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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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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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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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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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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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달아나, 주아나 (2)

DUMMY

지난 한 달 동안 주아나는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하고서 회복에만 전념했다. 그러면서도 긴장을 놓지는 않았다. 거버스란 남자가 복수하겠다며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고향이 사라졌고 가문이 몰락했다. 그것도 다른 대가문에게, 인간이 가진 도덕적 결여성을 경험하기에 차고도 넘치는 일이었다.


귀족이란 작자들도 그럴지인데 사람을 잡아다 파는 자라면 오죽할까. 심지어 주아나 또한 한 생명을 빼앗고 목숨을 위협받았다는 당위성을 부여해보지 않았던가.


몸을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악몽은 늪처럼 깊어졌다. 눈을 감았을 때만 찾아오던 이들이 이제는 눈을 뜨고 있어도 찾아왔다.


상상 속에서라도 원한을 풀어 주려고 원수들을 그려내 죽이고, 또 죽여댔다. 그렇게 수천 번을 죽여봤지만,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1황자도 원수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여전히 찜찜함은 남아있었다. 로렌실 가주로부터 끝끝내 원흉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를 듣지 못한 까닭이었다.


만약 1황자가 원흉이 아니더라도 대가문 두 곳이 함께 움직인 일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황실이 관여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진실과 복수, 둘은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문득 머릿속에서조차 죽일 수 없었던 아시우스가 떠올랐다. 주아나는 자신을 죽지도 못하게 만든 그가 너무나 원망스럽고 미웠다.


분노를 담아서 검을 휘두를 때면 그는 항상 제 손을 잡으라는 듯 두 팔을 뻗어왔다. 그게 무엇이라고 현실도 아닌데 원수의 자식을 벨 수가 없었다.


피폐한 몸으로 종일 분노에 휩싸여있다 보니 정신이 망가져 가는 거 같았다. 끝내는 허무함이 찾아왔다. 주아나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는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자라서였을까?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선장이었다. 당시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말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었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몽땅 버릴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선장은 대놓고 신분이 높은 자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것이 채찍질 당하지 않게 해주었고, 눈과 귀가 도려내지지 않게 도와주었지만, 딱히 고맙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유는 궁금했다. 생전 처음 보는 거대한 인간은 무엇을 잃었기에 원한도 없는 주아나에게 증오를 풀고자 하는 것일까? 물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물어도 대답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으로 생각한 건 처지와 처신이었다. 선장은 태도를 보고서 주아나가 평민이 아님을 알아챘다. 그리고 눈을 숨기라고 경고했다.


주아나는 그때 자신이 어떤 눈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하나 순한 눈은 아니었을 게 분명했다. 이제 등 뒤를 비춰줄 후광은 없었다. 자존심을 세우고 소리쳐댄다면 선장 말처럼 금세 죽게 될지도 몰랐다.


복수를 포기할 수만 있었다면 그렇게라도 명을 재촉했겠지만, 아버지에게 맹세하지 않았던가. 비록 전부 묻어줄 수는 없었지만, 솔티드와 함께 운명을 맞이한 이들에게도 약속했다.


아버지가 그랬듯, 이제 주아나 어깨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올라타 있었다. 그들을 짊어지고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아 강해지고 또 강해져야 했다. 그것이 노예의 삶이라 해도 말이다.


다음날 쿵쾅쿵쾅, 천장이 울려댔다. 문밖도 부산스러웠다. 아마도 선장이 말했던 아누스라는 곳에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개월이나 항해를 한 것을 보면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확실했다.


몇 시간이 지나고 문이 열렸다. 문 앞에 서 있는 이는 매일 음식을 배급하던 대머리 선원이었다. 손에 항상 국자를 들고 있었는데, 오늘은 그 자리를 곡도가 대신했다.


“전부 나와!”


대머리 선원은 평소보다 위협적인 목소리였다.


“전부 나오라고!”


사람들이 머뭇거리자 대머리 선원은 더욱 사납게 소리 질렀다. 그제야 하나둘씩 일어나 문밖으로 향했다. 오랫동안 갇혀 지낸 사람들은 행동이 굼떴다.


그걸 참아줄 인내심이 없는지 대머리 선원이 문을 통과하려는 이들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제일 마지막으로 나온 건 절뚝거리는 주아나였다.


