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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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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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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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DUMMY

공수 전환이 이루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강력한 발톱. 충격을 흡수하는 단단한 갑각. 여러 개의 다리를 기반으로 한 뛰어난 기동성.

카파급이라고 분류된 것 이상의 괴력을 발휘하며 날뛰던 거수에게서 일방적으로 밀리던 제니스 블레이드가 순식간에 주도권을 가져온 것이다.


“침착하게. 바로 끝낼 생각 하지 말고.”


두 사람은 왼팔을 동시에 움직였다.

그와 함께 제니스 블레이드 역시 왼팔을 움직였다. 새파란 빛을 내뿜는 마나 블레이드가 아래에서 위로 사선을 그었다. 위태롭게 서 있던 도로 표지판이 순도 높은 마나의 현현에 녹아내리며 잘려나갔다.


끄오오오!


반으로 잘린 표지판이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녹아 내린 순간 도시에 핏물로 된 비가 내렸다.

검은색. 파괴의 화신의 몸에 흐르는 핏물이 터져 나오며 거수가 자랑하던 기다란 발톱이 잘려나갔다.


“뒤로.”


생물 병기답게 거수가 고통에 몸부림치는 것은 길지 않았다. 긴 발톱이 잘려나가며 반대쪽 발톱이 자유로워졌다. 놈은 순식간에 남은 발톱 하나를 휘둘렀다.

유리가 모조리 깨지고 광고판도 떨어져 나간, 뼈대만 남은 빌딩이 방패가 되어주었다. 빌딩을 무너뜨린 발톱은 제니스 블레이드의 표면에 닿긴 했으나 작은 생채기를 내는 데 그쳤다.


“다시. 이번엔 아까랑 반대로.”


이쪽의 공격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학습했으리라. 그렇다면 이번엔 거수 또한 회피하거나, 아니면 동시에 피해를 주려고 하리라.

제니스 블레이드에 가해진 파손은 이미 심했다.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타격이 크다. 유화는 적이 되려 달려들 때를 계산해 검으로 궤적을 그렸다.


카아아아악!


아까와는 다른 괴성. 눈앞에서 가장 긴 두 번째 발톱을 잃어버린 거수의 포효가 터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긴장해라. 이제부터가 진짜니까.”


파괴만을 위해 움직이는 무기. 놈들은 위기를 느꼈을 때 공포를 느끼는 게 아니라 분노를 느낀다.

이제 남은 것은 발악하여 날뛰는 것이다. 유화는 왼팔에 힘을 꽉 쥐고서 말했다.


“조금 더 빠르게.”


크기 때문에 한 번에 하나씩 휘두를 수 있는 발톱들이 모두 사라졌다.

거수는 남은 발톱들을 한꺼번에 휘두르며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죽일 작정이 아니라 이길 작정으로. 유화는 머릿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더 빠르게.”


빌딩의 숲. 인간이 세운 인공의 방벽. 그곳에선 거수보다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메카의 발이 빨랐다.

크게 휘두르지 않고 작게 휘둘러서 발톱만을 베어냈다. 비명 같은 포효가 터지고 거수의 움직임이 더욱 난폭해졌다. 도미노처럼 세워진 빌딩의 숲을 발톱과 몸으로 밀어 쓰러트리면서 놈이 다가왔다.


“더 빠르게!”


발악.

어느 순간부터 거수는 힘이 빠졌는지 건물을 몸으로 밀어 무너뜨리지 못했다. 대신 놈은 무너지다 만 건물들을 여러 개의 다리로 빠르게 기어올라 넘어왔다. 발톱이 남지 않은 다리와 발톱이 남은 다리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휘둘러대면서 제니스 블레이드를 향해 쇄도했다.


도로에 버려진 자동차들을 마구잡이로 밟아 뭉개고 신호등과 표지판들을 무너뜨리면서 끝끝내 거리를 벌렸다. 동기화된 뇌가 제니스 블레이드의 파손된 부품을 몸의 상처로 인식해 끔찍한 고통을 낳았다.

그 속에서도 두 사람은 몸을 움직였고, 거수의 움직임을 마지막까지 눈에 담았다.


“검을 들어.”


마침내 거수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본다면 무너진 도시 한복판에 거수가 흩뿌린 피로 그려진 그림을 볼 수 있을 정도이리라. 그 정도로 피를 흘리면서 거수는 끝까지 제니스 블레이드를 쫓아왔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 놈은 기울어진 빌딩 위로 올라타 제니스 블레이드를 향해 몸을 움츠렸다.


“거의 다 끝났어. 긴장 풀지 말고, 집중해.”


제니스 블레이드가 검을 고쳐 쥐었다.

시퍼렇게 마나 블레이드를 짧게 쥔다. 마나 티타늄 합금의 표면 코팅이 마나의 열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조함은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거수를 응시했다.


꾸어어억!


역겨운 산성액을 게거품처럼 문 거수가 빌딩에서 뛰어내려 달려들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 당황해 대응에 실수하는 일은 없다.

