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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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DUMMY

“셋하면 돌릴 겁니다. 힘주면 안 됩니다.”

“예···.”

“자, 하나.”


끄아아악!


눈밭에 얼굴을 처박고 코가 휜 미하일의 비명 소리가 의무실 천막을 뚫고 지휘소까지 넘어왔다.

몇몇이 섬뜩하다는 듯 몸을 움찔거렸다.

곧 코에 하얀 거즈를 덕지덕지 붙인 미하일이 지휘소로 들어왔다.


“치료 끝났습니다···.”

“다 왔군요.”


유화와 이루미, 미하일. 세 명의 파일럿과 안드로프를 비롯한 시베리아 기지 지휘부.

같은 천막 아래에 모인 그들을 둘러보고서 그렇게 말한 유화가 책상에 설치된 홀로그램 투영 장치를 작동 시켰다.


구불구불한 산 같은 지형이 만들어지더니 이내 뒤집어져, 해저 지도가 되었다.


“오늘 따온 해저 지도입니다.”


거수들에 의해 시도 때도 없이 지형이 바뀌고, 거수와 지형이 구별되지 않는 지역. 하지만 해상에서 탐지한 것과 다르게 이건 유화가 직접 수면 밑으로 들어가서 얻어낸 정보였다.

지형을 갈아엎을 거수를 끌어내 사냥한 덕분에 한동안은 이 지도가 유지될 것이다.


“제가 거수와 교전한 지점은 여깁니다. 그리고 블랙팬서 편대의 소나에 감지된 거수의 위치는 제 교전 지점에서 6km 떨어진 지점입니다.”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

그 거리가 유화에게 의문을 불러일으켰다.


“소나에 거수가 감지된 후 블랙팬서 편대는 자체적으로 교전을 결정했습니다. 직후 세 번의 포격이 있었고 모두 깔끔하게 빗나갔습니다.”


그렇게 설명하면서 블랙팬서 편대의 전투 데이터를 홀로그램 지도 위에 겹쳤다.

수중에서 거수를 요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어뢰의 폭발 범위가 붉게 물들었다.


“세 발 모두 인근 몇 백미터를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탄이었습니다. 그런데 거수에게 적중하지 않았습니다. 교전을 결정하고 어뢰가 터지기까지 간극이 있다는 걸 감안해도 거수의 움직임이 상당히 빨랐습니다.”


유화가 홀로그램 화면을 넘기자 쓰러진 거수의 사체 세 구가 떠올랐다.


“오늘 해안에 상륙해 죽은 놈들입니다. 이족 보행, 사족 보행···종류는 다양하다만 이놈들 중에 어뢰의 폭발 범위를 완전히 벗어날 만큼 날랜 놈은 없었습니다.”

“다른 거수가 또 있다는 겁니까···.”

“예.”


안드로프의 중얼거림에 대답한 유화가 고개를 들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놈입니다. 아마 물속에서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테지만, 그러니 더더욱 물속에서 빠져나오지 않을 겁니다.”


가장 까다로운 종류의 거수였다.

해저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며 느릿느릿한 메카를 상대로 속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는 거수.


“직접 들어가서 잡아야 한다는 뜻인데, 그 전에 거슬리는 게 하나 있습니다.”

“거슬리는 것이라 하시면···?”

“이놈이 저를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로 빠른 거수라면 6km쯤 되는 거리는 가볍게 돌파해 워록-2를 덮쳐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화가 성게 거수를 죽이고 복귀할 때까지 이 거수는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유화는 홀로그램 화면을 넘겼다. 심해에서 자신이 보았던 거수의 모습이 책상 위에 떠올랐다.


“제가 상대했던 거수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상어 같은 머리를 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성게를 닮은 놈입니다. 촉수를 여러 개 달고 있으나, 본체의 기동력은 전무합니다.”


아예 움직이지 못하는 놈은 아닐 테다. 게이트와 가까운 섹터3가 아닌, 섹터2에서 발견된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유화가 바로 눈앞에 접근할 때까지 뒤로 물러나거나 회피하려는 동작이 없었던 것을 보면 거의 해류에 탑승해 떠다니는 수준에 가까우리라.


“드론을 요격한 것도 이 거수입니다. 아마도 이 위치에서 계속 머무르고 있었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그리고 아주 빠른 거수가 메카와 교전하지 않고 피한 것을 보면,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건데···.”


