰다. 오른쪽 어깨를 감싼 붉은 천은 지휘관을 상징했다.


“무의미한 저항은 관둬라. 지금이라도 네년이 지은 죄를 순순히 인정하고 자비를 구해라. 그러지 않으면 사지를 찢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투항하려다가도 마음을 바꿔 먹을 거 같은 말을 쏟아낸 지휘관은 대답은 들을 필요 없다는 양 다른 곳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대도 신분을 밝히고 협조하라.”


“내 신분이 중요한가?”


주체자인 주아나도 입을 다물고 있는데, 인질로 잡힌 자가 뜻밖인 되물음을 뱉어냈다. 지휘관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불쾌한 감정을 실은 눈길이 인질을 노려봤다. 하지만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주아나는 그 무언이 긍정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긴장감이 다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가운데 주아나가 인질을 끌어당기며 슬금슬금 물러났다. 물론 물러나는 만큼 병사들도 전진해왔기에 거리감은 그대로였다.


“저 노예를 사로잡아라. 심판장에 세워 본보기를 삼아야 하니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지휘관은 상황이 지지부진하게 끌려가는 게 싫었는지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인질은 어떻게 합니까?”


병사 중 하나가 물었다.


“불가피한 상황이다. 노예를 잡는 데만 주력해라.”


그것은 인질이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뜻이었다. 곧장 의미를 파악한 것인지 병사들은 소극적인 행동을 버리고 거침없이 접근해왔다.


등까지 내줄 수는 없다고 판단한 주아나는 둥글게 에워싸려는 병사들 움직임에 맞춰서 사방을 경계하며 뒷걸음쳤다. 인질은 이상하리만치 이끄는 데로 끌려왔다.


하지만 주아나 혼자서 전방위를 다 살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인질을 무시해도 된다는 명령도 떨어졌겠다 병사 중 하나가 눈길이 닿지 않는 순간을 노려서 달려들었다.


주아나는 왼쪽에서 날아드는 창을 발견하자마자 다급하게 인질을 밀쳐냈다. 그렇게 생겨나 틈을 창날이 뚫고 지나갔다. 피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다음 대처를 하기도 전에 창대가 먼저 움직여 가슴팍을 때렸다.


쓰러지기 무섭게 다른 병사가 다리를 노려 창을 찔렀다. 몸을 굴렸지만, 창 촉이 허벅지를 스쳐 상처를 내었다. 신음을 뱉어낼 겨를도 없이 주아나는 싸늘한 감각을 느끼고 몸을 앞으로 굴렸다. 조금 전까지 있던 자리로 창이 연달아 꽂혔다.


발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고서 일어났더니 천으로 가려진 등짝이 보였다. 그게 목숨을 맡길 수 있는 동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다른 골목도 아닌데 어째선지 몸을 돌려 등을 밀착했다.


상대 반응을 살필 새도 없이 공격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팔과 다리를 노리고 창 네 개가 날아들었다. 전부 쳐낼 엄두가 나지 않아서 피하려다 움찔했다.


만약 자신이 피한다면 창은 오롯이 뒤에 있는 자에게 향할 터, 그것이 망설임을 주었다. 이기적으로 굴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죄 없는 자가 희생되는 걸 내면이 거부했다.


어차피 망설인 순간부터 창을 피할 길은 무너진 셈이었다. 단검으로 쳐내 봐야 한둘이 고작일 터, 결국 여기까지 같았다. 그렇다면 죽는 건 혼자로 족했다.


주아나는 눈을 감고 양팔을 들어 올렸다. 오른손에 힘을 풀어 단검도 놓았다. 공기를 찢던 창소리가 일순 멈추었다. 의미가 전해진 것치고는 너무나 빠른 반응이었다.


철퍼덕, 이어서 들려온 소리도 예상에 없던 것이었다. 급히 눈을 뜨자 당황한 얼굴이 한가득 보였다. 주아나는 그들이 무엇을 보고서 그리 놀란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창을 찔러오던 병사 넷이 보이질 않았다.


그들을 찾아 눈알을 굴려보니 양옆 바닥에 두 명씩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잠시 뒤에 머리를 털면서 일어났지만, 물러나는 모양새가 자기들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는 듯했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멍청하게 서 있던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돌아와도 똑같군, 여기는.”


분명 같은 자에게서 나오는 목소리인데 아까와는 천차만별이었다. 축축하게 느껴졌던 목소리가 지금은 백 년을 산 노인네처럼 걸쭉하고 회의적이었다.


