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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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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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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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31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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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DUMMY

“다녀왔습니다.”


몇 주의 시간이 걸렸던 긴 여정을 마치고, 빌보의 어느 평화로운 마을 앞에서 헬레나는 말의 올가미조차 손에 쥐지 않고 내렸다.


나름대로 평온해 보이는 말투와 행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느낌이 그윽한 독단적인 움직임으로 어디론가 빠른 걸음과 뜀걸음의 사이의 어정쩡한 속도로 향했다.


가는 길에 길가에 자라난 꽃 한 풀을 꺾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인지 가던 길에 놓았다.


그러고는 걸음은 유지하면서 손으로 소매를 뒤지더니, 있었는지도 모를 새하얀 꽃 한 송이를 손에 쥐고는 가려던 곳으로 계속 향했다.


“다녀왔어요. 아버지. 귀향 선물이에요.”


그녀가 다다른 곳은 마을 인근의 어느 한 묘지.


그 앞에 새하얀 꽃 한 송이를 내려놓았다.


아데스는 그 꽃이 뭔지 한 눈에 알아봤다.


“···에델바이스.”


대륙의 험준한 산맥지대에서만 한 송이 겨우 자란다는 흰색의 에델바이스, 그녀가 그것을 묘지 앞에 올려두고는 ‘아버지’라고 불렀다.


저 꽃을 구하는 과정의 험난함, 헬레나는 원정이 어떻게 끝날지도 모르면서 에델바이스를 품안에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데스는 멍해진 나머지 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분명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그는 헬레나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묘지를 지켜보았다.


“아, 아데스, 미안해. 오랜만에 집에 돌아왔더니, 나도 모르게 조금 들떴어. 여기가 내 고향이야.”

“···헬레나.”

“아하하, 너무 작은 마을이라서 조금 그런가? 레버넌트 마을에 비하면 확실히 작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긴 해.”


아데스는 이에 어색한 미소를 보이다 답했다.


“그, 근사한 마을이네.”


성과 조금 떨어진 외곽.


그는 이 조용하면서도 나른한 마을의 환경을 보며, 이곳에서 헬레나 같은 검술의 천재가 나왔다는 사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헬레나는 무릎에 묻은 흙을 조심스럽게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에는 고향에 돌아온 안도감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교차하고 있었다. 고향의 풍경은 그녀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고,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이제···.”


헬레나는 회포를 푼 듯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을 이어갔다.


“영주님을 뵈러 가볼까?”


***


강과 바다를 끼고 있는 ‘빌보(Bilbo)’는 아라고니아 왕국의 최대 핵심 항구로, 무역과 경제의 중심지였다.


수 세기 전, 이곳은 '아라바'라는 토착 세력이 거주하던 땅이었으며, 아라고니아 왕국 건국 과정에서 무수한 대립을 거쳐 현재는 독립된 자치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빌보의 주민들은 바다와 평지, 산맥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지형을 이용해 생계를 이어갔으며, 이곳의 대평원과 대항구의 무수한 해산물들은 왕국 전체식량의 중요한 공급처였다.


이런 요소들은 아라고니아 왕국의 건국 과정에서, 빌보는 전략적 요충지로 떠오르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곳이 빌보···.”


아데스는 처음으로 와보는 빌보, 그리고 이곳의 전경을 보면서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어떤 제국과 왕국의 도시를 비교해봐도, 이곳 빌보의 대평원과 대항구, 그리고 도시를 지키는 산맥의 적절한 균형은 아름다움과 실용성, 그 모든 것을 갖춘 도시임을 알려주었다.


“자, 가자.”


헬레나의 말에 아데스는 움직였다.


그들은 이제 빌보의 공작을 알현하러 간다.


빌보의 공작, 레오노르 데 빌라노 ‘아리바 공’은 어린 나이에 일찍 여공이 되어 자비롭기로 꽤 유명했고, 한 편으로는 헬레나와 연이 있었다.


“영지 못 받아도 할 말 없어. 토만 달지 마.”


그런데도 국왕이 하사한 영지는 빌보의 공작에게 상당히 책임을 전가하는 무리한 요구, 그렇기에 헬레나는 일찌감치 영지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아데스는 이에 의문을 품으며 물었다.


