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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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1nx666
작품등록일 :
2024.07.1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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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1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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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DUMMY

주아나는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잠들지는 않았다. 아니 잘 수가 없었다. 면식도 없는 사람에게서 들어서는 안 될 것을 들어버렸다. 그녀가 사랑했던 도시가 불타 없어졌더란다. 범인은 같은 대가문인 로렌실과 도리안이었다.


그들이 왜 그랬냐는 질문보다 1황자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그는 망신당했고, 불화를 해소하지 못한 채로 돌아갔다. 그것은 원한이 되기에 충분한 계기였다. 2황자 또한 자기 형이 이 일을 잊지 않을 거라 말하지 않았던가.


2황자는 마지막에 보답이라는 애매한 답변을 남기고 돌아갔지만, 그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제 와서 돌이켜보면 모든 걸 예상하고 경고를 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전부 의심일 뿐이었다. 1황자가 그날 있었던 원한만으로 로렌실과 도리안을 움직이게 했을까? 아직 황태자조차 되지 못한 후계자에게 그런 권한이 있을까? 가득한 의문 속에 어린 소녀가 알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만약, 천의 하나라도 정말로 배후가 1황자라면···주아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황자에게 그렇게 굴지 말걸···그날 훈련장에 가지 말았어야 했어···방에 틀어박혀서 나오는 게 아니었어···멍청이, 모질이.’


후회라는 덫을 피하지 못해 자신에게 모진 말을 해봐도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나 절망이 매몰찰수록 희망은 친절하게 굴어대는 법이었다.


’아버지와 오빠는 살아있을까? 그 사람들은 아버지와 오빠가 죽었다고는 말하지 않았어. 살아있을지도 몰라. 나를 찾고 있을지도 몰라, 아니면 다른 곳으로 도망쳤거나, 그도 아니면 어딘가로 끌려갔을지도······.‘


주아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 끝에 걸터앉아있었다. 얼굴에는 마음을 투영한 듯한 짙은 음영이 드리워진 채였다. 작은 여관방 한구석에 기대어 자는 샌즈가 보였다. 불편한 자세 때문인지 얼굴 주름이 꼬깃꼬깃해 보였다.


사각 창 너머 새벽하늘은 여느 날과 같았지만, 오늘따라 달만은 유난히 둥글고 컸다. 주아나는 한쪽 눈을 감고 두 손가락을 달 위에 얹어보았다.


’로렌실···로렌실···.‘


그리고 세워보았다.


’도리안···도리안···.‘


손가락이 검이 된다면 로렌실, 뿔이 된다면 도리안이었다. 정말로 그들이 침략자였던 것일까? 잘못 봤다거나, 착각일 가능성은 없는 걸까?


이런 오지 산골에 사는 사람들이 떠드는 말을 덜컥 믿는 것부터가 바보짓일지도 몰랐다. 장사꾼에게 들었다지만, 그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서라면 온갖 거짓말을 일삼는다고 했다.


남자들은 헛소문을 듣고서 떠들어댔던 걸지도 몰랐다. 아버지와 오빠가 이미 적을 몰아내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자는 말에 절대 안 된다고 대답했던 샌즈는 그런 걸 생각해보지 않았던 걸까? 아니다, 그는 고지식할 뿐 결코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자신을 맡았다는 사명감 때문에 귀를 닫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주아나는 샌즈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 않았다. 방으로 올라온 이후 내내 떼를 써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코 솔티드로 되돌아갈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돌아가야만 했다.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가서 기다린다 해도 아버지와 오빠는 자신을 찾아내겠지만,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멀어졌는데, 더 멀어져서는 불안해 죽을 것만 같았다.


주아나가 다리를 떨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설득할 수 없다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될 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자신이 떠난 걸 알게 되면 샌즈도 어쩔 도리가 없을 터였다.


샌즈에게 따라잡히지 않고 먼저 솔티드에 도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차후 문제였다. 뒤죽박죽인 생각과 감정도 전부 고향에 도착하면 해결될 것이 분명했다.


왜냐면···왜냐면 주아나가 알고 있는 이들은 절대 약하지 않았고, 도시가 파괴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고, 플로카도 에델렌에서 손꼽히는 강자였다. 가문에 충성을 맹세한 기사들 또한 어디를 가든 푸대접받지 않을 실력자들이었다. 심지어 오빠마저도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돌아가자, 돌아가야 해. 아무것도 남기지 않아도 샌즈는 내가 돌아간 줄 알 거야. 가자.‘


주아나는 샌즈가 깨지 않도록 발끝을 세우고 조심스럽게 방을 빠져나갔다. 닫힌 방문은 아침이 올 때까지 열리지 않았다.


