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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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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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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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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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들 (1) : 어쩌면 공포와 전혀 연관이 없을 수도 있었다

DUMMY

“협동 수사?”

“군단장이 다시 나타나면서 이교도가 굉장히 많아졌다. 중앙 정부에서 아리바 기사단의 파견을 바라는 상황이야.”


아리바 기사단의 단장, 산티아고는 격식 차린 의복으로 친히 흰 장미 기사단 본부까지 찾아와 부탁하고 있었다.


헬레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우리가 이교도를 그렇게나 싫어했습니까?”

“단순한 이교도가 아니다. 사람들이 사라지는 중이니, 정확히 말하면 사이비에 가깝지.”

“사람들이 사라진다고요?”


산티아고는 자기 말을 증명하듯, 공문서 하나를 그녀의 앞에 내려놓았다.


마을의 실종자들을 찾아내라는 국왕의 명령과 인장으로 증명되었고, 그들은 대체로 아라고니아 남동부의 피레스 산맥 인근에서 실종되었다는 말도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아라고니아의 국교인 아시타우스교에서 배교를 선언한 이들이라는 것까지.


헬레나는 이를 보고 다시 산티아고를 보았다.


“피레스 산맥이라면 여기서 완전 반대입니다. 왜 아라고니아의 중앙 기사단이 아닌, 빌보의 아리바 기사단이 가는 거죠?”


그녀의 물음에 산티아고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고작 3년인가···, 그대가 이곳과 단절된 것이.”

“뭐, 그렇죠.”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주지. 아라고니아의 기사단 대부분은 해체되었다.”


헬레나는 대체로 직감하고 있었던 사실이었기에 덤덤했지만, 그것이 북부의 빌보에 기사 증원을 요청할 정도로 심각해졌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산티아고는 생각 중인 그녀에게 물었다.


“이번 일이 이전에 있었던 일과 비슷하지 않나?”

“···만약 항구의 군단장을 시작으로, 새로운 군단장들이 알게 모르게 스며들었다면요.”


그녀의 머릿속에는 예전에 상대했던 군단장 한 명이 떠오를 뿐이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 전, 북부 하르드라다 왕국 인근으로 원정을 떠났을 무렵, 단순하지 않았던 이단자 무리를 마주쳤다.


그들은 식인과 약탈, 방화를 즐겼고, 쾌락을 울부짖는 끔찍한 무리였다.


이단자 무리는 이미 하르드라다 왕국에서도 대대적인 토벌을 나설 정도로 문제가 되었지만, 그들은 사람을 죽이고, 먹는 것을 멈추지 않은 것도 모자라서 도리어 하르드라다 왕국 내부로 전파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발생했다.


“위선의 천사, 우리는 그렇게 불렀습니다.”

“천사라니, 그 명칭조차 아까울 정도로 쓰레기 같은 놈이었을 텐데.”


무언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곧, 쉽게 변질할 수 있는 타락의 길로 빠져들기 쉬워진다.


그런 점을 이용한 군단장이 있었다.


“국왕 폐하께서는 표면적으로 기사에게 실종자의 처리를 요청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공표되지 않은 군단장의 처리를 요구하시는 것이다.”

“···검은 새를 해산시켜 놓고 참.”


헬레나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입도 들어온 김에 떠나죠.”


그녀가 검을 챙길 무렵, 산티아고가 방을 나가다가 멈칫하며 물었다.


“혹시 세르지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의 물음에 헬레나는 살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일단 데리고 다녀보려고요.”


그녀의 말에 산티아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


아직 4명으로 이루어진 흰 장미 기사단은 아리바 기사단을 따라서 말을 타고 아라고니아를 종단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헬레나의 옆에 딱 붙은 아데스는 경위를 전해 듣고는 고민하다 중얼거렸다.


“이단의 천사라···, 참 오랜만인데.”

“이단의 천사? 그게 뭡니까?”


아킬라는 아데스의 지나가는 듯한 말을 놓치지 않고 물었고, 이에 세르지가 답했다.


“군단장 중 한 명이라고 들었습니다. 사람의 약하면서도 믿음이 강한 부분을 공략하던, 이단자들을 양성한 군단장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단순하게 약한 부분을 노린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의 약함을 노리는 악랄한 놈이야.”


아데스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두 사람은 군단장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헬레나는 잠깐 얼굴만 뒤를 돌아 말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야.”

“···그렇습니까?”


둘은 아직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흰 장미들! 여기서 쉬어간다.”


가장 선두에 있던 산티아고가 뒤에까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하게 외치자, 헬레나는 다급하게 고삐를 잡아 말을 세웠다.


말들이 아라고니아의 거친 환경을 버티지 못해서 지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위선의 천사라니,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잖아. 이미 불의 악마부터 더 악랄한 놈으로 만났는데···. 더 많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빌 뿐이지.”


헬레나와 아데스는 산맥과 수풀로 이루어진 주변을 바라보며 그리 대화를 나눴다.


그런 둘의 대화를 엿들은 세르지는 신발의 끈들이 풀어진 것을 묶으면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세르지. 너, 독실한 신자냐?”


창을 어깨에 메고 있던 아킬라가 허리를 숙인 세르지의 십자 목걸이를 보곤 물었다.


