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재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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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not
작품등록일 :
2024.07.19 18:01
최근연재일 :
20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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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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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자들 (3) : 새는 하느님께로 날아간다

DUMMY

아직 빌보가 아리바인의 토착 세력으로 있을 무렵, 아라고니아는 아리바인들을 공격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고자 했다.


그런 과정에서 아리바인들의 지도자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가문,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빌보를 넘어서, 아라고니아 전체에 모범이 되는 유서 깊은 베테랑 기사 가문이었다.


그런 코르넬리우스 가문은 이따금, ‘비범한 천재’를 내놓고는 한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가 마물이나 마족을 상대로 큰 승전을 거두고, 주변국과의 전쟁에서도 영웅으로 떠오르는 인재들이었다.


그들은 대체로 노력으로 영웅이 되지 않는다.


코르넬리우스 가문의 내력인지는 몰라도, 어느 세대에 단 한 번, 모든 것을 타고난 이의 등장으로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이 된다.


수천년, 수백년, 혹은 그 이상의 기다림 끝에 등장한 천재는 왕국과 가문을 무한한 영광으로 이끌어내는 것으로 ‘인간’이라는 존재 이상의 가치를 내보인다.


그렇기에 그들은 ‘전쟁의 신’이라고 불린다.


“세르지, 너 괜찮은 거야?”

“이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아무렇지 않습니다.”


헬레나마저 조금은 부담 가는 아데스의 시야를,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는 세르지의 모습에서 아킬라는 타고남의 다름을 느꼈다.


“확실히 사람인 것과 아닌 것이 보이는 군요.”


세르지는 이전과 똑같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다시 가볼까요?”

“어어···, 그래.”


이전과 같은 행동을 취했지만, 그들은 세르지에게서 확연하게 다른 느낌을 받았다.


***


촤아악!!


툭, 두두둑!


“세르지, 판단력이 늘었는데?”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습니다.”


세르지는 헬레나의 칭찬에 웃을 뿐이었고, 마물들을 차례차례 쓸어나갔다.


“아킬라, 괜찮겠어?”

“예, 뭐, 괜찮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는 아킬라였지만, 실질적으로는 나무에 팔을 짚으면서 겨우 올라가고 있을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수많은 정보가 그의 머릿속에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알 수 없는 언어부터 자신이 짚으며 올라가는 나무조차 생명의 신호를 내뱉고 있었고, 살포시 지르밟아 죽어버린 벌레의 생명 신호가 꺼져가는 모습까지 모두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눈으로 어떻게 살아온 겁니까···.”

“처음부터 이렇게 보였다면, 그다지 어려운 삶은 아니었어. 익숙한 것과 익숙하지 않은 것, 그건 상대적이지 않겠나?”


아데스는 그리 말하며 아킬라의 어깨를 손으로 슬쩍 짚었다.


“소루티오. (Solutio)”


후웅!


모든 정보가 깨끗하게 사라지며, 아킬라의 눈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너에겐 버거운 것 같으니, 우리가 말로 알려줄게. 사람마다 맞는 사람이 있고, 안맞는 사람이 있는데, 아마 저쪽이 그런 편이겠지.”


아데스는 그리 말하며 세르지를 가리켰다.


“오늘은 창을 들지 말고, 뒤에서 보좌해라. 이단자들의 도시까지 얼마 남지 않았거든.”

“예, 알겠습니다.”


아킬라는 아직 자신이 부족한 것이라 느끼며 약간의 분함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이 더욱 분발하지 않으면 이곳에 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마법을 사용할 수 없는 한계를 검술로 극복한 헬레나, 사령술이라는 특별한 마법의 재능을 물려받은 아데스, 그리고 ‘비범한 천재’ 세르지까지.


그들에 비하면 자신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보였다.


【···분노하라!】

“···응?”


그런 아킬라의 귓가에 낯선 여자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뒤를 바라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는 앞서나가는 그들을 보며 물었다.


“혹시 우리가 토벌하는 군단장이, 정신적 공격을 주로 삼는 겁니까?”


아데스는 그 물음에 걸음을 멈췄다.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정확히 말하면 신앙적인 부분을 파고든다고 할까나···.”

“신앙 쪽이요?”

“우리는 놈을-.”

“위선의 천사.”


아데스의 말을 헬레나가 끊어내고 답했다.


“그렇게 불렀다.”


