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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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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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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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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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DUMMY

끼익-


덜커덩!


틈새로 들어온 찬기가 가득한 낡은 오두막의 문을 열자마자, 헬레나는 그대로 쓰러지듯이 복부를 부여잡았다.


어떻게든 버티던 복부의 출혈은 이미 붕대를 적시다 못해 흘러나올 정도로 악화한 상황이었다.


“괜찮아?”

“정말 더럽게 아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상상도 못 할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면서 걸어왔다는 것에 아데스는 대단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다만 일단은 급한 상황이었기에 그녀를 부축하면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오두막 안쪽으로 걸어 나갔다.


“출혈은?”

“멎긴 멀었어. 헬레나, 더 버틸 수 있겠어?”

“거뜬해.”


숨을 약간 헐떡이긴 하지만, 여유로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 그녀.


그녀의 대답을 들은 아데스는 한 번 더 묻을 생각도 없이, 붕대를 짓누르며 지혈하던 손을 멈추고는 환부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그의 녹색 눈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헬레나는 표정만 보아도 그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알았기에 침 한 번 삼키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대한 빠르게.”

“맡겨 둬.”


아데스가 조심스럽게 뻗은 손에서는 녹색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헬레나는 이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데스가 환부에 손을 넣은 순간.


“흐아아악!”


헬레나는 이를 악물고, 책상을 부서질 힘으로 꽉 부여잡으며 버텼다.


출혈을 일으키는 혈관을 직접 불로 태우는 방식은 아주 전통적이지만, 어마어마한 고통과 흉터를 유발한다. 이는 붕대로도 소용이 없는 출혈이 발견될 때 사용하는 최후의 방법이었다.


현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이 결코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아데스의 판단이었다.


“정신 붙잡아.”

“···이 씨발, 너 같으면 붙잡아지겠냐?”


헬레나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그리 말했다.


그의 마법이 의술에 특화된 것은 아니었지만, 마법사의 기본 덕목 중 하나인 불을 사용하는 것과 사령술의 기본인 ‘생명 신호 관찰’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자, 끝이야. 가려워도 긁지 말고, 아파도 참아야 할 거야. 흉터는 꽤 오래 남을 테고.”

“흉터는 익숙해. 고통도 익숙하고.”


헬레나는 그리 말하곤 붕대를 감으며 잠깐 창문을 보았다.


“어떡하냐? 시기를 잘못 만났는데.”

“여기서 기다려야겠지.”


지혈이 끝나던 타이밍에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하며, 설산의 밤은 점차 깊어져만 갔다.


***


“얼마 전까지 사냥꾼들이 다녀간 모양이야.”


시간이 조금 흐르고, 아데스는 오두막 구석에서 심하게 훼손된 늑대 가죽을 가져왔다.


이런 오두막은 대개 산으로 늑대를 사냥하는 사냥꾼들이 만들어놓은 것으로, 오늘처럼 눈보라가 심해지는 날에 공용으로 이용하는 장소였다.


덕분에 오두막은 둘에게 눈보라에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거주지가 되어주었고, 아마도 상품성이 떨어져서 놓고 간 듯한 늑대 가죽 하나는 귀중한 방한 장비가 되어주었다.


“너 절반, 나 절반.”


아데스는 매정하게 가죽을 반으로 잘라, 모닥불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는 헬레나에게 던져주었다.


“감사히 받들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늑대 가죽을 목 사이에 둘렀다.


“다른 사람들은 죽은 건가?”

“아마도. 이 눈으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던 것은 오로지 너 혼자였으니까.”


아데스의 말에 헬레나는 조용히 바닥으로 시선을 내릴 따름이었다.


‘하필이면···.’

‘···어색하네.’


두 사람은 본래 접점이 없던 사이였다.