주아나가 천천히 돌아섰다. 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배와 가슴이 보였다. 고개를 들어서 올려다봤지만, 그는 관심 없다는 듯이 병사들만을 둘러봤다. 그때 지휘관이 나서며 위압적인 톤으로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한다. 신분을 밝혀라.”


“밝히면 뭐가 달라지지?”


그는 주아나가 보이지 않는 양 지나쳐가며 되물었다. 가리는 것이 사라지자 시야로 창 네 개가 나타났다. 하나인 것처럼 올곧게 꽂혀있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하고도 당황스러웠다.


‘누가, 이렇게 한 거지?‘


정황상 뻔히 예상되는데도 주아나는 재차 확인이 필요한 기분이었다. 자신을 잡으러 와서는 의문의 남자를 더 신경 쓰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아누스 지배자 중 한 분인 그로지안님을 살해한 범인을 잡아가기 위해서 왔다. 너는 지금 그걸 방해하고 있다. 그게 심각한 범법 행위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지휘관 마족은 또박또박 말하면서도 단어 몇 가지를 힘주어 강조했다.


“저 꼬맹이가 그로지안을 죽였다고?”


그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이제껏 무시해왔던 주아나를 돌아봤다. 다시 한번 마주친 눈동자에는 아까와 같은 신비로움이 없었다. 대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깊이가 담겨있었다.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죄를 묻지 않고 조용히 보내주겠다.”


지휘관은 차분하면서도 위엄있는 말투로 설득했다. 어떤 대답이 나오냐에 따라서 목숨이 왔다 갔다가 했기에 주아나는 의문의 존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도 이런 일에 끼어드는 건 지양하는 편이야. 그런데, 내가 왜 네 말을 따라야 하지?”


거리를 둔 듯한 건방진 말투와 상대방을 무시하는 내용, 그것을 들은 지휘관은 대번에 인상을 구기며 명령을 내렸다.


“저자를 죽여라. 책임은 내가 진다.”


“그럼, 노예는 어떡합니까?”


병사 하나가 우락부락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순수한 질문을 건넸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가봤자다. 저 방해꾼부터 처리한 다음 생포한다.”


지휘관은 자신을 무시한 자에게 할퀴는 듯한 시선을 내질렀다. 주위를 에워싼 병사들이 몇 초, 혹은 그보다 짧은 간격을 두고 창을 뻗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혼란이었다. 은근슬쩍 포위를 벗어났는데도 아무도 주아나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것이 기회처럼 느껴졌다. 말이 있는 곳까지만 들키지 않고서 간다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동시에 죄책감이 주아나를 막아섰다. 자기 일도 아닌데 싸움에 휘말려버린 자를 두고서 도망치는 건···차마 못 할 짓이었다. 제 목숨이 바람 앞에 촛불인 주제에 옳고 그름이나 따지고 있다니, 참으로 못난 성격이었다.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지금이라도 도와야 해.‘


그렇게 생각하고 한 걸음을 못가 멈춘 것은 날아드는 창 여섯 개를 살랑거리듯 피하는 움직임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헤진 천이 팔락거리는 모습은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병사 넷이 어느새 창을 회수하여 공격에 합류했다. 이제는 창 열 개를 피해야 하는 그였다. 무시 못 할 연계 공격이 이어졌지만, 상대는 놀라운 움직임으로 가볍게 유효사거리를 벗어났다.


마지막 뒤공중돌기를 마친 그는 손에 검을 쥐고 있었다. 주아나는 멀리 있었기에 뽑는 걸 본 것이지 가까이 있는 병사들은 아마도 보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그만큼 빠르고 종잡을 수 없었다.


검을 든 그는 조금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병사들도 그것을 느꼈는지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바닥을 나뒹구는 횃불들마저 격하게 흔들렸다.


그가 팔을 늘어트리고 옆걸음을 시작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였다. 갑자기 검이 손가락을 타고 빙글빙글 돌아댔다. 묘기에 가까운 행동에서 주아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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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20화 사막양 (1) 24.08.05 4 0 11쪽
19 19화 달아나, 주아나 (10) 24.08.03 6 0 12쪽
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8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9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6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7 0 14쪽
9 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24.07.21 6 0 12쪽
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8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8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8 0 13쪽
1 1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1) 24.07.11 1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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