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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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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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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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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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DUMMY

슈타트가테스


일명 신의 도시라고 일컫는 이곳은 제국 최동단에 있는 브라이스가우 변경백의 수도이자, 중앙 제국의 최대 상업이 오가는 그야말로 제국과 변경백의 핵심 요충지였다.


늦은 밤거리에도 주변을 환하게 비추는 등불들이 여럿 있었으니, 이것만으로도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 수 있었다.


“설마 통행증조차 받지 않을 줄이야.”

“뭐야, 제국은 처음인 거야?”

“아라고니아에 처음 당도할 순간엔 남부의 타이파 왕조를 거쳐서 배를 타고 왔으니, 처음이라고 할 수 있겠네.”


아데스는 갈색의 벽돌 지붕과 대들보가 바깥으로 노출된 중앙 제국식 가옥 구조를 흥미롭게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은 제각각의 의복을 입고, 제각각의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으며, 활발한 시장가는 사람들의 흥정으로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러면 에렙 대륙부터 설명해볼까.”

“거기까지 갈 필요는 없어.”


아데스는 헛웃음을 지었지만, 헬레나는 아데스에게 기초부터 알려주겠다는 듯이 말을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마계의 관문이 위치한 서부, 그리고 그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라고니아 왕국이 우리의 목적지야.”


아라고니아는 이미 알고 있었기에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기는 아라고니아와 같은 종교를 가지며, 교황의 권위로 황제가 선출되는 제후국들의 나라인 중앙 제국.”


아데스는 신기한 구조를 가진 이 제국에 의구심을 가졌지만, 기쁜 표정으로 설명하는 헬레나에게 질문할 시간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이어서 말했다.


“앞선 두 국가와 다른 종교를 바탕으로, 혹독하고 추운 기후로 유명한 북부의 하르드라다 왕국과 기존의 왕조를 무너트리고 새로운 종교를 토대로 세워진 남부의 타이파 왕조까지.”


짝!


헬레나는 박수를 한 번 쳐 보이곤 말했다.


“흔히 서쪽의 땅이라고 동방에 알려진 에렙 대륙은 4개의 국가가 각 구역을 나누어 적당한 대립을 토대로 살아왔어.”

그러고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돌아다니는 슈타트가테스의 광장에서 팔을 뻗어 보이곤 말했다.


“그런 국가들 가운데 가장 큰 곳이 바로 이 중앙 제국, 그리고 여긴 그 중에서도 최고의 도시야.”


아데스에게 이 모습은 여태껏 본 적 없는 광경을 선물해 주기엔 충분했다.


“그래서 왜 우리가 통행증을 안 받아?”


다만 그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했기에 이를 물었고, 그의 반응에 헬레나는 별로 좋지 않았다는 듯이 입을 파르르 떨어 보이며 말했다.


“아라고니아의 기사단은 모두 아시타우스교의 교황이 허가하여 설립된 것이니, 당연히 우리는 제국의 의심을 받을 이유가 없거든.”

“나는 아시타우스교를 믿지 않는데?”

“그야, 20년도 더 전에 아라고니아 왕국에서 이교도의 자유를 인정했으니까.”


헬레나가 제국을 띄워주는 듯한 말을 많이 했지만, 실질적으로 제후의 입김이 거세어 하나의 단일 국가로서의 정체성이 부족한 제국은, 절대왕권을 확립한 아라고니아에 불만을 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저 꼭두각시 황제와 본인 권력에 만족하는 교황만이 남은 제후들의 껍데기 국가, 그게 제국의 진정한 실체였으니까.


“그나저나 어디까지 가야 해?”

“조금 더 앞으로 가면 돼.”


본래라면 이 도시에 거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아라고니아까지 갈 수 있었지만, 도중에 말이 지쳐버린 탓에 어쩔 수 없이 들르게 되었다.


무엇보다 제국을 통과해서 가는 편이,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빠른 길이기도 했다.


“오호, 검은 새 기사단 아니야?”

