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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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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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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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2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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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DUMMY

다그닥···, 툭, 툭!


“정지.”

“뭔가 있나?”

“길이 없어.”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던 헬레나는, 어느 숲에 가로막혀 길이 막혀버린 것을 보고는 약간의 추억이 담긴 한숨을 내뱉었다.


제국의 도로는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이 담긴 고대 문명의 유산이었다.


하지만 천 년도 더 전에 문명이 소멸한 후, 도로들은 관리되지 않아 점차 사라졌고, 지금 막혀버린 길도 그중 하나였다.


“다른 길은 없나?”

“제국에서 지도가 불법이니, 이 숲을 통과할 수밖에 없겠지.”


헬레나는 그리 말하곤 말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대충 여기가 어딘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뭔가 흔적이 그윽한데.”

“그야, 제7군단장은 여기에 터를 잡았었거든.”

“뭐?”


아데스는 처음 듣는 소식에 놀랐다. 헬레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제7군단장은 마법을 무효화시켰어. 그래서 나와 단장을 포함한 7명의 기사만이 토벌에 나섰지. 아마 단장이 아니었다면 모두 죽었을 거야.”


헬레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군단장들은 세계 곳곳에 터를 잡아 정착하여, 사람들 앞에 공포로 군림했기에 이렇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숲이 뜬금없이 있는 경우가 조금씩 발생하곤 했다.


몇 년이나 존속했던 것인지, 도로가 있던 곳을 숲으로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여기에 있네. 내가 남긴 흔적.”


그녀는 그리 말하곤 썩은 나무 두 그루가 깔끔하게 잘리어 교차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겉보기엔 멀쩡했던 나무였지만, 그 나무의 속은 이미 시커멓게 타들어 간 것처럼 그을린 모습은 결코 정상이라 할 수 없었다.


“제7군단장 토벌은 기사단이 설립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잖아. 나는 아직 아라고니아에 당도하지도 않았을 무렵이라고.”

“맞아. 당시엔 아직 검은 새 기사단이 아니라 흰 백합 기사단일 시절이었거든.”


헬레나는 그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제7군단장이 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기는 제국 중심부와 슈타트가테스를 잇는 길이었어.”

“그런데 어쩌다가?”

“말했잖아. 놈은 마법을 상쇄시켰다고.”


인류는 마법의 등장 이후로 비교적 편안하게 전쟁을 해왔다. 그러나 마법을 무효화시키는 제7군단장은 그 당시에는 이길 수 없는 존재와 같았다.


그래서 제7군단장은 이런 요충지에 숲을 이룰 정도로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었다.


“머스킷?”


아데스는 숲을 거니는 도중에 썩은 옷 자루 몇 가지와 머스킷 한 자루가 떨어져 있는 곳을 보았다.


이를 보고 헬레나가 답했다.


“나와 단장을 제외하면 나머지 다섯은 총사대였어. 물론 신체의 한계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버렸지만.”


‘불을 뿜는 막대기’가 제국의 어느 한 대장장이에 의해 개발된 순간, 막강한 화력을 통해 인류는 마물로부터 생활권을 보장받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 자체의 한계를 돌파한 검술과 신체를 가졌던 헬레나의 등장까지.

“썩 기분 좋은 놈은 아니었어.”


헬레나는 군단장의 산화 자국을 보았다.


마법을 사용할 일이 없던 헬레나는 제7군단장의 완벽한 대척점이었기에 싸움을 시시하게 끝냈다.


그녀는 숲에서 빠져나갈 길을 보곤 말했다.


“아라고니아로 돌아가게 된다면···.”

“돌아가게 된다면?”

“다시 도전할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헬레나는 등자에 발을 걸고 고삐를 당겨 말을 빠르게 달렸다.


아데스는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급히 그녀를 따라 말을 몰았다.


***


“그렇게 달렸는데도···.”

“제국은 방대해. 우리가 최대한 가고 있지만, 아직 절반도 오지 못했어.”


