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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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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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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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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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DUMMY

휙, 휘익!


태양의 악마는 헬레나를 앞에 두고 손을 몇 번 움직였다.


그러자 불에 타는 듯한 외형의 마물들은 헬레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는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기이한 행동을 보였다.


“뭐야?”

“주민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습니다.”


태양의 악마는 그리 말하고는 자신이 이겼다는 듯, 묘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당연히 이에 헬레나는 깊은 분노를 느꼈지만, 당장은 눈앞에 있는 태양의 악마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최대한 냉정하게 판단하고자 노력했다.


“벨로치오르 엣 프레치시오르! (Velocior et Precīsiōr)”


그녀는 침착하고, 정확하게 대각선 하단에서 위로 베어내는 공격부터 보였다.


“느리군요.”

“돌리스! (Dolis)”

“···뭣?”


오른쪽에 있던 검은 잔상만 남긴 채, 왼쪽에서 위에서 아래로 높은 찌르기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푸우욱!!


어찌나 빠른 공격이었던 것인지, 태양의 악마는 조금의 반응도 하지 못했다.


놈은 왼쪽 팔을 찔리면서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았다.


‘마법 없이도 저렇게나 빠를 수 있다고?’


뒤에 있던 아데스도 반응하지 못했다.


그는 단순히 검만 사용하는 헬레나의 능력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싸우면 싸울수록 그녀의 검술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태양의 악마가 속도에서 밀리기 시작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것이 고작 검을 사용하는, 마법 하나 사용하지 못하는 ‘평민기사’였다.


“프레테레오 페네스트라. (Praetereo Fenestra)”


헬레나는 검과 시선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몸을 돌려 보였다.


푸화악!!


원래라면 왼쪽부터 놈의 등으로 시야가 밝혀질 타이밍이었지만, 왼쪽 눈이 보이지 않았던 그녀는 불확실한 자세로 검을 뽑아서 ‘감’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


태양의 악마는 피가 분수처럼 쏟아져나오는 팔의 상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돌리어 그녀의 위치만 애타게 찾았다.


“익투스 쿠르부스! (Ictus Curvus)”


캉!


헬레나가 급하게 대각선 방향으로 베어보았지만, 등에 있는 비늘 때문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목표가 보이지 않았던 탓에 정확하게 노릴 수 없었고, 태양의 악마는 자신이 인지조차 하지 못한 상태에서 뒤를 공격받았다는 사실에 황급히 놀라며 손을 뻗었다.


“에네스 미크로스 메테오리티스! (ένας μικρός μετεωρίτης)”


놈의 손에서 튀어나온 것은 ‘소형 운석’, 엄청난 속도로 헬레나에게 날아오고 있었고, 급히 자세를 정비하던 그녀는 검을 제대로 들지도 못했다.


카아앙!!!


“···으헉!”


운석은 검과 튕겨 나가며 추진력을 잃었지만, 순간적인 힘을 모두 흡수해버린 태합금으로 인해 덩달아 그녀까지 넘어졌다.


“운석?!”


아데스는 말도 안 되는 놈의 능력을 보곤 다시 한번 깜짝 놀랄 따름이었다.


더 이상 자신이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벌써 지치셨습니까.”


태양의 악마는 이전보다 훨씬 열받은 표정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헬레나는 웃으며 검을 힘겹게 들었다.


“뭐라는 거야.”


***


“키에에엑!”

“어이, 기사! 어서 목을 잘라!”


뿌드득!


창을 또 한 번 마물의 목에 꽂아 넣은 아킬라는 그리 외쳤다.


서걱!


세르지가 그의 외침에 달려와 창에 찔린 마물의 목을 다급하게 잘라내었다.


“괜찮으십니까?”

“좋은 타이밍이었어.”


기사들도 나름은 쓸만했던 것인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마물 일곱 중 셋 정도는 그들이 스스로 처리하였다.


그 와중에 네 명의 부상자가 나왔지만, 아킬라는 피난한 사람들이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는 창을 한 번 돌려 보였다.


“기사, 나머지 마물은 내가 처리하지.”

“···뭐?”

“너희는 주민들의 대피나 이어서 진행해. 나머지는 나로도 충분하니까.”