그들은 달려드는 거수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푸욱!


파육음과 함께 갑각으로 뒤덮인 거수의 복부를 파고드는 마나 블레이드.

곧,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제니스 블레이드를 덮친 거수의 입에서 산성액과 함께 검은 피가 터져나왔다.


꽈드득.

거수의 몸에 파고든 마나 블레이드를 쥔 팔을 끝까지 밀어 올린다. 몸의 절반이 갈라진 상황에서도 마지막까지 발버둥치는 거수. 마지막까지 곱게 죽지 못하겠다는 듯 파괴의 화신이 이리저리 발버둥 쳤으나, 완전히 갈라진 상태에서는 그것까지 불가능했다.


“후우.”

“하아···후, 아아···.”


쿠웅!

세로로 반으로 갈라진 거수의 몸뚱이가 양옆으로 쓰러졌다.

자동차를 깔아뭉개면서 갈라진 시체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보통은 바다에서 죽어서 볼 수 없는 광경. 홍수가 난 도시처럼 거수의 몸에서 흐른 피로 도로가 가득 찼다.


“수고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이제 좀 쉬어. 컴퓨터?”


[네, 닥터. 지시를 대기 중입니다.]


“동기화 일시 중지. 탈출용 포드 준비해.”


[동기화가 중지되었습니다. 탈출 포드를 작동합니다.]


헬멧을 벗은 유화는 이유나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출혈은 멎지 않았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파일럿 슈트가 몸을 압박한 덕분에 저절로 지혈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 푸른 눈을 반짝이며 유화를 보고 있었다.


“지금은 아프지도 않을 거야. 그렇지?”

“······아?”

“잘했어. 날 쫓아올 정도면 재능이 있다는 거거든. 꼭 살아서 다시 보자, 후배님.”


유화는 그녀의 헬멧을 벗기고 기우뚱 기울어지는 몸을 받아냈다.

조종석 뒤쪽에 열린 비상 탈출용 포드. 유화는 그녀를 포드 안쪽에 눕히고 인공지능을 향해 말했다.


“포드 사출.”


[탈출용 포드를 사출합니다. 구조 신호를 발송합니다.]


터엉!


무언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조종석 뒤쪽의 탈출용 포드가 외부로 사출되었다.

공군이 파일럿을 구조하기 위한 레스큐 팀이 있는 것처럼, 우주군 역시 핵심 전력인 파일럿을 구조하기 위한 세이버 팀이 따로 있었다. 기지와 시내는 그리 멀지 않으니 위험해지기 전에 도착할 터.

다시 조종석으로 돌아온 유화가 헬멧을 쓰면서 말했다.


“기지랑 통신 연결해.”


[강릉 기지와 통신을 연결합니다.]


“두꺼비, 듣고 있냐?”


파지직. 손에 쥔 마나 블레이드에서 불똥이 튀며 색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여태껏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이유나와의 동기화가 끊어지며, 마나를 다루는 능력이 없는 유화 혼자서는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거수의 시체 위로 검을 떨어뜨린 유화는 살 타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메카를 움직였다.


-듣고 있어.

“봤냐?”

-거기 드론 있지? 그걸로 봤다. 왜.

“어때? 존나 잘했지?”

-이 미친 새끼···. 그래, 잘한 건 잘한 거니까. 근데 아직 방심할 때 아니야. 최소 거수 세 마리 이상이 바다 밑에서 돌아다니고 있어. 레이더에서는 이쪽 부근인···.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가던 강재구의 목소리가 흐려졌다. 변수였다.

그런 반응을 보자마자 변수의 존재를 감지한 유화는 바닥에 꽂혀 있던 제니스 블레이드의 원래 무장인 대검을 쥐었다.


쿠르릉!


바닥에 꽂혀 있었던 메카의 대검이 뽑히자 아스팔트가 굉음을 내며 무너져 내렸다.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었던 애꿎은 소화전이 날아가며 물이 뿜어져 나왔다.

검에 막혀 있었던 수로의 압력이 한순간에 해방되며 물이 거의 메카의 키만큼 솟구쳤다. 유화는 그 물길을 향해 손을 뻗어 메카의 티타늄 외피에 묻은 거수의 피를 씻어냈다.


“이쪽에는 몇 놈.”

-둘.

“둘은 좀 힘든데.”


그오오오오오!!


방금 쓰러트린 거수를 닮은 놈이 하나.


“몇 분 남았냐? 해군 오는 거.”


찌르르륵!


집게가 하나뿐인, 게를 닮은 놈이 하나.


-1분.

“1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하지만 거수와의 전투에 걸리는 시간은 길어야 5분 남짓이다. 수천 톤에 달하는 괴물들이 휘두르는 일격은 단 한 번만으로도 적을 무너뜨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분이면, 어느 한쪽이 쓰러지기에 충분한 시간.

그게 이제 막 바다에서 올라온 두 마리의 거수일지, 이미 전신이 너덜너덜한 제니스 블레이드일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할 수 있겠냐?