꼬박 일주일을 달리기만 했다.


역참에서 말만 8번을 바꾸었고, 심지어 어떤 말은 너무 지쳐버려서 역참에서 말을 바꾸기를 거부하는 바람에 돈과 말 한 마리를 버리는 일도 생겼다.


그렇게 달렸음에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직 루덴, 제국의 중심에서 조금 동쪽으로 치우친 도시였다.


“차라리 타이파 왕조에서 배편을 구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네가 지금까지 각종 할인과 혜택을 무슨 이유로 받았다고 생각하는 거야? 타이파 왕조에서는 우리에게 빈 찬합이나 내놓지 않으면 다행이야.”

“굶어 죽으란 뜻이구나.”

“알았으면 불평은 접어.”


아데스의 불만은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처음으로 아라고니아 왕국에 왔던 길은 남부의 타이파 왕조에서 배를 타고 중앙해를 거치는 4일의 여정.


그러나 타이파 왕조는 아라고니아와 종교 문제로 꽤 큰 갈등을 겪고 있었고, 그들이 제국에서 받은 혜택은 대체로 ‘검은 새 기사단’이라는 타이틀이었음을 생각한다면 그다지 나쁘다고만 할 수 없었다.


아데스는 아라고니아인도, 아시타우스교를 믿는 것도 아니기에 상관없어도, 헬레나는 그렇지 않았다.


“근데 루덴은 너도 기억에 있잖아.”

“알기에 얼마나 남았는지 아는 거지.”


아데스도 이곳에 대한 기억이 있었다.


“‘역병 의사’말이지?”

“네가 아니었다면 졌을 거야. 나도 그 병에 걸려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으니까.”


제3군단장, 통칭 ‘역병 의사’는 군단장 중에서 제일 늦게 나타났고, 실제로 세상에 가장 늦게 나타난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발휘했다.


루덴을 포함한 제국 전체에 역병을 퍼트리고, 헬레나마저 병에 걸려 힘을 쓰지 못했다.


다만 죽음과 친숙했던 아데스의 능력은 힘의 원천을 추적할 수 있었고, 저항 없이 아데스의 사령으로 흡수되는 치욕을 당했다.


“아직도 남아있어. 계속 꺼내달라고 하고 있어.”

“놈은 최후의 최후까지 남겨둬. 마왕조차도 이 힘이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손과 발을 시작으로 온몸이 썩어들어가는 꺼림칙한 능력을 갖춘 이였기에, 아데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사용하길 꺼리는 듯했다.


“만약 놈을 이을 놈이 다시 나타난다면···.”


쿵! 쿵! 쿵! 쿵!


역참에 막 당도한 그들에게 들린 소리.


이제 말을 바꾸기 위해 말에서 내리려던 찰나, 무언가 크게 망치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는 신경을 거스르게 만들기 충분했다.


“무슨 일이지?”

“뭔가를 짓는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는데.”


그런 소리보다 수상했던 것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귀한 소금을 바닥에 뿌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당연히 불운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기, 기사단! 검은 새 기사단이 여기에 있어! 빨리 우리를 도와줘! 또 놈이 찾아왔다고!”

“예, 예에?”


헬레나는 갑자기 말의 노끈을 잡아챈 시민의 행동에 당황했다.


“어서 우리를 도와줘! 놈이 분명해!”

“너라면 할 수 있잖아! 의사 놈이 왔을 거라고!”

“자, 잠깐 여러분···.”


사람들은 헬레나와 아데스에게 달려들었고, 이내 말머리를 감싸는 여러 끈을 지속해서 잡아채며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히이잉!!”


말이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결국 앞발을 들어 올리며 날뛰었다.


“그만하지 못할까!”


말이 앞다리를 내린 순간, 헬레나는 여태껏 들었던 어떤 목소리보다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시민들은 말의 행동과 그녀의 말에 놀라 주춤했고, 그들이 더욱 떨어질 수 있도록 칼을 뽑아 주변을 겨누었다.


