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최근연재일 :
2024.09.14 15:41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361
추천수 :
28
글자수 :
115,615

작성
24.08.20 19:22
조회
10
추천
1
글자
11쪽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DUMMY

“나의 기사여, 그대의 공적을 높이 산다.”

“별일은 아니었습니다. 군단장을 처리했으니, 당분간 빌보에 마물이 침입하는 일은 없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레오노르 여공은 밝은 웃음으로 산더미 같은 선물을 알현실에 쌓아두고, 헬레나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귀한 동방의 향신료부터 금, 은과 같은 금속, 심지어는 레버넌트 마을에서 봤던 발광하는 보석들도 가득 들어있었기에 두 사람은 몹시 당황한 표정으로 여공을 대하고 있었다.


“그대들에게 묻겠노라, 더 바라는 것이 있는가? 빌보에는 아라고니아에도 없는 귀한 물건들이 몹시 많노라.”


여공은 뭐든 들어주겠다는 뜻으로 턱을 괸 채 그리 말했다.


헬레나는 아데스의 눈치를 몇 번 보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여 말했다.


“···여공께 아뢰옵기 황송하옵니다만, 기사 서임에 대한 권한을 하사받길 원하옵니다.”


헬레나는 복종의 의미로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지만, 한 편으로는 레오노르 여공을 똑바로 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사 서임권을 건드린 것은 기존 귀족의 권위에 대한 명백한 도전.


그도 그럴 것이, 한 지역 기사는 어디까지나 왕과 영주에 의해 임명되는 것이다. 제아무리 기사단의 단장인 헬레나라고 하더라도 기사 임명권에 대한 요구는 반역죄에 해당하는 사안이 될 수 있었다.


신하들은 몹시 놀라 웅성거렸고, 레오노르 여공도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헬레나, 아무리 그래도 그건···.”

“여공, 제가 몸담았던 검은 새 기사단은 310명의 사망자를 냈습니다. 제 옆에 있는 아데스는 육신을 잃어버렸으며, 저는 눈을 잃고 다쳤습니다.”


쿵!


그녀는 그리 말하고는 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박아 보이며 말했다.


“더 이상의 희생은 불필요한 죽음과 마왕에 대한 승리만을 안겨줄 뿐입니다. 부디 이를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아데스도 이에 고개를 푹 숙였다.


빌보인, 심지어 아라고니아의 사람조차 아닌 외부인조차 그에게 머리를 조아린다는 것은 명예를 두고 복종하겠다는 의미였다.


신하들은 웅성거렸고, 레오노르 여공은 당황했다.


다만 대체로 평민 헬레나의 요구에 대해 부정적이었고, 궁정 내에서 그들에 대한 여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모두 조용.”


당황했던 여공은 금세 차분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신이 발언하겠다는 의미로 손을 들었다.


제아무리 신하들이 반발하더라도, 막강한 정통성과 권위를 바탕으로 빌보를 통치하는 아리바 공의 결정만이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가지 묻겠다.”


레오노르 여공의 말에 헬레나는 듣겠다는 의미로 슬쩍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대가 서임권을 바라는 것은, 그대 본인이 평민이기 때문인가?”

“···맞기도 하나, 틀린 이야기이기도 하옵니다.”


그녀의 말에 궁정은 더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레오노르 여공은 평정심을 잃지 않은 표정으로 그녀를 계속 바라보며 물었다.


“틀렸다는 이유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가?”

“저는 평민이었으나, 기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땅의 많은 평민은 그 기회를 증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위와 계급에 관계없는, 오로지 실력을 갖춘 자만을 기사로 서임하여 목적을 달성하고자 할 따름입니다.”


레오노르 여공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아직 고민하고 있었다.


기사에 대한 서임권은 오로지 영주의 권능.


그 권능을 위임한다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만들어두었던 권위와 명예를 떨어트리는 짓이었다.


그녀는 몇 번을 고민하다 말했다.


“···한 가지 방안을 생각했노라.”

“언제든 말씀하시길, 나의 공이시여.”

