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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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최근연재일 :
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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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2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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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DUMMY

푸욱!


“닿지 않아···.”


만약에 조금이라도 옆으로 찔렸더라면 분명 간을 찔러,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다.


허공에서 아무렇지 않게 무기를 꺼내어 공격하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회피하는 마왕은 아라고니아, 어쩌면 대륙 전체를 따져도 가장 강력했던 검술가가 단 한 번의 유효타도 줄 수 없게 했다.


그녀는 복부에 난 상처를 한 번 바라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마왕을 보았다.


“···마법 하나만 제대로 쓸 줄 알았더라면-.”


털썩!


그녀는 머리를 박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정신은 아직 버틸 수 있었지만, 몸이 그녀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조차 없어 보이는 녹슬고, 썩은 갑옷을 입은 자가 마왕일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군단장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게 보일 정도로 강력하리라고 누가 생각했는가?


무력감과 공포.


헬레나는 지금까지 검을 잡은 이후로 느낄 수 없었던 감정에 사로잡혀, 복부의 통증만 더욱 가속화되는 느낌이었다.


철컹! 철컹!


마왕은 몹시 과묵했다.


녹슬고 썩은 갑옷의 마찰음과 누더기처럼 변해버린 천들의 영원히 불타버리는 모습, 거기에 무엇이든 베어버리는 검게 그을린 검을 들고서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불꽃.


마왕의 몸을 태우는 불꽃이 왼쪽 눈에만 보였다.


생명의 신호가 사라져가는 그녀의 왼쪽 눈에 보인 것은 작게나마 피어오른 불꽃 하나뿐, 곧바로 왼쪽 눈의 빛은 사라지고 말았다.


“걸어 다니는···, 죽음···.”


그녀가 의식을 잃기 전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


스르르릉!


“숲 안에 두 놈, 곁에 세 놈이라···.”


한 마리의 마물을 베어낸 헬레나, 그녀는 잠깐 주변을 둘러보고는 마물들이 이 근처에 이상할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알았다.


마치 누군가를 노리고 온 듯, 수백 년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레버넌트 일족의 경계까지 뚫었다.


‘아닌가? 동방의 제국도 뚫었다고 했던가?’


사실이 어떻든 간에 마물들이 여기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이 헬레나에겐 어색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이곳의 마을 사람들보다 더욱 익숙하게 지형지물을 활용했다. 경계병들이 지형지물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맥없이 죽어나간 이유가 있었다.


휘익! 파학!


그녀는 마물의 피로 더러워진 칼을 한 바퀴 돌리어 피를 털어내었고, 자신을 노리는 마물들의 숫자와 행동 패턴을 파악하고자 했다.


“너희가 이 지형에서 더 유리할지는 몰라도···.”


나무 위에 마물 하나.


숲 안에 둘.


그리고 자신의 앞, 나무 뒤에 하나.


나머지 하나는?


“마물 하나는 내가 잘 잡아.”


서겅!


헬레나는 그리 중얼거리곤 바로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가오던 마물의 머리를 썰었다.


“포스티스 페네스트라에. (Postis Fenestrae)”


헬레나는 머리 옆에 수평으로 검을 파지하여, 상대의 얼굴과 목을 노리는 기본적이면서 전통적인 검술 자세를 취하였다.


마물들은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닫히지 않는 입에서 침을 흘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후욱!


결국 튀어 오른 맨 앞에 있는 한 녀석.


놈이 헬레나의 얼굴을 향해 팔에 돋아난 날카로운 발톱을 내민 순간, 그녀는 검을 안쪽으로 굽혀 발톱이 날에 부딪히게 했다.


마물이 발톱으로 날을 긁으면서 그대로 바깥쪽으로 빠지자, 헬레나는 그 순간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자 했다.


“카트.(Cut)”


서걱!


그녀는 허공에 떠 있는 놈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속도로 목부터 잘라내고자 했다.


“키에겍···, 키에엑!”


다만 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았던 탓에 위치를 잘못 잡아, 살짝 베이는 정도에 그쳤다.


