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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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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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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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DUMMY

“놈이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는 겨우 15살이었소. 겁도 없이 북동쪽의 미개척지까지 찾아왔지. 나는 그때 고대 역병들을 연구하고 있었소.”


아플루는 당시를 떠올렸다.


제국 출신의 온몸의 절반이 그을린 소년과 아직은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지 않은 아플루의 만남이 시작이었다.


“몸도 흥미로웠지만, 마력을 이용해 역병의 구조를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났소. 그대들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의 잠재성을 느꼈지.”

“그러면 저놈은 당신이 키운 건가?”

“···놈은 마족이 되길 원했소. 하지만 어떤 의학서도 사람을 마물이나 마족으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에 단념하라고 했지.”


아플루는 지팡이를 두 손으로 짚곤 말했다.


“놈에게 줄 것이 없자,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실험서와 의학서 몇 권을 가지고 달아났소.”

“그래서 저렇게 되었다는 건가? 이번 사태의 원흉이 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지?”


아데스의 물음에 그는 당연하다는 듯, 코웃음을 한 번 쳐보곤 말했다.


“그대들이 마족의 수장을 죽이려 하지 않았던가? 마족이 되려는 자에겐 거슬리는 일이 아닐 수 없겠지.”


그의 대답을 들은 아데스는 아우렐리우스와 성벽 위의 헬레나를 힐끗 보곤 말했다.


“턱도 없을 텐데.”

“내 말이 그 말이오.”


고작 이 정도는 마계에 비할 수 없었다.


헬레나와 아데스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저자는 너무 약해서 그런 상황을 고려할 필요조차 없었다.


마물이란 존재는 분명 무시무시한 존재지만, 둘의 인식으로는 ‘마계 말단 병사’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데스가 두 사람이 아우렐리우스와 아플루까지 불러가며, 사태를 경계한 이유는 이 원인이 역병에 있다는, 다른 시민까지 휘말릴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래서 저놈 이름이 뭐라고?”

“에리히 폰 프룬겔, 나는 그리 알고 있소.”


***


파캉!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퍼지며, 날붙이와 정체 모를 손톱이 서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헬레나는 한 발자국 주춤하며 물었다.


“···인간이냐? 아니면 껍데기냐.”

“예전엔 나의 껍데기였고, 이제는 아니지.”


그녀는 저 말을 당최 이해할 수도 없고, 별로 실력이 좋지도 않으면서 무게를 잡는 이유도 알 수도 없었다.


‘···설마 내가 봐주는 걸 모르는 건가.’


그녀는 죽이기 전, 그가 인간과 마물 중 어느 쪽의 존재인지 알고 싶었다.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있는 존재라면, 그 시체를 보전하여 장례라도 치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검은 새 기사단···, 으흐흐, 너희만 없으면···.”

“아, 뭔가 닮았는데···.”


음침하게 웃는 모습이 아플루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에, 헬레나는 마음에 들지 않아 검을 제대로 잡았다.


껍데기건, 뭐건 간에 한 번에 썰어버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만 마지막으로 묻지. 이 역병은 네가 만든 거냐?”

“수년간의 연구 끝에 아플루님의 서적을 통해 개발했지. 네놈이 마왕님께 지는 동안, 나는 세상을 이롭게 할 역병을 만들었다!”


헬레나는 대답을 들은 순간에 자세를 취했다.


머리 옆에 수평으로 검을 놓은, 공격과 방어를 이루는 기본의 자세를 취한 후에 그를 자비 없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후우···.”

“이제···, 죽어라!”


숨을 한번 깊게 내뱉은 헬레나는, 다가오는 놈의 자세를 보았다.


“프라치오 페네스트라. (Fractio fenestra)”


그녀는 검을 이마 쪽으로 이동시키어, 먼저 놈의 공격부터 막아내었다.


파캉!


“세카레! (Secare)”


프스윽!!


그러고는 바로 힘으로 손을 밀쳐내고, 빈틈이 보인 순간에 오른쪽 옆구리부터 왼쪽 겨드랑이까지 깔끔하게 베어내었다.


“엣 아쿨레오. (et Aculeo)”


푸욱!!


마무리로는 베어낸 후에 뒤에 있는 놈에게 팔과 옆구리 사이를 통해 칼을 거꾸로 집어넣어, 그대로 찔러넣어 보이는 연계까지.


공격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스스로 마족인 것처럼 선전한 것과 달리, 생각 이상으로 약했던 몸은 검이 하나 들어온 것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푸슉, 푹, 푸우욱!


“끄아악! 으억···, 흐으···, 흐어억!”

“···뭐야?”


그녀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놈이 수상하여, 검을 몇 번 비튼 순간에 바로 듣기도 꺼림칙한 비명이 흘러나왔다.


마족이라기엔 고통을 너무나도 못 버티는 것이, 그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네놈, 정말로 마족인 거냐?”

“흐어억···, 허읍, 하으윽···.”


피가 쏟아지는 몸을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허리를 어정쩡하게 굽힌 상태로 자기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며 숨을 가쁘게 쉰다.


누가 보아도 검에 찔린 사람의 반응이었고, 결코 마족의 반응이 아니었다.


