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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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최근연재일 :
20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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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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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DUMMY

현관에서부터 급하게 달려 나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든 건 아시우스였다.


“비키거라.”


아라네가 차갑게 말했다.


“주아나를 살려주세요···.”


겁을 먹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아시우스는 몸과 목소리를 같이 떨어댔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하는 소리냐?”


“모, 모릅니다.”


“너는 지금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있어.”


“혼내셔도 되고, 때리셔도 됩니다. 대신···주아나만 살려주세요.”


아시우스는 알코올 냄새를 풍겨가면서 사정했다. 아라네 같은 사람이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고작 이런 용기를 내는데도 술이 필요할 정도라니, 나약한 아들을 바라보는 표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저 애한테는 살아있는 게 더 큰 고통일 거다.”


아시우스가 고개를 돌렸다. 주아나는 여전히 영혼 없는 시체를 껴안고 울고 있었다. 하나 아라네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마음을 달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버지, 제발···제발···.”


아시우스가 무릎을 꿇고 빌자, 아라네는 아들을 한참이나 내려다봤다. 결정은 생각보다 빨랐다.


“좋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지만 그냥은 안된다.”


환하게 바뀌었던 아시우스 얼굴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저 애를 보내준다고 해도 어차피 다시 돌아올 거다. 그건 몇 번을 반복해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저 애 목숨을 거두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가 이렇게까지 굴 정도로 저 애를 아낀다니, 기회를 주마.”


아라네는 중요한 걸 가리키는 양 차분하게 설명했다.


“제가 무얼 하면 주아나를 살려주실 건가요?”


반면 아시우스는 마음이 급해 보였다.


“네가 직접 발목 하나를 거둔다면 주아나를 살려주마.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땅으로 가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살아남는 게 과연 저 애한테 다행인 일인가 싶다만, 너와 저 아이 사이에 남아 있는 고리를 끊는 대가라면 그 정도는 해주마.”


말을 전부 들은 아시우스는 독초라도 삼킨 것 같은 얼굴이었다. 겉보기에는 아라네가 선택권을 준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런 건 없었다. 대답이 한참 후에야 나온 건 그래서였다.


“하, 하겠습니다.”


“와셀.”


아라네가 와셀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예, 가주님.”


“아시우스가 제대로 하는지 지켜본 다음, 자네가 직접 리아스로 데려가서 배에 태우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아라네는 경비병이 비춰주는 랜턴 빛을 따라서 저택으로 들어갔다. 아시우스는 아버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쯤에야 몸을 돌렸다. 산호색 눈동자가 짙푸른 눈동자를 노려보고 있었다.


“미안해, 주아나.”


아시우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사과했다. 2년 전에 비해서 훌쩍 커버린 그였지만, 여전히 행동은 처음 만났을 때처럼 주눅 들어있었다.


“저주할 거야! 너도, 네 가문도! 아버지를 죽인 모든 인간을! 숨을 쉬는 매 순간! 저주하겠어!”


주아나는 젖은 눈으로 사납고 독살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아시우스가 하는 말이라고는 한 단어뿐이었다.


“미안해···미안해···정말 미안해···.”


“차라리 날 죽여! 지금 죽이란 말이야! 제발 죽여줘···.”


주아나가 화를 내다 못해 애원했다. 그러나 아시우스는 울먹거릴 뿐 그것을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난 못해···내 손으로 널 완전히 잃을 수는 없어.”


아시우스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면서 검을 집어 들었다. 지켜보던 와셀이 주아나를 엎어트리고 무릎으로 짓눌렀다. 이어 미래에 주군이 될지도 모를 소년을 눈으로 재촉했다.


“미안해, 미안해······미안해······.”


아시우스는 넋 나간 사람처럼 같을 말을 반복했다.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은 주아나 왼 다리를 잡아 올려 발목 뒷부분을 베어냈다.


“아아아아악!!”


핏방울이 버려지는 포도주처럼 바닥을 적시었고, 주아나는 비명을 질렀다.