“아라고니아는 왕의 권력이 절대적인 거 아니야? 왜 공작에게 벌벌 떠는 건데?”

“그야, ‘아리바의 공작’님께는 예외거든.”


예로부터 전사적 기질이 강했던 아리바인들은 건국 직후의 아라고니아를 모두 막아낼 정도로 강대했고, 아라고니아는 결국 협상을 건넸다.


그것은 아리바인들이 아라고니아에 복속되는 대가로 아리바인의 지도자에게 ‘아리바 공’이라는 공작 이상의 작위와 자치권을 하사하는 것으로 아라고니아 왕국은 성립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둘은 그 ‘아리바 공’을 접견한다.


알현실 앞의 경비병이 헬레나를 보며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들어가시게. 여공께서 기다리시네.”

“···자, 들어가자.”


헬레나는 아데스에게 그리 말하며 천천히, 평소보다 몇 배는 긴장한 모습으로 들어갔다.


국왕을 접견할 때보다 더욱 긴장한 모습이었고, 아데스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점차 긴장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으음?’


아데스는 여공의 모습을 보고 멍해졌다.


나이는 자신과 비슷했지만, 눈빛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권력의 향이 아데스에게도 느껴질 정도로, 정치적으로는 원로한 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반쯤 감긴 눈이지만, 상대를 확실하게 바라보는 눈동자. 얕은 눈썹임에도 표현이 확실했고, 새하얗게 깨끗한 피부는 순수함을 나타내는 듯했다. 그리고 그걸 증명하듯, 그녀의 머릿결과 눈썹은 희끗희끗한 은색이었다.


하지만 주름 하나 없는 입가의 꾹 닫힌 입은 무겁게 느껴지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은 순수함에 가려진 ‘아리바 공’의 막중한 책임감을 나타내는 것처럼 보일 따름이었다.


“자비로운 여공이시여, 헬레나 데스트라자, 당신께서 부여하신 자유를 누리고 왔나이다. 본 기사는 다시 한번 당신의 충성스러운 기사가 되어, 의무를 수행할 것을 맹세하나이다.”


헬레나의 말에 여공은 손을 한 번 들어 보이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대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국왕 폐하께서 그대에게 하사한 것이 있다 들었노라. 그대는 그것을 보고하러 왔다고 들었다.”


여공의 목소리는 다소 차분했고, 발음이 정확하여 두 번 들을 필요는 없었다.


“국왕 폐하께서는 저희에게 빌보 남부 평원의 영지와 제게 아라고니아 남작의 작위를 하사하셨나이다. 이에 본인은 여공의 명을 기다리나이다.”


그에 반해 헬레나는 다소 뭉개지는 발음으로 말했다.


그만큼 긴장하여 입과 혀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고, 아데스는 이를 보고는 레오노르 여공의 반응을 살폈다.


“생각보다 곤란한 제안이로구나.”


그녀는 그리 말하곤 환한 웃음으로 긴장을 풀어주는 듯한 손짓을 보이며 말했다.


“대신에게 그대들에게 그만큼의 금화를 제공하겠노라. 그 정도로 충분하겠는가?”

“···당신의 기사, 감사를 표하나이다.”


여공은 의외로 쉬우면서도 배려심이 깊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정치적, 혈통적 정당성이 없는 헬레나가 그만큼의 땅을 갖느니, 차라리 금화를 받아서 생계를 이어 나가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었기에 그녀의 처지에서도 이 방안이 훨씬 나았다.


“그보다, 헬레나. 네가 겪은 여정에 대해 듣고 싶구나. 쭉 그걸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아, 아아, 예, 여공···. 그것이···.”


헬레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 듯 눈을 껌뻑이며 아데스를 번갈아 보았다.


아데스 또한 이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는 레오노르 여공을 바라보며 그녀의 표정이 다소 변한 것을 느꼈다.