“고통스럽나?”

“네놈···.”


헬레나는 최소한의 경계조차 하지 않으며, 조용히 놈과 눈높이를 맞추어 섰다.


“네놈이 죽여나간 사람들이 어떤 고통 속에 죽어 나간 것인지, 이제야 체감이 되나?”

“닥쳐! 나는 마왕님의···, 충직한 종복···, 결코 그런 하찮은 인간들과는···.”


푸우욱!


“흐어아악!”

“입을 계속 놀리면, 다음엔 혀를 잘라버릴 것이니 똑바로 대답해라.”


헬레나는 고작 이런 놈을 위해, 자신이 루덴에서 하루가 지체된 것도 화가 났다.


하지만 더 화가 났던 것은 고작 이런 놈이 이곳의 사람들을 마물로 만든 것이고, 자신이 그들의 목을 썰게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주, 주, 죽어···!”


그 와중에 정신을 못 차린 그는, 헬레나를 향해 팔을 뻗었다.


그녀는 이런 움직임을 발견하자마자 칼을 뽑아버리곤, 바로 몸을 움직여 팔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응수했다.


서걱! 투욱···


“흐어어억! 흐헉···, 흐아악!”


팔을 자르자,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비명을 들어버린 헬레나는 기분이 나쁠 뿐이었다.


그녀는 바로 칼을 높게 들어 올렸다.


“지옥으로 떨어져라.”


서겅!


투욱···.


같잖은 비명은 그녀의 베기와 함께 사라졌고, 목은 그대로 잘리어 바닥을 뒹굴었다.


“헬레나!”

“한발 늦었다.”


그녀는 뒤늦게 달려온 아데스에게 그리 말했다.


“처리했어?”

“별 시답지도 않은 놈이었어.”


아플루는 조용히 다가오더니, 목이 잘린 에리히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알던 놈이었나?”

“뭐, 설명하긴 길다오. 자세한 건 그대의 전우에게 듣게나.”


아플루는 그리 말하고는 손을 뻗었다.


잘린 목에 한 번, 그리고 목이 잘려 나간 몸에 한 번씩 손을 대었고, 그의 손길이 지나간 자리에는 검게 썩어들어가는 역병이 퍼지면서 가루로 변해갔다.


그리고 이내, 차가운 바람결이 불면서 가루는 흩어져 사라지고 말았다.


“한계에 봉착한 놈은 더 이상 필요가 없소.”

“···당신은 도대체 뭘 위해 사는 겁니까?”


헬레나는 당장이라도 베어버릴 기세로, 손에 검을 꽉 쥐며 물었다.


그러자 아플루는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가면으로 인해 표정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소름이 끼치는 느낌이 올라오는 것이 군단장의 면모가 제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관찰.”

“···흥미로운 관찰?”


아플루는 이내 완전히 뒤를 돌아보곤 말했다.


“나는 호기심이 아주 많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나의 실험의 장으로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나는 그대를 존경하는 것이라오.”

“그게 도대체 뭔···.”

“그대처럼 잠재력이 충분한 이가 어떻게 성장할지 나는 매우 궁금하오. 그래서 자결하지 않고 살아간다고 할 수 있소.”


그의 말에 헬레나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아플루는 지팡이를 내려놓곤 말했다.


“시간이 되었군.”


그는 그 말과 함께 두 팔을 벌렸다.


“Τα λέμε ξανά αργότερα.”

나중에 다시 만나길.


그러자 아데스의 사령술이 한계에 달하여, 그대로 초록색의 불꽃과 함께 사라졌다.


“···뭐야, 진짜.”


헬레나에게 의문만이 남은 사건.


그녀는 이제야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벽 아래 병사들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걸로 한 건 해결이지?.”

“···다시 출발하자.”


***


“정말 이대로 가시는 겁니까?”

“루덴에 소란을 일으켜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제 아라고니아로 돌아가야 합니다.”


루덴의 기사단장은 이를 영주에게 보고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며, 말을 탄 두 사람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에 몹시 아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헬레나는 환한 웃음을 보이며 그에게 말했다.


“저흰 다시 루덴에 올 겁니다. 이 아름다운 도시를 그냥 놓칠 수는 없겠지요.”


그녀의 말은 단순한 입발림에 불과했지만, 루덴의 기사단장은 그 정도로 만족하며 웃음과 함께 그들을 떠나보낼 따름이었다.


“참 기분 찝찝한데.”


그녀의 말에 아데스는 한숨을 푹 내어 보이곤, 맑은 하늘과 함께 해가 떠오르고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우리 일이잖아.”


아데스의 말에 그녀는 한 번 웃어 보이곤 말했다.


“빨리 돌아가자. 가기도 전에 지쳤다.”

“···나도.”


아직 여정은 반이나 남았지만.


작가의말

μῆνιν ἄειδε θεὰ.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 호메로스 『일리아스』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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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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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8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8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0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9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9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2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1 2 12쪽
4 귀환 (3) : 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 24.07.22 18 2 11쪽
3 귀환 (2) : 숲 속 어느 마을에 사령술사들이 살고 있었다 24.07.22 25 2 13쪽
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3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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