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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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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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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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1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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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DUMMY

펄럭, 쿵! 쿵!


처음 보는 사람이 취기가 감도는 한밤중에 마을 중앙의 술집으로 무턱대고 들어와 놓고는 게시판에 종이 한 장을 쇠못 질로 박아두는 행동은 이목을 끌어내기엔 충분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았고, 그가 박아둔 종이에도 이목이 끌렸다.


“···가게 혼자 쓰나, 칫.”


다만 조용한 분위기가 주를 이루는 이곳의 특성상, 취기가 감돌더라도 금세 약소한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곳에 이방인이 오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자신들도 소란을 피우다가는 가뜩이나 들어오기도 힘든 이 지역에서 쫓겨나는 것이 한순간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선은 이방인이 아니라, 그 이방인이 게시판에 박아둔 종이를 보았다.


“흰 장미 기사단?”


종이 한구석에 찍혀있는 영주의 인장, 그리고 아무런 소개도 없이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너무 간단한 내용의 글까지.


부족한 설명은 도리어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는데, 구석에 찍혀있는 영주의 인장이 종이 자체에 신뢰를 보증하기 때문이었다.


“···뭘까, 도대체.”

“글쎄, 영주님이 이렇게 쉽게 보증을 서는 분이 아니신데 말이야.”


한밤중 주점에서의 작은 소란은, 이내 영지 전체, 왕국 전체를 뒤흔들 선언의 시작이었다.


***


“단장의 어깨는 어떤데.”

“무겁네. 망토가 달라져서 그런가.”

“그게 뭐야.”


아데스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쓸었다.


흰색의 셔츠를 감싸는 새로운 검은색의 망토, 헬레나는 이 망토가 너무나도 부담스럽게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빌보의 영주, 아리바 공의 직속 기사단인 ‘흰 장미 기사단’은 오늘을 기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검은 새 기사단’을 계승하여, 빌보 내 마물 토벌과 대륙 곳곳의 군단장을 토벌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었다.


“홍보는?”

“적당히 이목을 끌 정도만 했어.”


다만 아직 인원 2명의 초라한 기사단, 인원의 모집은 필수였다.


적당히 괜찮은 인물로는 안 되고, 검은 새 기사단이 수행했던 임무의 절반, 하다못해 절반의 절반이라도 수행할 수 있는 인원이라도 모으는 것이 목표였다.


“모집자는 어떻게 분류하려고?”

“나에게 단 한 번이라도 공격할 수 있는 사람.”

“빌보가 아니라, 대륙에서 찾기도 힘들 텐데?”


아데스는 절망스러운 모집 요건에 희망을 품지 않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모집하지 않는다면 마계는커녕 군단장에게 발조차 디딜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었다.


마계에서는 인간들에게 패배한 선대 군단장의 모습을 보고, 더 강한 이들로 자리를 대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영주님의 요청은 고려했어?”

“아리바 기사단은 안 돼. 영주님을 지킬 사람들은 여기에 남아야만 해.”

“그렇다면 처음부터 시작인가.”


헬레나는 레오노르 여공에게 아리바 기사단의 인력을 빼갈 것을 제안받았다.


수백 년간 단신으로 빌보를 지켜온 아리바 기사단은 분명 실력자들의 모임이겠지만, 그들은 처음부터 오로지 아리바 공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 창설된 기사단이었다.


이곳의 구 본부에서 영주 성과 가까운 새 본부로 옮겨간 것도, 전임 영주의 사망 이후의 일.


아데스는 그날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빌보의 영주인 아리바 공이 죽을 정도로 심각한 침공이었음은 알고 있었다.


턱, 턱, 덜컹!


“단장님!”


그렇게 지원자를 기다리던 와중, 뜻밖의 인물이 그들이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누구지?”


들어온 이는 복면을 쓰고, 제대로 무장을 갖추고 있었다.


당연히 아데스와 헬레나는 경계할 수밖에 없었고, 들어온 이는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바로 말을 이어갔다.


