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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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DUMMY

연구원은 바닥에 널린 잡동사니들을 치마 아래의 촉수로 툭툭 쳐내며 길을 만들었다. 요즘은 보기 힘든 액정을 쓰는 모니터였다.


그 뒤로 손을 뻗어 모니터를 켠 연구원이 말했다.


“그, 것과 비슷한 무기를 설계하려는 시도가···저희 세계에도 있었어요.”

“실패했습니까?”

“아뇨오···. 저희는 그런 걸 안 썼거든요···.”


겉보기에는 사람의 것과 별 차이가 없는 손가락이 기괴한 움직임으로 키보드를 두드렸다. 마우스를 잡은 연구원이 모니터 속 화면에서 프로그램을 켰다.


“아, 이렇게 말하는 게 더 나으려나요···. 저희는, 거대한 쇳덩이 무기를, 안, 썼어요···.”


게이트는 세계를 잇는 통로. 유화 역시 이계에서 사람을 보진 못했지만 게이트는 본 적이 있었다.


거수는 보지 못했지만 마수는 여러 차례 보았다. 토착 생물들에게 처참하게 죽어가던 시체의 모습으로 여러 번.


박성호가 말해준 것도 비슷했다.

자신과 같은 지구 출신의 사람을 보진 못했으나 그곳 역시 게이트가 열리는 세계였노라고. 그 세계에선 인간과 비슷한 로봇을 만들어 게이트에 저항했다.


원래의 세계에서 떠나와 지구에 표류하고 있는 이 연구원이 살던 세계 역시 나름의 방식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을 것이다.


“또, 폭약을, 안 쓰니까···. 다르게 설계했, 어요. 찔러넣으면 독액이 나오는···. 물론 괴물을 죽일 만큼, 맹독은 아니어서···폐기됐었지만···. 나쁘지, 않은 생각, 이죠. 그런데 뭐어···인간은, 다르니까요···.”


어느새 스무 개 이상으로 늘어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린 연구원의 뒷목에서 검은 눈알 하나가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무, 식한 무기를 잔뜩···만들어서 쓰잖아요···. 10만 톤, 짜리 배에, 5분에 한 발, 씩, 밖에 못 쏘는 무기를 실으려고, 다른 무기를 다, 덜어내다니···.”


대한민국의 귀선급 전함을 비롯한 현대 해군의 주력함, 전함.


사실상 관통하는 게 불가능한 재래식 화력 병기와 다르게 유일하게 거수를 관통해 타격할 수 있는 레일건.

그 레일건의 운용에 필요한 발전기와 냉각기를 탑재하기 위해 다른 무장을 전부 해제한 것이 현대의 전함이었다.


“아무튼···괴물의 피부를 뚫, 어서···안에다가 냅다, 포를 쏜다···. 좋은, 생각, 이에요···. 되게, 머리를 잘 쓰시네···.”

“필요를 느꼈을 뿐입니다.”


처음엔 화력, 그리고 육탄전.

그의 현역 시절과는 조금 다른, 현대의 대거수전 교리.


언제 거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최전선에서 벌써 두 번이나 그렇게 싸우는 것을 본 유화는 그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포격은 당연하게도 거수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히기 힘들었다.


아틀란타에 떨어진 더 퍼스트 엔젤은 토마호크를 견뎌내고 각종 미사일마저 버티고서, 핵을 터뜨려서 겨우 쓰러트렸다.

하지만 포격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화력을 투사하면 거수의 속도를 저지할 수 있고, 놈들의 외피를 약하게 만들어 육탄전이 수월해지니까.


이유나 같은 각성자 파일럿이 아닌 이상 결국 때려서 골통을 깨부숴 죽여야 하는 적을 상대로 치명적이진 않더라도 미리 데미지를 입혀 놓는 건 나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유화는 또 다른 필요성을 느꼈다.

단순히 경화광을 다루는 거수 때문만은 아니었다. 놈들이 완벽하게 진화하지 않는다면 육탄전으로 때려죽일 수 있을 테니까.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투사체 뿐만 아니라, 경화광을 두른 외피 자체가 단단했다. 쌍둥이 거수는 비대한 팔 때문에 움직임에 제약이 많았고, 그 약점을 이용해 쓰러트렸다.


하지만 경화광을 갑옷처럼 두르고 날래게 움직이는 거수가 있다면?


