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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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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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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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4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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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DUMMY

“그 말이 사실이라면, 도시 전체를 봉쇄해야하는 것이 맞겠지만···”

“불가능합니까?”

“영주님께서 제국 의회 소집으로 브란덴으로 떠나셨네. 섭정을 두고 가지 않으셔서···.”


루덴의 기사단장은 곤란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헬레나는 이에 사태는 커졌지만, 수습할 수단이 없어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건이 크게 터져버린 덕분에 검은 새 기사단의 근황을 아라고니아로 전달할 수 있었다는 점이 고작이었다.


그런 상황에 아데스가 말했다.


“제가 처리하죠.”

“그대가? 어찌할 생각인가?”

“단장님도 아시다시피, 저흰 교황의 축복을 덮은 기사단입니다.”


아데스는 다른 기사들 앞에서 말했다.


“지금부터 검은 새 기사단장의 권한을 대신해 루덴을 봉쇄하겠습니다. 단장님, 거부할 권한이 있으십니까?” “···나도 그런 권한은 없네.”


교황의 축복을 받은 기사단은 치외법권을 가진다.


또한, 그 기사단의 장은 제국 내 모든 영지에서 공작 이하의 제후국에 대한 무한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군단장이 어디에 나타나든, 기사단 뜻대로 신속히 처리할 것을 의도한 조항이었다.


“새로운 군단장의 짓일지도 모르겠지?”

“‘역병의사’도 모른다고 하던데.”


아데스는 고심이 많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인위적인 역병이 아니라면···.”

“큰일이 난 거지. 어떻게 사람이 마물이 돼? 인간형 마물이라고, 정말 인간은 아닌데 말이야.”


헬레나는 걱정스러울 따름이었다.


이번 사건이 인위적인, 누군가가 퍼트린 역병이 아닌 순간에 인간의 존속 자체가 위협될만한 사건이었으니 말이다.


아데스도 그러지만 않길 바랄 뿐이었다.


“긴 여정이 되겠어.”


***


“준비됐어?”

“난 준비 됐는데, 너는 됐는지 궁금한데.”

“나야 물론이지.”


헬레나의 대답을 들은 아데스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가락으로 바닥에 문양을 그려 나갔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손가락이었지만, 녹색으로 발광하는 물질이 그의 손끝에서 흘러나오더니, 이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 나갔다.


그가 완성한 그림은 해골과 십자가, 그리고 그걸 감싼 원이었다.


“사령술···.”


아데스는 그리 말하곤, 알 수 없는 말을 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발광하던 물질은 점차 에메랄드빛이 더 밝아지기 시작했고, 아데스의 눈도 같은 색으로 빛나면서 그의 손에서는 점차 녹색의 불꽃들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헬레나, 조금 떨어져.”


그녀는 그 말에 두 걸음 정도 뒤로 물러났다.


푸스스···.


녹색의 불꽃들은 점차 하나로 뭉치더니, 이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내곤 그대로 사라졌다.


“그렇게 부를 때는 듣기만 하고, 호응은 전혀 안 해주더니, 이제야 부르는 거요?”


조금 쉬어버린 목소리, 검은색의 로브를 뒤집어쓰고, 꺼림칙할 뿐인 하얀 새 부리 가면, 어딘가 불편한 것처럼 지팡이까지.


그는 마치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주변을 몇 번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이내 자기 몸을 몇 번 확인하더니, 이내 듣기에 썩 기분이 좋지 않은 웃음을 보이다 말했다.


“흐흐흐, 이게 삶이로군! 아주 만족스럽소. 사령의 상태도 편안하고 좋았지만, 삶이라는 흥미로운 것이 나를 일깨우곤 한다오.”


제3군단장, 이곳 루덴에 자리를 잡았던 악명높은 역병을 다룬 마족이자, 통칭 ‘역병의사’로 제국을 고작 역병 하나로 공포에 몰아넣던 이였다.


헬레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전히 말이 많군. 당신은 조종받는 몸이야. 상황이 끝나면 다시 돌아갈 테지.”

“아, 그렇소? 평민의 몸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으니 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겠지. 그렇지 않소? 헬레나 아테나이아.”


자신의 이름과 신분을 정확히 짚은 그에게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아데스에게 물었다.


“나를 아는 모양인데?”

“그럼 기억한다오. 내가 직접 역병을 퍼트렸는데, 이에 며칠을 버티면서 살아남지 않았던가?”


헬레나는 그의 말에 흥미로운 눈빛으로 보았다.


“허풍이야. 놈은 내 안에 있으면서 너와의 이야기를 전부 들었으니까.”

“아, 하마터면 깜빡 넘어갈 뻔했네.”


제3군단장은 눈을 몇 번 피하더니, 기분 나쁜 웃음을 몇 번 보이곤 말했다.


“흐하하! 장난은 이쯤 하겠소. 내 보답으로 그대들에게 처음으로 알려주겠소. 내 이름은 아플루, 세상의 죽음과 희망을 동시에 가져오는 자이지.”

“무슨 속셈이야?”


헬레나는 깜짝 놀라 그리 물었고, 아데스도 당장이라도 사령술을 해제할 준비를 했다.