“제 가족들은 조상 대대로 아시타우스교를 믿어왔습니다. 집안의 직계 장남인 제가 배교를 할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믿고 있는 겁니다.”

“신앙심은 그다지 없는 건가?”

“솔직히 말하면 당장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신을 찾을 여유는 그다지 없죠.”


그가 웃으며 그리 말하자, 아킬라는 똑같이 멋쩍게 웃으면서 그 말에 동의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갑옷이 무거워서 그런데, 일으켜주시겠습니까?”

“영차-.”


아킬라는 잠깐 창을 내려놓고, 세르지의 두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워줬다.


그러고는 그의 표정을 잠깐 확인하다 물었다.


“아리바를 포기한 거, 후회 안 해?”

“···단장의 명이었습니다.”


세르지는 예의가 없는 이들이라고 생각했던 흰 장미의 기사들에게 오게 된 것이 믿기질 않았지만, 한 편으로는 단장이 자신을 믿기에 이러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흰 장미 기사단이 아무리 무시당하더라도 자신이 그토록 따르던 단장이 인정한 기사들이니 말이다.


“신입들! 출발할 준비해!”


두 사람은 헬레나의 외침에 미묘한 웃음을 지으면서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세르지는 믿을만한 동기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쁜 미소를 슬쩍 지을 뿐이었다.


***


“여기로군.”


다그닥! 다그닥!


후발대에 있던 흰 장미 기사단 쪽에서 헬레나가 말의 고삐를 잡고 달려오더니, 이내 산티아고의 바로 옆에 섰다.


“아리바는 단체 행동으로 이곳의 봉쇄를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흰 장미가 내부로 들어갈 생각이니, 부디 맡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상 요구에 가까운 헬레나의 요청에 산티아고는 잠깐 고민하다가도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하지.”

“그대의 너그러움에 감사를 표합니다.”


헬레나와 아데스는 말에서 내렸고, 아킬라와 세르지도 서로를 슬쩍 바라보다 말에서 내렸다.


그러고는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왜 저희만 따로 가는 겁니까?”


세르지의 물음에 헬레나가 답했다.


“기사단 전체가 나눠서 움직이기엔 몹시 위험하니까 우리가 먼저 가는 거다. 너희들은 아데스에게서 절대로 떨어지지 마라.”


그녀의 당부에 세르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바 기사단은 말을 타고 계속 이동했고, 그들은 숲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서 점차 두 기사단 간의 거리가 멀어졌다.


“이 근처에 있어.”

“전원, 전투 준비.”


헬레나의 말에 두 신입은 말없이 각자의 무기를 꺼내었다.


“죽이지 마라.”


그녀가 그리 말하고 슬쩍 고개를 숙였다.


후우욱!


투쿵!!


헬레나가 있던 위치로 창이 날아들었고, 각종 날붙이가 애매하게 날아들면서 그들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나갔다.


아직 제대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두 신입이 멍하니 지켜보는 사이였다.


“흐아아악!”


허술하기 짝이 없게 검을 들고 달려드는 낯선 이의 움직임에 아킬라가 반사적으로 창을 들었다.


“죽이지 말라니까!”

“에크!”


날을 세우던 아킬라는 아데스의 외침을 듣자마자 반대로 돌리어 막대기 부분으로 낯선 이의 얼굴을 가격했다.


낯선 이는 무기를 떨어트리며 기절했다.


“뭡니까? 전투 훈련은 전혀 못 받은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는데···.”

“맹목적인 믿음의 결과라고 할까.”


헬레나는 그리 말하며 낯선 이에게 다가왔다.


얼굴 부분이 조금 부었지만, 맥박은 정상이었기에 안도하는 표정으로 포박했다.


“지금부터 너희가 가진 신앙심을 전부 버려라. 어떤 신도 믿지 말고, 어떤 믿음도 가지지 마. 살아서 나갈 거란 희망은 전부 버려.”


헬레나는 살기만이 느껴지는 주변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신입은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고, 아데스는 몹시 평온한 표정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으로 숲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대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어두운 숲 안쪽의 모습이 위선과 표독으로 가득 찼다.


그 느낌이 몹시 더러워, 당장이라도 토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아올랐음에도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바라보게 만드는 묘한 느낌이 있었다.


“사제를 데려올 걸 그랬어.”


헬레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리 말했다.


그녀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뻔뻔하네.”


아데스는 무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고, 아킬라와 세르지는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기에 혼란스러워할 뿐이었다.


작가의말

was forgotten and perhaps not connected to the horror at all

(어쩌면 공포와 전혀 연관이 없을 수도 있었다)

- 윌리엄 피터 블래티 『엑소시스트』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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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단자들 (3) : 새는 하느님께로 날아간다 24.09.14 4 0 10쪽
24 이단자들 (2) :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24.09.11 8 0 10쪽
» 이단자들 (1) : 어쩌면 공포와 전혀 연관이 없을 수도 있었다 24.09.07 8 0 10쪽
22 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24.09.04 10 0 11쪽
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1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3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10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10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9 1 10쪽
15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10 1 11쪽
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9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9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1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1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9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10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4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3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9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2 2 12쪽
4 귀환 (3) : 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 24.07.22 20 2 11쪽
3 귀환 (2) : 숲 속 어느 마을에 사령술사들이 살고 있었다 24.07.22 26 2 13쪽
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6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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