눈을 질끈 감은 아시우스를 위해서였을까? 와셀이 손잡이 부분으로 목뒤를 내려쳤다. 주아나는 그렇게라도 잠시나마 고통에서 해방됐다.


와셀이 몇 걸음 물러나자, 아시우스는 주아나 머리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길고 고운 손가락이 엉망이 된 얼굴을 어루만졌다. 얼마나 고생을 한 것인지 2년 전 모습이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같아 보이는 모양이었다.


“주아나, 나의 주아나······정말 미안해···꼭 살아만 있어 줘···그러면···그러면···내가 널 꼭 찾아낼게.”


소년은 물기 가득한 푸른 눈동자로 소녀를 더없이 애틋하게 바라봤다. 약혼자였으며 나아가 연인이자 부부가 되어야 했을 여자, 첫눈에 운명임을 직감했던 여자를 말이다.


“도련님은 절대로 이분을 찾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니 방금 그 말도 못 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배려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이었다. 그러나 아시우스는 반박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주아나를 둘러메고 떠나는 와셀을 무력하게 쳐다만 봤다. 가슴을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우는 것은 사랑하는 여자를 지킬 힘이 없어서이리라.


###


주아나는 홀로 어두운 공간에 서 있었다. 이곳이 어딘지, 어쩌다가 왔는지, 조금 전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져 그날 하루가 삭제된 것처럼 머리가 흐리멍덩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새까맣기만 할 뿐 보이는 게 없었다. 두려움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양팔로 몸을 감싸 안았다. 그러다 불현듯 아래를 보게 됐다.


거울 같은 수면 위로 자신이 비쳐 보였다. 행복을 잃어버린 얼굴에는 삶을 향한 의지가 없었다. 물에 잠겨 있는 발을 보자 이유 모를 불안감이 몰려왔다.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상체를 접고 손을 담갔다. 물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그런데 두 발을 만져보니 한겨울에 뛰놀다 온 아이 볼처럼 시리도록 차가웠다. 이상함을 느껴야 하는데 되려 안도감이 들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감각을 확인한 뒤 손을 빼려는데 무언가가 팔뚝을 움켜잡았다. 주아나는 흠칫 놀라 급하게 몸을 세웠다.


하지만 팔뚝을 잡은 무언가는 끝내 떨어지지 않고서 매달려 올라왔다. 그게 숯처럼 타버린 사람 팔이라는 걸 확인한 주아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분명 입을 벌렸는데, 어째선지 소리는 나지 않았다.


끔찍해서 보고 싶지 않은데도 저도 모르게 자꾸만 시선이 내려갔다. 손가락, 손등, 팔목, 팔뚝, 팔꿈치, 어깨, 마지막으로 얼굴이 보였다. 상하좌우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눈알은 자글자글 익어있었고, 불타 반쯤 사라진 볼 안에서는 치아가 딱딱거려댔다.


흉측한 모습이었지만, 주아나는 그게 브리라는 걸 단박에 알아봤다. 소중했던 친구임에도 생리적 거부감이 먼저 들었다. 그것이 친구라는 사실을 거부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팔을 털다가 그만 발이 걸려 넘어져 버렸다.


엉덩이와 손바닥이 수면을 짚었는데 찰랑 소리는커녕 파장 한줄기 생기지 않았다. 이곳은 무언가 잘못됐다. 본능이 어서 달아나라고 경고를 내렸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브리와 같은 존재들이 팔과 다리와 등을 타고서 기어 올라왔다. 원래라면 썩고 문드러져 움직이지 못해야 할 존재 사이에 주아나가 기억하는 모든 이가 있었다. 그들이 피와 눈물, 분노와 원망으로 짓눌러왔다. 그들이 온몸을 뒤덮자 숨을 뱉기도 어려웠다.


‘나보고 어쩌라고! 나보고 어떡하라고···힘이 없는 걸···어쩌란 말이야···.’


주아나는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그들에게 하는 변명이며 자기에게 하는 합리화였다. 하지만 망령들은 용서를 거부하며 그녀를 심연으로 밀어 넣었다.


