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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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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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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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DUMMY

“아무리 저들이 검은 새 기사단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이건 너무합니다! 저들은 어디까지나 빌보의 기사단 중 하나입니다. 빌보의 모든 기사단은 아리바의 휘하에 있지 않습니까?”


직접 흰 장미 기사단의 본부로 찾아가, 그들을 데려왔던 세르지 드 코르넬리우스는 그들의 건방진 태도에 크게 실망하여 단장에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곤,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응시하다 말했다.


“오히려 우리는 방해물이었다.”


잿더미와 목 잘린 마물만이 그윽한 환경.


실력 있는 기사가 세 명은 달라붙어 공격해야 겨우 한 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인간형 마물을, 인간이 겨우 화약을 상용한 후에서야 대항하기 시작한 마물을, 단 두 명이 마법과 검만으로 처리했다.


그로서는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느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다.


“세르지, 너도 어렸을 적에 마물의 습격을 목격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 예 그렇습니다. 벌써 10년도 넘은 전의 일이로군요. 당시에 저는 7살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수도성 출신이라 당대의 일은 잘 모릅니다.”


산티아고는 잘린 팔이 목에 박혀있는 마물의 시체 하나를 보곤 말했다.


“그 당시, 나는 아리바 기사단의 백부장이었다. 그런데도 영주님은 죽었고, 기사단장마저 목이 잘리는 수모까지 당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저희가 저들이 쓰는 구 본부가 아니라, 신 본부를 쓰는 이유가 그것이라죠.”

“그 당시에 모든 사태를 정리했던 것, 그게 헬레나 아테나이아였다. 검 한 자루로 마물 70마리를 단독으로 죽여서 말이지.”


세르지는 그 말에 눈을 껌뻑였다.


“그놈은 평민이지만, 아무런 절차도 없이 기사로 서임 되었다. 곧장 아라고니아 중앙의 흰 백합 기사단으로 발탁되었지.”

“흰 백합 기사단이면···.”

“검은 새 기사단의 이전에 존재했던, 마물 토벌을 전담하던 아라고니아 중앙 기사단 중 하나지.”


세르지는 단순히 마계 토벌을 나섰던 검은 새 기사단의 생존자 중 한 명으로 알고 있었을 뿐,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는 전혀 몰랐다.


“부디 자극하지 마라. 그녀가 계급 사회에 불만을 품으면, 우리가 가장 먼저 죽는다.”


산티아고는 그리 말하곤 자신의 갑주를 몇 번 정돈해 보일 뿐이었다.


***


“헬레나, 너무 빨라!”

“적당히 따라와.”


서걱!


툭!


적당히 감을 잡은 헬레나는 지나가는 족족 마물들에게 달려들어, 목을 한 번에 베어버리고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갔다.


그들의 예상대로 항구는 점차 불타고 있었고, 곳곳에 피난하지 못한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었다.


“멈춰!”


아데스는 지나칠 정도로 빠른 헬레나의 팔을 잡았다.


“왜? 놈이 나타났다면, 가장 먼저 가서 베야 해.”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야. 이렇게까지 흥분할 필요는 없지 않아?”

“무슨 소리야? 빌보가 공격받고 있는데.”


헬레나는 이미 눈동자에서부터 아데스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며 말하고 있었다.


“아니, 넌 지금 지나쳐오며 일곱의 사람을 이미 놓쳤어. 마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건지, 생명 신호는 벌써 꺼졌어.”

“···그게 무슨 소리야?”


잠깐 정신을 차린 헬레나는 자신이 지나온 길을 한 번 바라보았다.


정말로 자신의 앞길만 막는 마물들만 죽이면서 달려왔으니,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마물이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검을 꽉 잡고 있었던 손의 힘을 풀었다.


“산만 바라봤더니, 나무는 하나도 안 봤네.”


아데스는 조금의 한숨을 내뱉곤 말했다.


“다시 호흡 한 번 맞춰보자. 어차피 죽을 목숨은 구하지도 못했을 거야.”

“···우리 완전 도덕성 결여네.”


그녀는 그리 말하곤 허리춤에 매달아두었던 칼집에 검을 다시 넣었고, 아데스는 주변을 몇 번 둘러보았다.


“···잠깐 기다려줘.”


그는 두 손을 한 번 모아 보였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뭐가 보이나?”

“항구 끝자락에 엄청나게 커다란 생명 신호가 하나 있어. 균일한 생명체로 보이는데, 사람이 많이 밀집된 것처럼 보이진 않아.”


아데스의 말에 헬레나는 대강 눈치를 챘다.


“군단장만큼?”

“비슷해. 예전에 느꼈던 기운이야.”


헬레나는 주변을 몇 번 둘러보다, 항구의 인근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아데스, 뭔가 온다.”


그녀는 주변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손을 점차 검의 손잡이 쪽으로 옮기어 보였다.


“내 앞, 너의 뒤쪽으로 일곱.”

“준비는 됐어.”


그녀는 검을 살짝 뽑고, 자세를 잡았다.


“첼레리테르 페리레. (Celeriter Ferire)”

“이건 또 무슨 기술이야?”


아데스는 살짝 뒤로 물러났다.


그녀를 볼 때마다 여러 가지 검술을 다채롭게 사용하는 것이, 정녕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않은 평민이 구사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헬레나는 숨을 한 번 골라 보였다.


그러고는 아데스에게 물었다.


“몇 초 안에 처리해?”

“···8초?”


아데스는 시간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며 대강 말했고, 이에 그녀는 자세를 잡았다.


