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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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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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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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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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들 (2) :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DUMMY

바스락!


세르지는 자신의 뒤에서 수풀을 지르밟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몸을 돌려보았다.


하지만 수풀 속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있었기에 무언가를 확인하기란 어려웠고, 그저 검을 든 손으로 바들바들 떨면서 경계할 뿐이었다.


“마기아 흐라네니야. (магия хранения)”


무채색의 빛을 내뿜으며, 아킬라의 손에 활이 하나 쥐어졌다.


“수납 마법? 그런 것도 쓸 줄 아는 거야?”

“무기 한두 개 정도는 숨길 줄 압니다.”


세르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대화하는 아킬라와 헬레나의 모습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당장은 수풀 속에 있는 존재와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늘고 날카로운 화살을 잡은 아킬라는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노끈을 엮어서 힘과 탄성을 실어주는 특이한 모양의 활은 상당한 장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킬라는 편안하게 활시위를 당긴 상태로 유지하고 있었다.


파슥, 파스슥!


“아킬라, 보이면 쏴.”


수풀을 지켜보던 아데스가 침묵 끝에 말했다.


그러자 아킬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화살을 쏘았다.


휘유우웅!!


투욱!


“끼에에엑!”


멧돼지의 뒤틀린 시체처럼 생긴 마물 한 마리가 수풀 속에서 정확히 눈을 화살로 관통당한 모습을 지닌 채로 튀어나왔다.


“활을 다룰 줄 알다니, 대단해.”

“창을 다루기 전에 활부터 다뤘습니다. 공격받지 않고 싸울 수 있는 수단이니까요.”

“···뭐, 덕분에 마물을 처리했잖아.”


아킬라는 약간 어두운 표정을 보여주었지만, 눈치가 빠른 아데스가 바로 화제를 돌렸다.


헬레나도 슬쩍 눈치채곤 말했다.


“활을 다룰 줄 알면 좋지. 이렇게 정확히 떨어지는 타이밍을 알고 있다면, 더더욱 좋고.”


그녀는 슬쩍 마물에게서 화살을 빼냈다.


“궁수에게 화살은 생명이지?”

“직접 깎아낸 거라서요. 감사합니다.”


아킬라는 무언의 인정을 받은 듯했다.


그에 반해 이를 지켜보던 세르지는 아직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어정쩡한 자세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다.


【더 분노하라!】

“···?”


세르지는 귓가에 누군가 속삭이듯 하는 말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왜 그러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못 들은 모양입니다.”


헬레나는 그의 대답에 살짝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덤덤해 보이는 세르지의 모습에 안심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 정도로 말을 탔는데, 피곤하지 않으면 이상하겠지. 조사를 마치고 빨리 쉬자.”

“예, 알겠습니다!”


***

5년 전


“북부에서 이 정도 악취라니, 얼마나 사람을 죽이고 방치한 건지.”


숲을 거닐면서 피와 고깃덩어리들이 널브러진 장면들을 여럿 보았다.


헬레나는 단장과 함께 수풀에 들어선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는데, 이번 원정은 신에 대한 신앙심이 적은 인물들만 특별히 선발되어 떠나는 여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불을 다루는 궁수인 플로라도, 높은 신앙심으로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었던 사제 리베르도 참여하지 않았다.


“헬레나, 너는 왜 신앙심을 가지지 않는 거지?”

“단장, 그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사람이란 무릇, 절박할수록 신을 찾는다. 그래서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대체로 공작 작위를 가진 자들이지.”


단장의 말에 헬레나는 부끄러운 듯, 망토의 후드를 올려 쓰곤 말했다.


“절박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신이 나를 돕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겉으로는 신앙에 충실한 척을 해왔지만, 실제로는 신을 원망하는 이단의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헬레나의 고백에 단장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것이 부끄럽나?”

“아라고니아의 기사로서는···, 예, 부끄럽죠.”


헬레나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신의 이름으로 출정한 여정에서 신을 원망하는 자가 섞여 있으니, 이를 어떤 단장이 달갑게 여길 수 있겠는가?


하지만 크림힐트 단장은 웃으며 답했다.


“신앙의 증명은 말과 생각뿐이 아니다. 제아무리 절박한 삶이라도, 배려라는 따스한 마음을 신께서 주신 것이 축복이다. 그대는 그러한 축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나?”


그는 그리 말하며 살짝 뒤를 보곤 이어 말했다.


“내겐 그 마음이 없어, 참으로 부럽구나.”

“···전, 따듯하지 않, 아닙니다.”


반쯤 대답한 사실에 크림힐트는 웃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많이 누그러졌는데?”

“···그렇습니까.”


헬레나는 본인의 손을 몇 번 바라보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그리 말하며 묵묵히 걸어갈 따름이었다.


***


“피레스 산맥에 오지도 않았잖아. 근데 왜 이렇게 마물들이 많은 걸까?”


헬레나는 아홉 번째 마물의 목을 베어내며 그리 말했다.


“뭔가 잘못됐어.”


아데스는 눈을 의심했다.


헬레나가 베어낸 마물.


그것이 이곳에서 발견된 아홉 번째 마물이기도 했지만, 한 편으로는 생명 신호가 분명하게 인간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못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30분 정도 전부터 계속 인간의 신호만 보였다.