가라앉는 와중 저 멀리 가느다란 빛이 보였다. 점점 작아지는 빛 속에 아버지와 오빠가 등을 돌린 채로 걸어가고 있었다.


‘안돼···가지 마. 나도, 나도 데려가···제발···.’


주아나가 눈을 떴다. 그날로부터 시작된 악몽은 6개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반복 중이었다. 배경만 다를 뿐 내용은 항상 똑같았다. 그래서 더 끔찍했다.


정신이 들기 무섭게 왼쪽 발목에서 끊어지는 듯한 통증이 올라왔다. 그것이 매일매일 모든 게 허상이고 꿈임을 알려줬다.


알고 있던 모든 이가 죽었는데, 자신은 여전히 살아서 숨 쉬고 있었다. 신한테 노여움이라도 사지 않고서야 이렇게 가혹할 리가 없었다.


주아나는 눈을 뜰 때마다 자살을 마음먹었다. 혀를 깨물까, 목을 매달까, 손목을 그을까, 심장을 찌를까, 많은 방법이 있는데도 하나를 골라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항상 마지막이면 떠오르는 원수 때문이었다.


한 놈이라도, 단 한 놈에게라도 검을 박아 넣고 죽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으면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왔냐며 아무도 반겨주지 않을 것만 같았다.


원수를 떠올리면서 이를 악물어봐도 절망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시우스가 벤 왼 발목은 힘줄이 끊어져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절뚝이는 다리로 복수라니 비웃음을 살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던 것일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걸까? ‘내게 원하는 게 뭡니까 신이시여.’ 간혹 주아나는 믿어본 적도 없는 신에게 묻고는 했다. 비록 대답이 침묵뿐이래도 원망할 대상이 필요했다.


철썩, 쿵, 파도 때문인지 배가 크게 흔들렸다. 덩달아 주아나도 휘청였다. 주아나는 배를 처음 타봤다. 그래서인지 첫날부터 뱃멀미를 심하게 했다. 지금이야 많이 익숙해졌지만, 파도가 심한 날이면 뱃멀미가 도졌다.


지금이 그랬다. 머리만 지끈거리는 거라면 버틸만했겠지만 몸까지 뜨거우니, 혹시 열병이라도 들어버린 게 아닐까 걱정됐다. 하나 주아나만이 그러한 건 아닌지 병자 냄새로 가득한 공간에는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크음, 큼···.”


“콜록콜록···.”


시간이 흘러 파도가 잔잔해졌다고 느껴질 무렵,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렸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작은 랜턴 빛은 태양이라도 되는 양 시력을 앗아갔다. 어둠에 익숙해진 탓에 시력은 빠르게 돌아오지 않았고, 주아나는 소리를 듣는 것에 집중했다.


“나부터 할 테니까, 망 잘 봐.”


“왜 네가 먼저야.”


“그게 꼬았으면 나보다 먼저 타지 그랬냐.”


“어으, 알았으니까. 침이나 좀 적당히 발라. 냄새 때문에 선 것도 죽어버리잖아.”


두 남자는 투덕거린 끝에 한 명은 밖에 남고 다른 한 명이 안으로 들어섰다. 끼익하고 문이 닫혔다. 이어서 철컥, 자물쇠가 잠겼다.


주아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뿌연 느낌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상황을 살피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서 화물창으로 들어온 남자를 살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어서 머리숱이 적다는 것과 꾀죄죄한 옷차림까지만 확인할 수 있었다.


남자는 팔려 온 사람들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어떤 때는 혀를 차고 어떤 때는 입맛을 다셨다.


잠시 후 남자가 주아나 앞에 당도했다. 랜턴을 코앞까지 디미는 탓에 눈을 감는 걸로도 모자라 양손으로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반반하니, 네가 좋겠다.”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주아나는 소름이 돋았다. 천천히 양팔을 내려보니 고르지 못한 치아로 히죽 웃고 있는 면상이 보였다.


벌어진 구강에서 악취가 흘러나왔다. 그건 화물창을 메운 병자 냄새보다도 고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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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9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9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6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7 0 14쪽
» 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24.07.21 7 0 12쪽
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8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8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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