“그대에게 기사 서임에 대한 추천권을 하사하겠노라. 그대에게 추천받은 기사는 임시 기사의 신분으로, 일정부분의 기사의 권리를 행할 수 있도록 하겠노라. 이러한 결정은 수용할 수 있는가?”


레오노르 여공의 말에 헬레나는 바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의 공이시여, 그대에게 충성을 맹세하나이다!”


분명 서임권보단 덜했다.


하지만 이미 평민에게 단장을 임명한 것도 모자라, 추천권까지 하사한 것은 그녀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시사하는 사건이었다.


“내 그대에게 권한을 하사하니, 그대는 내게 복종하고, 충성을 다하라.”

“아, 나의 공이시여.”


헬레나는 그녀의 발 앞에 엎드려 다시 절했다.


자신을 위해 힘을 쓰면서 권위가 실추되었을지도 모를 레오노르를 위해 복종을 보인 것, 신하들은 이러한 행위를 보면서 충격을 많이 받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의 노련한 정치적 행위를 지켜본 아데스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거 언제 끝나는 건데.”


그에겐 이러한 상황이 몹시 지루할 뿐이었다.


***


“그래서 너를, 임시 기사로 서임하도록 했다.”


흰 장미 기사단의 문장이 걸린 책상에 팔을 괸 헬레나가 서신을 뒤적거리다 말했다.


그러자 아킬라는 눈을 껌뻑였다.


“기사는 기사인데, 임시 기사는 뭡니까?”

“아직 기사는 아니지만, 기사로 취급은 해준다는 의미야. 영주님한테 엎드려 겨우 얻은 권한이다.”


헬레나는 그리 말하고는 귀한 종이가 낭비될 정도로 많은 양의 서신을 하나하나 살피면서 그를 바라보진 않고 있었다.


대체로 흰 장미 기사단에 입단하겠다는 의지가 적힌 것들이 다분했다.


“···그러니까, 저는 정식 기사는 아니란 말이죠?”


아킬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리 물었다.


“마물을 처리해준 공은 인정하지만, 더 이상 그걸로는 기사로 서임해주지 않는다는 중앙 정부의 결정이 있었어.”

“원래는 마물만 처리해도 기사로 임명했습니까?”


헬레나는 정말로 궁금하여 묻는 듯한 아킬라의 물음에 눈을 몇 번 껌뻑이다 답했다.


“네 눈앞에 그 사례가 있잖아.”

“···단장님께선 그러셨습니까? 몰랐군요.”


그녀는 그의 대답에 아데스를 힐끗 바라보았다.


아데스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동방사람 아킬라.


약 9년 전에 빌보의 항구를 통해 입국했으며, 항구 근처 마을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의 신원은 오로지 동방에서 왔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정확한 출신지를 알 수 없었고, 문맹이었기에 글을 읽을 줄도 몰랐으며, 누구에게 무술을 배워온 것인지도 모른다고 답했다.


불명의 신원, 하지만 마물 여럿을 홀로 상대할 정도로 강대한 능력.


“그래, 뭐, 잘 싸우기만 하면 충분하지.”


헬레나가 가장 바라던 단원이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꿇어라, 후보생.”

“예?”

“예식이야, 예식. 꿇어.”


털썩!


아킬라가 당황하여 꿇지 않으니, 아데스가 뒤에서 일부로 넘어트려 꿇게 했다.


스르릉!!


헬레나는 검을 꺼내었다.


“기억나? 예식.”

“아주 조금은? 성수는 아마 선반에 있을 거야.”


아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선반에 있는 물통 하나를 가져와서 그대로 들었다.


“아마포에 로브···, 저걸로 하자.”


그녀는 대충 옷걸이에 걸려있는 하얀 옷을 아킬라에게 두르고, 그 위에 붉은 천을 덮었다.


그리고는 검은색의 천을 가져와서 발에 신겨주고, 신앙을 상징하는 십자 모양의 성유물 앞에 앉혀두고는 성수를 머리 위에 부었다.


“···도대체 이게 뭡니까.”