그녀의 말에 아킬라는 눈을 약간 껌뻑이며 다시 한 번 주변을 바라보았다.


피레스 산맥은 이미 진작에 통과했을 터, 마물과 마물처럼 보이는 이단자들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우리 지금 같은 곳을 계속 다녀오고 있지 않습니까?”


아킬라의 물음에 아데스는 눈을 크게 뜨며 주변을 보았다.


“···우리 언제부터 이 언덕을 걷기 시작했지?”


그의 물음에 헬레나, 세르지, 아킬라 모두 침묵을 유지했고, 군단장의 계략은 이미 시작된 지 오래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


빠악!


투둑! 툭!


헬레나는 몇 시간째 다가오는 마물들을 베어내고, 때로는 세뇌된 인간들을 얼굴에 한 방 쥐어박는 것으로 기절시키면서 이 숲을 빠져나가기 위해 몇 번이고 출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나갈 수 없었다.


숲 전체가 거대한 영역인 듯, 마물과 세뇌된 인간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현실과 분리된 공간이었던 것이다.


세르지는 주변의 나무를 살피다 말했다.


“군단장들은 의외로 명예를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이런 방식은 전혀 명예롭지 않아 보입니다.”

“첫 번째 군단장이 그렇게 쓰러졌고, 이전의 군단장들도 어떻게 쓰러졌는지를 생각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닐 거야.”


아데스의 답에 세르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생명 신호가 진실 되어있는 나무를 몇 번이고 쓸어 만졌다.


이건 평범한 나무다.


조종이든, 뭐든, 어떤 것에 구애받지 않는, 단순한 자연의 일부 중 하나인 평범한 나무에 불과한 생명체였다.


세르지는 헬레나의 분한 듯한 표정, 아데스의 전전긍긍한 표정, 아킬라의 혼란스러운 표정을 몇 번 보고는 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천천히, 높지 않은 나무를 오르며, 점점 더 나무 끝을 위해 올라갔다.


“뭐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나무를 오르는···.”

“어이, 세르지! 나무는 갑자기 왜 오르는 거야?”


헬레나의 물음에 세르지는 밑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나무를 올라갔다.


재주도 좋은 것이, 한 번을 흐트러지지 않고 천천히 짚을 곳을 짚어가면서 계속해서 나무를 올라가더니 이내 정상에 도달했다.


“···검다.”


밑에서 바라본 하늘은 분명 푸르렀지만, 실제로는 검게 물든 것이 마치 밤과 같았다.


마물의 신호들이 그의 눈에 붉은 반점으로 비쳤는데, 이 숲은 거의 전체가 마물로 꽉 들어찼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숲 중심부에는 커다란 붉은 점.


생명 신호는 아니었다.


그는 천천히 나무를 내려왔고, 다른 셋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보고 온 거야?”

“2시 방향으로 쭉 가면 중심부가 나옵니다. 아무래도 거대한 환각이 이곳을 감싸는 모양인데, 중심부에 큰 붉은점이 그 원인인 듯합니다.”


세르지의 말에 아데스는 2시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 확인했다.


“정말로 뭔가 큰 기운이 느껴지긴 하는데, 사람은 아니야. 마물도 아니고. 생명체도 아니야···.”


푸우욱!


파사아아악!!


헬레나는 그 말에 뒤늦게 달려오는 마물 한 마리의 목에 칼을 그대로 꽂고, 그대로 뽑아보이는 모습을 보이다 물었다.


“그러니까 놈이 뭔가 장난을 친 모양인데?”

“그쪽에 가까워보여.”


아킬라는 그 말에 손을 모았다.


“즉, 영원히 반복되기만 하는 곳은 아니란 소리이지 않습니까?”

“그렇겠지. 아마도 같은 지형을 실뜨기처럼 똑같이 짜둔, 만들어진 지형에 가까워 보여.”


아데스의 답까지 들은 아킬라는 눈을 감았다.


“오트메트카. (отметка)”


그가 모은 손 사이에서 빛이 흘러나오더니, 이내 작은 구슬 같은 빛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표식을 남기면서 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게 좋겠···, 흐억!”


아데스는 순간 자신의 눈을 잡으며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데스?”


헬레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살폈다.


세르지는 그가 쓰러진 순간, 더 이상 주변으로부터 들려오던 생명 신호가 보이지 않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마력을 너무 많이 쓴 모양인데, 더 이상 시야를 공유할 수는 없겠어.”