아킬라는 그리 말하고는 불길 속에서 더 튀어나오기 시작한 마물들을 보았다.


마물의 숫자가 끝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불길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이, 이 마물들의 원인으로 보였다.


쿵!


아킬라는 창을 바닥에 꽂을 기세로 한 번 튕겼다.


“파크로프 스베타. (Покров света)”


바닥에서는 맨눈으로는 보기 힘든 빛이 튀어나왔고, 그것이 마물들이 아킬라를 넘어서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킬라는 뒤를 한 번 보며 말했다.


“가! 가서, 주민들을 이끌어!”

“···어서 주민들의 대피를 도와라!”


산티아고는 그의 뜻을 존중하여 아리바 기사단에 그리 명했고, 기사들은 이를 따르면서도 의구심 넘치는 표정으로 아킬라를 바라보았다.


“빛을 다루는 마법은 들어본 적이 없어.”

“저 녀석의 정체는 도대체 뭐지···.”

“이 일이 끝나고 조사하겠지.”


기사들의 웅성거림을 뒤로, 세르지가 마지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넌 내가 기억했어. 나중에 만나자고.”


아킬라는 웃으며 세르지에게 그리 말했다.


그의 말에 세르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른 기사들을 이끌어 주민들의 대피를 서둘러 돕기 시작했다.


“천천히 들어와.”


아킬라는 몹시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


“토포테티시 파라티류. (Τοποθέτηση παραθύρου)”

“포스티스 페네스트라에. (Postis Fenestrae)”

몇 번이고 막상막하의 실력을 보여주던 태양의 악마와 헬레나는 검을 머리 높이에서 수평으로 상대의 얼굴을 노리는 같은 자세를 취해 보였지만, 서로 다른 명칭을 보였다.


마족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같은 자세를 취한 둘은 서로를 노려보며,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듯이 시선과 자세를 고정한 상태로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다.


둘이 취한 자세는 방어가 매우 유리한 자세, 먼저 공격하는 것이 서로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 번에 끝낸다.’


헬레나는 그리 생각하면서 검을 준비했다.


“후우···.”


그녀는 한숨을 내쉬면서 목표를 다시 바라보았다.


“첼레리테르 페리레. (Celeriter Ferire)”


먼저 베기 위해서 한 발을 내빼는 헬레나.


태양의 악마는 방어를 준비하고, 그 후에 반격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망설임이 하나도 없는 그녀의 표정에 약간의 당혹감이 태양의 악마에게 묻어났고, 헬레나는 검의 손잡이를 꽉 잡으며 식은땀을 흘렸다.


“우나 세쿤디스. (I Secundis)”


헬레나는 베려는 자세를 취하다 순간 멈췄다.


정확히는 멈춘 것이 헬레나가 아니었다.


아데스를 포함한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이 헬레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던 탓에 그대로 멈춘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주변에 선선했던 바람이 강해지고, 열기로 인해 생긴 수증기가 응결한 어느 유리병의 물방울이 아주 조금 떨어질 타이밍이었다.


치직, 치치칙, 쿠웅!!!


천둥이 칠 때 나는 소리가 지면에 울려 퍼지고, 지각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이 가해졌다.


“허억···, 흐억···, 흐어억.”


헬레나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큰 굉음과 함께 그녀는 태양의 악마 건너편으로 순간적인 이동을 취해있었다.


푸와악!!


태양의 악마는 헬레나가 지나온 후에서야 그대로 비늘이 없는 팔과 다리가 잘렸고, 회복할 곳이 너무 많았기에 불에 타오르기는 했지만, 다시 자라나지는 않았다.


아데스는 눈을 껌뻑였다.


‘이게 완전한 헬레나인가···.’


아직 힘을 완벽히 회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아주 잠깐이나마 보여준 온전한 힘은, 아데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태양의 악마는 결과에 승복한 듯, 아무런 말 없이 바닥에 그대로 쓰러져 있었다.


“온몸의 장기가 뒤틀리는 줄 알았어.”


헬레나도 스스로 이렇게나 빠른 공격을 버틸 수 있을지는 도박이었지만, 어떻게든 해낸 것으로 증명해 보일 따름이었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헬레나 아테나이아, 그게 내 이름이야.”