그의 눈에 보이는 생명 신호는 마물과 짐승, 인간을 확실하게 구별하기에 틀릴 수 없었다.


아데스는 황급히 손을 모았다.


“벨룸 인페르니! (Velum Inferni)”


그는 녹색 빛이 도는 장막을 전개했다.


물리적인 공격으로부터는 어떠한 공격도 막아낼 수 없는 장막이지만,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모호하게 형태화시켜 정신적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특수한 기술이었다.


“무슨 일이야?”

“마물 시체, 잘 보고 있어.”


마물의 시체는 점차 가루로 변질되어 가더니, 이내 온전한 형태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분명히 인간이었다.


여유로운 표정의 아킬라는 시체가 인간임을 확인하자마자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사람을 마물로 변화시킨 게 아니야.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착각에 빠져 있었다. 우리를 공격하는 이들이 인간이 아니라, 마물이라고.”


아데스의 말에 세르지는 사색에 질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저희는···.”

“세뇌당한 주민들을 죽인 셈이지.”


헬레나는 그리 말하며 뒤늦게나마 시체에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녀를 비롯하여 다른 이들은 온전한 정신 상태를 유지했지만, 세르지는 주민들을 지켜야 할 기사가 도리어 사람을 죽여버렸다는 생각에 완전히 무너진 듯한 모습이었다.


“세르지.”


헬레나는 정신이 무너진 듯한 세르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단장···.”

“기사라는 놈이 이런 신발을 신어서야 되겠나.”


그녀는 친히 흙이 살짝 묻은 신발을 털어주었고, 단장의 이런 행동에 놀란 세르지는 당황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세르지의 신발부터 시작하여 흐트러진 옷자락이나, 갑주의 느슨한 연결부까지 제대로 확인한 헬레나는 마지막으로 그의 어깨를 가볍게 잡아보였다.


“지금 네가 힘든 것은 그만큼 따듯하다는 게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따듯한 마음이 없어, 네가 부러울 따름이야.”


그러고는 그의 십자 목걸이를 가볍게 잡았다.


“신앙을 원망하니, 그것이 부끄럽나?”

“···들으셨습니까?”

“응, 들었다. 난 귀가 좋거든.”


헬레나는 가볍게 웃어 보이고는 가볍게 그의 가슴팍을 쳐보이며 말했다.


“그 따듯한 마음은 신께서 주신 축복 아닌가.”


그녀는 자신이 단장에게 들었던 말을 그대로, 어린 기사에게 들려주었다.


아데스는 살짝 웃으면서도 그런 모습에서 헬레나가 단장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것에 나름대로 뿌듯함을 대신 느꼈다.


“무너지지 마라. 가장 따듯한 사람이 무너지면, 차가운 우리도 무너지고 싶어지니까.”


그녀가 웃으며 한 말에 세르지는 마음을 다잡은 것처럼, 근심을 털어놓는 듯한 한숨 한 번과 함께 검을 꽉 쥐었다.


“제 본분을 다하겠습니다!”


마치 선언처럼, 큰 소리로 그녀의 앞에서 외친 말에 헬레나는 만족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데스, 우리에게도 그 능력 빌려줄 수 있어?”


헬레나는 그리 말하며 그의 눈을 가리켰다.


언제까지나 장막 안에 있을 수는 없었기에 마물인 것과 마물이 아닌 것을 구분 지을 수


“처음에는 조금 어색할 텐데.”


아데스는 그리 말하면서도 오른손 검지와 중지만 펼쳐 보이며, 장막 안에 있는 사람들을 번갈아서 바라보았다.


아킬라는 별거 아닐 거란 생각으로 여유로움을 유지했고, 아데스는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오쿨루스 모르티스. (Oculus Mortis)”


녹색으로 밝게 빛나는 눈을 보이던 아데스의 그 말 한 번.


아킬라는 순간 시야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온갖 신호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고, 그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숲 안에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음이 느껴졌다.


심지어 밟고 있는 수풀 한 포기마저 신호가 보이기 시작했다.


‘너무···, 과해!’


아킬라는 순간적인 정보의 과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말했잖아. 적응하기 힘들 거라···.”


아데스는 아킬라의 반응을 보며 말하다가 말았다.


그야···.


“이게 아데스님이 보시는 시야군요.”


조금 전에 정신적으로 제일 먼저 무너질 뻔했던 세르지가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작가의말

Nasci num tempo em que a maioria dos jovens tinham perdido a crença em Deus, pela mesma razão que os seus maiores a tinham tido — sem saber porquê.

(나는 대부분 젊은이들이, 그들의 앞 세대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을 믿었듯이,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 페르난두 페소아『불안의 책』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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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이단자들 (3) : 새는 하느님께로 날아간다 24.09.14 4 0 10쪽
» 이단자들 (2) :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24.09.11 8 0 10쪽
23 이단자들 (1) : 어쩌면 공포와 전혀 연관이 없을 수도 있었다 24.09.07 7 0 10쪽
22 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24.09.04 9 0 11쪽
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1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9 1 10쪽
15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10 1 11쪽
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9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9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1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9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10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4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3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1 2 12쪽
4 귀환 (3) : 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 24.07.22 19 2 11쪽
3 귀환 (2) : 숲 속 어느 마을에 사령술사들이 살고 있었다 24.07.22 26 2 13쪽
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6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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