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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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소스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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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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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DUMMY

이서진은 잘 살던 집안 출신이다.

부산에서 돈 좀 만진다고 하는 사람은 다 아는 집의 막내딸이었다.

돈이 있으니, 집안은 화목했고 가족들과 사이가 매우 좋았다고 들었다.


화목한 가정은 거수로 인해 부산이 초토화되었을 때 무너졌다.


그때부터 그녀는 주변 사람을 잃는 것에 트라우마를 가졌다.

사관학교에서 동기들을 잃은 후로는, 그 트라우마가 훨씬 더 심해졌고 말이다.


이서진의 반응은 그 트라우마의 발현 같은 것이었다. 아마 자신이 한층 더 심하게 만들었을 트라우마.

그래서인지 욕을 들어먹은 입장임에도 유화는 크게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중에 그때 욕해서 미안하다고 장문의 문자가 오겠지. 그녀의 성격이면 그러고도 남았다.


“······어.”


아니, 벌써 자각한 것 같았다.

핏기가 빠져나가 하얗게 된 얼굴로 그녀는 유화의 앞에 놓인 머그잔을 보았다.


“그, 유화야.”

“왜?”

“컵, 다시 줄래···?”


유화는 아무 말 없이 냉기가 흘러나오는 머그잔을 내밀었다.

핫초코도 아이스초코도 아닌 이상한 음료가 담겨 있던 컵을 냉큼 다시 가져간 이서진의 손안에서 하얀 마나가 흘러나왔다.


“마나로 컵을 데워?”

“전자레인지나 포트가 여기 없어서···어?”

“누나, 컵.”

“아···!”


경악스러운 시선으로 유화를 바라보던 이서진이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컵을 놓았다.

컵에서 초콜릿 향이 섞인 탄내가 풍겼다.

그녀는 유화와 컵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컵을 싱크대에 집어넣었다.


“다, 다시 해줄게.”

“응.”


새 컵에 정수기의 따뜻한 물을 받아 코코아 가루를 탄 이서진이 컵을 저으면서 유화를 힐끔힐끔 살폈다.


“너···이제 각성, 자야?”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마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볼 수 있는 거면 각성한 거 맞잖아···. 어쩌다가 각성한 거야?”

“게이트 넘어가면서 이렇게 됐을 거야.”


각성보다는 진화 혹은 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그녀에게 풀어놓고 싶진 않았다. 썩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으니까.


“···그럼, 이제 우린 각성자가 더 많네.”

“원래도 더 많았어. 나랑 누나랑 태원이 형이랑···유소은이랑.”

“아···맞다. 태원 오빠도 각성자였지.”

“본인이 내색을 안 하고 다니니까. 사실상 비각성자기도 하고.”

“그치···? 아, 한번 먹어볼래···?”


그녀에게서 컵을 받아 든 유화는 핫초코를 한 모금 홀짝였다.

똑같은 맛이었다. 10년 전이랑. 유화는 고개를 들어 이서진을 향해 말했다.


“맛있다.”

“다행이다. 요즘 누구한테 타 준 적이 없어서 입맛에 맞을지 걱정했네···.”


불이 꺼져 있는 거실. 가구라곤 그 흔한 소파조차 없는 삭막한 집안.

살짝 열려 있는 방문의 틈으로 보이는, 침대와 작은 옷장 하나.

가정집이 아니라 호텔 스위트룸만 한 이 펜트하우스에는, 이서진 외의 다른 사람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서진마저 잠만 자는 곳인 듯했다.


“누나···밥은 잘 먹고 다니지?”

“여기 있으면 먹기 싫어도 삼시 세끼 잘 챙겨줘. 근데 만약에 복귀해도 여기는 오지 마. 할 일이 없으니까 말라 죽는 것 같아. 왜 회사에서 자진 퇴사시킬 때 일을 하나도 안 주는지 이해가 돼···.”


수도서울사령부의 파일럿이 출격할 일이 있다면, 인천 기지가 박살 나고 서해 함대가 패전했다는 뜻이었다.

사실상 대한민국 우주군과 해군 전력의 3분의 1이 날아갔다는 것. 전쟁 초기도 아니고 중국 함대도 있는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질 리 만무했다.

하지만 일을 안주면 사표를 써야 하는 회사와 달리 파일럿은 은퇴하기 전까지 월급이 나오는 공무원이었다. 다른 기지와 달리 수도사령부는 국군 소속이었다. 그 국군이 펜트하우스도 통째로 줬는데 섭섭한 소리가 나오게 대접할까.


아니었다.

돈이 있는데, 쓸 의욕을 잃었다.

