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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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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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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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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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귀환 (3) : 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

DUMMY

“아마 더 이상 이 부위에서 고통을 느낄 수 없게 될 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뿐만이 아니라···.”

“무슨 말인지는 알겠습니다.”


헬레나는 더 이상 상처가 있던 오른쪽 복부에서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출혈을 막으려는 조치였지만, 아데스가 사실상 신경을 끊어버린 탓에 그로 인한 후유증이 생긴 것이었다.


이는 레버넌트 일족 치유사들이 아무리 치료하려고 애를 써도 고칠 수 없었다.


“그리고 눈은···.”

“눈도 고칠 수 없는 겁니까?”

“무언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에도 물들지 않은 순수한 힘입니다. 단순한 마왕의 공격이 원인은 아닌 모양입니다.”


치유사의 말에 헬레나는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마왕의 공격으로부터 잃어버린 왼눈의 빛은 도리어 너무 순수한 힘으로 막혀있는 것이 원인, 조금이라도 사용자의 의지가 깃든 보통의 마법으로는 고칠 수 없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눈이 없어도, 감각이 살아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에 적응하며 살아가야겠죠.”


그녀는 이미 원정을 떠나기 전에 팔 한쪽을 잃을 각오는 해두었기에, 검을 들 수 있는 두 손이 있음에 만족할 따름이었다.


치료를 마친 헬레나는 이전보다 가벼운 몸짓으로 의원을 나왔다.


그런 그녀의 앞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타나···라고 하셨던가?”

“아타나 레버넌트입니다. 제 불찰을 사과하죠.”


아타나는 오른손을 심장이 있는 가슴 위쪽에 손을 얹곤, 고개를 꾸벅이는 행동을 취했다.


레버넌트 일족의 사과를 의미하는 행동이었다.


“오히려 아타나님께서 다치지 않은 것에 다행입니다. 일족을 위했던 문화적 풍습에서 비롯된 것이니, 그 점을 이해합니다.”


헬레나는 그리 말하면서도 그녀의 차림을 한 번 바라보았다.


아데스와 비슷하면서도 변화가 조금 더 활발한 표정과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 레버넌트 일족 전통의 짙은 녹색 계열의 긴 옷, 그리고 무언가를 상징하는 듯한 화려한 귀걸이가 상당히 눈에 띄었다.


“저는 헬레나 아테나이아입니다. 들으시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라고니아 왕국의 기사입니다.”

“예, 치료받으시는 동안 아데스에게 들었습니다. 마왕과 싸워 살아남은 용맹한 기사라고···.”


처음에 대폭 경계하던 표정은 어디 가고, 아타나는 어느새 헬레나를 존경, 한 편으로는 그런 이를 공격했다는 미안함을 동시에 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그녀를 향했던 시선들은 대체로 온화하게 바뀌어 있었다.


헬레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보면서도, 아데스가 근처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아타나에게 물었다.


“아데스는 어디에 있습니까?”

“스승에게 보고하러 갔습니다.”

“스승이요?”

“아, 아데스와 저는 고아로 자라, 일족에서 지정해준 스승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받았습니다. 마치 아버지 같은 사람이죠.”


그녀의 말에 헬레나는 떨떠름했다.


사실 아데스와 잘 알던 것도 아니었고, 평소에 과묵했던 그와 평민으로 다른 귀족들에게 무시당하기에 십상이었던 헬레나는 기사단 내에서도 겉돌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일족은 폐쇄적이지만, 한 편으로는 서로를 믿을 정도로 끈끈합니다. 아데스가 조금은 이상한 편이지만요. 그래도 저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아타나는 그리 말하고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홀로 앞서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 헬레나가 도착한 곳은 거대한 나무, 그리고 그 속이 파여 마치 건물처럼 공간을 활용하여 꾸며진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때마침 아데스가 나왔다.


“아타나? 또 무슨 시비를 건 것은 아니겠죠?”

“아데스, 난 이미 실수를 사과했어.”


남매라기엔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진 둘 사이를 보고, 헬레나는 어색함을 느꼈다.


오히려 별로 볼 기회가 없는 친척이라는 느낌이 더 강할 정도로, 남매 사이의 유대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면 나중에 뵙죠.”

“감사했습니다.”


헬레나의 말에 그녀는 미소로 화답했다.


“아타나가 무슨 말을 했어?”

“그다지 없어.”


그녀의 말에 아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너한테 줄 게 있어.”

“줄 거?”

“따라오면 알 거야.”


아데스는 그리 부족하게 설명하곤, 갈 길을 묵묵히 갈 뿐이었다.


남매가 말없이 따라오라는 듯 행동하는 면이 똑같으니, 그제야 남매가 맞냐는 헬레나의 의심은 사그라들었다.


***


“잘 받아.”


훅!


툭!


아데스가 양날검 하나를 던졌고, 헬레나는 가볍게 받아내었다.


“이게 뭐야?”

“몇 년 전에 동방의 제국이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여기에 찾아와서 태합금으로 만든 검을 의례용으로 줬어.”

“이걸 왜 나한테 주는데? 중요한 거 아니야?”

“알다시피 우리는 외부와 교역하지 않아. 당연히 사절단은 검만 놓고 갔고, 스승께서도 네가 쥐길 바라시고 계셨어.”


아데스의 말에 헬레나는 검을 뽑아보았다.


예로부터 제련의 난이도는 20년 내공의 장인조차 도달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우나, 가벼우면서도 단단하며, 녹이 슬지 않는 순수한 물질인 ‘태합금’으로 만들어진 검은 상당히 아름다웠다.