“옥토 세쿤디스. (VIII secundis)”


헬레나는 오른손으로만 검을 뽑아 보이며 동시에 뒤를 돌아보았다.


자신에게 달려오는 일곱의 마물의 위치를 순식간에 확인하고는, 감으로 기억한 위치를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아데스조차 간신히 형태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빨랐다.


“어디, 어디로 간 거야? 잠깐···.”


헬레나는 가장 앞에 있던 놈의 목을 한 손으로 베어낸 후, 탄력을 받아 그대로 바로 뒤 놈의 목을 노렸다.


손잡이를 잡지 않았던 왼손으로 검을 바꿔 잡으면서 칼을 뽑고는, 다시 그 탄력을 받아서 왼쪽 상대의 턱에 찔러넣고는 한 바퀴 돌아서 목을 베어냈다.


단 3초 만의 일, 그녀는 아직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 넷, 효율적으로 움직이자.’


움직이는 동안에 숨을 살짝 들이켜고, 바로 다음 상대는 단순하게 지나가면서 베어내었다.


조금 떨어진 왼쪽에 있던 놈의 목은 그녀의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목을 향해 찔러넣었고, 대각선 쪽으로 떨어진 상대를 바라보며 그대로 베어냈다.


툭, 투둑, 툭


푸샤아악!!


“···어?”


아데스는 자신이 인지하기도 전에 그녀가 움직이면서 마물들을 하나씩 베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눈치챘고, 그녀는 그러는 사이에 한 마리의 목을 또 잘라내었다.


마지막 놈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헬레나는 달려가면서 턱에 검을 가져다 댔다.


그리고는 위로 쓸 듯이 베어내어 얼굴을 한 번 거칠게 다뤄주고, 목덜미에 검을 거꾸로 꽂아 넣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스르릉!


“컴플레멘툼. (Complementum)”


그녀는 그리 말하며 검을 칼집에 집어넣으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툭···, 투둑···, 툭···.


마물들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서 있었지만, 그들의 목은 하나같이 구멍이 뚫리거나, 잘려서 그대로 떨어지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8초.


아데스는 단 8초 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아직 헬레나가 회복 중인 상태임에도 이 정도의 힘은 쓸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녀가 마법을 쓸 줄 몰라도, 마계 토벌을 위한 기사단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아데스는 그런 헬레나를 멍하니 바라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새, 생명 신호는 대체로 지하에 있다. 아무래도 다들 지하로 숨어든 것처럼 보이는데, 마물들이 지하를 발견하진 못한 것처럼 보여.”


아데스의 말에 헬레나는 손가락을 움직여 보였다.


“으아···, 쥐 났잖아.”


그녀는 너무 무리했던 터라, 손바닥 근육에 경련이 눈에 띌 정도로 일어났다.


아무리 헬레나라도 이러한 근육 경련은 상당히 고통스러웠기에 검을 잡을 수 없었고, 그저 나을 때까지 주무르는 것이 최선이었다.


“조금은 쉬고 있어.”


아데스는 그리 말하곤 주변을 바라보았다.


특히 불타고 있는 가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불씨가 보통의 불씨와 다르게 이상할 정도로 붉어, 이제 막 해가 지려던 날씨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제1군단장의 행보라기엔, 그 이상의 불씨가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기에 의심스러웠다.


‘···고생 좀 하겠는데.’


이미 타오르는 불길은 커져만 갔고, 아라고니아 최대의 항구는 그렇게 점차 무너져가고 있었다.


***


“피난민들은 어떻게 되었나?”

“현재는 성안에 있지만, 아직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중앙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심이 어떠신지···.”


레오노르는 팔을 괴며, 현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정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친 듯, 몇 년 동안에 소식도 없던 마물들이 갑자기 침공해온 것도 모자라서 빌보와 아리바 공작의 최대 요충지라고 알려진 항구가 불타고 있다.


그녀는 속으로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흰 장미 기사단은?”

“흰 장미···, 아, 그, 헬레나 아테나이아 단장은 현재 항구 쪽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항구 쪽으로? 그니까 가는 길은 어느 정도는 정리했다고 들어도 괜찮은 건가?”

“예, 그렇습니다.”


레오노르 여공은 그 사실에 그나마 안도하여, 약간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중앙 정부에는 보고만 올려라. 아리바 기사단은 헬레나를 돕고, 또···.”


그녀는 점점 트라우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아버지가 무참히 죽고, 시민들은 혼란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그 순간의 기억이 점차 떠오르고 있었다.


“여공 각하?”

“···사람들을 위한 구호 활동도 시작해야 해. 일단은 피난민들에게 음식과 물을 제공하도록.”

“아, 아아, 예, 그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젠 그때처럼 아무것도 못 하는 한심한 소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아리바의 공작, 긍지 높은 아리바 인들의 역사를 이어 나갈, 한 편으로는 아리바 인의 번영을 이끌어나갈 ‘여제’, 그보다 완벽한 표현은 찾을 수 없었다.


“또한 아리바 기사단은 최소한의 인원으로 성을 지키고, 헬레나 단장을 따라 사태를 해결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레오노르 여공은 헬레나가 돌아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향이 좋네.’


레오노르 여공은 흰 장미 한 송이를 코에 파묻으며 그 향을 느꼈다.


그녀는 이번에도 헬레나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다.


작가의말

So, also hierher kommen die Leute, um zu leben, ich würde eher meinen, es stürbe sich hier.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말테의 수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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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24.09.04 9 0 11쪽
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8 1 10쪽
»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10 1 11쪽
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8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8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0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8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9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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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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