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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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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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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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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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달아나, 주아나 (4)

DUMMY

마족 진행자는 옷자락이 잡힌 팔을 거칠게 뿌리치면서 다시금 주아나를 돌아봤다. 굳은 얼굴로 혐오감을 가감 없이 내비쳤다.


“거···검.”


주아나가 더듬거렸다.


“뭐라고?”


“검을···쓸 줄 알아요.”


“네까짓 게?”


진행자는 대놓고 무시하는 눈길로 주아나를 쳐다봤다. 잠시 후 객석을 향해 돌아섰을 때는 180도 달라진 얼굴이었다.


“■■■ ■ ■ ■■ ■■■■ ■■■■ ■■ ■■ ■■■■■?”


무슨 말을 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나 좋은 분위기와 달리 손을 드는 마족은 없었다. 진행자는 손바닥을 펴고 하나씩 접어가면서 입술을 붙였다 떼었다 했다. 딱 봐도 숫자를 세고 있는 것이었다.


손가락이 하나씩 접힐 때마다 불안도 커졌다. 진행자에게 말을 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 팔릴지를 걱정했었는데, 지금은 누구에게도 팔리지 않을 걸 걱정하고 있었다.


사려는 자가 없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손을 들었다.


“■■■■■ ■■■ ■■ ■■■■■■.”


진행자가 우아하게 손을 펼쳐서 구매 의사를 드러낸 자를 가리켰다. 주아나 눈도 자연스럽게 손끝을 따라갔다. 시선이 멈춘 곳에는 비대한 마족이 장의자 하나를 독차지 중이었다.


주아나는 세 겹으로 접힌 턱살과 늘어진 배를 보고 몸 안에 술통이라도 들어있는 줄 알았다. 반면 얼굴은 기름이라도 바른 양 번들거렸다. 경험상 돈 많고 게으른 귀족들이 꼭 저러했다.


마족 넷이 사각형을 이루듯 그를 감싸고 있었다. 가벼운 차림이었지만, 옆구리에 검이 매달려 있는 걸 보아 시종보다는 호위 같았다.


따로 손을 들어 경쟁하는 이가 없었기 때문에 주아나는 비대한 마족에게 낙찰되었다. 이후로 또 다른 공터로 끌려가 대기했다.


주변 정리가 시작된 건 늦은 오후였다. 병사가 다가와 주아나를 포함한 몇 명을 지목했다. 따라가는 도중 반대 길에서 족쇄를 찬 사람이 줄지어 지나갔다. 팔리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바닥만 보고 걷던 그들이 머릿속에 계속 아른거렸지만, 쇠창살 달린 감옥 마차에 몸을 실은 이후로는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감옥 마차에는 주아나를 제외하고도 소녀 셋과 소년 하나가 더 있었다. 유독 어려 보이는 소녀 하나를 제외하고는 다들 비슷한 나이대 같았다.


다섯이 있기에 그리 좁은 공간도 아닌데 전부 다리를 접어 창살에 꼭 붙어있었다. 마치 똑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에 흐느낌이 끼어있었다. 나이는 속일 수가 없는 것인지 울고 있는 건 유독 어린 소녀였다. 하나 눈물을 흘리냐 안 흘리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나머지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우리 어디로 끌려가는 걸까?”


빨간 머리 소녀가 독백하듯 불안을 깼다.


“너는 알아?”


주근깨 낀 소녀는 뜬금없게도 빨강 머리 소녀가 아닌 주아나에게 물었다.


“몰라.”


“안 무서워?”


“무서워.”


주아나는 솔직하게 대답했을 뿐인데 어째선지 소녀가 머쓱해하며 고개를 돌렸다. 무슨 말을 원했던 것일까? 싶다가도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 그만둬버렸다.


선두로 달리는 호화로운 마차를 따라서 20분을 넘게 달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언덕길 끝에는 넓게 둘러쳐진 담벼락과 절벽을 등진 황토색 건물이 있었다.


원통형 건물을 중심으로 각진 구조물이 하단부에 층을 이루며 붙어있었다. 그중 원통형 건물을 축소한 듯한 얇고 높은 첨탑이 유독 특별해 보였다.


건물 입구를 지키는 야자나무 아래, 스무 명이 넘는 이들이 양손을 모은 채로 줄지어 서 있었다. 마차가 그들 앞에 멈춰서자, 노예로 보이는 두 남자가 마차 문 아래로 바짝 엎드려 계단을 만들었다.


이어서 흰옷을 입은 남성 마족이 마차 문을 열어주었다. 그제야 안에 타고 있던 자가 내리려 했다. 그마저도 힘들까, 여성 마족 둘이 양쪽에서 도왔다. 주아나는 그것을 전부 눈에 새겨 담았다.