“빨리빨리 올라가!”


수십 명이 줄지어 계단을 타고 갑판으로 올라갔다. 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차례차례 얼굴을 가렸다.


주아나 역시도 쏟아지는 태양 빛을 이겨내지 못하고 똑같이 해야만 했다. 갑판에 올라서자 이명과 현기증이 동시에 덮쳐왔다. 하지만 뒤에서 밀고 소리치는 탓에 잠시도 서 있지 못했다.


“세 줄로 서! 세 줄로!”


소리를 지르면서 걸어 다니는 건 거버스였다. 그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숫자를 세다가 주아나를 발견하고는 멈춰 섰다. 입에서 풍기는 악취는 여전했다.


“네년은 나중에라도 반드시 죽인다.”


거버스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리 없으면서도 하는 경고였다. 노예선 선원이 팔린 노예를 다시 보는 경우는 결코 없었다.


“하나 남은 귀까지 뜯기고 싶은 거라면 지금 말해.”


주아나는 자존심을 세우지 않겠다고 한 다짐도 잊은 채로 송곳니를 보이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나 키는 조금 자랐을지언정 심각한 영양결핍을 겪고 있는 소녀에게 겁먹을 자는 아무도 없을 터였다.


“네년이 노리개로 팔려 가서도 그렇게 굴 수 있나 보자. 망할 년. 퉤!”


악담을 날린 거버스가 주아나 발에 침을 뱉었다. 그러자 주아나도 똑같이 침을 뱉었다.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던 거버스는 다른 선원이 부르는 소리에 마지못해 몸을 돌렸다.


풍덩, 닻이 내려가고 배가 멈춰서자 무장한 선원들 경계 아래 해안 절벽으로 하선이 시작되었다.


그들을 맞이하는 까마득히 높은 절벽은 소금 향을 품은 거센 바람에 풍화되어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 각도가 위태위태하여 암석 파도가 덮쳐오는 착시를 불러일으켰다.


포말이 끊이지 않고 밀려드는 사각 바위 무리를 넘어서자, 두 발을 겨우 붙이고 다닐만한 기슭이 드러났다. 선원 한 무리가 선두에 서고 팔려 온 이들이 뒤를 따랐다. 뒤에 남은 선원이 아직 많았는데, 그중 일부는 남고 일부는 꼬리에 붙어 따라왔다.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가면 갈수록 수면으로부터 높아졌다. 백 미터쯤 가서는 꺾어지는 절벽을 따라서 길 또한 둥그스름하게 휘어졌다.


위로 뻗은 좁고 가파른 길을 선원들은 익숙한 듯 올랐으나, 팔려 온 이들은 떨어질까 두려워 벽면에 바짝 붙어서 겨우겨우 이동했다.


선두 무리가 절벽 꼭대기에 도착하고도 30여 분이 지나서야 팔려 온 이들 중 도착자가 생겨났다. 전부가 올라오는 데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소요됐다. 늦게 도착한 자에게는 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가장 후미였던 주아나는 말할 것도 없었다.


다시 세 줄로 행렬을 이뤄 걷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언덕을 몇 개나 넘는 동안 보이는 거라고는 황갈색 흙과 키 작은 풀뿐이었다. 그 외 무엇이라도 발견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대던 사람들도 끝내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앞을 바라봤다.


주아나는 맨발에 다리까지 절어 안 그래도 후미인데 자꾸만 행렬에서 뒤처졌다. 뒤를 따라오던 선원들도 답답했는지, 한 명만을 남겨두고 앞질러 간 지가 오래였다.


간혹가다 날카로운 돌이 발바닥을 찌를 때면 지나온 길에 빨간 인장이 남았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동안 주아나는 자꾸만 발이 미끄러졌다.


밀려 내려오는 주아나를 몇 번이고 받쳐줘야 했던 선원은 결국 짜증이 났는지 욕을 해댔다. 그토록 힘겹게 언덕에 올라선 주아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잠시 넋을 놓았다. 첨탑처럼 곧게 솟은 절벽이 길게 이어져 주황빛 협곡을 이루고 있었다.


“어서 내려가.”