“갑작스러운 일에 죄송합니다! 저는 아리바 기사단의 세르지 드 코르넬리우스라고 합니다. 저는 비록 아리바 기사단 소속이지만, 저희 단장께서 두 분을 호출하셨습니다!”

“아리바의 단장? 나랑 일면식도 없을 텐데.”


태연한 헬레나의 물음에 세르지는 도리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곤 말했다.


“못 들으셨습니까? 아니, 그보다 여기 왜 창문도 막혀있지···?”


세르지는 주변을 둘러보며 황당해했다.


이에 헬레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비, 빌보가 마물들에게 침공받고 있습니다!”


그 말에 헬레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데스도 흐트러진 복장을 정리했고, 책상 옆에 세워져 있던 검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최대한 빨리 안내해라.”


창설 하루 만에 전공을 세울 기회를 주다니, 헬레나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마왕을 찢어 죽이고 싶은 생각만 들 뿐이었다.

***


“진짜 아리바 기사단이군.”

“그대에겐 꿈같은 곳이었겠지.”


희끗희끗한 머리와 수염이 희끗희끗한 아리바 기사단의 단장, 산티아고는 검을 들고는 성벽 위에서 꾹 닫힌 성벽 바깥의 마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헬레나는 그의 어깨에 창을 든 사자의 상징이 새겨진 아리바 기사단의 휘장을 보았다.


그녀도 정말로 입단하고 싶었지만, 신분의 한계로 들어가지 못했던 정말로 꿈과 같은 기사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는 당장은 사사로운 이야기는 집어넣고, 성벽 아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외곽 지역의 인원들을 성 내부로 피난시켰다. 당장은 성 내부에서 마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방향으로 보아서는 북서부 항구 방향으로 추정된다.”


아데스는 그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항구에 있는 인원들은 대체로 외국인들이 아닌가? 그들의 피난은 어찌 되었나?”

“우선순위는 빌보의 시민들, 그리고 아라고니아의 백성들이다. 외국인들은 그 우선에서 제외된다.”

“아직 모른다는 소리군.”


아데스는 산티아고의 냉철한 처리가 합리적이긴 했지만, 안타깝게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는 생명 신호가 이곳저곳에서 꺼져가는 느낌을 받고 있었고, 이를 근거로 모두 피난을 완료했다는 허무맹랑한 말은 믿을만한 소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돌파하지. 아리바 기사단은 잔존 마물을 소탕하고, 피난을 완료하지 못한 주민들을 대피시키도록 해라.”


헬레나는 그리 말하곤 손목을 풀었다.


“저걸 돌파하겠다고? 혼자?”

“우리한테는 이게 일상이었거든.”


아데스는 그리 말하곤 단장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직 이야기가 안 끝났다! 검은 새들!”


산티아고가 애타게 불렀지만, 둘은 이미 단장의 곁을 떠난 지 오래였다.


“···여전하네.”


그는 아데스가 쓸었던 어깨를 툭 털면서 헛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


“헬레나, 왼쪽.”


헬레나는 그의 말에 신호를 맞추어 검을 뽑아 들었다.


“우나 파르테 카트! (Una parte cut)”


자신이 볼 수 없는 왼쪽의 상대를, 아데스의 말만 신뢰하여 검을 높게 한 손으로 들어서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마물 한 마리는 빠른 공격으로 목에서 피를 쏟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아데스, 계속 말해줘!”

“너의 기준으로 3시 방향에 셋, 6시 방향의 아홉, 9시 방향에 둘. 전 방향에서 오고 있어.”


아데스의 말에 헬레나는 얕은 한숨과 함께 검을 두 손으로 잡았다.


“콘포데레. (Confodere)”


푸욱! 푸샤아악!!


주르륵···


그녀는 곧장 두 손으로 검을 높게 들더니, 자신의 왼쪽에서 다가오는 적의 가슴에 한 번 찔러넣고, 바로 뽑아내었다.


그러고는 오른쪽에서 오는 적의 공격이 날아오는 것을 인지했다.