“어디 감히 기사단의 말에 손을 대는가!”

“···.”


시민들은 이에 아무런 소리 없이 넙죽 엎드렸다.


‘효과 죽이네···.’


그에 반해 아데스는 지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의사 놈이 다시 찾아왔다니, 그 의사는 내가 보관하고 있는데.”


아데스는 그리 말하곤 눈이 에메랄드빛으로 밝게 빛나더니, 알 수 없는 언어를 몇 번 중얼거리곤 한 마디 더 붙였다.


“역시 이놈은 아니야.” “그렇다면, 놈을 따라 하는 누군가겠지.”


헬레나는 그리 말하며, 두건으로 입을 두른 후에 어설프게 못을 박아 막은 집의 앞에 섰다.


“판자를 떼어내라.”

“예, 예에?”


시민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헛웃음을 내뱉어 보이며 말했다.


“아니, 이걸 풀면 모두가 역병에···.”

“판자를 떼어내라 했다.”

“당···, 당신 우리 모두를 죽일 셈이야?”


시민은 두려움에 떨며 그리 말하곤, 판자를 떼어내길 거부하고 있었다.


“됐다. 멀리 떨어져라.”


쿵, 쿵 쿠웅!


헬레나는 이럴 것을 알고 있었기에 칼등으로 못이 박힌 부분을 몇 번 내리치더니, 이내 약해진 문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문은 부서졌고, 아데스와 헬레나는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죽었어.”


아데스는 문을 떼자마자 그리 말했다.


헬레나는 그의 말을 참고하며 아랑곳하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느껴지나?”

“같은 역병이 아니야. 원천은 멀지 않은 곳에 있긴 하다만, 마력이 바로 앞에서 흩어져있어.”


아데스의 말에 그녀는 눈을 껌뻑였다.


“그니까 다시 말해서···.”

“전혀 다른 역병이고, 내가 추적할 수 없어.”


그의 말은 헬레나를 몹시 당황하게 했다.


죽은 자와 관련된 일은 뭐든지 해결 할 수 있었던 아데스가 처음으로 난관에 봉착한 일이었고, 그도 스스로 지금의 현상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기에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내 체면이 엉망인데.”


헬레나의 말에 아데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보였다. 그러고는 최대한 황당함이 얼굴에 잘 드러나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해 보이며 말했다.


“아니···, 지금 체면이 걱정이냐?”

“···조금은.”


헬레나는 어깨를 으쓱했고, 아데스는 한숨을 내뱉은 후에 말해다.


“···아무래도 최후의 최후로 남긴 방법을 써야만 할 것 같지 않아?”

“고작 역병에···?”

“‘고작 역병’ 수준이 아니잖아. 원천이 되는 마력이 흩어졌다니까? 놈도 직접 보고 싶어 한다고.”


툭, 투둑···.


둘이 잠깐 서로를 보며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집안에서 들린 의문의 소리.


아데스는 아직 눈치채지 못한 듯했지만, 헬레나는 오른쪽 눈을 몇 번 돌려가며 주변을 확인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왜, 무슨 일인데?”

“소리.”


그녀는 검에 손을 쥐고, 주변을 몇 번이나 계속 다시 둘러보았다.


그리고 바로 뒤에서-


“크에엑!”


서겅!


툭···, 뎅구르르···


“···봐, 보통 역병이 아니잖아.”


그녀가 베어낸 것은 죽은 자의 형상이었다.


그의 눈은 공허하게 빛났고, 살갗은 썩어들어가며 흉측한 형태를 가져갔으면서도 원래의 사람이 누군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형태도 조금이나마 남아있었다.


“마물이네.”

“얼굴은 사람에 가까운데.”


아데스와 헬레나는 이번 사태가 제3군단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단순히 죽은 자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마물로 변해 있었다.


작가의말

A screaming comes across the sky.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 토마스 핀천 『중력의 무지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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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0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2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0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9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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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3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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