평범한 거수의 행동 양식과는 동떨어진 움직임. 결론을 내린 유화가 물었다.


“이 부근에서 무언갈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안드로프가 눈썹을 모은 채 지도를 한참이나 내려보았다.

책상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던 그가 아리송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지역에 해저 호수가 하나 있었던 걸로···기억합니다.”

“호수요?”

“평범한 호수는 아니고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매장된 호수입니다. 전쟁 전에 탐색한 지형이라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매끈한 머리를 쓸어넘긴 안드로프가 입을 실룩거렸다.


“특별한 지형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괴물 새끼들이 만약 뭔가를 지킨다고 해도 메탄 호수를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는데···.”

“탐색해보겠습니다.”


유화의 대답에 안드로프는 홀로그램 투영 장치를 조작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꽤 골치 아픈 게···메탄 호수는 섹터3 안에 있습니다. 투입되는 메카는 닥터의 워록-2와 미하일의 안톤···. 둘 다 기동력이 뛰어난 메카는 아니지요. 퇴각하는 게 어려울 겁니다. 병력을 다수 투입하기에도 무리가 있고요.”


그는 유화를 흘끗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안드로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위험합니다. 여기는.”

“그래도 탐색해봐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홀로그램을 조작한 유화가 이전의 성게 거수의 모습을 다시 띄워 보였다.

몸이 말리다 만 공벌레 같은 기괴한 형상. 보고만 있어도 인상이 찌푸려질 정도로 불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변이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기가 오메가가 파둔 둥지도 아니고, 그냥 바닷속일 뿐인데 변이하고 있는 겁니다. 단순히 오메가가 접근하고 있어서는 아닐 테고···. 변이를 일으키는 요소가 있을 겁니다.”

“그 요소가 메탄 호수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 장소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거수가 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추측만으로는···.”

“안드로프 대장, 그 쌍둥이 거수를 생각해보십시오.”


유화의 말에 안드로프가 숨을 삼켰다.


“놈들처럼 기괴한 변이를 일으킨 요소가 분명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안드로프는 유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 병력을 편성하겠습니다. 준비가 끝나는 대로 말씀해주십시오.”




#




기지에서 조금 떨어진 눈밭. 미하일은 아직도 얼얼한 코를 어루만지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쟁 전보다 훨씬 어두워진 달이었지만, 새하얀 눈밭에 달빛이 비쳐 사방이 밝았다. 말도 제대로 못하던 어린 시절의 달빛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자박.

한동안 그렇게 달을 올려다보면서 시간을 흘려보내던 미하일은 바로 뒤에서 난 발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발자국 옆으로 쭉 이어진 발자국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분명 기척을 못 느꼈는데···?


그 순간 미하일의 눈앞에 한 쌍의 검은 눈동자가 나타났다.


“뭐해요?”

“허어억?!”


러시아인과는 다른 검은 눈동자. 작고 동글동글한 얼굴.

‘닥터’와 함께 파견 왔다는 한국인 세이버 파일럿이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겁니까···?”

“걸어왔죠. 갑자기 나타나긴 무슨.”

“발소리를 못 들었는데···.”

“제가 기척을 잘 숨겨서요.”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띤 입술 위로 손가락을 하나 가져갔다.


고요한 눈밭 위에서 미하일의 놀란 심장 소리만 쿵쿵 울렸다.

분명 바로 앞에 있는데,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닥터’를 건드린 방법이···.”

“이걸 좀 응용했어요. 저기, 미하일이라고 했죠?”

“예. 미하일입니다.”

“준비는 잘 했어요?”

“예, 할 수 있는 만큼은···.”


미하일이 다루는 기체는 안톤. 양팔에 거대한 방패를 부착한 중장형 메카였다.

오늘 있었던 작전에선 그 방패로 거수들의 육탄 공격을 막아내며 한쪽에 몰아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원체 단단한 메카이기도 하고 충돌이 적었기 때문에 정비할 요소가 없었다. 기지의 정비 중대가 거의 다 달라붙어 수리 중인 워록과는 상황이 달랐다.


지금 그의 안톤은 심해 작전을 위해 주무장을 변경하고 인공지능 설정을 최적화해놓은 상태였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왜 지원했어요?”

“이번 작전 말입니까···?”