“해야지.”


유화는 대검을 역수로 집어 들었다.

아까 마나 블레이드의 날 부분을 직접 쥔 까닭에 입은 손상이 조금 남아 있었다.


“아까부터 봤는데, 도시가 조용하더라.”

-······.

“다 대피한 건 아닐 거고···기껏해야 해안에서 좀 떨어진 지하 대피소에 있겠지. 아직 멀쩡한 곳. 세이버 팀도 도착 안했을 거 아니야. 그렇지?”


오래 싸우긴 힘들겠는데. 메카의 상태를 확인한 유화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팔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내가 빠지면 어떻게 되겠냐.”

-너 군인 아니라면서.

“책임감 때문에 하는 거 아닌데?”

-그럼 뭔데?

“내가 원래 슈퍼스타잖아. 관심받으려고 하는 거지. 나 전쟁 전엔 CF도 찍었다.”

-이 미친 새끼···.


마침내 해탈한 강재구가 헛웃음을 흘렸다.


전술적인 승리, 그 승산은 보인다.

하지만 그 승리의 요건은 제니스 블레이드와 천유화의 시체가 만든 벽에 가로막히는 것. 천유화의 생존까지 보장하는 건 힘들어 보였다.


강재구가 말없이 얼굴을 쓸어내리는 사이 제니스 블레이드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이 새끼가 왜 말이 없어.”


그오오오오!


“누가 보면 죽으러 가는 줄 알겠네.”


천유화는 미소를 머금은 채 사납게 울부짖는 거수를 바라보았다.


쿠웅!


제니스 블레이드가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메카의 육중한 무게에 지축이 흔들렸다. 그것을 도발로 받아들인 걸까, 거수가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너 내가 지는 거 본 적 있냐?”


머리 위로 대검을 들어 올린 제니스 블레이드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거수를 향해 대검을 내던졌다.

드론의 카메라를 통해 그 광경을 보던 강재구의 착잡한 표정이 경악으로 뒤바뀌더니, 그대로 굳어졌다.


“난 안 져.”


두 손으로 쥐고 휘두르라고 만든 질량 병기가, 공중을 날아 거수를 향해 쇄도한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 드론의 카메라가 보여주는 화면을 바라보는 강재구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는 것을 느꼈다.


“진 적이 없지.”


검이 날아가는 것보다 조금 늦게, 메카의 몸이 움직였다.


쿠웅!


노을에 비쳐 붉게 빛나는 먼지를 휘감고 앞으로 나아가는 제니스 블레이드. 파손된 부품에서 튀기는 스파크가 흡사 번개의 신이 달리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거수의 몸에 대검이 꽂혔다.

즉사는 아니었다. 몸을 꿰뚫었으나 답답한 갑각의 저항에 가로막혔다. 발톱뿐인 까닭에 대검을 뽑아내지 못해 버둥거리는 거수. 그것만으로도 거수가 미친 듯이 날뛰는 것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남은 건.

유화의 시선이 게를 닮은 거수를 향해 돌아갔다. 시뮬레이션 속 4세대 메카닉이 가지고 있었던 부가 무장, 디코이. 그것을 활성화하자 멀쩡한 오른쪽 어깨의 장갑 부분이 열리며 디코이 탄이 쏟아져 나왔다.


파바바바박!


수십 발의 디코이 탄이 공중에서 터지며 빛을 산란했다.

지구의 게처럼 눈이 툭 튀어나와 있었던 거수의 두 눈이 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유화는 달려가던 기세 그대로 주먹을 쥐어 쉬지 않고 움직이며 거품을 토해내던 게 거수의 턱을 강타했다.


콰앙!

굉음과 함께 세 쌍의 턱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치르륵 거리는 괴성과 함께 게 다리가 뒤로 물러갔다. 유화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다시 턱을 노리며 왼팔을 뻗으려고 했다.


“······.”


왼쪽 어깨에서 퍼지는 통증. 그와 함께 뻗어져 나가던 팔이 정지되어 힘없이 떨어진다.

이미 유화가 탑승하기 전부터 파손이 많았던 왼쪽 팔이 더 이상 그 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완전히 정지한 것이다.


-수고했다.


그때, 헬멧 안쪽에서 들려오는 강재구의 목소리.


-미친놈. 기어코 버텼네.


순간 굉음이 울렸다.

유화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소리가 너무 커서, 거수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직 다리는 움직이니 뭣하면 이거라도. 거수의 동태를 살피던 유화는 이내 굉음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잘했다. 장한 새끼.


해군이 쏘아낸 포탄이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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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북극 작전 +7 24.08.30 6,736 138 12쪽
31 북극 작전 +4 24.08.29 6,928 145 14쪽
30 슈퍼스타 +7 24.08.28 7,003 155 13쪽
29 슈퍼스타 +6 24.08.27 6,991 139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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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퍼스타 +6 24.08.23 7,478 14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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