“말 빌릴 수 있어?”

“교환이야? 대여야?”

“교환, 국경에 있는 마구간에 있어.”

“남는 말이 있던가···.”


역참원은 그리 중얼거리며 잠깐 자리를 떴다.


그들이 말을 바꿀 수 있는 역참에 도착하자, 그곳의 사람들은 모두 그들의 망토만 보고도 그들이 어느 소속인지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아데스는 깜짝 놀라, 주변 사람들을 보다 말했다.


“뭐야, 알아보네?”

“이미 제국에서는 유명해. ‘마왕이랑 싸우는 신들의 기사’들로 말이지.”

“우리가 돌아온 건 알까? 아니, 정확히는 우리만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글쎄.”


헬레나는 굳이 사람들이 실망하게 할 일을 하고 싶지 않았고, 떠벌리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조용히 역참원을 기다릴 뿐이었다.


“검은 새 기사단? 놈들은 3년 전에 이미 마계로 떠났잖아. 저 자식들은 딱 봐도 가짜야.”


그런 와중에 그들에게 들린 한 마디.


헬레나는 살짝 발끈했지만, 이에 최대한 대응하지 않기로 결심하여 조용히 기다릴 따름이었다.


“그런가? 역시 가짜겠지.”

“누가 저런 망토를 파는 거야? 영웅들을 기리지는 못할망정, 가짜들이나 만들고.”

“저 자식들이 마계에 가면 5초도 못 버틸 텐데.”


그러나 점점 거세지는 말이었지만, 헬레나는 평민으로서 온갖 멸시를 당해봤던 입장이었기에 나름 익숙한 말들이었다.


“저 개새끼들이···.”

“진정해.”


하지만 아데스는 이를 지나치게 신경 쓰고 있었다.


누구보다 명예와 망자에 대한 예우를 중시하는 그에게는 온갖 망자들을 만들어 낸 마계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떠벌리는 자들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헬레나가 가만히 있었기에 조용히 중얼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애초에 검은 새 기사단도 못 돌아오는 걸 보면, 아라고니아 놈들도 허풍이었던 것이 아닐까?”


모욕에 가까운 한마디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덜컹!


“네놈···, 그 주둥아리로 뭐라 했어···.”


아데스는 한순간에 말을 함부로 한 자의 앞으로 이동하여,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가 강한 힘으로 틀어막으니, 보통 사람에 불과한 이는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며 겁에 질린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데스, 그만.”


헬레나는 여전히 같은 위치에서 가만히 서 있었고, 아데스는 그녀의 말에 손을 놓았다.


“여긴 우리의 땅이 아니다. 예의를 지켜.”

“이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겠다고? 우리가 이놈들보다 약해서 마계를 포기한 것은 아니잖-.”

“아데스!”


헬레나는 역참이 울릴 정도로 크게 그를 외쳤다.


아데스가 혼란을 발생시킨 시점부터 역참은 조용해진 지 오래였고, 모두가 그를 두려움과 놀람,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린 실패한 게 맞다. 그걸 인정해라.”

“···.”


아데스는 그 말에 손을 놓았다.


“아으으···.”


아데스에게 입을 잡힌 이는 바닥에 쓰러진 채 턱을 쥐어 잡으며, 아직 남아있는 얼얼함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스르르릉!


헬레나는 그런 그에게 망토 안에서 아직 마물의 피가 지워지지 않은 검을 꺼내어 보이곤 말했다.


모두 그녀가 검을 꺼낸 것에 몹시 놀랐고, 아데스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입조심 해라.”


핏자국이 그대로 남은 검은 역참에 있는 모두에게 각인되기엔 충분했고, 함부로 말한 이는 두려움에 떨면서 죄송하다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헬레나는 꽤 소란이 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검을 집어넣곤, 접수대로 다가와서 막 돌아온 역참원에게 물었다.


“바꿀 말은 있었어?”

“미, 미안하군! 내 오늘 말은 다 빠져나가···.”