“닥터를 보조할 파일럿을 선발하는 거요. 왜 지원한 거예요?”


이루미가 담담한 어조로 정곡을 찔러왔다.


“혹시 이 기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예.”

“역시. 그러면···.”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습니다.”


무언가를 말하려던 그녀는 미하일의 웅얼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향상심도 있었습니다.”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러니까, 닥터처럼 되고 싶었습니다.”


잘 쓰이지 않는 러시아어인 까닭에 알아듣지 못한 이루미가 되물었다.

미하일이 고쳐서 말하자 그녀는 의외라는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어느 게 더 크냐고 하면 물론 전자겠지만···후자도 분명 있습니다. 유능하고 선망받는 파일럿이 되고 싶어서···.”

“그래요?”

“예. 처음에 파일럿을 할 때는 분명 그런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으니까요. 이 기지에서 벌써 2년이나 있으면서 다 싫어져서 그렇지···.”

“······.”

“제가 동기화에 실패했을 때, 닥터께서 전투를 치르는 모습을 봤습니다. 만약 제가 동기화에 성공해서 닥터의 자리에 제가 있었으면···어떻게 됐을까 싶습니다.”


그 자리에 자신이 있었다면, 포탄이 먹히지 않았을 때 이미 전의를 상실했으리라.

아니, 시베리아 기지의 어느 파일럿이 있었어도 전의를 상실했겠지. 이미 그날 작전에 나선 파일럿들은 레일건이 먹히지 않았을 때 반쯤 포기했다고 하니.

하지만 닥터는 달랐다. 포탄이 먹히지 않으니 차분히 방법을 찾았고, 그 방법으로 적을 착실히 무너뜨렸다. 반 포기 상태에 놓여 있었던 파일럿들 역시 그 모습에 감명받아 전의를 되찾았다.


“닥터와 함께 싸워보면···그러면, 제가 꿈꾸던 유능하고 선망받는 파일럿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그래서 지원했습니다.”

“···그래요? 그럼 원래 하려던 말은 하면 안 되겠네.”

“예. 혹시,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신 겁니까?”

“이 기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자원한 거라고 하면 그냥 포기하라고 하려고 했죠. 그런 마음가짐이면 짐덩이만 될 뿐이니까.”


이루미의 냉담한 목소리에 미하일이 식은땀을 흘렸다.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그것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런 의미에서 악수할까요?”

“예···?”

“같은 팀원이잖아요. 같은 생각으로 닥터 옆에 가겠다고 자원하기도 했고.”


······이 사람도 나랑 같은 생각이었나.

이루미가 내민 손을 내려다보던 미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해봐요. 우리. 짐덩이는 되지 말자고요.”

“···예.”


고개를 끄덕인 미하일은 그녀와 악수를 나누었다.




#




섹터2와 섹터3의 경계선.

해안선이 사라지고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시작되는 지역. 경사가 높아 절벽 위로 올라가는 것이 쉽지 않은 까닭에 메카가 진출해서 활동할 수 있는 한계선에 가까운 위치였다.


그곳에 총 9대의 메카가 집결해 있었다.


유화가 직접 선발한 미하일과 이루미의 기체가 셋.

안드로프가 ‘그나마 쓸만한 놈들’이라면서 뽑은 파일럿들이 여섯이었다.


“불길한데···.”


섹터2의 지휘소에서 드론 카메라로 그 모습을 보던 안드로프가 중얼거렸다.

바다는 잔잔했지만, 그것 때문에 오히려 불안감이 솟았다.

거수들이 일으키는 불규칙적인 해류로 요동치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눈에 띄는 거수들의 움직임은 없었다. 탐색이 이루어질 지역의 인근을 탐색하는 드론 역시 별다른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불길함과는 다르게, 바다는 안전했다. 안드로프는 진입을 허가했다.


-여기는 닥터. 진입하겠다.


그 말과 함께 워록-2를 시작으로 세 대의 메카가 천천히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작가의말

추석 때문에 더 바빠졌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부턴 공지된 연재 시간에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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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북극 작전 +8 24.09.01 6,792 141 14쪽
33 북극 작전 +7 24.08.31 6,953 148 14쪽
32 북극 작전 +8 24.08.30 7,092 1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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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슈퍼스타 +7 24.08.27 7,344 14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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