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무료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새글

핫소스통
작품등록일 :
2024.07.30 18:06
최근연재일 :
2024.09.16 23:52
연재수 :
49 회
조회수 :
368,778
추천수 :
7,223
글자수 :
279,108

작성
24.09.08 20:42
조회
5,556
추천
129
글자
12쪽

극한

DUMMY

유화는 천천히 문어 거수를 향해 접근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거대한 실루엣. 거대한 머리 아래로 두꺼운 다리들이 늘어져 있는 게 보였다.


거수.


말 그대로 거대한 괴수.

고개를 한참 꺾어 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괴물.


더 퍼스트 앤젤이 아틀란타의 경기장을 짓밟을 때.

검푸른 바닷속에서, 그때 보았던 괴물처럼 거대한 것이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뒷목을 타고 흐르는 식은땀. 한동안 가만히 거수의 형체를 응시하던 유화의 귓속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스. 혹시 농담 필요하십니까?]

"괜찮아."

[심장을 만져드릴 필요도 없습니까?]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 농담 그만하고 더 앞으로 가자."

[네. 보스.]


거수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500, 400, 300···. 이젠 시야 내에 다 들어오지도 않을 만큼 실루엣이 거대해졌을 때 몸이 멈추었다.


[제가 학습한 바, 거수들은 인지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유하자면 저희는 지금 총알의 최대 사거리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맞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동시에 맞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 들어가자."

[하지만 보스. 거수의 움직임이 얼마나 빠를지도 모르고 어떤 공격 방식도 구사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여기서 시선을 끌고 공격을 회피하는 방법을 권장드립니다.]

"상관없으니까 앞으로 가."

[알겠습니다.]


몸이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거대한 실루엣은 여전히 어둠속에 그대로 떠 있었다.


바다 아래를 관측할 방법이 없어서 얼마나 많은 거수가 존재할지 모른다고 했었나.

직접 눈으로 보는 게 아니면 저 거수 역시 빙하나 해저 지형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겠지.

그래서 함선이나 메카가 바다로 영역을 넓혀왔다가, 죽은 듯이 가만히 있던 거수가 갑자기 움직인다면.


[보스.]


그 순간이었다.


[해류가 바뀝니다.]


세나의 목소리와 함께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실루엣을 비추며 늘어져 있던 다리의 모습이 사라졌다.

유화는 다시 고개를 돌려 거수의 머리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직후, 거수가 눈을 떴다.


샛노란 눈알 속에서 굴러가는 눈동자가 유화를 응시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응시할 뿐. 거수는 한참이나 유화를 바라보았다.

유화의 키보다 큰 동공이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보스!]


세나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묵직한 질량이 유화를 향해 짓쳐들었다.

순수한 힘. 거수가 수십 개의 다리 중 하나를 휘두른 것이었다.


등 뒤에 달린 추진체가 가속되는 것이 느껴졌다. 회피 기동. 하지만 물속에서 급작스럽게 덮쳐온 공격을 피해내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보스, 지금 팔이, 그리고, 피해상황···이.]


무언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다리에 가격 당한 유화의 몸이 물속에서 힘없이 떠내려갔다.

팔은 꺾여선 안 될 방향으로 꺾여 있고 몸은 뭉개져 원래의 형체를 잃었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다. 유화가 말을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결론 내린 세나는 기계음을 내뱉는 것을 멈추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학습한 적도 계산해본 적도 없는 일. 한순간 기능 정지가 일어난 세나에게 유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나."

[네. 보스. 세나입니다.]


신체 기능이 돌아오고 있었다.

머리에 위치한 렌즈가 몸을 비추지 않은 까닭에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슈트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유화의 몸이 회복되어가고 있다고 해석할 뿐이었다.


"무기."

[변형하겠습니다.]


으깨졌을 육체가 다시 원래의 형태를 되찾았다. 추진체를 창으로 변환해 유화의 손에 쥐어준 세나가 그 사실을 말해주었다.


[보스. 피해 상황이 말끔히 회복되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알려고 하지마."

[···이해했습니다.]

"학습하려고 하지도 말고 분석하려고 하지도 마. 잊어버려."

[알겠습니다.]

"왼쪽, 온다. 브리핑해."


다시금 거대한 촉수가 물살을 가르며 유화를 향해 뻗어왔다. 세나의 분석대로 해류의 흐름을 바꿀 만큼 위력적인 공격.

이런 힘을 휘두르는 것이 거수에게는 고작 팔을 휘젓는 행동일 뿐이었다.


"모기 새끼가 된 것 같네."


콰득!

창끝이 촉수의 끝부분을 갈랐다. 유화를 덮쳐오던 다리가 끊어지고 잘린 끝부분이 물속에서 떠내려갔다.

검은 피가 물속으로 퍼져나갔다.


[보스, 뒤쪽입니다. 회피 기동을 실시하겠습니다.]


세나의 브리핑과 함께 창이 사라지더니 몸이 앞으로 쏠렸다.