아데스는 애써 웃어 보였다.


“고생했어.”


헬레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 이 숲을 마물과 인간을 구분하지 않으며 돌파해야 한다는 생각에 소름 끼칠 뿐이었다.


“더는 사람을 구할 수 없어.”


아데스의 말에 세르지는 순간 눈을 껌뻑였다.


“그렇다면 저희는···.”

“다시 인간을 베야만 해. 어쩔 수 없는 희생을 치러야만 우리가 살아 나갈 수 있어.”


헬레나는 그리 말하며 결의에 찬 눈빛으로 마물의 피에 물든 검을 꺼내었다.


“그래야만 합니까?”

“마물은 기절하지 않아. 무기를 들고 전력으로 싸우는 순간에서 기절시키는 것보다, 죽이는 게 훨씬 쉽다는 건 너도 알잖아.”


아킬라는 그리 말하며 세르지의 어깨를 두드렸다.


“여기 들어왔으면, 그런 각오는 했어야지.”


세르지는 그의 말에 본인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미 피로 얼룩진 듯한 손이었지만, 한 편으로

는 이런 손을 사용해야만 고향에 있는 가족들이

평온한 잠을 잘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오는 되어있습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더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그리곤 검을 들며 말했다.


“갑시다.”


그의 눈빛에서는 붉은 안광이 나타났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심적으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가장 따스하면서 약하던 세르지는 지금, 단원 중에서 가장 강하다.


그건 확실했다.


작가의말

Der Vogel fliegt zu Gott

(새는 하느님께로 날아간다)

- 헤르만 헤세『데미안』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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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단자들 (3) : 새는 하느님께로 날아간다 24.09.14 5 0 10쪽
24 이단자들 (2) : 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시대에 태어났다. 24.09.11 8 0 10쪽
23 이단자들 (1) : 어쩌면 공포와 전혀 연관이 없을 수도 있었다 24.09.07 8 0 10쪽
22 흰 장미 기사단 (2) : 자, 이제 어떻게 될까? 24.09.04 10 0 11쪽
21 흰 장미 기사단 (1) : 모든 이들의 안녕을 위해서 싸워라 24.08.20 11 1 11쪽
20 태양의 악마 (7) : 나를 검신이라 부르라 24.08.15 13 1 12쪽
19 태양의 악마 (6) :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어떤 것도 아프지 않았다. 24.08.13 11 1 10쪽
18 태양의 악마 (5) : 그런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 24.08.07 10 1 11쪽
17 태양의 악마 (4) : 햇살은, 할 수 없이, 새로울 것 없는 것에 빛을 내였다 24.08.06 10 1 10쪽
16 태양의 악마 (3) : 고독한 혼을 갉아먹는 궤양 같은 오래된 상처가 있다 24.08.05 9 1 10쪽
15 태양의 악마 (2) :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24.08.03 11 1 11쪽
14 태양의 악마 (1) : 태우는 것은 즐거웠다 24.08.01 9 1 11쪽
13 아리바 공 (2) : 지난밤 다시 마계로 가는 꿈을 꾸었다 24.07.31 9 1 10쪽
12 아리바 공 (1) : 왕관을 쓴 머리는 언제 건 편안히 잠드는 법이 없어라 24.07.31 11 1 12쪽
11 귀환 (10) :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24.07.28 11 1 10쪽
10 귀환 (9) : 여신이여, 분노를 노래하소서 24.07.26 9 1 10쪽
9 귀환 (8)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24.07.25 10 1 11쪽
8 귀환 (7) : 나는 지금 우물 바닥에 시체로 누워있다 24.07.24 14 1 10쪽
7 귀환 (6) : 절규는 하늘을 가로질러 온다 24.07.23 13 1 11쪽
6 귀환 (5) :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24.07.23 19 2 12쪽
5 귀환 (4) :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07.22 22 2 12쪽
4 귀환 (3) : 이봐, 지옥으로 가는 거야! 24.07.22 20 2 11쪽
3 귀환 (2) : 숲 속 어느 마을에 사령술사들이 살고 있었다 24.07.22 26 2 13쪽
2 귀환 (1) : 국경의 긴 눈 밭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24.07.21 34 2 11쪽
1 나는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24.07.19 66 3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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