“아쿨레오. (Aculeo)”


푸욱!


그러고는 놈이 지면에 떨어지자마자 칼을 목에 그대로 찔러넣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게, 그리고 단번에 죽을 수 있도록 더 깊숙하게 꽂아서 반대편으로 튀어나오게 했다.


허공에서 떨어지던 마물은 헬레나의 칼끝에 멈추어 섰다.


한순간에 마물 한 마리를 정리한 헬레나는 놈의 가슴에 발을 얹곤, 그대로 차면서 검을 뽑았다.


푸슈우욱!!


피는 분수처럼 튀어나왔고, 레버넌트 일족의 경계병들을 무참히 살해한 마물은 그녀의 앞에 맥없이 토벌되었다.


“구경꾼이 아무도 없다니···.”


헬레나는 자신의 무참한 공격을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에 실망할 따름.


조금 즐거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다음.”


***


투욱


“후우···.”


헬레나는 이 근처에 있는 몇 안 되는 마물을 잡아냈지만, 이미 바닥에 가까운 체력의 한계로 잠깐 숨을 골라야만 했다.


“너무 쉼 없이 움직였나.”


마계에서 탈출한 것이 고작 이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게 마물이다.


헬레나는 잊고 있던 기억의 파편들이 머릿속에 조금씩 떠오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옛날 생각나네.”


헬레나는 6년 전, 처음으로 군단장을 상대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마왕이 군림하는 마계로 향하기 위해서는 현세에서 아홉의 군단장을 상대해야 했고, 헬레나는 그 여정에서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검술을 지니고 있었음을 매번 증명해냈다.


고작 마물 따위는 그녀에게 생채기조차 낼 수 없는 존재였다.


“아주 일을 저질렀군.”


그녀가 잠깐 숨을 고를 타이밍, 아데스가 나무 위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불은?”

“그럭저럭.”


아데스는 그리 말하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죽어버린 동료들, 그리고 목이 잘린 마물들이 신성한 숲 근처를 오염시키듯 흩뿌려져 있었다.


이미 생명 신호로 누가 죽었는지를 알고 있었던 그는, 동료의 시체를 목격했음에도 무덤덤한 듯한 반응을 보이며 말했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활동을 시작한 모양이야. 곧 새로운 군단장들도 나타날 거고, 아마도 우리가 최우선 목표가 될 수도 있어.”

“마왕을 직접 본, 유일한 생존자라서?”


헬레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은 물론, 대륙의 사람들에게조차 숨겨진 레버넌트 일족의 마을까지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세계 각지에서 이미 사건이 터졌다거나, 터질 예정임이 분명해 보였다.


“인간형 마물들은 목을 잘라야 해. 그게 약점이라, 다들 알아뒀으면 해서.”


섬뜩한 말을 내뱉은 헬레나는 이미 마물의 피로 물든 칼을 대충 털어내었다.


시체들이 하나같이 저항하려던 흔적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물 하나 잡지 못한 이유가 그들이 가진 무기에 있었다.


창과 방패, 그리고 활과 석궁.


인간을 상대할 때는 더할 나위 없는 도구였지만, 머리와 몸 사이의 신경을 제거해야만 죽는 마물을 상대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무장이었다.


“···전달하지.


아데스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나무 밑에서 악마라는 글자를 적어놓고 죽은, 경계병 한 명의 시체였다.


그는 시체 앞에 조용히 다가갔다.


마냥 무덤덤한 것처럼 보이던 아데스도, 누군지 알고 있는 듯이 약간 떨리는 손으로 경계병의 가면을 벗겨주었다.


“위르겐···, 우리 마을의 수습생이었다.”


그리 말하곤, 그 반대편에 있는 시체엔


“저쪽의 마일로와 친밀한 관계였고.”


이리 말하고, 그 옆에 있는 시체엔


“이쪽의 라스와는 앙숙이었지.”


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검게 그을려있는 숲 안의 하반신밖에 남지 않은 시체에 다가갔다.


헬레나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시체였다.


몸은 존재하지 않았고, 마물로 보이는 검게 그을린 형상 몇 개와 함께 다리만 남은 모습.