또 다른 촉수가 측면에서 그를 노리고 있었다. 회피 기동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몸이 사각으로 이동했다.


쩌어어억!

꽃잎이 벌어지는 것처럼 촉수 끝이 갈라지더니 훨씬 얇고 미세한 촉수들이 유화를 휘감아왔다. 추진체가 가슴부로 이동하더니 얇은 촉수들을 피해 움직였다.

그러나 미처 회피하지 못한 촉수 한가닥이 유화의 팔뚝을 휘감았다.


[보스!]


헬멧 안에서 비명 같은 목소리가 터졌다.

AI맞아? 고개를 갸웃거린 유화가 이내 팔에 힘을 실어 잡아당겼다.


뚜욱!

실가닥만한 두께의 실이 유화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끊겼다.

그 와중에도 자신을 향해 치닫는 수십 개의 촉수들. 그 광경을 보며 세나가 말했다.


[전장에서 벗어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다시 추진체가 재조립되어 다시 등으로 이동했다.

몸이 솟구치는 듯한 감각과 함께 금세 햇빛이 들어오는 해수면에 도달했다.


"돌아가자."

[예. 지시를 이행하겠습니다.]


해수면에 도달하자 얼굴을 감싸는 부위가 해체되더니 날개의 형태로 변했다. 추진체가 다시 마나를 연소하며 유화의 몸을 공중으로 띄워올렸다.


촤아악!


그런 유화를 끝까지 쫓아온 거수의 다리가 바닷물을 흩뿌리며 공중을 헤집었다.

수면에서는 아까의 그 샛노란 눈동자가 흐릿하게 비치고 있었다.


"성공한건가?"

[그렇습니다. 분석하건대 저런 행동은 거수가 위협을 느꼈을 때 주로 보이는 행동입니다.]

"중간에 나를 포기하고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거수들에게 그런 사고가 가능했다면 육상에 상륙한 뒤 죽을 때까지 전진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 그것도 그렇지."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다리가 하나 더 유화를 노리고 솟구쳐 올라왔다.


[안전 거리를 확보하겠습니다.]


세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뻗어져 나올 촉수까지 닿지 못할 정도로 고도를 높였다.

빙하가 내려다 보일 정도로 높은 위치. 그곳에서 유화는 물밑에서 유영하는 샛노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거수.

인간이 인간을 상대하기 위한 병기로 이겨내지 못해, 아예 새로운 병기를 창조하게끔 만든 적.


구시대의 산물이었던 전함을 부활시키고 거대로봇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적.

그 또한 게이트 너머에서 괴물이 되었으나 여전히 사람의 몸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다른 어떠한 이유도 아니었다. 거대한 덩치와 육중한 무게. 그 몸뚱이에서 나오는 힘. 그것이 놈들의 무기였고, 사람은 그 무기에 맞서기엔 너무 작고 약했다.


"빨리 가자. 저게 나를 앞지르겠어."

[알겠습니다. 보스.]


유화의 눈에 신록의 평원이 들어왔다. 검은 핏물. 새로운 초록으로 자라날 양분으로 가득 찬 거수의 피가 흩뿌려진 평원 위에, 인간이 거수에게 맞서기 위해 만든 무기가 있었다.


[보스.]

"왜?"

[허가해주신다면 제가 직접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슈트를 변형해보겠습니다.]

"상관없어. 그런데 왜?"

[맨몸으로 거수의 시선을 끌어내는데는 원거리 무기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 알아서 해봐."


유화가 그렇게 대답한 뒤에도 한동안 음성이 연결되어 있을 때 흐르는 특유의 전자음이 흘렀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걸까. 유화가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앙!

수천 톤의 괴물이 일으키는 소리마저 지워버리는 굉음과 함께 바다에서 물보라가 튀었다.


[포격입니다. 북극 수비대가 투사한 것입니다.]


세나의 말대로 멀리서 북극 수비대의 메카 한 대가 검은 핏물을 밟은 채 새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메카의 어깨에 달린 거대한 포. 470mm에 달하는, 전함에 다는 포를 그대로 개조해 달아놓은 거포였다.


퍼어엉!

그런 포격 여러 발이 바다를 향해 쏟아졌다. 유화를 노리고 뻗쳐오던 촉수가 포탄에 직격당해 떨어져 나갔다.


"문어가 질기네···."

[은유에 대한 데이터를 하나 더 학습했습니다.]

"넌 나한테서 농담하는 걸 제일 많이 배우는 것 같다?"

[긴장을 푸는데 제일 좋은 수단이라고 판단한 까닭입니다.]


철푸덕!

어느새 유화에게서 북극 수비대의 메카들을 향해 눈알을 굴린 거수가 바닷물을 튀기며 평원에 상륙했다.

