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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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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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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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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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DUMMY

뜨겁게 타오르는 열기가 피부를 스치며, 화상을 입을 위험 속에서도 헬레나는 검을 놓지 않고 기회를 기다렸다. 마치 노련한 맹수처럼.


“헬레나!”

“단장, 여기서 쉬고 계세요.”


검은 새 기사단의 단장, 크림힐드 데 베르니에는 턱부터 목으로 이어지는 깊은 화상을 입었기에 전투에 돌입할 수 없었다.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팔이 잿더미가 되어버려 고통에 몸부림치는 기사도 있었고, 이미 미동도 없이 불길에 휩싸인 기사도 있었다.


“온다.”

“알고 있습니다.”


스르르릉!


헬레나는 검을 뽑아 들고 기다렸다.


통칭 ‘불의 악마’라 불리는 제1군단장과의 전투는, 예상을 뛰어넘는 불길의 기습으로 인해 제대로 시작도 못 한 채 대부분의 전력이 무력화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토벌의 열쇠는 상태가 거의 온전한 헬레나뿐이었다.


“기회는 한 번이야.”

“디미디아 글라디아티오. (Dimidia Gladiatio)”


그녀는 왼손으로 검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날을 직접 잡았다.


“흐읍!”


헬레나는 위에서 강한 열기를 느끼자마자 숨을 한 번 들이키곤 참는 것으로 흐트러짐 없이 자세를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익투스 쿠르부스! (Ictus Curvus)”


그녀는 불의 악마가 충분히 가까워졌을 때, 검에 힘을 실어 위쪽으로 돌리듯 베어냈다.


“커헉!”


불의 악마의 목에 검이 닿았다.


하지만 예상외로 단단한 피부는 잘리지 않았고, 헬레나는 이에 힘을 더 실어서 그대로 바닥으로 처박았다.


“···목이 좀 단단하네?”

“끄으으윽!”


헬레나는 놈의 목에 칼을 댄 채 최대한 힘을 주었지만, 비늘 같은 피부는 너무나 단단해서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는 열기를 버티며 목에 압박을 가했고, 결국 팔이 화상자국으로 물들어갈 때쯤 열기가 멈췄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물었다.


“후우···, 우리 초면이지?”


불이 타오르고 있는 듯한 몸을 가졌지만, 조금은 평범해 보이는 얼굴이 마족이 아니라 인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목에서 흐르는 피는 바닥에 닿기도 전에 타올랐다. 헬레나가 검을 놓자 상처 부위는 불길에 휩싸이며 빠르게 회복되었다.


“이게 네 능력이냐?”

“너는 날 이길 수 없어. 그런 식으로 이길 수 있었다면, 나는 이미 수백 년 전에 졌을 거다!”


불의 악마는 헬레나의 검을 비웃으며 붉은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


그 순간, 헬레나의 검이 점차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헬레나가 말을 잇질 않자, 아데스는 궁금한 듯 그리 물었다.


“너도 그 자리에 있었잖아? 봤거나 들었을 거 아니야.”

“제1군단장 토벌 땐 난 후방에서 마물을 처리하고 있었어. 일이 끝난 후 토벌 소식만 들었지.”


아데스의 말에 그녀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말해줄게.”


그녀는 그리 말하곤 검을 뽑았다.


“같은 놈은 아닐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말해둘게. 그놈은 목을 잘라도 죽지 않아.”

“···뭐?”

“정확히 말하면 피부가 단단해서 목이 잘리지도 않아. 머리를 박살 내도 소용없고, 몸의 어느 부위를 자르든 금방 회복돼.”


아데스는 그녀의 말에 질색하는 표정으로 까다로운 상대를 맞이하는 것이 극히 싫었다.


“그리고 뭣보다 여타 불 마법에 비하면 불길이 이상할 정도로 거세. 마법사들이 아무것도 못 하고 기습당할 정도였으니까.”

“나랑 상성 최악이잖아?”


아데스는 끔찍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뱉었다.


피부가 단단하다는 부분에서 통상적인 공격만 수행하려는 사령술도 쓸모가 없고, 불도 아데스에 비해서 강하니 상성이 좋지 않았다.


그는 신체적 능력이 특출나지 않았고, 전력과 전술, 전투 센스로 상대하는 전략가에 가까웠으니.


아데스는 질색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는 까다로운 상대를 마주하는 것이 몹시 싫었다.


“···그러면 방법은 한 가지인가.”

“무슨 방법?”

“아플루를 부르자.”


헬레나는 아데스의 말에 눈을 껌뻑였다.


“···뭐?”

“아플루가 지금은 나에게 호의적이야. 같은 군단장이 나타나면, 저놈은 아플루에게 호의적이겠지.”

“그 틈을 노리자는 거지?”


헬레나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몇 번 고민하며 턱을 짚더니,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아플루를 부르지 않아도 상대할 방법이 있을 것 같아.”

“그런 방법이 있다고?”


헬레나는 약간 웃으며 말했다.


“기회는 한 번이야. 나만 따라봐.”

“···이번에도 기회가 한 번인가.”