###


익숙한 숲길이었다. 수도 없이 많은 숲을 지나왔지만,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울창하게 들어찬 참나무가 그렇게 속삭였다. 주아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나무 향기가 은은하게 베여있는 공기가 상쾌했다.


날씨가 좋았더라면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바닥에 금빛 얼룩을 만들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오늘은 먹구름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었다.


주아나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잎사귀들이 살랑거렸다. 숲이 바라는 건 부드러운 바람이었겠지만, 실제로 불고 있는 바람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원체 새가 많은 곳이라 환영 인사라도 해줄 법한데, 날씨가 궂어서인지 지저귐이 없었다. 그래도 솔티드까지 얼마 남지 않았기에 서운함은 들지 않았다.


날짜를 정확하게 센 것은 아니었지만, 이곳까지 오는 데 얼추 한 달이 걸렸다. 길고 외로운 여정이었다. 사냥은커녕, 불도 피울 줄 모르는 14살 소녀가 하기에는 가혹하다 싶었을 정도로.


지나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면 되겠지, 그게 얼마나 어설프기 그지없는 생각이었는지를 이제는 알았다.


떠나던 날, 몰래 주방에서 음식과 물을 챙겼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지금껏 버티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는 양도 아닌 고작 식탁보 하나 분량이었지만, 그걸로 보름을 버틸 수 있었다.


음식이 떨어지고는 배고픔에 정신이 나가서 멋모르고 아무 풀이나 뜯어 먹기도 했다. 그러다가 잘못 걸려서 종일 앓아누운 이후로는 으깬 도토리와 열매, 그마저도 없으면 나무껍질을 벗겨 속살을 갉아 먹었다. 냇가를 발견한 날이면 운이 좋았다. 배 터지도록 물을 마실 수 있었으니까.


상상이나 했을까, 제대로 된 음식도 아닌 것을 먹으면서 홀로 산과 들판을 떠도는 신세라니. 간혹 버려진 오두막을 발견하고 뭐라도 있을까 뒤질 때면, 주아나는 자신이 어떤 신분이었는지 까맣게 잊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면 많은 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포효도 있었지만, 주로 아우우~~하는 늑대 울음소리였다. 하울링에 담겨있는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신은 인간에게 그런 능력을 주지 않았다.


귀와 정신을 괴롭히던 늑대는 기어코 눈앞에까지 나타났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반짝거리는 두 눈은 오금을 저리게 했다. 심지어 한 마리도 아니고 세 마리였다. 어두워서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먹이를 사냥하려 한다는 건 크르릉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주아나는 온 힘을 다해서 등진 나무를 타올랐다. 판단이나 행동이 조금만 늦었더라도 날카로운 송곳니에 허벅지를 물렸을 뻔했다. 다행히 늑대는 나무를 탈 줄 몰랐다. 닿지는 않는데 눈앞에 아른거리는 먹잇감이라니, 얼마나 군침이 돌겠는가. 그래서인지 늑대들은 밤새 나무 밑을 맴돌았다.


깜빡 졸았다가 동틀 무렵 깨어보니 늑대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안심할 수가 없어서 몇 시간이나 지난 다음에야 내려왔다.


그날 겪은 경험으로 주아나는 매일 밤 두꺼운 나뭇가지를 찾아 올랐다. 그렇게까지 하고도 고작 몇 미터 아래가 낭떠러지인 양 겨우겨우 잠이 들고는 했다.


하지만 여정 동안 정말로 무서웠던 건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태어난 이래로 얼마나 커다란 행복 속에서 살아왔는지 절실히 깨닫게 됐다.


’나는 호화로운 새장 안에서 제대로 나는 법조차 배우지 못한 앵무새와 다를 바 없구나.‘


주아나는 자신을 그렇게 정의했다.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부정조차 할 수 없었다.


비라도 쏟아질까 싶어서 빠르게 걷다 보니 어느덧 참나무 숲이 끝나가고 있었다. 평야 너머로 그토록 원하던 솔티드가 보였다. 주아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후드를 벗고서 소매로 눈을 비빈 다음 뛰기 시작했다.


