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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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최근연재일 :
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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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6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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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DUMMY

“플로게리 아페르기아. (Φλογερή απεργία)”


불의 악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태양의 악마’는 자신의 붉은색 검을 들어 보였다. 날에서는 불길이 올라오는 모습을 보이며, 헬레나를 겨누기 시작했다.


헬레나는 순간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 놓을 뻔했던 검을 치켜들었다.


“헬레나!”


아데스는 헬레나가 늦었다고 판단했기에 일단은 미친 듯이 달렸다.


그는 약간의 호흡과 함께 헬레나의 바로 앞을 노려보았다.


후욱!


화르륵!!


아데스는 헬레나의 앞으로 순간 이동했다.


원래라면 그녀를 업은 채 다른 방향으로 이동할 계획이었지만, 타이밍과 마력의 한계로 그리할 수 없었다.


결국 그의 어깨에 검이 관통했다.


“···아데스?”

“늦을 뻔했네.”


헬레나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아데스의 어깨에 불이 이글거리는 칼이 관통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사색에 질린 표정을 지어버렸지만, 그가 관통당한 몸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어깨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아니었고, 아데스가 고통스러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관통당한 부분은 아데스가 평소에 내던 초록색의 불꽃이, 관통한 검의 붉은 불꽃과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의 눈도 평소보다 발광했다.


그건 마치···.


“사령?”

“조금 나중에 이야기할까?”


아데스는 약간의 웃음과 함께 그리 말하고는 곁눈질로 뒤를 보았다.


당황한 것이 헬레나뿐만은 아니었던 것인지, 태양의 악마는 다음 행동을 실행하는 것에 오류가 걸린 것처럼 눈만 껌뻑이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를 먹고 있었다.


“자, 도망가자.”

“어···, 어, 그래···.”


손을 헬레나의 등 쪽으로 옮긴 아데스는 약간이나마 회복된 마력으로 다시 순간 이동했다.


후욱!


우당탕!!


“···좀 살살하면 덧나냐?”


살짝 떨어진 곳의 허공에서 떨어진 헬레나의 불평에 아데스는 반박하고 싶었지만, 숨을 헐떡이는 것도 바빴기에 그리할 수 없었다.


그녀는 검을 지팡이 삼아 지탱하며 일어났다.


“상황이 아쉽네. 물어볼 게 참 많은데.”

“아마 봤던 그대로야. 나는 사령이고, 어쩌다 보니 지금 너한테 들킨 거지.”

“주인은 누군데?”

“나 자신.”


헬레나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은 상황이 아쉽다며?”


아데스의 물음에 그녀는 치사함을 느끼면서도 검을 똑바로 잡았다.


태양의 악마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의 예상을 아득히 넘어선 검은 새 기사단 출신의 두 기사가 예상도 못 한 일들을 벌이니,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표정은 똑같았지만, 느껴지는 불길의 기운이 세진 것이 누가 봐도 화난 것처럼 보였다.


“불의 악마와는 얼마나 달라?”

“약점도 다르고, 성격도 차분해.”

“비슷한 부분은?”

“강한 불을 다루며, 그걸로 회복한다는 정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은?”

“약점이 다르거나, 없다.”


헬레나는 놈을 올려다보고 있는 순간마다 태양을 보고 있다는 착각을 했다.


어떤 행동을 하든 간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표정, 마치 하찮다는 듯이 다루는 태도, 그런 놈을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던 굴욕감은 간만에 그녀가 전력을 다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했다.


“아데스, 저놈은 너한테 물리적 행동을 취할 수 없다는 거지? 반대로 너는 저놈에게 물리적으로 행동을 취할 수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허용하지 않는 이상이야. 한 사람에게 동시에는 못해.”


아데스의 말에 헬레나는 살짝 웃어 보였다.


“한 사람에게 동시에는 말이지···?”

“잠깐, 뭘 하려고?”

“지금!”


덥석!


헬레나는 아데스의 옷깃을 잡고 끌었다.


그가 자신에게 물리적 접촉을 허용한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었고, 아데스는 당황하면서도 일단은 그녀에게 끌려주었다.


검을 치켜세우며 다가오던 태양의 악마는 자신이 노리던 헬레나의 앞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아데스를 보곤 놀랐지만, 당장은 검을 거두지 않고 그대로 찔러넣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검은 통과했다.


“이걸 노렸거든.”


아데스의 뒤에서 몸을 숙인 헬레나는 아데스의 몸을 통과하여 위로 지나가는 태양의 악마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재빠르게 검을 치켜들어 무방비한 놈의 목을 노렸다.


우드드득, 피잉!


“···와, 이것까지 똑같을 줄이야.”


검은 목을 자르긴커녕, 놈의 피부를 살짝 긁으면서 그대로 빗겨나갈 뿐이었다.


불의 악마 때와 마찬가지로 비늘과 같은 피부는 몹시 단단하여 흠집을 내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였다.


“아쉬운데.”


헬레나는 다시는 없을 기회를 놓친 것에 아쉬움을 표할 따름이었다.


“놈이 만약에 정말로 그런 무적과 같은 힘을 휘두른다면, 과연 어디까지 무적인지를 알 필요가 있겠어.”


아데스는 그리 말하곤 손을 모았다.


“지켜달라는 거지?”