분명히 흐뭇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치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가 돌아온 자식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자리가 문제로구나. 따라오거라, 편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


“···그리하여, 여정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쪽의 아데스가 없었더라면, 저는 틀림없이 죽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헬레나는 처음에는 황당해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여정 기간에 있었던 일을 술술 풀어내면서 여공의 흥미를 돋웠다.


레오노르 여공은 자신의 정원에 데려와, 아데스와 헬레나에게 차부터 대접했다.


“이 눈도, 이 상처도, 모두 마왕의 짓이란 건가?”

“···예, 그렇습니다.”

“가여워라. 어여쁜 얼굴에 이리 상처가 나서는 안 될 텐데···.”


이 과정에서 아데스가 알아낸 것은, 레오노르 여공은 생각 이상으로 유순한 성격을 지녔으며, 헬레나에 관한 관심이 꽤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여공은 헬레나의 얼굴과 상처를 살피다가도, 이내 아데스에게 얼굴을 돌려 보이곤 말했다.


“그대에게 참으로 감사를 표한다. 나의 기사가 그대 덕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데스의 대답에 만족한 듯, 여공은 슬쩍 웃어 보이곤 다시 헬레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그대가 무사히 돌아와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가 지금은 여공이 되었지만, 어릴 적에는 위아래도 없이 지냈던 친우이지 않은가?”

“여공 각하, 그것은 그다지···.”


전후 관계를 알지 않으면, 풍부한 상상력이 발휘되는 말들이 오갔던 탓에 아데스는 헬레나에게 많은 것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공의 관심이 헬레나에게 쏟아진 상태였으니, 그저 관망할 따름이었다.


“그나저나 레버넌트인, 그대는 어떤 연유로 이곳에 남기로 한 건가? 그대는 이제 돌아가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모든 관심을 헬레나에게 쏟던 와중, 갑작스럽게 여공의 질문이 날아왔다.


그리고 아데스가 그런 여공의 물음과 함께 볼 수 있었던 것은 먹잇감을 놓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나운 맹수의 눈빛이었다.


‘···온순한 표정은 헬레나의 것인가.’


아데스도 이런 부분에서 눈치가 상당히 빨랐기에 격식 있는 손짓과 표정으로 답했다.


“제 본분을 다할 수 있는 곳은 아라고니아이며, 제가 이곳까지 당도할 수 있던 것은 헬레나라는 동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이곳에 남아, 기사로서의 본분을 다할 것입니다.”


그의 대답에 여공은 약간 아쉽다는 듯, 의문스러운 미소, 어쩌면 헛웃음을 보였다.


“지금은 그 정도만 말하는 게 만족스러운가?”


레오노르 여공의 물음에 아데스는 눈을 몇 번 껌뻑여 보이다가 되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대는 내게 본심을 숨기고 있다. 무언가 더 말할 것이 남아있고, 다른 이유가 있다. 하지만 그대는 그걸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리 말하다가 눈빛이 싹 달라지더니


“감히, 내 앞에서.”


그리 말하며 끝맺음을 맺었다.


아데스는 몹시 당황하여 헬레나를 바라보고자 했지만, 눈동자를 그녀에게서 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여공, 무슨 대답을 원하십니까?”


아데스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입가에 약간의 미소가 번지더니, 이내 호의적인 눈빛으로 변했다.


“난 그대들이 여기서 만족한다는 것에 정말로 실망스러울 따름이야. 보아하니, 그대들도 이 상황에 꽤 실망한 모양이더구나. 표정만 본다면 말이지.”


여공은 그리 말하곤 손을 모아 보이더니, 이내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아데스 레버넌트, 헬레나 아테나이아, 그대들은 어찌하고 싶나?”


그 물음에 둘은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잃은 것이 너무 많았고, 다시 도전한다는 것이 이런 물음에 바로 대답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레오노르 여공은 같은 어조, 같은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물었다.


“말하라, 당장.”


아데스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녀를 맹수로 판단했으나,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저 눈빛은 맹수가 아니라, 먹잇감을 코앞에 둔 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작가의말

Uneasy lies the head that wears a crown.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 윌리엄 셰익스피어『헨리 4세』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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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9 1 10쪽
15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10 1 11쪽
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9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8 1 10쪽
»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1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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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2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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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3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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