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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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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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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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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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DUMMY

“···복수가 하고 싶어. 나도 그렇고, 아데스도 그럴 거야. 아직 우리는 끝내지 못한 임무가 남아있으니까.”


여공은 아데스에게 물었지만, 이에 헬레나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격식도, 높임말도 없는 한 마디였지만, 여공은 전혀 불만이 되지 않는다는 듯, 오히려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거면 충분하지.”


레오노르 여공은 그리 말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쯤 하지. 내일 여기에 다시 와줬으면 좋겠구나. 너희에게 주고 싶은 것들도 있고, 하고 싶은 말도 있으니.”


***


“여공과는 무슨 사이야?”


여공을 만난 후에 돌아가던 길, 아데스가 입을 열었다.


“궁금하던데.”


헬레나는 잠시 멈추더니, 생각에 잠겼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 영주의 사냥을 함께 도왔다는 말은 들었던가?”


아데스는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그녀가 기사로 서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영주의 사냥을 아버지와 함께 도왔고, 그 과정에서 ‘재능을 인정받았다.’라고 말했었다.


“그때의 영주님은 돌아가신, 레오노르 여공의 아버지인 벨라스코 아라바 공. 서로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만났어.”

“그런데 여공은 널 ‘친구’라 표하던데.”

“처음 만났을 땐 신분을 몰라서 이야기를 잘만 나누었지. 어릴 적의 실수였어.”


아데스는 그녀의 말에 왜 레오노르 여공이 그렇게나 헬레나를 챙겼던 것인지 이해했다.


레오노르는 친구의 안위를 걱정하는데, 정작 헬레나는 격식 차리느라 바쁘니, 아데스의 눈에는 쌍방의 우정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충분하다는 말은 도대체 뭔 뜻이었을까. 그리고 내일은 뭘 주려는 걸까?”

“영주님의 생각은 나도 잘 몰라서···. 글쎄,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말이지.”


둘은 어차피 자신들이 레오노르 공에 대해 깊게 생각해봐야, 그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예측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나저나 앞으로 어쩔 셈이야?”

“글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국왕의 기사단 해체 명령.


단 두 명밖에 남지 않은 기사단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만, 기사단 자체가 해체되었다는 것은 훨씬 큰 문제가 되었다.


더 이상 아라고니아 왕국은 마계 토벌에 선두를 맡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레버넌트로 돌아갈 생각이지?”


그래서 헬레나는 더 이상 아데스가 여공에게 했던 말과 달리, 이곳에 남을 실질적인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데스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돌아가.”

“안 돌아간다고?”


그녀의 물음에 아데스가 되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혼자서라도 마계 토벌할 거야. 너도 봤잖아, 레버넌트 마을에 마물이 나타난 광경.”


헬레나는 아데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혼자서? 300명이 넘게 가도 안 됐는데?”


실질적인 헬레나의 물음에 아데스는 정확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다.


지금은 그저 아라고니아의 시민이 되었을 뿐, 돈도, 작위도 없는 아데스가 이곳에서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의지는 기상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아데스는 그 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든 반박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지금의 그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


“너희에게 해줄 말은 하나다. 아라고니아의 기사가 아니라 빌보의 기사가 되는 것이다. 물론 헬레나는 해당하지 않겠지만, 네겐 빌보에서 마계 토벌을 위한 기사단 창설을 허락하겠노라.”


두 손을 모아 보이며, 잘 되었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는 여공.


헬레나와 아데스는 어제의 어색했던 대화가 다 잊히기도 전에 건넨 그녀의 제안은 둘을 당혹스럽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지금 그 말은···.”

“그 말은 국왕과 반대의 노선을 걷겠단 겁니까?”


아데스는 헬레나가 말을 잇기도 전에 직설적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레오노르 여공은 여유롭게 답했다.


“개인적인 원한이니라. 국왕의 결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리바 공의 독단이다. 그리고 아리바 공은 아라고니아에서 합법적으로 독자적인 기사단과 사병을 보유할 수 있다.”


그녀의 말에 아데스는 한 치의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원한이 뭡니까? 제대로 된 신용이 없다면, 이를 도울 생각은 없습니다.”


그는 공작의 일개 사병 집단으로 전락해버릴 수 있는 기사단을 경계하며, 오로지 마물 토벌만을 위해 일 할 수 있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레오노르 여공은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표정으로 답했다.


“나와 헬레나는 마물로 인해 아버지를 잃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가?”


아데스는 그 말에 잠깐 이해를 못 하다, 몇 초가 지난 후에야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헬레나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녀는 사실이라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나, 레오노르는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그대들을 나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지 않을 것이니라.”