손수 깎은 것 같은 무디지 않은 날, 매우 어두운 분위기인 이곳에서조차 반사되는 빛.


“아름다운걸.”


헬레나는 물건 자체에서 느껴지는 순수성과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어느 정도 보완해주는 검에 완벽히 매료되었다.


“그나저나 아데스, 궁금한 게 있는데.”

“뭐든지 말해.”

“너한테서 뭔가 수상한-.”


쿠웅!!


그런 와중에 바닥을 울릴 정도로 들리는 커다란 소리에 깜짝 놀랐다.


마치 화약이라도 터트린 것처럼, 아주 큰 폭발음이었다.


“뭐야?”

“서쪽, 서쪽에서 들렸어.”


둘은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급히 나섰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


“으···, 으아악!”

“도망쳐! 빨리!”

“경계에 실패한 거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몰라! 일단 뛰어! 어서!”


다들 분주하게 반대 방향으로 뛰고 있는 모습.


둘은 상황을 완벽히 파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당장 마을이 무언가에 의해 공격받았다는 사실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데스!”

“누이, 무슨 일입니까?”

“경계가 뚫렸다. 서쪽에서 불기운이 느껴지고, 생명 신호가 많이 사라지고 있어. 아무래도 다들 이걸 느끼고 도망치는 것 같아.”


레버넌트 일족은 사령술을 기본으로 배우기에 서로의 생명 신호가 끊어지는 것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 수 있었다.


헬레나도 그렇게 아데스가 살려준 것이니, 당장은 심각한 사안이라는 것은 파악했다.


“누이는 도망가는 사람들을 도우세요. 저와 헬레나가 어떻게든 막아보겠습니다.”

“그래, 뒤를 부탁하마. 몸조심하고.”


아타나는 그리 말하곤 아데스의 어깨를 한 번 잡아 보이곤, 걱정스러운 눈빛과 어색한 미소를 보일 뿐이었다.


“아데스, 몇 명 죽었어?”

“족히 다섯은 죽었어. 사령 일곱도 방금 신호가 사라졌는데, 싸울 수 있겠나?”

“이거면 충분해.”


헬레나는 그리 말하곤 검을 들어보였다.


‘···사람? 짐승 떼? 그것도 아니라면 마물? 아니, 마물이 여기에 있을 리는 없지.’


할 수 있다는 말과 대비되게 불안한 생각으로 검을 잡은 헬레나.


그녀는 서쪽에서 흘러나오는 연기를 보곤, 저곳에서 불이 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은 숲의 보호를 받으면서, 동시에 숲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레버넌트 일족의 삶의 터전이 사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데스, 너는 불을 꺼.”

“조금은 알지만, 산불은 모르겠어. 맞불을 놓는다면 모를까.”

“어떻게든 불을 상대 해.”


헬레나는 그리 말하고는 묵묵히 서쪽으로 걸어 나갔다.


“넌 어쩌려고?”


아데스의 물음에 그녀는 간단히 답했다.


“베어야지. 상대가 뭐든 간에.”


***


툭, 툭, 툭, 파삭!


“이쯤인가.”


가면을 쓴 사내들이 쓰러져있다.


무언가에 찔린 듯, 다들 복부와 그 인근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모습이었다.


다만 아직 숨이 붙은 사람도 보였는데, 그들은 대체로 생사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헬레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말 할 수 있겠습니까?”

“아···, 으···, 으아···.”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사람 한 명.


누군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도, 사람이 죽는 모습도 처음 보는 것이 아닌 헬레나는 조용히 그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가 핏자국으로 나무에 써낸 글자.


ዲያብሎስ


악마를 뜻하는 레버넌트어.


헬레나는 아라고니아인이었기에 레버넌트어를 할 줄 몰랐지만, 지금은 아데스가 걸어둔 마법의 영향으로 선명이 보였다.


“그런 거구나.”


그녀는 고개를 숙이곤, 칼집에서 조심스럽게 검을 뽑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그녀는 검을 보면서 아직은 남아있는 불안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미 실패했던 자신이 이들을 지킬만한 능력이 있는 것인지, 그럴 자질은 갖춘 것인지 의심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검을 확신있게 잡지 못했다.


푸스슥, 푸스슥!


숲에서 느껴지는 수상한 소리는 점차 빨라졌고, 그것은 헬레나가 느끼기에 아주 익숙하면서도 즐겁게 만들었었던 소리였다.


지금은 확신 없는 검을 들고 있다는 생각이, 불안을 키울 뿐이었지만.


푸스스슥, 파삭!


그건 가만히 서 있는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릉! 촤악!


“네놈들이 왜 여기에 있어···.”


푸슈우우···.


“크어억···, 쿠억···.”


헬레나는 마물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검을 꺼내어 인간형 마물의 목을 벴다.


흉측한 외형과 뒤틀린 몸, 그러나 사람의 형태를 가져 불쾌하고, 혐오스러운 외형을 유지한 마물은 인간과 똑같은 붉은 피를 목에서 쏟아내며 그대로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날에 묻은 피를 조금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할 일은 이거지.’


확신없던 검을 습관처럼 세게 쥐고, 그것으로 마물을 아무렇지 않게 베어내버린 자신의 손을 보고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손까지 튄 피를 보며 말했다.


“더러워라.”


스윽!


툭···.


그녀는 순식간에 칼을 높게 들어, 그대로 목을 잘라버렸다.


“다음.”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세를 잡았다.


작가의말

「おい、地獄さ行ぐんだで」

"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

- 코바야시 타키지『게잡이 공선』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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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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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3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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