“■■ ■■■ ■■ ■■■■ ■■■■.”


바닥에 내려선 살찐 마족은 흰옷을 입은 마족에게 무언가를 지시한 다음 입구로 들어갔다. 지시받은 마족이 다른 마족을 콕콕 찍어 말을 전했다.


전달이 끝나자 대다수가 건물로 들어갔다. 남은 이는 총 다섯이었다. 창을 든 병사 둘은 즉시 입구를 지키고 섰으며, 호위를 서고 마차를 운전했던 마족 중 둘은 다시금 마부석에 앉았다. 그러는 사이 남은 한 명이 마차 뒤편으로 다가와 자물쇠를 풀고 창살문을 열었다.


“■■.”


주아나는 마족이 내뱉은 냉랭한 말이 내리라는 뜻이라는 걸 눈치로 알았다. 하지만 나머지 소년과 소녀들은 그걸 모르는 듯했다. 망설임이 길어지자 마족은 문을 활짝 열어젖힌 다음 상체를 들이밀었다. 쏘아보는 꺼먼 눈동자보다 얼굴을 덮은 선과 도형들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


똑같은 말이래도 이번에는 반응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주아나가 다리를 질질 끌면서 마지막으로 내렸다. 마차는 왼쪽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고, 소년과 소녀들은 마족을 뒤따라갔다.


마족은 우측 모퉁이 돌아 독립된 작은 건물로 향했다. 똑같은 재료를 사용한 것 같은데도 외관이 볼품없는 걸 보면 지을 때 정성을 들이지는 않은 듯했다.


건물 내부는 복도가 반이고 나머지는 감옥이었다. 끌려온 아이가 다섯이듯, 창살이 다섯 칸을 나누었다. 마족은 첫 번째 칸에 멈추어 녹슨 철문을 열었다. 그리고 가장 앞선 소녀에게 들어가라 고갯짓했다.


빨간 머리 소녀는 뜻을 알아들은 것처럼 보였지만, 선뜻 들어가지 못하였다. 무슨 배려를 바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애당초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마족은 뒷덜미를 잡아 소녀를 거칠게 밀어 넣었다.


망설이면 어떻게 되는지 봤으니, 나머지는 고갯짓도 필요 없었다. 주아나를 마지막으로 모든 자물쇠가 잠겼다. 마족은 그것으로 자기 일을 끝낸 것인지 지켜서고 있다거나 하지 않고 곧장 나가버렸다.


주아나는 출입구가 보이도록 벽에 기대어 앉았다. 딱히 볼 생각이 있던 것도 아닌데 벽이 쇠창살이다 보니 다른 아이들이 어쩌고 있는지 전부 보였다.


바로 옆 칸 아이는 마차에서도 울더니 이곳에서도 울고 있었다. 소년은 철창 안을 정신없이 돌아댔고, 주근깨 소녀는 창살을 잡고 마구 흔들어댔다. 심지어 빨간 머리 소녀는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창살 틈새로 얼굴을 밀어 넣는 중이었다.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주아나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쳐다봤다.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는 게 지쳤을 때쯤 주아나는 복도에 뚫린 작은 창 너머를 바라봤다. 아직 초저녁 같은데 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등에 날개가 달린 자신을 상상했다.


‘훨훨 날아 저곳에 도착하면 아버지랑 오빠가 기다리고 있겠지? 반겨주겠지? 꼭 안아주겠지? 왜 이제야 왔냐고 물어봐 주겠지?’


『아무도 너를 기다리지 않아.』


그 순간 주아나는 보았다. 차갑게 번뜩이는 새하얀 눈을······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다가오는 그것을······교활한 마법을 거는 괴물을······.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주아나는 감았던 눈을 뜨고 감옥으로 돌아왔다. 인간 여자와 마족 병사, 그리고 마차 문을 열어줬던 흰옷을 입은 마족이 복도를 따라서 걸어오고 있었다. 셋은 네 번째 칸에서 멈춰 섰다. 주아나가 무릎 위로 눈만을 내놓은 채 상황을 지켜봤다.


“■■■■ ■.”


“이리 나오래.”


여자는 흰옷을 입은 마족이 하는 말을 통역해서 창살 너머로 전달했다. 그러는 사이 병사가 자물쇠를 땄다.


어린 소녀는 구석 모서리에 바짝 붙어 꼼짝하지 않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모르는지 계속해서 발로 바닥을 밀어댔다. 처량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잘못했어요···흑···제발···제발···절 데려가지 마세요···흑···얌전히 있을게요···제발요···제발.”