“그러면 방 하나 잡지.”


헬레나는 그리 말하곤 접수대에 금화 한 닢을 올려두었다.


“오, 오늘은 비었으니, 어디든 쓰시게! 정말 어디든 쓰셔도 괜찮습니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역참원의 말에 헬레나는 금화를 한 닢 더 올려두곤 말했다.


“이건 소란을 일으킨 값, 방은 2층을 쓸게.”


헬레나는 역참원에게 열쇠를 받곤, 조용히 계단을 올랐다.


아데스는 주변을 몇 번 바라보다 그녀를 따라갔다.


역참에서 한바탕 소란이 있었지만, 그들이 검은 새 기사단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반면에 검은 새 기사단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그들의 생각보다 빠르게 퍼져나갔다.


***


“괜히 발끈했어.”


헬레나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한숨과 함께 그리 말하고는 코트를 걸었다.


“미안해. 하지만 동료들이 욕되는 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생사가 오갔던 네게 모욕되는 말은 차마 듣고 있을 수가 없었어.”

“그런 말은 많이 들었어. 너도 알겠지만, 기사단 내에서 꽤 푸대접받던 사람이라서 말이야.”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침대에 거의 반쯤은 쓰러지듯 누웠다.


“오히려 이렇게 반응한 걸 보니, 예전에 어떤 모욕을 당했었는지도 까먹어 버린 모양이야.”

“···평민 기사라서?”


아데스의 물음에 헬레나는 천장의 무늬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평민에 마법도 못 쓰고, 원래는 글도 몰랐어. 기사라는 것이 까막눈의 시골 소녀가 고작 검 좀 다룬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잖아.”

“고생 많았다.”


헬레나는 그렇기에 처음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었다고 들었을 때, 그것에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슬퍼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생사를 함께한 동지들이었지만, 정작 자신에게 한없이 차가웠던 이들이었으니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아데스만이 살아남은 것에 나름 안도하기도 했다. 그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다만 레버넌트 일족에 방문했을 때는, 자신과 달리 꽤 존경받는 이라는 것에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솔직히 네가 그런 고민을 하는 줄은 몰랐는데.”

“···내가 생각보다 마음 여린 여자거든.”

“마물을 그렇게 썰어놓고?”

“마음과 행동은 다르니까.”


아데스는 그 대답에 헛웃음을 짓곤 말했다.


“그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헬레나는 그 말에 눈을 몇 번 껌뻑이다가 침대에서 고개만 들어 그를 보았다.


아데스는 이미 그녀에게 등을 돌리어, 책상에 촛불 하나와 함께 무언가를 유심히 확인하고 있는 모습만이 보일 뿐이었다.


“딱히 한 게 없는데.”

“의도하진 않았더라도, 복수를 해줬잖아. 그 덕분에 마을 사람들이 더 피해를 보진 않았어.”

“아, 경계병들···?”


헬레나는 죽은 이들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었는지를 기억하던 아데스의 모습이 잊히질 않았다.


이미 망자를 너무 다루어, 죽음에 익숙해져서 제대로 슬퍼하지조차 못하는 그가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가 생각할 처지는 아니긴 하지만···.’


헬레나는 잡다한 생각과 함께 눈을 감았다.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해왔던 그녀에게 주어진 휴식은 나름대로 달콤했다.


“간만의 휴식은 어때.”


아데스는 동선을 계속 확인하다 말이 없어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헬레···. 많이 피곤했구나?”


그가 뒤를 돌아보니, 이미 곤히 잠든 헬레나의 모습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아데스는 잠깐 일어나,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예나, 지금이나 고마울 따름이야.”


그는 그리 말하곤 촛불의 불을 손으로 꺼트렸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아데스는 환하게 빛나는 에메랄드빛의 보석이 박힌 목걸이를 몇 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의 자신은 그저 헬레나를 이용할 뿐이다.


아데스는 그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작가의말

I am an invisible man.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 랠프 왈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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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1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8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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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8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8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0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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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3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3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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