선원이 손바닥으로 등을 밀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주아나는 몸을 비스듬히 돌려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완만한 내리막을 내려갔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있는 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10미터가 넘는 철문이었다. 거기에는 검과 창과 방패를 든 전사들이 싸우는 장면이 생생하게 새겨져 있었다.


최상단에는 처음 보는 글자가 반원 형태로 적혀 있었다. 주아나는 그게 선장이 말했었던 아누스일거라 직감했다. 철문이 가까워져 오자 이제껏 뒤를 따라오던 선원이 앞으로 치고 나갔다.


이어 허리끈에 끼워놓은 곡도를 검집째 빼서 손잡이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가볍게 흔들어댔다. 주아나는 의아해했지만, 곧 그것이 철문을 지키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행동이라는 걸 알아챘다.


뒤늦게 선원 등 뒤에 도착한 주아나는 옆으로 상체를 살짝 뉘어 철문을 지키는 자들을 훔쳐봤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잿빛 흉갑을 입고 챙이 넓은 가죽 모자를 눌러쓴 병사들이 자신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모자 아래 얼굴과 목은 물론 튜닉 밖으로 드러난 팔과 손, 심지어 다리까지도 전부 보랏빛이었다. 주아나는 보석을 잘 모름에도 자수정에서 태어난 인간이 있다면 저렇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을까, 상식을 벗어난 피부 색상인데도 이상하게 예뻐 보였다. 하지만 피부를 덮은 검정 문신은 기하학적임을 떠나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달그락, 선원이 가볍게 던진 검이 좌측 벽 앞에 떨어졌다. 그곳에는 다양한 무기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선원 모두가 무장을 해제하고 들어간 것이었다.


병사 하나가 빤히 쳐다보자 선원은 양 주머니에 손을 넣고서 털어 보였다. 그제야 확인이 끝난 것인지 아치형 쪽문을 열어줬다.


선원은 주아나를 먼저 들여보내고 다시금 뒤를 따라왔다. 입구는 몇 미터를 안 가 사라졌고, 드넓은 도시가 나타났다.


대로 하나를 놓고서 좌우로 흙과 돌로 지은 건물이 무작위로 늘어서 있었다. 하나 태양은 차별이 심하여 도시 좌측에만 그늘은 내려주었다.


주아나는 대로를 따라서 걸어갔다. 건물만큼이나 무질서하게 뻗은 소로 사이사이로 천막을 치고 물건을 팔아대는 이들이 보였다. 모두가 입구에서 봤던 병사처럼 보랏빛 피부였고, 문신도 가지고 있었다.


“더 쳐지면 안 돼. 빨리 걸어, 빨리, 빨리.”


등을 떠밀며 재촉하는 손길이 기억을 자극한 것일까,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뜩 스쳤다. 언제였는지는 모르지만, 호기심으로 읽었던 책 한 권에 도시인 정체가 적혀 있었다.


바다 건너 동쪽에 있다는 또 다른 대륙 하슈, 그리고 그곳을 지배하는 토착민. 책을 쓴 저자는 분명 마족이 저러한 모습이라 집필해놨다.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아냈으니 조금이라도 좋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되려 주아나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었다. 고향으로부터 멀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이곳은 멀어도 너무 멀었다.


심지어 흙과 돌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대신 마실 수도 없는 소금물이 수천 킬로미터를 채우고 있었다. 이 일을 어쩐단 말인가.


혼란스러움은 오롯이 주아나 몫이었다. 선원은 길을 재촉하기만 할 뿐 대화 상대가 아니었다. 그런 상태로 이끌려 간 곳은 직경이 100미터쯤 되어 보이는 원형 건축물 앞이었다.


마족 병사 수십 명이 경계를 서고 있는 공터 한쪽에 처지가 같은 자들이 모아져 있었다. 주아나 또한 그곳에 끼워졌다. 한데 같이 끌려왔던 사람보다 처음 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생각이 많아지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주아나 어깨를 톡톡 두들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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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9화 달아나, 주아나 (10) 24.08.03 6 0 12쪽
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8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9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8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6 0 12쪽
»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6 0 14쪽
9 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24.07.21 6 0 12쪽
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7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7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7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8 0 13쪽
1 1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1) 24.07.11 18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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