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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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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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0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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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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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달아나, 주아나 (3)

DUMMY

저 혼자 유별난 양 커다란 그림자가 주아나로 부족해 앞사람들까지 집어삼켰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선장은 주변 사람을 밀쳐내고 주아나 옆에 섰다.


“그 이후로 거버스가 찾아가진 않았겠지?”


주아나는 선장을 올려다봤다가 오래가지 못하고 시선을 내렸다. 머리가 너무 높이 있는 탓이었다. 앞사람 등을 보면서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이 남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좋아, 좋아. 거버스가 귀 한 짝을 잃은 건 안타깝지만 어차피 인물도 별로라 여자를 꾀는 데는 크게 차이도 없을 거야. 너를 못 죽여서 안달 난 마음도 돌아가서 다른 계집을 품고 술을 진탕 마시면 달래질 거다.”


‘그딴 인간, 병에 걸려 죽어버리라지.’


주아나는 떠올리는 것만으로 기분 나쁜 얼굴을 후딱 지워버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앞으로 영원히 볼 일 없을 인간에게 저주를 한 바가지 퍼붓는다고 누가 알겠는가.


”배가 한 대가 아니···니···야?“


주아나는 기회다 싶어 궁금한 걸 물었는데 말끝이 꼬여버렸다. 나름 노력을 했지만, 오랜 습관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 법이었다.


”목에 칼을 디밀어도 자존심을 꺾지 않을 것 같더니, 내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냐?“


”댔어.“


주아나가 새침하게 말했다.


”하하하, 좋은 자세야.“


겉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이목을 끄는데 웃음소리마저 우렁차니 주변 사람이 전부 선장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익숙한지 신경도 쓰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상을 줘야겠군. 좀 전에 뭐라고 물었지?“


”당신들이 선심 쓰듯 주던 쥐꼬리 수프, 그걸 먹던 사람들 말고도 처음 보는 사람이 많길래. 배가 한 대가 아니었던 건지 궁금했을 뿐이야.“


주아나는 별의별 것이 다 들어있던 수프를 떠올리며 인상을 구겼다.


”쥐라도 넣어준 게 어디야. 너도 이들과 함께 있었으면서 선을 그어 얘기하는구나. 역시 귀족 나부랭이들은 제 피가 무슨 황금색인 줄 안다니까.“


주아나가 아무 말이 없자, 선장은 침묵을 참지 못하고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내 배는 한 척뿐이야. 겁쟁이들이나 여러 척 끌고 다니면서 으쓱대는 거다.“


”당신 같은 자들이 또 있다는 거군.“


”그럼, 이 넓은 세상에 무역선이 내 배 하나뿐일까. 그랬다면 그 기사 놈이 건방진 말투로 너를 떠넘겼을 때 욕을 박아주면서 거절했겠지.“


선장은 불쾌함과 즐거움을 교묘하게 오가며 말했다. ‘그 기사.’ 주아나가 주목하는 단어였다. 복수라는 첫 단추를 끼우기도 전에 막아버린 증오스러운 남자 와셀. 목적지에 당도하자면 그 또한 언젠가는 넘어서야 할 장애물이었다.


주아나는 또다시 감정이 들끓어 올라 다른 것을 물어야 했다.


”나를 여기다 팔아 당신이 얻는 건 뭐지?“


”당연히 보석과 금이지, 그것 말고 뭐가 있겠어.“


고작? 순간 고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아나라고 보석과 금이 가지는 가치를 모를까. 다만 그것만으로 사람을 사고파는 행위를 온전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제국은 어째서 당신들을 내버려 두는 거지? 왜 잡아다가 처벌하지 않지?“


“온 세상에 불이라도 지를 것 같은 눈을 하고서는 순진해 빠졌군. 어딜 가나 물은 고여 썩기 마련이야. 그게 제국이든, 일리카 연합이든, 아니면 다른 곳이든. 아마 너를 이곳으로 보낸 자도 썩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중 한 마리일걸.”


선장이 못마땅한 주장을 들은 학자처럼 쏘아댔다. 하나 그게 틀린 말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주아나를 이곳으로 보낸 사람은 제국을 떠받드는 기둥 중 하나다. 그런 사람조차 사적으로 이용할 정도라면 방치, 아니 방조라 해도 무방했다.