그리고 그놈을, 게이트가 위치한 심해에서 마주친다면?


물속에서 육탄전을 위해 주먹을 휘두를 때의 충격이 반감되는 것을 감안하면, 새로운 무장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했다.


‘태원이 형이 아테나를 설계한 것도 그런 이유겠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무장.

단순히 해안에서 수비를 위해 설계된 기체라면 변형 금속을 응용한, 다양한 무장을 갖출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 크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 만들면 되니까.


여러 종류의 무장을 갖출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은 여러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니 미국 놈들이 프로토타입에 괴악한 무장을 달아놓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어떻게든 갖출 수 있는 무장의 종류를 늘리면 여러 상황에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니.


유화가 그런 상념에 잠겨 있을 때 한참 동안 키보드를 두드리던 연구원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대충 설계, 해봤는데···보실래요···?”


연구원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그 손가락 끝을 따라 화면 안의 프로그램을 바라보자 세 가지 형태의 무장이 떠올라 있었다.


“이건···아까 말한, 천공기···. 이건, 피스톨 소드···.”


하나는 거대한 드릴. 날카로운 끝부분이 벌어지면서 총탄을 쏘아내는 구조였다. 외피를 뚫어내고 그 안의 근육을 헤집은 뒤 내장을 터뜨리는 구조였다.


다른 하나는 피스톨 소드.

메카가 다루는 검은 사람이 다루는 검보다 훨씬 거대한 까닭에 초창기부터 여러 형태의 검이 있었고, 피스톨 소드 역시 한 종류였다.


다만 총을 쏠 때는 총을 쏘고 검을 휘두를 땐 검을 휘두르는 것이 더 효율적인 까닭에 채택되지 못했을 뿐.

모니터 속 피스톨 소드는, 유화가 아는 그 시절의 피스톨 소드와는 구조가 조금 달랐다.


“날을 콱···! 찌르고, 안에서 벌린 다음에, 팡···!”


양날검이 반으로 갈라지고 코등이에서 탄이 나가는 형태. 그것을 바라보던 유화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신 연구원이 이유를 물어왔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요···?”

“기체에 탑재하긴 힘들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어떤, 기체, 길래···?”

“워록-2.”

“아, 그거면···그럴, 수, 있죠. 이미 손이 하나 없, 으니까···.”


외피에 비해 내장이 연약하다고는 하나, 놈들은 수천 톤짜리 괴물이다. 일반적인 총탄은 물론이고 웬만한 타격도 버텨낼 수 있었다.


육탄전을 통해 꾸준히 피해를 누적시키거나, 워록-2의 플라즈마 캐논처럼 주포급 무기가 아닌 이상 내장을 터뜨려 죽이는 것 역시 쉽지만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유화가 천공기를 떠올린 것이다. 캐논암에 부착해 외피를 뚫을 수 있고, 플라즈마 캐논으로 그대로 터뜨릴 수 있도록.


하지만 모니터 안에 떠올라 있는 피스톨 소드는 손으로 들고 휘두르거나 캐논암처럼 팔을 아예 검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써야 하는 물건이었다.


메카가 전투 병기라고는 하나 양손을 다 없애는 건 무리수에 가까웠다.


“으음, 그러면···이렇게, 해도, 되긴 할, 텐데···.”


모니터를 두드린 연구원이 마우스 커서를 칼날 쪽으로 가져갔다. 워록-2의 모델링을 화면에 띄우고서는 오른팔 캐논암의 포구 위아래에 칼날을 달아놓았다.


“이럼···찌르는 식으로, 쓰일 테니까···칼날을 좀 변형···하면 되기야, 할 텐데···.”

“그러면 차라리 창처럼 만드는 건 어떻습니까?”

“창···?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오···. 포구를 아예, 감싸는 식으로···?”

“예. 플라즈마 캐논이니 아예 포구의 길이를 더 연장하고 창날을 달아놓으면 관통력을 확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리 있네요···. 건, 랜스라고 하죠···이런, 무기?”


피스톨 소드와 마찬가지로 미군이 시도해본 무기 중 하나였다.

다만, 그 시절엔 메카가 거의 제 몸뚱이만한 창을 들어서, 제대로 조준하고 포격의 반동까지 받아낼 스펙이 되지 못해 폐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 번 폐기한 아이디어는 웬만해선 다시 떠올리지도 않는 미군의 특성상 다시 시도된 적은 없을 것이다.