어느 때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변한 여공의 표정은 아데스에게 신뢰를 주긴 충분했다.


“헬레나, 네가 결정해.”


한참을 고민하던 아데스는, 결국 선택권을 그녀에게 넘겼다.


헬레나는 숙인 고개를 천천히 들어 보이곤, 아데스를 힐끗 바라보고, 천천히 레오노르 여공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 보였다.


그러고는 이미 결정했다는 듯


달그락, 쿵!


허리춤에 있던 검을 책상에 던지듯 올려두었다.


“아데스, 기회는 놓치는 거 아니야.”

그 표정은 누구보다 결연했다.


헬레나는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자신이 여정을 계속 이어왔던 목적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기에, 그렇기에 확고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레오노르는 그 대답에 만족스러워했다.


“새 기사단 이름이나 생각해둬. 그 누더기 망토는 얼른 버리고.”


그녀의 말에 헬레나는 자기 망토를 보았다.


아데스의 것은 아직 멀쩡한 것에 반하여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리고, 황금색 자수의 빛조차 잃어가는 흉해진 모습은 망토로 쓰기에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언제 이렇게 닳았데.”


***


“여공,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경어체는 포기한 거 아니었나? 이제 예전처럼 말해도 괜찮다니까.”

“아니, 그러니까, 레오노르···, 그···, 아닙니다. 역시 그···, 아무튼···.”


헬레나는 레오노르 여공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혼란스러워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서 아데스도 여공의 진심 어린 관심과 지원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여공이 기사단 창설이 결정되자마자 시작한 것은 옛 아리바 기사단의 건물을 개조하기 시작한 것.


그 건물은 과거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지만, 지금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런 건물을 개조하는 것을 본 헬레나는 부담을 느꼈고, 아데스는 여공이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할 따름이었다.


“영웅에겐 이 정도는 해야지. 뭣하면 동상이라도 세워줄 수 있는데, 많이 부족해?”


레오노르 여공의 의지는 명확했다. 이곳을 ‘새로운 시작’의 장소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였기에 헬레나는 사색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데스는 아무리 그래도 너무 과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여공에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야, 너희가 내 복수를 실천해주니까.”


여공은 그리 말하곤 그에게 싱그러운 웃음을 한 번 보이곤 말했다.


“너희에게 주는 두 번째 기회이니라.”

“허···.”


그녀의 말에 아데스는 헛웃음을 짓는 것으로 반응을 마쳤다.


“그럼, 새 기사단의 이름을 정했나?”


레오노르 여공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헬레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물론.”

“그래, 어디 나한테 그 이름이 어울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설득해볼 수 있겠어?”


레오노르 여공은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듯, 두 팔을 벌려 보였다.


“흰 장미, 왠지는 너도 알잖아?”

“···어울리네.”


레오노르는 그 말에 자신이 여공이자, 아리바 공이 되었던 14살 무렵을 떠올렸다.


빌보가 바다 건너에서 나타난 마물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고, 그녀의 아버지인 벨라스코 공작도 전투에 나섰다가 전사했다.


당시에 헬레나가 두각을 드러내면서 마물을 격퇴했지만, 레오노르는 고작 14살의 나이에 빌보라는 거대한 도시를 통치하는 여공이 되어 막대한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와중에 기사로 서임 받은 헬레나가 빌보를 떠나면서 그녀에게 바친 꽃 한 송이.


그것이 흰 장미였다.


“그대가 흰 장미를 선물하며, 편지에 이리 적지 않았었나. 흰 장미의 꽃말은 ‘순수와 젊음, 숭배’를 뜻하면서도 하나를 더 뜻한다고.”

“···‘새로운 시작’,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생각하는 흰 장미의 꽃말이야.”


레오노르는 어느 때보다 밝은 얼굴로 자신이 진정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인 헬레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헬레나의 말에 아데스는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는 망토의 단추를 풀어 접어 나갔고, 네모난 모양 위에 황금색 새의 자수만 남는 모양을 만들어냈다.


그러고는 황금새를 보며 많은 생각을 거쳤다.


“···새로운 시작인가.”


아데스는 그리 중얼거리곤, 소매 속의 목걸이를 몇 번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그럴 시간이 없지만.’


아데스는 목걸이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어떻게든 손으로 막으며, 그리 생각할 뿐이었다.


그는 그들의 웃는 모습을 깨트리고 싶지 않았기에.


작가의말

Last night I dreamt I went to Manderley again.

(지난밤 다시 맨덜리로 가는 꿈을 꾸었다.)

- 대프니 듀 모리에『레베카』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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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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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9 1 11쪽
»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9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1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9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10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2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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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3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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