답을 몰랐다는 게 바보 같은 상황이지만, 힘든 일을 겪었다고 해서 어린 소녀가 세상일에 밝아지는 건 아니었다. 그것을 알기라도 하듯 선장이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


“그런 시시껄렁한 일에는 관심 두지 마. 어차피 이 땅을 벗어날 수 없는 너한테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 것보다는 어떤 주인을 만날지를 걱정하는 게 좋을걸. 뭐, 좋은 곳에 팔리기는 글렀겠지만 말이야.”


“···이유가 뭔데?”


“생각해봐라, 절름발이 꼬마를 어디다 쓰겠냐. 나는 네가 재미난 곳으로 팔려 가서 다양한 고통을 받길 바라지만, 재주라도 있지 않은 이상 아마도 어려울 거야. 혹시 있나?”


선장이 주아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있다고 말해, 어서 말해, 그렇게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주아나는 대답을 미루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봤다. 허드렛일은 해본 적도 없었고 할 줄도 몰랐다. 그 외에도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나마 꼽자면 검술 정도인데 그것도 다리가 멀쩡할 때 얘기였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검을 쥔다고 또래나 이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면 이곳을 벗어나 원래 대륙으로 돌아갈 수나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막막함이 피부를 파고들어 신경을 타고 퍼져나갔다. 그때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앞줄에 선 사람들을 앞쪽으로 이끌고 갔다.


“우리가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응원할 테니 힘차게 발버둥 쳐보라고.”


선장은 거대한 손으로 주아나 등을 두드리고는 부하들을 이끌고 되돌아갔다. 친한 사이도 아닌데 어째선지 버려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번을 돌아보지 않는 선장은 애초부터 주아나가 어디에 팔리든 관심이 없었을지도 몰랐다. 유흥거리 삼아서 대화를 나눴던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 발버둥 쳐보라니, 차라리 무관심이 나았다.


한참이 지나고 주아나가 속한 줄이 나아갈 차례였다. 포위하듯 다가온 병사에게서 은은하게 양유 냄새가 났다. 그것이 주아나를 솔티드로 이끌었다.


식탁에 둘러앉아 행복하게 식사하는 가족이 보였다. 투정을 받아주는 아버지, 음식을 잘라주는 오빠, 함박웃음을 짓고 있는 자신, 유영 중인 과거에 영원토록 남고 싶었다.


그 찰나 같은 행복조차 사치인지 주아나는 철퍼덕 넘어져 과거에서 현실로 곤두박질쳤다. 흙바닥에 달라붙은 입술에서 아쉬움을 담은 한숨이 새어 나와 긴 자국을 남겼다.


“■■■.”


이어서 들려온 건 알아들을 수도 없는 언어와 건조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재촉하고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주아나가 현실을 거부해 가만히 있자, 불쑥 배 밑으로 창대가 들어오더니 몸을 뒤집었다. 같은 줄에 있던 사람들이 그것을 피해 스쳐 지나갔다.


마족 병사 한 명이 차가운 눈동자로 주아나를 내려다봤다.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라도 없었지, 눈빛은 피하는 것조차 어려웠다. 더 이상 지체했다가는 좋지 못한 일을 당할 것만 같았다.


마음이 급해진 주아나는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 왼손으로는 불편한 왼 다리를 잡아끌었다. 일어서고 나니 어느새 꼴찌가 되어 있었다.


줄을 맞춰서 원형 건축물을 반 바퀴 돌자, 뒷면이 천으로 가려진 기다란 단상과 가림막 아래 줄지어 놓인 장의자가 보였다. 그곳을 채우고 있는 자들은 지금껏 본 마족과 달리 문신이 푸르렀다.


병사들은 장의자 쪽에 시선을 두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선두에 열 명을 단상으로 올려보내고, 나머지를 단상 뒤로 끌고 갔다.