“몸을 통과시키는 것도 마력이야. 사령의 힘으로는 원래 힘의 반쪽밖에 사용하지 못하니···, 무슨 뜻인지는 대충 이해했지?”


아데스의 물음에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분 버티면 될까.”

“5분.”


그녀는 그 말에 살짝 웃음을 지어 보였다.


태양의 악마가 불의 악마에 비해 강하다고 한들, 군단장 몇 명 정도는 골로 보낼 정도로 강력했던 자신을, ‘검’으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헬레나는 살짝 걸어 나와, 아데스와의 거리를 떨어트린 후에 검을 똑바로 들었다.


조금 여유가 생긴 그녀가 살핀 바로는 태양의 악마는 보기보다 무거운 검을 가볍게 휘둘렀고, 한 손과 양손을 오가는 특이한 검술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가.’


까다로운 전투 스타일은 그녀에게 생각이 많아지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포르타 페리. (Porta Ferri)”


헬레나는 검을 대각선 방향으로 아래에 두고, 두 손으로 잡고 있었다.


실력만 있다면 모든 자세를 방어할 수 있는 자세로, 상대의 스타일을 정확히 분석할 수 없는 순간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적인 자세였다.


“와라, 와라, 와라.”


숨을 거칠게 내뱉기 시작한 헬레나는 왼쪽 눈을 감았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눈을 감은 것이었지만, 태양의 악마는 그녀가 눈을 감는 행동을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해 보였다.


“···순수성을 포기하는군요?”

“군단장 새끼들은 순수성이니, 잠재성이니, 도통 알아듣기 힘든 말만 하나?”


아플루와 비슷한 말을 지껄이는 놈의 말이 그저 싫증이 날 따름이었다.


“존중하겠습니다.”


태양의 악마는 그리 말하고는 검을 얼굴의 바로 옆에 올리고, 정면을 향했다. 검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자세였다.


‘···정통파?’


가장 단순하면서도, 기본이 되는 공격 자세이자 방어 자세를 본 헬레나는 살짝 방심하고 있었다.


한 손과 양손을 오가던 모습을 보이다가 정통적인 양손 자세를 취해 보이는 것이, 헬레나에겐 놈의 스타일을 분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순간이었다.


후우욱!


카가가각!!


“···더럽게 빠르잖아!”


눈을 깜빡이는 순간에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는 속도로 찌르기 자세로 달려든 태양의 악마, 헬레나는 가까스로 검을 치켜올린 덕에 놈의 날 끝이 자신의 날에 부딪히도록 만들 수 있었다.


태양의 악마도 당황스러웠다.


보통이라면 부러지고도 남을 힘이었지만, 헬레나가 막아낸 검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킹!


가까스로 막아낸 헬레나는 무지막지하게 강하게 밀어붙이는 태양의 악마를 보곤, 슬쩍 검의 방향을 돌려주었다.


그러자 흘린 검의 위치로 놈의 자세는 흐트러졌고, 그녀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아쿨레오! (Aculeo)”


푸욱···, 파샤악!!


그녀는 흘려내면서 등을 보였지만, 곧장 검을 거꾸로 잡아 놈의 팔에 찔러넣고, 돌면서 검을 뽑는 연계를 통해서 출혈을 강요했다.


다만 그런 공격은···.


파스스···


놈은 찔린 곳에 불이 붙는 모습과 함께 상처가 순식간에 봉합되었다.


“단순하군요.”

“···거, 참, 더럽게 까다롭네!”


헬레나는 싫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


“여기가 우리의 항구···.”


산티아고는 불에 타, 쓰러지고 있는 항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물의 시체가 여기서 끊기는군요.”

“아마 다른 곳으로 산개했겠지. 여기는 무언가 압도적인 존재 하나가 가로막았을 거야.”


산티아고는 직감적으로 현재 이 사태를 만든 원인이 제1군단장이었던 불의 악마, 혹은 그와 비슷한 새로운 군단장이 상주하게 되었다는 것을 대강 눈치채고 있었다.


아무리 밟아도 꺼지지 않는 불씨가 그것을 증명했다.


캉! 피킹! 킹!


그리고 불길이 치솟고 있는 항구의 너머에는 금속의 마찰음이 들려왔다.


기사들은 하나같이 섬뜩하게 울려 퍼지는 마찰음에 놀랄 따름이었지만, 산티아고는 덤덤한 표정으로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헬레나가 막아서고 있다.


단장은 그걸 알았기에 그들에게 끼어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걸 알았다.


“전원, 지하실 입구를 찾는다.”

“···예, 예에? 아니, 저렇게 소리가 나는데요?”


세르지의 물음에 산티아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지하실 입구를 찾는다.”

“단장님!”

“기사, 상관의 명에 불복종하나?”


산티아고의 물음에 세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랐다.


그는 헬레나를 처음 마주했을 때를 기억했다.


무너진 성벽 위로 마물들의 시체를 쌓아두고, 그 위에 태양, 어쩌면 그보다 찬란하게 빛나던 새로운 ‘신’의 모습을 갖춘 소녀가 냉혹한 표정으로 검을 들고 있었다.


“그때···, 우리 기사단에 왔어야 했는데···.”


산티아고는 그리 중얼거리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작가의말

The sun shone, having no alternative, on the nothing new.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 사뮈엘 베케트 『머피』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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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8 1 11쪽
»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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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8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8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0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8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9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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