기쁨도 잠시, 주아나는 마차 바퀴 자국, 말발굽 자국, 사람 발자국에 짓밟힌 논과 밭을 지나면서 끙끙거렸다. 숨에 차서 앓는 소리는 도시 외벽이 가까워질수록 불안감을 키워갔다.


”아니야, 아니야···.“


구름처럼 하얬던 외벽이 그을음과 피로 얼룩져 있었다. 군데군데 상처를 입었어도 무너진 곳이 없다고 좋아할 수 없는 건, 순회로 담장에 걸쳐진 병사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농지가 끝나는 부근부터 역한 냄새가 풍겼고, 주아나는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그것도 모자라 해자에 다다라서는 고개를 돌리고 헛구역질해댔다.


”우웩···.“


말라비틀어진 해자 안과 외벽 아래로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다. 어쩌다가 해자 밖까지 흘러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시체 하나는 구더기가 가득했다. 헛구역질을 멈추고 잠깐 본 것만으로도 온몸이 가려울 지경이었다.


주아나는 시체를 보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해자에서 크게 떨어져 달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눈시울은 점점 붉어져 갔다.


성문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주아나 어깨와 머리로 비가 똑똑 떨어졌다. 곧이어 회색 하늘에서 번쩍하고 번개가 쳤다. 이어서 우르릉, 천둥이 울렸다.


”하···하···하···.“


얇았던 빗줄기는 순식간에 작달비로 변했다. 빗물이 얼굴을 때려대는 통에 숨결이 거칠어졌다. 젖은 머리 또한 격한 움직임에 동하여 자꾸만 흘러내렸다. 주아나는 그것이 너무 짜증 났다. 끝내는 울화가 치밀었다.


주아나가 머리를 크게 쓸어 넘겼다. 그리고 달리던 걸 멈췄다. 분명 도시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던 자리인데, 성문이 보이지를 않았다. 대신 거대한 구멍이 그녀를 맞이했고, 마음이 철컹하고 내려앉았다.


무너진 외벽 더미가 도개교인 양 해자를 채우고도 모자라 낮은 언덕처럼 쌓여있었다. 너머로 보이는 건 하부가 가려진 지붕들뿐이었다. 거센 빗줄기와 어두운 날씨 때문에 그마저도 흐릿하게 보였다.


주아나는 쥐어짜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오른손으로 덜자란 가슴 윗부분을 움켜쥐어봤지만, 육체적인 통증이 아니었다. 손으로는 결코 만질 수 없는 깊은 내부, 괴롭힘은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마름돌 언덕을 기어오르는 내내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후두두, 등을 강타하는 빗줄기가 외투를 뚫고서 속옷까지 적셨다.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최대한 차분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어디 쉬울까. 정강이고 손이고 모서리에 마구 긁혀댔다. 쓸리거나 말거나 주아나는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한참 만에야 언덕을 넘어 도시 안으로 들어섰다. 그사이 더욱 어두워져 도시 전경이 제대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것을 하늘도 알아차렸는지, 또 한 번 번개가 쳤다. 둥둥 쾅, 이어지는 천둥소리는 아까보다 한껏 더 성이 나 있었다.


”···진짜였어···.“


털썩, 주아나가 진흙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주점에서 떠들어대던 남자 말처럼 솔티드는 잿더미가 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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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화 달아나, 주아나 (9) 24.08.01 8 0 13쪽
17 17화 달아나, 주아나 (8) 24.07.31 6 0 12쪽
16 16화 달아나, 주아나 (7) 24.07.30 8 0 12쪽
15 15화 달아나, 주아나 (6) 24.07.29 8 0 12쪽
14 14화 달아나, 주아나 (5) 24.07.27 10 0 13쪽
13 13화 달아나, 주아나 (4) 24.07.26 8 0 12쪽
12 12화 달아나, 주아나 (3) 24.07.24 6 0 12쪽
11 11화 달아나, 주아나 (2) 24.07.23 6 0 12쪽
10 10화 달아나, 주아나 (1) 24.07.22 6 0 14쪽
9 9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9) 24.07.21 6 0 12쪽
8 8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8) 24.07.20 7 0 12쪽
7 7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7) 24.07.19 7 0 14쪽
» 6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6) 24.07.18 8 0 12쪽
5 5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5) 24.07.16 6 0 14쪽
4 4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4) 24.07.15 6 0 12쪽
3 3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3) 24.07.14 6 0 14쪽
2 2화 주아나, 나의 주아나 (2) 24.07.13 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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