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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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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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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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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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DUMMY

“커피 한 잔의 여유라.”


아침 일찍 일어난 헬레나는, 집무실의 창문을 열어젖힌 후에 아침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는 컵에 담긴 커피를 슬쩍 마셨다.


평범한 평민은 결코 누리지 못할 사치겠지만, 이제는 그런 여유조차 누리지 못할 그녀가 아니었다.


“그만 마셔야지.”


달그락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은 그녀에게 평온을 주었지만, 아데스의 말에 따르면 커피가 상처를 회복시키기에는 좋은 일이 아니었기에 한 입만 마시고 그대로 내려놓았다.


끼익-


“지원자가 넘쳐나는데, 네 기준에 충족할 만한 사람은 딱히 없는 것 같아.”


똑같이 일찍 일어난 아데스는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서류를 들고 찾아왔다.


“검은 새처럼 300명을 찾을 필요는 없어. 군단장 한 마리를 처리한 지금은 그렇게 급할 이유도 없어졌고 말이지.”


벌써 하나의 군단장을 순조롭게 처리했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그래서 세르지는?”


아데스의 물음에 헬레나는 여유로운 표정이 바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아리바 단장이 직접 서신을 통해 요청할 정도로 귀중한 도련님의 입단 제의는 헬레나를 당황하게 했지만, 더욱 곤란했던 것은 그가 그녀의 기준에 충족하는 사내였다는 것이었다.


15살의 나이에 월반하여 기사단에 입단, 정기시험에서는 항상 수석을 차지, 마법의 원리와 구조를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으며, 실전에서의 운영도 나름대로 잘 인지하는 그야말로 재능이 넘치는 원석이었다.


여기에 그의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빌보 내에서 전통적으로 아리바 공을 지켜온 군인 가문이며, 집안의 내력까지 빵빵하기에 흰 장미 기사단의 일원이 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아리바 기사단 출신인 점을 제외한다면.


“아킬라와 정반대의 기사야. 아주 잘 알려졌기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부려 먹을 수도 없어. 이 일이 끝나서 우리가 살아남으면, 우리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는 너도 알잖아.”


아데스의 충고에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직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받아들이는 건 나쁘지 않아.”

“어째서?”

“세르지의 기록표를 보면 나날이 성장하고 있어. 이 상태로 성장만 해준다면, 크림힐트 단장 정도의 실력은 갖추지 않을까?”

“흐음···.”


헬레나는 그 말에 더욱더 고민했다.


그러다 결국 결정을 내렸다.


“받아주자.”

“그렇게 되는 거야?”

“응, 그렇게 되는 거야.”


헬레나는 다시 여유로운 표정으로 커피를 마셨다.


“내가 커피는 회복에 안 좋다고 했지.”

“아차차···.”


커피보다 더 쓴 말이 날아오자마자 내려놓았지만.


***


“이랴!”


퉁!


스윽-


아킬라가 말을 탄 상태로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자마자 헬레나는 목판에 단검을 긁는 것으로 합격 표시를 나타냈다.


기사의 본분은 기마술, 아킬라는 창을 든 상태에서도 정확히 전투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다만 헬레나나 아데스처럼 우직하게 돌파하는 기본적인 기사의 기마술보다는 유연하게 말의 속도와 본인의 유연성을 이용하여 탄력 있게 치고 빠지는 속도감 있는 기술을 보여주었다.


기사로서는 조금 모호했지만, 합격을 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수고했다.”

“별거 아닙니다.”


아데스는 아킬라의 정리를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그가 슬쩍 물었다.


“어디서 그런 기술을 배웠나?”

“어릴 적에 부족에서···, 아니, 그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경계심이 갑작스럽게 묻어나는 그의 표정.


아데스는 살짝 웃는 얼굴로 경계를 최대한 누그러트리며 말했다.


“처음 보니까 그렇지. 이렇게 말이랑 교감이 잘 된 사람은 말이야.”

“···제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건 아닙니다. 그저 어릴 적의 배경입니다. 아직은 말할 수 없으니, 때를 기다려 주셨으면 합니다.”


아데스는 그의 말에 살짝 마음의 문이 열렸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직감할 수 있었다.


“알았다. 기다리지.”


아데스는 아킬라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곤 말을 끌고 마구간으로 향했다.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아킬라는 마치 잦은 전투로 훼손된 것처럼 거칠기 그지없는 자기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합격···, 이라고 하던데···.”


그렇게 홀로 손만 바라보던 아킬라의 앞으로 누군가 다가와 그리 말했다.


아킬라는 얼굴을 들어 화자를 확인했다.


“···너는 그때 그 기사? 왜 여기에 있지?”


세르지 드 코르넬리우스, 당시에는 복면을 두르고 있었기에 몰랐지만, 앳된 외모가 돋보이는 그의 얼굴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그는 망토를 보이며 말했다.


“아, 저도 오늘부터 여기 소속입니다. 양측 단장의 추천으로 입단하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얼굴인데, 이름이 어떻게 되더라?”


아킬라가 먼저 손을 건네며 물었다.


“세르지 드 코르넬리우스입니다. 그쪽은?”

“아킬라, 성은 없다. 그리 불러줘.”


악수한 두 사람은 약간의 유대감을 느끼면서도 아직은 어색한 기분만 느껴질 따름이었다.


***


“어떻게 평가해?”


약간 어둡게 해가 저물었을 무렵, 아데스가 마지막으로 정리한 서신들을 내려놓았다.


그들에게는 불합격의 도장이 찍힌 서신이 다시 보내질 예정이었고, 결국 합격자는 단 두 명의 기사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이 작은 도시에서 많은 수확이라고 생각해야지. 검은 새는 전국, 아니, 대륙 전체에서 어떻게든 끌어모았던 원정대였으니까.”