다만 마지막 전투까지 살아있었던 12명의 기사 중, 한 명이라는 존재만을 서로 인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헬레나는 마지막 전투 도중에 복부와 왼쪽 눈에 심각한 부상으로 기절, 사령술을 다루는 아데스는 모두가 죽은 와중에 유일하게 숨이 붙어있던 그녀를 데리고 나왔다.


내심 헬레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었지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말을 꺼내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군단장 9명을 모두 죽였어. 마계가 재기하기엔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아데스는 그리 말하곤 일어났다.


“너 이거 쓸 줄 알지?”


아데스는 벽난로 옆에 있던 머스킷 소총을 그녀에게 던지듯이 건네주었다.


헬레나는 적절하게 받아내곤 말했다.


“어떻게 알았데.”

“아버지가 사냥꾼이라며.”


그녀는 자신에 대한 정보를 꽤 알고 있는 듯한 아데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그는 경계를 풀기 위해 손을 올려보이며 말했다.


“지나가다 들었을 뿐이야.”

“쓸 줄 알아. 내가 가지고 있을게.”


헬레나는 왠지 난처한 표정을 짓는 아데스에게 약간의 미소를 보였다.


그는 미소가 공포스럽게만 느껴질 뿐이었지만.


“오늘은 이만 쉬어. 고생했어.”

“그···, 그, 고맙다.”


헬레나는 그리 말하곤 뒤를 돌며 누웠다.


아데스는 그 말에 살짝 웃으며 말했다.


“잘 자.”


***


“···이쪽이 북단이면, 저기가 남단인가.”


새벽녘에 일찍 바깥에 나온 헬레나, 그녀는 밤하늘을 보면서 이곳의 위치부터 알고자 했다.


확실한 것은 이곳은 꽤 추운 겨울이었지만, 극야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완전히 겨울은 아니라고 확신했다.


북극성의 위치를 보아 북위가 높은 북반구임도 추정할 수 있었다.


“꽤 멀리 떨어져 왔는데.”


손바닥 한 뼘이 대략 20도, 4개 정도의 뼘이 들어가는 위치라면 원래 살았던 곳보다 대략 두 배 정도의 차이가 났다.


이것도 대략적인 위치였기에 얼마나 더 가야 하는 것인지는 아직 몰랐다.


“여기가 어딘데?”


그런 와중에 아데스가 한 뼘으로 거리를 재는 헬레나의 뒤로 나타났다.


그녀는 놀라지도 않으며 말했다.


“미안, 내가 깨운 건가? 곤히 자고 있던데.”

“총 한 자루 없어지고, 문이 제대로 닫혀있지 않았으니까.”

“그런가?”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밤하늘을 계속 보았다.


“남쪽으로 가야 하지?”

“알고 있었어?”

“대략.”


아데스는 다시 한번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는 마력을 집중하여 시야를 넓히고 있단 뜻이었고, 헬레나처럼 마법 하나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남쪽은 이쪽이야.”


이에 지지 않으려는 듯, 별자리를 통해 알아낸 남쪽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자신만만하게 총을 메고 걸었다.


“그쪽은 바닷길이야.”


아데스가 말하기 전까지는.


***


“얼마나 더 가야 해?”

“200보, 더 걸으면 300보.”


그저 묵묵히 걸어가는 아데스와 그의 뒤를 쫓아 굴욕스럽게 알려준 길을 따라가는 헬레나의 위로 햇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일지는 몰라. 적대국 사람이었다면 바로 체포할 수도 있지. 한 판 붙을 각오는 단단히 해둬.”


그의 말에 헬레나는 빠질 것 같은 총대를 다시 멜 뿐이었다.


“저 앞이다.”


아데스는 잠깐 멈추어 정면을 가리켰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지면을 햇빛이 비추어 밝게 보이기 시작하고, 아데스가 가리킨 방향에 나무 성벽이 보였다.


깃발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고, 얼어있는 강물이 성의 주변에 분포했다.