그녀는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양의 악마는 그 대답에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번엔 내 질문, 불의 악마와는 무슨 관계였나.”

“불의 악마라면, 선대 군단장을 말하는 겁니까?”

“그래.”


태양의 악마는 그 말에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제 아버지였습니다.”

“그래서 복수하려고 온 건가?”

“우리 용족에는 복수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아버지는 명예로운 죽임을 당하셨죠. 저는 마왕님을 섬기기 위해, 저의 의무를 수행하고자 했습니다.”


그 말에 헬레나는 아까 불길 속을 뛰쳐나갔던 마물들을 생각하며 검을 들었다.


“···아무래도 마물은 누군가가 처리한 모양이군요. 검의 신이여, 제 육신을 파괴하소서.”


태양의 악마는 그리 말하고는 눈을 감았다.


마족과 군단장들은 현세에서 목숨을 잃어도, 마계로 영혼이 불려가기에 육체만 파괴될 뿐, 실제로는 죽지 않는다.


그걸 알았던 헬레나는 ‘누군가 마물을 처리했다.’라는 소식에 안도하며 말했다.


“마계에서 기다려라.”


푸욱!


그녀는 놈의 등 중 한 곳을 찔렀다.


아까 쉴새 없이 태양의 악마를 밀어붙이던 순간, 태양의 악마가 순간적으로 고통을 느낀 부분이 등 부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예상한 대로 등에는 유일하게 비늘이 없는 부분이 있었고, 이곳을 찔린 태양의 악마는 눈을 감은 육신이 가루가 되어버리며 그대로 사라졌다.


“용족일 줄은 몰랐는데.”

“고대 신화에 나오는 존재들이 마족으로 편입되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지.”


그 옛날, 고대 제국조차 있기도 전, 문자라는 것이 처음 탄생했을 순간에 고대의 영웅들이 세상을 위협하는 드래곤을 물리쳤다.


그들은 살기 위해 일부는 인간의 외형으로 숨어들었고, 일부는 절반의 모습으로 세상을 파괴했는데, 그들을 ‘용족’이라 불렀다.


그런 ‘설화가 있었다.’라는 것만 알고 있었던 둘은 설마 군단장 중 한 자리를 용족이 꿰차고 있을 줄은 아예 모르고 있었다.


“마물들은?”

“누군가 처리했다는데.”

“아리바 기사단인가···.”


불길이 사그라들며, 그들을 가로막던 항구 입구로 길이 열렸다.


“해 뜨네.”

“···이쁘네.”


치솟은 불길로 인해 한창 밤중이었던 것도 몰랐던 그들은, 위선적인 태양이 지고, 새로운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제 가야지.”

“부축 좀 부탁해.”


아데스는 아까 자신을 부축하던 헬레나를, 이번에는 자신이 부축했다.


그들은 오래간만에 길었던 전투에 지친 상태였다.


터벅, 터벅, 턱


“당신이 처리한 겁니까?.”

“···?”


그렇게 천천히 걷던 그들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자기 몸보다 조금 더 커 보이는 창을 들고,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키가 작아서 조금은 어리게 보이는 인물이었다.


“꼬맹인가.”

“꼬맹이네.”


두 명의 반응에 아킬라는 발끈하며 말했다.


“누가 꼬맹이라는 거야!”


그의 반응에 둘은 피곤함을 느낄 뿐이었다.


작은 꼬마라고 착각할 법한 아킬라는, 조용히 그들에게 지친 모습으로 걸어와서 물었다.


“···당신들 ‘검은 새’죠?”

“뭐, 전에는 그렇게 불렸긴 했지.”


아킬라는 그 대답을 듣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나를 당신들의 기사단에 받아주세요.”


둘은 몹시 당황하며 한동안 아킬라를 바라보았다.


작가의말

Call me Ishmael.

(나를 이스마엘이라 부르라.)

- 허먼 멜빌『모비딕』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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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24.09.04 8 0 11쪽
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8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8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8 1 10쪽
15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9 1 11쪽
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8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8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0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8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9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2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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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3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3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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