돈도 써본 놈이 잘 쓴다. 이서진은 부잣집 아가씨였다. 그런 그녀가 돈이 있는데도 안 쓰고 있다.


“누나.”

“···응?”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유소은.”

“······.”

“소식은 들었어. 북극에서 잘못됐다고.”

“재구가 말해줬어?”

“태원이 형이.”

“······다 들었어?”

“간략하게만 들었어. 나머지는 누나가 알 거라고 그러더라.”


우주군사관학교 1기 졸업생 다섯 명은 입학 때부터 알던 사이가 아니었다.

일단 선발된 특기가 전부 달랐다. 천유화는 조종, 강재구는 전술 지휘, 김태원은 메카 공학, 유소은은 의무 그리고 이서진은 재정.

유화는 1학년 때 강재구의 얼굴도 몰랐다. 김태원은 나이 많은 거로 유명했으므로 얼굴은 알았지만, 말을 섞어본 적도 없었다. 유소은과 이서진 역시 마찬가지.


다만, 유소은과 이서진은 서로를 아는 사이였다.

특기를 제외하고 공통 과목 평가에서 서로 전교 1, 2등을 하는 사이였으니까.

징집당해 끌려온 학교에서 2등이 1등을 질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둘은 빠르게 친해졌다.


그러니까, 이서진은.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처음으로 사귄 20년 지기 친구를 잃은 것이다.


“3년 전이었어. 오메가가 거수를 북극에 떨어뜨렸고···러시아 애들이 거수를 요격했지.”


땅덩이는 넓은데 인구가 적은 러시아는 메카보다는 화력 병기에 주력했다. 유화가 강릉에서 했던 것처럼, 메카가 시선을 끌면 화력 병기가 거수를 요격하는 식이었다.


장점은 파일럿의 목숨이 오갈 일이 잘 없다는 것. 이미 차고 넘치는 무기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단점은 거수가 잘 안 죽는다는 것, 사체 회수와 뒤처리가 힘들다는 것.


“요격당한 거수는 북극의 해저로 가라앉았고, 그 자리에 게이트가 열렸어.”


그래서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잦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게이트 중 가장 큰 게이트가.”


거수가 죽어서 거수를 내뱉는 게이트를 남겼다. 얼마나 많은 거수가 얼마나 자주 튀어나올지 모르는 인류로서는 그 게이트를 반드시 닫아야 했다.


“러시아, 북미 그리고 유럽. 서방 세계를 언제든지 침공할 수 있는 게이트가 열린 거니까 그것들은 게이트를 닫아야겠다고 판단했지. 게이트를 닫을 수 있는 스트라이커를, 작전에 참여할 파일럿을 찾았어.”

“······없었겠지.”

“맞아. 아무도 없었어.”


메카는 바다에서 활동하게 설계되었지만 어디까지나 연안에 한정되어 있다.

심해는 메카의 영역이 아닌 거수의 영역이었다.


“그러면 강제로 소집했겠네. CDA가.”“러시아에서 세 명, 캐나다에서 한 명···알래스카가 있으니까, 미국에서도 한 명. 영국이랑 북유럽 연합에서 두 명. 그리고 소은이는 자원했어.”

“압박이 있었어? CDA에서?”


유소은을? 달을 탈환해 온 유소은한테 압박을 넣었을까?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혹시 몰라서 물었으나, 이서진은 역시나 고개를 저었다.


“그 정신 나간 기집애가···자기가 너 다음으로 잘난 스트라이커라고, 자기가 가야 한다고 하더라.”

“······.”

“스트라이커 다섯 명. 세이버 세 명. 메카 8대. 강습 상륙함 6대.”


그 모든 것이 북극해 깊이 가라앉았다.


극지.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땅.

메카가 접근하기 어려운 시베리아 한복판에 열린 게이트도 수백 발의 핵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해결했다. 차가운 바닷속에 열린 게이트는 어떨까.

핵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 마찬가지로 메카 또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10년 만에 돌아온 유화도 북극의 해저라는 말을 듣자마자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다.


“누나.”

“······응?”


목소리가 먹먹해진 이서진이 고개를 들었다.

유화는 그녀를 향해 물었다.


“시신은?”

“······.”

“찾았어?”

“못, 찾았어. 북극 자체가 지금···.”

“그럼 유소은 살아 있어.”


이서진이 숨을 집어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도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살아 있다고.


하지만 유화의 생각은 그런 수준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자신의 두 눈으로 본 게 있었으니까.


“유소은 알잖아. 걔 포탄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했어.”

“······.”

“반경 10m를 증발시키는 포탄을, 걔는 직격을 당하고 멀쩡했어. 심지어 입고 있던 옷도, 들고 있던 총도 멀쩡했는데 걔가 어떻게 죽어.”