마족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는 것은, 봉인의 매개체를 건네는 것이었기에 상대를 깊게 신용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둘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그를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3군단장, 아플루는 가슴에 손을 얹는 것으로 응수하며 말했다.


“그대들에게 희망을 느꼈소.”


분명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지만,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이 나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헬레나와 아데스는 내키진 않았지만, 그가 없다면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녀는 몇 번을 고민하다 손을 건넸다.


“아플루···, 좋아. 잠시 협력하지.”

“영광이오. 용맹스러운 용사님들.”


아플루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응수할 따름이었다.


***


“여태껏 모든 의학서를 뒤져보아도, 죽은 자를 마물로 살릴 수는 없었소. 그런 것이 있었더라면, 난 벌써 그대를 마물로 만들었지 않겠소?”


아플루는 헬레나가 머리를 잘라버린 마물의 시체를 몇 번 바라보곤 그리 말했다.


“해결법은 없는 건가?”

“왜 없겠소? 내가 고작 역병 몇 개 들고 다니는 샌님처럼 과소평가하는 모양인데.”


그는 아데스와 헬레나를 몇 번 바라보더니, 두 손을 허공에 들어 보이곤 말했다.


“다만 당장은 내가 그대들을 역병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고작이오.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기습에 당하지 않게 잘 보호하시오.”


말투가 꽤 진중해진 그는, 둘의 어깨에 동시에 손을 얹어 보였다.


“뭘 하는 거야?”

“역병의 구조를 파악했소. 역병과 동일한 마력 구조를 가진 역병이 몸에 들어오면, 내 마력이 그대들을 보호할 거요.”

“우리를 조종하려는 건 아니고?”

“사령술사, 그대가 말해보시오. 내가 지금 공격성을 띠고 있는 것 같소?”


아플루의 물음에 아데스는 고개를 젓곤 말했다.


“정말로 공격성의 의도가 없어. 아무래도 그의 말은 사실인 것 같다.”

“명제에 대한 증명에 감사하오.”


헬레나는 역병으로부터 안전해진 것에 만족했지만, 한 편으로는 아직 사건의 원천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할 따름이었다.


죽은 자의 마력에서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아데스, 역병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빠삭한 아플루.


그 둘조차 이번 사건의 실마리가 될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한 것은, 사건의 장기화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상당히 정교하지만, 내 역병에 비하면 아주 조잡하기 짝이 없소.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역병의 흐름을 방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오.”


아플루는 그리 말하곤 턱처럼 보이는 부분을 쓸어 보이곤 말을 덧붙였다.


“뭐,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오.”

“방법이 뭔데? 빨리 말이나 해.”


헬레나는 그의 말에 흥분하여 다짜고짜 그의 멱살부터 잡아 보였다.


아플루는 당황한 기색 없이, 두 손을 들어 진정시키려는 제스처를 취했다.


“감염자를 한곳에 모으는 거요. 보통 이런 경우에는 시전자가 일부로 감염시킨 후에 마력의 흐름을 끊어두는 복잡한 술식을 진행한 거라오. 마력의 흐름이 한 곳으로 뭉치면 시전자조차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가 생긴다오.”


그의 말에 헬레나는 몹시 당황한 듯, 손을 놓아버렸다. 뒤에서 듣고 있던 아데스도 깜짝 놀라서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곤 다가왔다.


“그 말은 격리가 소용이 없었단 소리잖아.”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쓸모가 없었다오. 대신에 이미 전염된 이들의 운명은-.”


아플루는 목을 손으로 그어 보이는 행동을 취해 보일 뿐이었다.


“물론 지금으로서의 최선책일 따름이오. 제일 나은 방법이 또 있을지도 모르는 바이나, 빠르게 해결하려면 이 방법이 필요할 것이오.”


아플루는 둘이 충격에 빠진 사이, 조용히 뒷짐을 지고 다시 한번 시체에 다가갔다.


그는 시체를 살펴보며, 모든 신경이 온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크흐흐, 재밌구나.”


그는 이것을 보곤 우습다는 듯 웃어 보이고는 둘에게 말했다.


“···그대들, 전투에 대비하시오. 아무래도 누군가 이곳으로 모든 걸 불러들인 모양이오.”


그 말에 헬레나는 검을 똑바로 들어 보이며, 아직 고민에 빠져있는 듯한 아데스의 어깨를 한 번 잡아 보이곤 말했다.


“오랜만에 우리 기시단 구호나 외쳐볼까.”


아데스는 한숨을 쉬어 보이곤 말했다.


“···죽음은 우리의 몫이요.”

“심판은 신의 몫이니라.”

“주님께서 악한 자들에게 벌을 원하시니.”

“이를 우리가 행하리라.”


헬레나는 구호를 외치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아데스도 이미 마물의 정체가 무엇이든 간에 살아있는 사람들을 지키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작가의말

şimdi bir ölüyüm ben, bir ceset, bir kuyunun dibinde.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 있다.)

-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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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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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9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9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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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10 1 11쪽
»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4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3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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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환 (2) : 숲 속 어느 마을에 사령술사들이 살고 있었다 24.07.22 25 2 13쪽
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4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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