성수는 축성 받은 소금물, 당연히 끈적한 물에 뒤덮인 아킬라는 귀한 소금이 이런 곳에 낭비된다는 사실이 별로 좋게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헬레나는 의식을 이어갔다.


“기사도 10구절,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외워야만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킬라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그대는 약자를 보호하고, 의를 행하며, 적 앞에 두려워하지 말라. 선을 우선하고, 용기를 가져라.”


헬레나는 그리 말하며 그에게 자신의 금박 박차를 수여했는데, 이는 단순한 서임과 다르게 아킬라를 자신이 보증한다는 의미였다.


아킬라는 이를 받아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기사 서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칼을 편편하게 뉘어 어깨에 대어보였고, 아킬라는 눈을 감으며 이를 받아들였다.


“기사는 영주께 충성을 맹세하라.”


헬레나는 자신의 손등이 보이는 방향으로 약지를 내밀었다.


그녀에겐 빌보의 기사에게만 수여되는 반지가 반짝였다.


잦은 전투로 거칠어진 그녀의 손은 흉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아킬라와 같은 전사에게는 영광스러우며 명예로운 상처로 보일 뿐이었다.


그는 조용히 헬레나의 손을 잡고, 약지에 입을 맞추었다.


“자, 그럼···.”

“아, 시작이야?”


헬레나는 진중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입을 맞춘 순간에 바로 묘한 웃음과 함께 그를 바라보고 손을 풀기 시작했다.


그녀가 손을 풀기 시작하자, 아데스는 한숨을 내쉬면서 주변 사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예? 무슨 준비입니까?”

“가만히 있는 게 덜 아플 거야.”


아데스의 말에 아킬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좋아, 아킬라, 이를 악물고 명심해라.”


헬레나가 그리 말하자, 아킬라는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에 그녀의 주먹이 날아왔다.


빠악!


예로부터 기사 서임의 예식이 끝나면, 선배들은 후배를 향해 기사의 덕목을 명심하라는 의미로 세게 한 방 쥐어박는 풍습이 있었다.


헬레나도 맞았고, 헬레나도 맞았었다.


아킬라는 예상도 하지 못한 채, 힘이 잔뜩 들어간 헬레나의 주먹을 맞았기에 한 구석으로 날아가서 그대로 기절했다.


“뭐라도 덮어줘.”

“···살살 하지.”


아데스는 질색하며 기절한 그의 쓰러진 위치에 모포 하나만 덩그러니 던져줄 뿐이었다.


헬레나는 다시 의자에 앉아 서신들을 살폈다.


“···아, 아데스, 얘는 어떻게 할까?”

“아리바 기사단이잖아? 일전에 여기로 한 번 왔던 애라던데.”

“단장이 억지로 보내려는 모양이군.”


여러 서신을 둘러보던 헬레나는 산티아고가 보낸 것을 더욱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아리바 기사단의 단장인 그가 한 명을 추천했다.


세르지 드 코르넬리우스.


평범하기 그지없는 높으신 분의 자제이자, 귀한 가문의 사람, 그리고 이번 전투에서 마물 몇 마리를 처리한 공로자 중 한 명이었다.


“어떻게 할까나.”


헬레나는 그리 생각하며 지켜볼 뿐이었다.


작가의말

To fight for the welfare of all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 작자 미상 『롤랑의 노래』 中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5 이단자들 (3) : 새는 하느님께로 날아간다 24.09.14 4 0 10쪽
24 이단자들 (2) :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24.09.11 7 0 10쪽
23 이단자들 (1) : 어쩌면 공포와 전혀 연관이 없을 수도 있었다 24.09.07 7 0 10쪽
22 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24.09.04 9 0 11쪽
»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1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9 1 10쪽
15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10 1 11쪽
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9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9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1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0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9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10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3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3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8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1 2 12쪽
4 귀환 (3) : 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 24.07.22 19 2 11쪽
3 귀환 (2) : 숲 속 어느 마을에 사령술사들이 살고 있었다 24.07.22 25 2 13쪽
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4 3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