헬레나는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자신의 기준에 충족하는 기사를 둘이나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번 모집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만약 군단장들이 태양의 악마처럼 이전의 군단장을 그대로 계승했다면, 너와 나를 포함해서 12명이 적당하다고 생각해.”

“300명으로 얻은 경험이 바탕인 건가?”

“몰라서 당하는 것과 알면서 당하는 것은 차이가 무지막지하게 크거든.”


헬레나의 말에 아데스는 동의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알게 된 것을 모두에게 알려주는 것의 한계가 열두 명이라고 생각했어. 그 이상의 인원은 쓸데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 거야.”


헬레나는 그리 말하면서 생각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책상 구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은 새에서도 일어났던 내부적인 정치질과 귀족 간의 알력 다툼, 보장되지 못한 평민권에 대한 무시와 멸시, 외부인에 대한 차별과 이교도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와 경멸까지.


아데스도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알았기에 조심스럽게 손을 잡아주었다.


“그래도 하는 거잖아?”


헬레나는 그리 말하는 아데스의 손이 몹시 차가운 것을 느꼈다.


아마도 육신이 없기에 그럴 것이다.


몸이 불처럼 타오르더라도, 영혼만이 남은 껍데기는 어디까지나 죽음에 한없이 가까운 존재였기에 체온이 차디찰 수밖에 없는 거였다.


그의 찬기를 느낀 헬레나도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직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많으니까.”

“그게 내가 아는 헬레나 아테나이아라고.”


아데스는 그리 말하며 쓴웃음을 환한 웃음으로 변화시켰고, 이는 전염되듯 헬레나의 표정도 밝아지게 했다.


“앞으로도 고생 많으실 겁니다. ‘단장’님.” “많이 도와주시죠. ‘부단장’님.”


둘은 서로에게 정중한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 지었다.


집무실의 녹아가던 양초의 불이 꺼지자, 금세 식어 들어갔다.


아침의 햇살을 기다리는 잠깐의 침묵이었다.


***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흰 장미 기사단의 단원은 총 네 명, 하지만 단장과 부단장의 경력이 여타 기사를 능가하였기에 그들에 대한 의뢰가 차고 넘쳤다.


아라고니아 전역은 물론, 제국에서도, 심지어는 타이파 왕조에서도 원정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헬레나와 아데스는 단원들의 전투평가를 지속했다.


“아킬라는 수준급이야. 마법과 무장에 대한 이해도도 뛰어나고, 자신의 한계를 명확하게 알기 때문에 언제 치고 빠져야 하는지를 알고 있어. 하지만 전면전에 너무 약하기에 기사로서는 모호해.”


아데스의 말에 헬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면서 답했다.


“그래도 전력에 방해가 되는 정도는 아니지. 내가 기대하던 급이야. 88점, 이게 내 점수.”


그의 말에 아데스도 동의하며 넘어갔다.


“세르지는 전통적인 무술과 전투 센스가 몹시 뛰어나서 대인 전투에 훌륭한 이점이 있어. 특히 체력 부분에서는 전면전에서 아주 유용해. 하지만 마법에 대한 이해도는 뛰어나도, 실전 운용력에 있어서는 다른 이들에 비해 확연히 떨어져.”


헬레나는 그 말에 딱히 동의하는 듯한 행위를 취해 보이지는 않았다.


마법이나 마력에 대한 평가는 자신이 내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잠재성은 뛰어나니, 70점.”

“이 정도면 충분하지.”


그들은 단원들의 전투평가를 마쳤다.


종합적으로는 뛰어난 시너지를 낼 수 있지만, 개개인의 약점이 두드러지기에 단원들이 홀로 설 수는 없다는 점이 그들의 최종 평가였다.


헬레나는 이를 어떻게 이용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책상에 팔을 괴고 있었다.


“나는 알려주려 가볼게.”

“제대로 설명해 주면서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알았어, 알았다고.”


아데스는 뭉그적거리며 대답하곤 집무실에서 나갔다.


헬레나는 그가 나가자마자 책상에 늘어졌다.


“나도 다른 귀족들처럼 드레스 입고, 차나 마시면서 놀고 싶어···.”


꿈을 중얼거리며 더욱 뭉그적거리는 구상이나 하면서 지루한 일상을 따분해하고 있었다.


똑, 똑, 똑


그런 집무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헬레나는 책상에 엎어진 채로 물었다.


“아데스?” “산티아고다.”


아리바의 단장, 산티아고의 목소리가 문 건너에서 들리자마자 헬레나는 곧바로 자세를 정돈하면서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다.


“들어오시죠.”

“단원 평가는 마친 모양이군.”

“훌륭한 친구들이더군요.”


방금까지 드러누웠다고는 상상하기 힘든 진중한 표정으로 맞이한 헬레나를 본 산티아고는 그녀를 몇 번 바라보다 답했다.


“누울 거라면 책상에 침은 닦아줬으면 좋겠네.”

“아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어. 나도 그러니까.”


헬레나는 산티아고의 말에 웃었고, 진중했던 분위기는 살짝 유하게 변했다.


“다른 건 아니고, 제안할 게 있다.”

“제안이요?”


산티아고는 조금 고민하는 듯싶더니, 이내 헛기침을 한 번 보이고 물었다.


“협동 수사를 제안하고 싶군.”


그의 말에 헬레나의 입가에 웃음이 돋아났다.


작가의말

What’s it going to be then, eh?

(자, 이제 어떻게 될까?)

-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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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24.09.04 9 0 11쪽
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8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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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9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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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3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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