얇은 천 너머로 실루엣 하나가 왔다 갔다가 하면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떠들어댔다. 조금 지나서는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도 들려왔는데 대부분이 절실하거나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떤 이는 눈물로 호소했고, 또 어떤 이는 비굴하게 굴었다. 소리만으로도 표정이 그려졌다.


‘저들을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꽃길과 비단길이 아닐 게 확실한데 물어서 무얼 할꼬. 주아나는 자기 처지를 남에게 덧씌워 바라보고 있음에도 시선이 어긋나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앞사람들이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주아나가 올라갈 시간이 당도했다. 맨 마지막으로 단상에 오르는 주아나에게 순간적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주아나는 수치심을 느꼈다. 모두가 다리를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제일 앞줄에 앉은 마족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주아나는 그것이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거라 여겼다.


너희들이 뭔데 나를 그딴 눈으로 쳐다보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언어가 달라서 알아듣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감정은 전해지지 않을까? 하지만 이성은 마음속 소리가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았다.


주아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분한 마음을 억눌렀다. 앞으로 걸어가야 할 길에 수많은 시련이 있을 터인데, 첫 관문을 넘어보지도 못하고 끝낼 수는 없었다.


마음을 굳게 먹었음에도 진행을 맡은 마족이 가까워질수록 몸이 떨려왔다. 아까부터 왼 발목이 욱신거렸지만,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나만 이런 것일까 싶어서 고개를 돌려보니, 옆 남자는 겨울 호수에 빠졌다가 구해진 것처럼 더욱 심하게 떨어대고 있었다.


설원에 부는 눈보라가 당연하듯 이국땅이 두려운 건 주아나뿐이 아니었다. 하얗게 질린 남자 얼굴이 두려움을 완전히 걷어내 주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떨림은 멈추게 해주었다.


왼편에서 시작된 경매는 끝을 보이고 있었다. 앞으로 두 명, 주아나와 옆 남자만 팔리면 끝이었다. 마족 진행자가 남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주아나는 행동보다는 피부를 보고 있었다. 바늘로 새겨넣는 게 아닌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것이라는 문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단상을 바라보는 이들은 왜 색이 다를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산호색 눈동자가 해답을 찾고 싶은지 요리조리 바삐 돌아다녔다. 그리하여 힌트를 얻었다.


문신이 푸른 마족들은 한결같이 좋은 옷과 반짝이는 장신구를 둘렀다. 문신이 까만 마족도 끼어있었지만, 그들은 앉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계속 서 있었다.


주아나는 딱 한 번 가봤던 무도회를 떠올렸다. 화려하게 꾸미고 고상한 척 대화하던 귀족들, 문신이 푸른 마족들에게 그들과 같은 느낌이 났다.


주아나는 인간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마족 진행자를 흘끗거렸다. 중간쯤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가까이에서 들어보니 한층 더 이상했다. 다른 종족을 보는 것도 해괴한 일인데, 그들 중 하나가 자신과 같은 언어를 내뱉는다는 게 참으로 기분을 묘하게 만들었다.


옆 남자는 진행자가 하는 질문에 무엇하나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어대니 목소리가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그토록 쓸모없어 보이는 남자를 누가 사갈까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구매자는 있었다. 어떤 목적으로 남자를 구매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디 그것이 끔찍한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건 주아나뿐이었다. 진행자가 앞으로 다가와 눈을 내리깔았다. 흘끗거려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생각보다 키가 컸다. 그래서인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진행자는 주아나를 쭉 훑어본 뒤 다른 사람에게 했던 대로 똑같이 질문을 했다.


“여기 오기 전에 뭘 했지?”


옆 사람을 통해서 충분히 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주아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자 진행자가 다시 한번 훑어보며 물었다.


“네가 살던 곳에서 무슨 일을 했냐는 말이다. 알아들어?”


입은 벙긋벙긋하는데 목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냐고 물어봤자, 마땅히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왜냐면 너무도 편안하게 살아왔기 때문이었다.


“벙어리야!?”


여러번 물었음에도 대답이 없자, 진행자는 화를 냈다. 이내 신경질적으로 몸을 돌릴 때, 주아나가 옷자락을 잡아 세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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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9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9 0 12쪽
»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7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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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8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8 0 14쪽
6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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