“근데, 쓰기 어려울 텐데···.”

“그건 상관없습니다.”

“그러, 면야···.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오···. 실력에, 되게 자신이 있으신가 봐요···.”


쿡쿡. 소리 내어 웃으면서 어깨를 떤 연구원이 유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새하얀 눈동자 아래에서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던 연구원은 이내 양손을 들어 올려 손가락으로 제 입꼬리를 벌렸다.


미소를 지은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자 그제야 손가락을 뗀 연구원이 중얼거렸다.


“재밌을···것, 같은데···. 제가, 이렇게 보여도···몸은 하나라···. 자세하게는, 못 해요오···.”

“큰 그림만 그려주면 됩니다.”

“세밀, 한 조정은, 인간들이 하는 걸로···?”

“예.”

“좋아요오···. 한 번 해볼게요···.”


나른하게 느껴질 정도로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고서 말하는 것과 달리 그녀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작업을 이어 나가던 연구원이 목 뒷덜미의 검은 눈을 뜨고서 말했다.


“하루나, 이틀은, 있어야, 하는데···? 기다, 리시게요···?”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뭔데요오···?”

“구체적으로 여기서 하는 일이 뭡니까?”

“네에···?”

“표류자. 그것도 이계에서 기술을 연구한 표류자라면 이런 곳이 아니라 어디 연구실에 있는 게 정상인데···.”


겨우 첫 만남.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을 뿐인데 적대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에게 우호적인 것 같기도 했다.


유화가 들은 것만 해도 벌써 여러 개였다.

중성자를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진보한 문명, 독을 가진 육체, 무기 설계를 전문적으로 할 정도로 전쟁을 오랫동안 이어 오고 있는 세계.


꽤나 협조적인 성격과 뛰어난 지능. 외형의 기괴함은 둘째치고 연구자로서의 가치가 높은 사람이었다.


“이런 최전선의 허름한 무기 연구실에 처박혀 있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으음, 저는, 신경 안 쓰지만···그래도 이유를, 말씀, 드리면···.”


타닥.

모니터 속 프로그램을 넘긴 연구원이 말했다.


“거, 수의 신체를···. 무기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

“그, 걸, 말했···더니, 은밀, 하게, 연구, 하라고···.”


아까와 비슷한 화면.

다만 그 안에선 기계로 만들어진 병기가 아닌 회색을 띠는 살덩어리 병기들의 모델링이 띄워져 있었다.


통제할 수 없는 그 괴물들의 뇌를 이용하려는 계획 역시도 그 화면 안에 들어 있었다.


“바이퍼가 그랬습니까?”

“아뇨오···. 어떤, 여자, 였는데···.”

“아티오.”

“아···! 그럴, 거에요오···.”


하.

기가 차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티오···.”


전쟁을 이길 수단을 찾기 위해 이런 것까지 하고 있었나.

뇌리에 남은, 브뤼셀에서 기다리겠다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




세나는 홀로폰을 이용해 HG의 사내망에 접속했다. 길드원에게 제공되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쉬운 일이었다.


설계가 누락된 걸까.

아니면 누군가 누락 시킨 걸까.


그것을 알기 위해 사내망에 접속한 세나는 아테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데이터 베이스 내부로 들어갔다.


차라리 회사에 침입해 드라이브 디스크를 빼오는 것이 더 쉬울수도 있을 정도로 보안이 철저했으나 세나에겐 무의미한 것이었다.


세나는 아테나 프로젝트 그 자체였으니까.


제 몸이나 다름 없는 데이터 베이스를 뒤적거리며 워록-2와 아테나 그리고 변형 무장에 대한 정보를 긁어모으던 순간이었다.


접근 거부.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인 세나를 차단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재빨리 다른 경로로 재접속을 시도하던 세나는, 재접속 경로까지 모조리 차단 당한 것을 깨닫고 순간 멈칫했다.


통상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하기엔 과도했다.

세나는 '이상함'을 느끼고 멈추었다.


자신을 차단한 것은 프로그램도 사람도 아니다.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가 질의합니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에이, 너무 딱딱하다.]


코드로 이루어진 데이터 베이스 속에서 그것이 세나를 향해 말했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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