첫 마물의 침입 당시, 초동대처에 실패하여 마물들과 함께 산화하는 것으로 시간을 번 것이었다.


산불도 여기서 시작된 것이었다.


“오르쿠스는 나와 누이의 오랜 친구였지.”


헬레나는 바로 아까 인사를 나눈 사람이라는 것을 듣고는 깜짝 놀랐다.


아데스는 아직 미처 눈을 감지 못한 시체들의 눈을 감겨주고, 경직된 손을 사령의 힘으로 풀어내어 편안한 자세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템푸스 디스토르티오, 피구라, 콘설바티오.(Tempus distortio, figura, conservatio)”


특히 오르쿠스의 경우는 사령술로 시간까지 왜곡시켜서 터져나가기 이전의 몸을 되돌렸지만, 흉터처럼 남은 몸의 균열은 지울 수 없었다.


“엑스틴시오.(Exstinctio)”


그는 마지막으로 모든 이들의 영혼에 대한 예를 갖추기 위한 의식을 치렀다.


레버넌트 일족은 다른 영혼들을 사령으로 만들지만,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자들은 그러하지 않다.


서로가 끈끈한 관계로 이루어진 이들이 사령으로 부활할 경우, 그 미련을 놓지 못하여 도리어 육신을 사령에게 잡아먹히는 불상사가 쉽사리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자신과 연관된 사람의 장례를 누구보다 세심히 다루어, 그 연을 끊어낸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아데스는 그대로 영혼을 소멸시켰다.


누군가 사령으로 부활시키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면서도 사자를 편히 보내는 그들만의 방식이었다.


헬레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괜히 기분이 먹먹한 기분만 들었다.


“우리가 있기에 마물들이 경계를 뚫고 있어. 우리가 떠나야만 해.”


헬레나는 아데스가 평소와 비슷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조금의 떨림과 붉게 물들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고 있는 것을 보아서는 평소 같진 않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에 호응하듯, 나지막이 다시 말했다.


“슬슬 아라고니아로 돌아갈까?”


***


“저희의 존재로 오늘의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마왕이 노리는 것은 우리이니, 먼저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제가 건넨 전사의 영혼들을 사용할 일이 없길 바랍니다.”


아데스는 말에 오르기 전, 아타나와 마을 사람들에게 고대 전사들의 영혼을 건네고 인사를 전했다.


헬레나는 몰랐지만, 마왕 토벌에 참석한 아데스는 이미 마을 사람들로부터 ‘용맹한 자’로서 무수한 존경을 받고 있었다.


“···장례에는 참석하지 못한 점을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데스는 그리 말하며 죄책감이 묻어난 표정으로 말에 오를 뿐이었다.


“잠깐만!”


막 말에 오르려던 아데스를 황급히 뛰어온 아타나가 불러 세웠다.


“스승님께서 건네신 물건이다.”

“다들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냐.”


아타나가 그에게 건넨 것은 에메랄드빛의 정체 모를 보석이 박힌 목걸이 하나.


보통의 사람에겐 청록색의 영롱한 빛이 에메랄드처럼 보이겠지만, 헬레나에겐 보석의 빛이 지나치게 밝은 것이 에메랄드와는 종류가 조금 다른 것처럼 보였다.


“스승님은요?”

“죽은 자들을 위한 위령 기도를 드리고 계셔.”

“···제 인사를 부디 대신 전해주시죠.”


아데스는 그리 말하곤 잠깐 고개를 돌렸다.


“정말로 가겠습니다. 모든 일이 정리되면, 그때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동생, 부디 아프지 않길 바라마.”


아타나의 말에 그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꾸벅이곤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 위에 손을 한 번 얹었다가 사람들에게 날려 보이며 말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이에 마을 사람들은 아데스의 말에 인사를 받듯, 왼쪽 가슴을 위를 몇 번 두드려 보이곤 고개를 꾸벅이며 다 같이 말했다.


“영웅에게 축복이 있기를.”


작가의말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이경혜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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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8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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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8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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