입이 없기 때문일까. 포효를 터뜨리는 다른 거수들과 달리 놈은 다리를 꾸물대며 머리를 크게 부풀렸다가


[보스, 통신이 두 곳에서 들어옵니다. 안드로프 수비대장과 이루미 파일럿입니다. 연결할까요?]

"안드로프는 됐고 이루미 연결해줘."

[연결하겠습니다.]


거수를 해변까지 유인해왔으니 그의 역할은 끝났다. 통신이 연결되는 동안 세나는 슈트를 조작해 전투 지역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유화는 그곳에서 북극 수비대와 거수의 전투를 지켜보며 통신에 귀를 기울였다.


-선배, 아니, 닥터에요···?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물보라가 솟구쳤다. 먹물 터지는 소리와 함께 땅에 커다란 얼룩이 남았다. 북극 수비대의 집중 포화를 받은 거수는 점점 힘을 잃어갔다.

유화는 전투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 작은 메카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었다.


-어···.


마찬가지로 손을 흔드는 작은 메카. 세이버들이 운용하는, 전투보다는 구조와 기동에 특화된 메카였다.

허공에서 날아다니면서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드는 유화를 보고 저도 모르게 손을 흔든 모양이었다.


-저, 출격할 뻔해서 선배님께 무슨 일.

"작전 중이야."

-아. 네. 그 닥터한테 무슨 문제라도 생긴 줄 알고 심장이 지금 막 제멋대로···.

"작전 중에 개인 통신으로 사담하게 되어 있나?"

-아···!

"장난이야. 아무 문제 없어. 메카 아직 안왔다고 알고 있는데, 오자마자 바로 탑승한 건가?"

-네···.


하긴, 거수를 끌고오겠다고 하고서 맨몸으로 나섰으니 세이버가 출격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섹터 1과 2를 통과해야만 섹터 3에 도달할 수 있는 지형 구조상 이 해안에서 거수와의 전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듯 했다.


"미안하네. 출격 시킬 일 없게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그, 아직 기지 벗어난 거 아니니까 출격 안한 게 아닐까요···?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그렇게 생각하겠습니다!


기이잉.

세이버가 짧은 팔을 뻗어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보스. 통신이 계속 들어옵니다.]

"안드로프?"

[네. 지금 저희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닥터!"


멀리서 누군가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유리 안드로프였다.

그는 헬기 포트 위에 서서 방방 뛰며 손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대단합니다! 진짜로 거수를 유인해 오다니!"


안드로프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작전 브리핑을 할 때의 의심 어린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존경의 빛이 역력했다.


"워록-2가 방금 막 격납고에 들어왔습니다! 부가 무장 역시요! 한 번 구경하신 같이 보드카나 한 잔 하지요! 사죄의 뜻으로 제가 사겠습니다!"


북극의 찬바람이 뺨을 스쳤다. 바이퍼와 이런 날씨에서 보드카를 걸쳤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의 추억을 되새길겸 안드로프와 어울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작가의말

슈피텔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9.10(오늘)개인사정으로 11시에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3 24.09.10 109 0 -
공지 매일 오후 8시 10분에 연재됩니다. 24.08.21 4,517 0 -
49 극한 NEW +2 9시간 전 599 27 11쪽
48 극한 +7 24.09.15 1,632 60 12쪽
47 극한 +3 24.09.14 2,162 73 12쪽
46 극한 +8 24.09.13 2,681 91 12쪽
45 극한 +9 24.09.12 3,207 100 13쪽
44 극한 +9 24.09.11 3,881 100 12쪽
43 극한 +4 24.09.11 4,278 113 12쪽
42 극한 +10 24.09.09 4,856 118 12쪽
» 극한 +15 24.09.08 5,557 129 12쪽
40 극한 +10 24.09.07 5,911 148 13쪽
39 북극 작전 +22 24.09.06 6,162 157 14쪽
38 북극 작전 +12 24.09.05 6,051 148 13쪽
37 북극 작전 +4 24.09.04 5,955 125 13쪽
36 북극 작전 +4 24.09.03 6,107 118 13쪽
35 북극 작전 +4 24.09.02 6,294 123 16쪽
34 북극 작전 +6 24.09.01 6,456 134 14쪽
33 북극 작전 +6 24.08.31 6,609 138 14쪽
32 북극 작전 +7 24.08.30 6,736 138 12쪽
31 북극 작전 +4 24.08.29 6,928 145 14쪽
30 슈퍼스타 +7 24.08.28 7,003 155 13쪽
29 슈퍼스타 +6 24.08.27 6,991 139 15쪽
28 슈퍼스타 +8 24.08.26 7,049 144 14쪽
27 슈퍼스타 +10 24.08.25 7,344 140 13쪽
26 슈퍼스타 +3 24.08.24 7,440 149 12쪽
25 슈퍼스타 +6 24.08.23 7,477 144 13쪽
24 변화 +11 24.08.22 7,499 146 14쪽
23 변화 +6 24.08.21 7,575 144 12쪽
22 변화 +3 24.08.20 7,752 15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