헬레나는 '한 번의 기회'라는 말에 내키지 않았지만, 아데스의 전략적 능력을 믿고 따르기로 했다.


***


툭, 뚜벅, 툭, 뚜벅.


검은 코트에 새 부리 마스크를 쓴 '역병 의사'가 지팡이를 짚으며 불타는 거리를 걸어갔다.


그가 당도한 곳에는 이미 누군가가 있었다.


“아직도 살아남은 이가 있다니···.”


여인이었다.


‘불의 악마’ 제1군단장과 비슷한 능력을 지닌 그녀는, 어쩌면 더 강력할지도 모르는 힘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녀는 까맣게 타오른 재처럼 회색빛이 도는 머리카락을 가졌고, 왼팔은 불타고 있었다.


드러난 목부터 쇄골까지의 피부는 비늘처럼 보였으며, 마치 사슬갑옷을 입은 것 같아 이질감이 없었다. 그녀의 갑주는 구릿빛이 돌았고, 불길에 반사되어 때로는 황금빛을 띠기도 했다.


그녀의 표정은 심드렁했지만, 주황빛이 도는 하나의 ‘석양’을 담은 눈동자와 연붉은 입술은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뒤로 타오르는 항구와 붉게 물든 하늘은 여인을 마치 ‘성인’처럼 보이게 했다.


그녀는 ‘불의 악마’로 불리기엔 부족했다.


‘태양의 악마’가 더 어울렸다.


“···설마, 당신.”


여인은 '역병 의사'를 알아보고 심드렁한 표정을 놀란 표정으로 바꾸었다.


“살아···계셨습니까?”


역병 의사는 말없이 두 팔을 벌렸다.


“···인간들을 속이셨군요?”

“···.”


역병 의사는 말없이 두 팔을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제가 왔습니다. 당신의 생사를 확인했으니, 이제 다른 곳으로 가시어 이전의 영광을 되찾으시길.”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역병 의사는 그 말에 두 팔을 모으고, 지팡이 위에 두 손을 올린 채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뭔가 용건이라···.”


탁, 타닥, 탁!


급히 들리는 발소리.


여인은 놀라 천천히 얼굴을 돌리며 발소리를 확인하려 했다.


그 순간이었다.


“코어 페르포라레! (Cor perforare)”


헬레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가장 단단하지 않은 옆구리를 검으로 순식간에 도려내버렸다.


그러고는 심장까지 손을 꿰뚫을 기세로 집어넣었다.


푸욱!


한순간에 옆구리가 도려내지고, 꿰뚫린 여인은 눈을 부릅뜬 채 헬레나를 바라보았다.


푸와악!!


그녀는 그 표정을 보고도 망설임 없이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태울 것처럼 뜨거운 심장을 잡았고, 그대로 뜯어내 꺼내 보였다.


두근, 두근, 두근


심장은 아직 활동하는 것처럼 두근거리고 있었고, 여인은 헬레나를 노려보며 옆구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 초면이지? 전에도 이런 말 했던 거 같긴 한데, 아무튼.”


헬레나는 광기에 차오른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고, 여인은 심장이 있었던 쪽을 잡으면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제1군단장, 불의 악마를 상대했던 순간.


목이 잘리지 않았고, 검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던 그 순간에 곧바로 노렸던 곳.


그곳이 심장이었다.


불의 악마가 검을 녹이자마자 헬레나는 그의 가슴을 도려내었고, 곧바로 손을 강하게 집어넣어 단숨에 심장을 잡아내었다.


그리고 그 심장을 뽑은 순간, 구멍이 난 위치에서 피가 쏟아지면서 불의 악마는 그대로 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헬레나는 이번에도 놈의 심장을 노렸고, 여인에게서 심장을 꺼내자마자 손에 힘을 강하게 쥐면서 터트렸다.


푸와악!!


헬레나는 얼굴을 포함한 온몸에 튄 지나칠 정도로 따스한 피를 닦지도 않으며 말했다.


“···잘 가라, 애송이.”

“헬레나, 아직이야!”


역병 의사로 모습을 바꾸고 있었던 아데스가 변장을 풀면서 그리 말했다.


헬레나가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여인은 곧장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는 붉은색의 커다란 검을 쥐고는 몸을 돌리며 헬레나에게 향했다.


당황한 그녀는 일단 본능이 따르는 대로 검을 다시 잡고 공격을 막아내었다.


카앙!!


날붙이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강하게 나더니, 헬레나는 갑작스럽게 날아온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약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군요.”


여인은 검을 들고, 헬레나의 앞에 섰다.


그녀가 뽑은 심장과 뚫어낸 몸은 불길이 치솟아 오르며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고, 아데스는 그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인이 헬레나의 앞에 선 모습은 마치, 석양으로 저무는 태양을 대체하는 듯 하늘 앞에 위선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헬레나는 어색한 웃음으로 중얼거렸다.


“태양의···, 악마···.”




작가의말

در زندگی زخمهایی هست که مثل خوره در انزوا روح را آهسته میخوردومیتراشد

(삶에는 서서히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 사데크 헤디야트 『눈먼 올빼미』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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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9 1 10쪽
15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10 1 11쪽
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8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8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0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9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9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2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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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3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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