유소은은 초기 각성자, 그것도 육체파 각성자였다.

무너진 도시에서 집채만 한 콘크리트를 통째로 들어 올리는 모습이 한때 영상으로 돌아다녔다. 정부에서 그녀를 콕 집어 징집한 이유가 그 영상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유화는 유소은이 죽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차라리 유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는 게 더 말이 되는 이야기였다.

갈 필요도 없는데 자원했다면, 더더욱.


“그러면 소은이···어디 있는데?”


하지만 이서진은, 그의 말을 납득하지 못하는 듯했다.

물기로 가득 찬 목소리. 덜덜 떨리는 입술. 그녀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넌 거기 있지도 않았잖아! 소은이는 메카에 탄 채로 생체 신호가 끊겼어!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다고···!”


날 선 목소리. 아무한테도 드러내지 못했던 원망. 꾹꾹 눌러 담아왔던 그 감정이 터지려는 것이 느껴졌다.


“아냐, 미안해. 유화야. 너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너도, 너도 고생했을 텐데.”


이서진이 마른세수를 했다.

기본적으로 그녀는 남을 공격하는데 서투른 사람이었다. 자기감정을 토해내지 못하고 꾹꾹 담아놓는 사람. 그녀는 한층 더 퀭해진 눈으로 유화를 향해 애써 웃어 보였다.

그러던 이서진은 잠시만이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유화는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꺼놓았던 홀로폰을 다시 켰다.


강재구에게서 걸려 온 부재중이 하나, 그리고 문자가 한 통.

유화는 그 문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너 언론에 풀었다.


지금은 뉴스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강재구, 나 북극 보내줘.


답장은 곧바로 되돌아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지금 바로는 안 돼.


그러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메카 8대, 그 메카를 옮기는 상륙함 6대 그리고 파일럿 8명을 잡아먹은 최악의 전장.

유화를 따라올 사람도 없을 테니, 가려면 혼자서 가야 했다.

전략 병기이자 국가 자산인 메카를, 아직 정식으로 현역 복귀도 하지 않은 유화가 가지고 단신으로 북극으로 향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얼굴 보고 얘기하자.


“유화야.”


여전히 물기가 남아 있는 이서진의 목소리가 자신을 불렀다.

다시 홀로폰을 끄고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리자, 놀란 얼굴의 이서진이 보였다.


“너, 귀 나았구나.”

“어느 순간부터 들리더라.”

“다행이다···. 맞아, 이거. 너한테 전해줄 게 있어서.”


이서진이 그런 말과 함께 내민 것은 반지였다.

그 반지의 안쪽에 작은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유화의 이름 세 글자였다.


“이게 뭐야?”

“나랑 소은이가 만든 건데···우정 반지 같은 거야. 우리 다섯 명.”

“어쩐지 그 두꺼비가 반지를 차고 다니더라니···.”


이서진의 손에도 자신의 것과 똑같은 반지가 있었다.


“한번 껴볼래? 이거 마나 공학으로 만든 거라서, 너도 이제 각성자니까 반응할 거야.”


유화는 그녀의 말에 따라서 반지를 검지에 끼웠다.

가운데 박힌 자그마한 보석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서진은 그 하얗게 빛나는 반지를 내려다보며 유화의 손을 잡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얽혀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반지를 낀 손가락을 겹쳐 반지를 맞대었다.

하얀빛을 뿜어내던 반지에 푸른 빛이 섞였다. 하늘빛으로 반짝이는 반지를 보고 눈이 커진 유화를 향해 이서진이 말했다.


“서로의 마나가 공명하면서 색이 서로 섞여. 어때? 신기하지?”

“그러게. 어떻게 이런걸···.”

“유화야, 너 소은이 찾으러 갈 생각이지?”

“······.”

“너 얼굴에 다 적혀 있어.”


수도서울방위사령부.

오직 수도인 서울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지. 이곳을 전담하는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지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이제 네 반지에도 내 마나가 섞여 있어. 소은이랑 가까워지면 반지가 공명할 거야.”


20년 지기 친구가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을 때도.


“소은이, 부탁해도 될까?”

“그게 원래 내가 잘하는 거잖아.”


파일럿을 여덟 명이나 잃었다면 CDA는 물론이고 국제사회 차원에서 공략을 포기했을 것이다.

강재구가 별을 두 개나 달고 있는 걸 보면 이서진의 입지도 어지간할 텐데, 10년 만에 돌아온 자신에게 부탁할 정도라면···.

CDA가 작전의 실패로 얼마나 큰 패배감에 찌들어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남들이 못하는 거 해내는 거.”


이제 모든 걸 바로잡을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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