소녀는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서 어떻게 할지 안다는 듯이 울면서 애원했다. 말하는 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떨어졌다. 지켜보는 이마저 동화될 슬픈 호소였지만, 그건 같은 인간에게만 한정된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온 병사가 다리를 잡아 소녀를 질질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철문을 나서기 전 번쩍 들어서 어깨에 둘러멨다.


“안 돼, 안돼! 가기 싫어! 제발, 제발 여기 있게 해주세요! 말 잘 들을게요, 제발요···.”


소녀는 빽빽 소리를 지르며 주먹으로 병사 등을 마구 두들겼다. 그런 저항이 무색하게도 바깥은 가까워져 갈 뿐이었다.


심경이 복잡해 보이는 눈동자들이 어린 소녀가 사라지기까지를 똑똑히 지켜봤다. 하지만 누구도 선뜻 입을 열지는 못했다. 말을 내뱉는 순간 그들이 돌아와서 자신을 끌고 가기라도 하는 양 침묵은 이어졌다.


한 시간쯤 지나서 통역하던 여자가 바구니를 들고서 돌아왔다. 바구니에는 음식이 들어있었고 그것을 야자잎에 싸서 차례로 넣어주었다.


경계하듯 멀찍이 있던 소년, 소녀들은 여자가 지나간 게 확인되자마자 음식을 잽싸게 가져갔다. 개장에서 날법한 냄새가 건물 전체에 배겨있었지만, 누구도 먹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마지막 칸에 도착한 여자는 자신을 주시하는 눈길을 보고 흠칫하고 멈추었다. 음식을 넣어주려고 몸을 숙였을 때, 주아나가 무릎에 가려진 입으로 속삭여 물었다.


“그 애를 어디로 데려간 거야?”


“그건 나도 몰라.”


여자가 눈을 피하듯 바닥을 보면서 대답했다. 거짓말이란 게 뻔히 보이는 태도였지만, 굳이 더 묻지 않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여자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몇 살이니?”


“열네······열다섯.”


주아나는 순간 나이가 헷갈렸다. 솔티드를 떠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나 멀리 와버렸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가게 되면 복수는 할 수 있을까? 복수를 다하고 나면 어쩌지? 이제 아무도 없는데? 고르지 못한 맥박이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내 동생이랑 똑같네.”


“동생? 동생도 여기 있어?”


“아니, 내 동생은 고향에 있어.”


“고향이 어딘데?”


“리허.”


처음 들어본 곳이었다. 대가문에서 태어나 많은 것을 누리고 많은 걸 배워왔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세상에 홀로 던져지자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너도 팔려 온 거야?”


“나는···음···가야겠어, 자리를 너무 오래 비우면 안 되거든.”


여자는 망설이다가 딴소리했다. 깊은 속사정까지야 궁금하지 않았지만 어째선지 다른 걸 묻게 됐다.


“이름.”


“응?”


“이름이 뭐야?”


“나는 실리아야.”


“주아나.”


실리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건물을 빠져나갔다. 새로운 장소에서 보내는 밤은 상상 이상으로 길었고, 팔려 온 이들 중 누구도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끌려간 소녀는 다음날이 되어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음식을 넣어주러 온 실리아에게 다시 한번 물어봤지만, 역시나 알려주지 않았다.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이튿날 밤 또다시 그들이 찾아왔다. 이번에는 빨간 머리 소녀를 데려갔다. 그제야 불안감이 확실한 형체를 갖추었다.


빨간 머리 소녀 또한 몇 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주근깨 소녀 차례였다. 앞선 소녀들처럼 발버둥 치면서 저항했지만, 부질없기도 마찬가지였다.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다. 세 번째 철문이 열렸다. 소년은 오리 같은 소리를 내면서 창살을 끌어안고 버텼다. 그러다 기어코 배를 얻어맞고 축 늘어진 채로 끌려 나갔다.


주아나는 출입문을 닫는 실리아 눈에서 죄책감을 읽어냈다. 그것은 아마도 돌아오지 않은, 그리고 돌아오지 않을 소년, 소녀가 기구한 운명을 끝내고 종착역에 도달했음을 암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주아나 뿐이었고, 이름 모를 소년과 소녀들은 매일 밤 악몽을 통해 되돌아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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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사막양 (2) 24.08.06 3 0 12쪽
20 20화 사막양 (1) 24.08.05 4 0 11쪽
19 19화 달아나, 주아나 (10) 24.08.03 6 0 12쪽
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8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9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6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6 0 14쪽
9 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24.07.21 6 0 12쪽
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8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8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8 0 13쪽
1 1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1) 24.07.11 1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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