“조금 난폭하게 해볼까.”


헬레나는 웃으며 준비 자세를 취했다.


“플렉텐스. (Flectens)”


날아드는 놈의 팔을 잡은 상태로 꺾어서 흘리고는, 가슴에서 검이 뽑힌 와중에도 자신에게 달려들고 있는 놈을 확인하여 서로 부딪치도록 살짝 밀쳐주었다.


“크에엑! 쿠에엑!”


부딪친 두 괴물은 곧장 끔찍한 굉음을 내며 함께 헬레나에게 달려들었고, 그녀는 침착하게 선두로 달려오는 놈의 얼굴부터 노렸다.


빠악!


일반적인 주먹 소리가 아닌,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밀려난 마물 한 마리.


헬레나는 주먹의 탄력으로 한 바퀴 돌아 보이곤, 다음으로 다가오는 놈의 상황을 빠르게 인지했다.


“인브리카투스 세칸스. (Imbricatus Secans)”


서걱!


“키에에엑!”


밀려난 놈은 팔을 뻗었지만, 한순간에 잘렸다.


놈은 고통을 느끼는 것인지 괴성을 내 짖었지만, 헬레나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뒤늦게 괴성을 내지르며 달려오는 놈을 바라보았고, 날카로운 잘린 팔을 놈의 목에 찔러넣었다.


그러고는 팔이 잘린 채 밀려난 놈의 목에는 한 바퀴 돌아서며 오른손에 쥔 검으로 휘둘러 주었다.


푸욱, 푸슈우욱!!


투욱···


헬레나의 화려한 참격쇼와 분수처럼 쏟아지는 피를 배경으로 약간의 경직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던 두 마물은 그대로 쓰러졌다.


“플라마. (Flamma)”


타닥, 타닥, 화르르!!


손바닥을 모은 아데스의 말에 녹색의 작은 불이 마물들의 사이를 지나다니더니, 이내 지나간 장소에는 약간의 불꽃이 튀다가 크게 번지기 시작하며 마물들을 태웠다.


“쿠에엑! 크에엑!”


마물들은 타오르는 불꽃에 뒤덮여서는 고통스러운 듯,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아데스는 이에 손가락을 겹쳐 주먹으로 모았다.


“키네레스. (Cineres)”


화르르!


툭, 투둑, 툭, 투두둑


불이 붙은 마물은 하나, 둘씩 목이 재로 변하며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다.


땅바닥에 떨어지자 차갑게 식어서는, 그저 하나의 잿더미가 되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마력을 써도 괜찮겠어?”

“아직은 여유야. 후우···.”


아데스는 그리 말해놓고는 정작 숨을 고르는 모순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헬레나, 잠깐.”


그런 그가 숨을 고르던 도중에 뭔가 발견했다.


타닥, 탁, 타다닥!


약간의 불씨가 잿더미 사이에서 살짝 피어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광경이야.”

“참 오랜만인데.”


아데스의 불꽃은 일반적인 불에 비해 유지력이 짧았기에 재가 되어버리면 연소할 대상을 찾지 못하여 그대로 사라져 버린다.


그렇기에 그런 잿더미 속에 불씨가 남아있다는 것은, 다른 이의 개입이 있었다는 뜻.


그리고 둘은 이전에도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불의 악마가 부활했나? 아니면 새로 태어났나?”

“둘 중 하나겠지.”


제1군단장, 이명은 불의 악마.


그에게서 보았던 풍경이었다.


“아하하! 놈이 다시 나타나다니!”


헬레나는 이에 기꺼이 즐거워하며, 검에 묻은 피를 한 번 털어내곤 정색으로 변한 표정으로 바뀐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데스는 약간의 섬뜩함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아군이라서 다행이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녀는 하늘을 한 번 바라보곤 말했다.


“가자, 불길 속으로.”


작가의말

It was a pleasure to burn.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 레이 브래드버리『화씨 451도』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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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24.09.04 9 0 11쪽
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9 1 10쪽
15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10 1 11쪽
»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9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8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0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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