성벽으로 다다르는 길은 심하게 구불구불하여 들어가기 매우 힘들어 보였지만, 그 뒤로 주민들이 샛길로 이용하는 지하길이 하나 터 있었다.


정석적인 성문 앞에는 국경수비대로 보이는 무장들이 서 있었다.


“그렇다면···.”

“그거 꺼내지 마라.”


헬레나는 소매에서 국왕의 인장이 박힌 망가진 회중시계 하나를 꺼내려 하고 있었다.


아데스는 맨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국경수비대를 한 번 바라보다 말했다.


“상대가 우리의 적대국이면, 오히려 인증할 물건마저 압수하겠지. 국경수비대의 반응부터 보는 편이 좋을지도.”


그의 말에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소매 깊숙이 회중시계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천천히 성을 향해 걸어 나갔다.


“통행증 있소?”


헬레나는 처음 듣는 말에 당황했다.


하지만 아데스는 자신에게 언어 마법을 걸어, 그들의 말을 알아들었다. 그는 태연하게 시선을 마주하며 말했다.


“아라고니아 왕국의 아데스 남작이오. 이곳의 영주를 접견 차에 방문했으니, 이에 통과시켜줄 의사가 있겠소?”


이에 국경수비대 두 명은 서로를 바라보다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타국의 남작께서 국왕 폐하께 무슨 일이오?”


수비대원 둘은 확실히 아데스를 비롯한 이들을 경계하는 눈치였다.


아데스는 그들의 반응을 살피며, 잠깐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성벽에 검을 든 사자 문양의 장식이 왕관과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


“검은 새 기사단 소속이오. 만약 확인할 절차가 필요하다면, 그리하겠소.”

“검은 새 기사단? 아!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할 수단이 있는지만 확인하겠소.”


국경수비대원들의 말에 아데스는 헬레나에게 손을 건네었고,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그녀는 일단 지시에 따라 회중시계를 건넸다.


그들은 석판에 새겨진 문양과 회중시계를 대조해보곤, 시계를 다시 돌려주었다.


“국왕 폐하께 이 일을 아뢸 것이니, 그대들은 여기서 잠깐 기다리도록 하시오.”


아데스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건데?”

“통과인 건 같긴 한데···, 아무래도 여긴 왕국인 모양이다. 북부에 알고 있는 왕국 있나?”

“북부? 북부의 왕국이라면···.”


헬레나는 잠깐 기억을 더듬었다.


그들의 대륙에는 조국인 아라고니아를 포함하여 3개의 왕국과 제후국을 구성하는 제국 하나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왕국 중에서 북부에는-.


“···하르드라다 왕국!”

“그게 어딘데?”

“쉽게 말하면 아라고니아와 앙숙인 왕국···.”


그녀는 사색에 질린 표정으로 아데스를 바라보았고, 당연히 짧은 식견으로 인해 옛 적대국에 방문하게 된 그도 당황했다.


북해 전쟁, 그들의 모국인 아라고니아 왕국과 하르다라다 왕국이 북부에서 치른 전쟁.


서로 아무런 이득조차 얻지 못하고 자그마치 14만 명이 죽으면서 끝났던 처절했던 일은 지금으로부터 고작 50년 전에 일어났었던 전쟁이었다.


웬만한 하르드라다인과 아라고니아인은 이 일을 계기로 앙숙의 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투그닥! 투그닥!


“아라고니아인들.”


그렇게 서로 사색에 질린 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던 와중에 말을 타고 다가온 수비대원이 둘을 불렀다.


“국왕 폐하께서, 그대들을 보길 원한다.”

“···.”


아데스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고개를 숙였고, 헬레나는 입술을 꽉 깨물 뿐이었다.


작가의말

1. 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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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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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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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0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8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9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2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1 2 12쪽
4 귀환 (3) : 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 24.07.22 18 2 11쪽
3 귀환 (2) : 숲 속 어느 마을에 사령술사들이 살고 있었다 24.07.22 25 2 13쪽
»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3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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