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급 파일럿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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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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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작전

DUMMY

32시간. 하루 하고도 3분의 1을 시뮬레이션에 쏟아부었다.


게임에 미쳐서 살았을 때도 8시간이나 붙잡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마우스와 키보드를 가지고 앉아서 하는 게임이 아니라 전신을 쓰는 VR 게임이라서 그 이상 활동하는 게 불가능했다.

토너먼트가 연속으로 있는 대회에 출전하고 나면 온몸이 뻐근했었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매를 걷어 팔뚝 한가운데에 난 비늘을 내려다보았다. 아테나가 시키는 대로, 말도 안 되는 어려운 조건의 시뮬레이션들을 수행해내고도 땀방울이 조금 맺힐 뿐인 몸이 된 것은, 자신이 평범한 인간과는 거리가 멀어진 까닭이겠지.

상관없다. 그걸로 빌어먹을 괴물 놈들을 잡아 죽일 수만 있다면.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가 시뮬레이터를 통제합니다. 동기화 절차를 시작합니다.]


글과 문장으로 소통해오던 ‘아테나’의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헬멧에서 나오는 시뮬레이터의 기본 음성과는 다소 다른 목소리. 유화는 그 목소리에서 미세한 떨림을 느꼈다.

거의 티 나지 않는 미세한 떨림. 생존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게이트 너머의 괴물들에게서도 이런 떨림을 느낀 적이 있었다.


감정의 흔적.


인공 지능이자 인공 의식.

아테나가 입을 열었다.


-훈련 설정 : 파일럿, A1. 탑재 인공지능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 서울 사령부 1번 기체, 워록-2.

-전장, 빙하 지대. 가상 전장.

-거수, 뮤 등급. 코드네임 스킬라, 애트모스피어.

-거수, 람다 등급. 타-리. 카테른. 사킬.


“다섯 마리?”


그렇게 중얼거리는 것과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낮게 뜬 달이 뿜어내는 새하얀 빛이 빙하 표면에 반사되어 시야를 가렸다.

시야의 저 멀리서 오로라가 반짝이는 극지의 한가운데에서, 새카만 철갑을 두른 워록이 우뚝 서 있었다.


워록을 중심으로 사방에 가지각색의 모습을 한 거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뮬레이션을 시작합니다.


그 음성을 끝으로 목소리가 사라졌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관찰자의 입장으로 돌아서는 걸까. 유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헬멧의 디스플레이에 떠오르는 계기판의 정보들을 확인했다. 발밑이 불안정하다는 지표가 눈에 들어왔다. 빙하가 생각보다 더 얇았다.


‘이런 것까지 대처하나 보겠다는 건가.’


1만 8천 톤짜리 메카와 약 1만 톤에 달하는 거수가 다섯. 빙하 위에서 섞이며 날뛰다 보면 깨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얼음덩어리 산 위에 웅크린 채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거수가 하나. 놈은 거수들 중에서도 희귀한, 날개를 가진 개체였다.

빙하 아래로 빠지면 저 익룡을 닮은 거수가 날뛰는 것을 어찌할 방법이 없다. 저놈을 우선하거나, 아니면 아예 빙하 위에서 계속 버티고 서 있던가.


유화가 눈을 굴리는 것을 따라 워록의 광각 렌즈가 천천히 돌아갔다. 발아래가 위험한 빙하 지대. 움직임은 신중해야 했다.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가 경고합니다.]


사위를 둘러보던 유화의 귓가에 아테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적 개체, 6시 방향에서 접근 중. 12초 후 충돌 예상.]

“오케이.”


여기까지는 메카에 탑재되는 일반적인 인공지능과 동일했다.

오히려 말이 길어서 더 안 좋은 것 같기도. 유화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순간적으로 몸을 틀어, 발꿈치를 떼었다가 다시 붙였다.

묵직한 기계음과 함께 정강이에서 작은 앵커들이 뻗어져 나와 빙판에 박혔다. 무식하게 돌진해오는 사냥개를 닮은 거수의 박치기를 몸으로 받아내고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려 놈을 바닥에 대고 찍었다.


쩌저저적!

굉음과 함께 빙판에 처박힌 거수의 몸뚱이를 중심으로 빙하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는 괜찮다는 거지. 빙판의 강도를 확인한 유화는 앵커를 회수하고는 거리를 벌렸다. 익룡과 방금 쓰러트린 놈을 제외하면 남은 거수는 셋.

머릿속으로 어떤 놈을 먼저 제압해야 할지 계산하는 사이 아테나의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가···.]

“알아.”


9시 방향에서 람다 등급의 거수 한 마리가 유화를 향해 달려들었다. 유화는 순간적으로 왼팔을 틀어 거수의 이빨을 막아냈다.


“메카 아테나랑 인공지능 아테나랑 구분할 수 있어. 간략하게 말해.”

[···피드백을 수용합니다. 경고. 적 개체, 4시 방향에서 접근 중.]

“그래. 그렇게.”


왼팔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거수의 움직임에 유화는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오른팔의 캐논을 활성화했다. 거수의 몸통에 캐논을 처박은 유화는 그대로 버튼을 눌러 캐논을 발사했다.


콰앙!

폭음과 함께 팔을 물고 늘어지던 거수의 뱃거죽이 터져 나가며 붉은 피와 함께 내장이 쏟아졌다. 직후 유화는 다음 거수를 상대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파일럿의 사각지대를 보완합니다.]


아테나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가 반전되었다. 정면으로, 아니 측면에서 달려드는 거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메카의 후방에 달린 광각 렌즈에 비치는 시야를, 유화가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화면을 전환한 것이다.


“좋아. 잘했어.”


짤막한 칭찬을 입에 담은 유화는 그대로 오른팔을 반대쪽으로 돌렸다. 이미 초탄을 발사한 캐논은 뜨겁게 달궈져 당장이라도 다시 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콰앙!

플라즈마 캐논이 터져 나오며 거수의 머리의 절반이 날아갔다. 발전기의 동력을 왼팔로 전환한 유화는 몸을 크게 틀어 반만 남은 머리를 강타했다. 거수의 사체가 힘없이 허물어진 순간, 아테나가 말했다.


[적 개체 2기를 무력화했습니다. 최초 조우한 개체가 다시 전투 상태에 돌입했고, 나머지 개체 2기 역시 전투 상태에 돌입했습니다. 주의하십시오.]


눈앞의 화면이 세 개로 갈라졌다. 사냥개를 닮은 거수와 날개 달린 거수, 그리고 나머지 하나. 총 세 개의 거수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화면 구석에 떠오른 계기판엔 각 화면에 비치는 거수들의 핵심적인 정보를 담고 있었다.


‘인공 의식.’


메카에 탑재되는 단순한 인공지능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능.

의견을 제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직접 전투에 관여하는 게 아닌 보조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긴 하지만 분명히 스스로 의식을 가지고 한 행동. 조금 놀라웠고, 많이 흥미로웠다.


철컥.

잡념을 털어낸 유화가 다시 동력을 캐논으로 전환했다. 플라즈마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며 쏘아낼 준비를 끝마친 순간, 아테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준 보정이 가능합니다. 도움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한 번 해봐.”

[알겠습니다. 타격 목표를 람다 등급 개체, 사킬로 고정합니다.]


오른팔의 캐논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냥개 거수에게서 조금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었다.

어차피 시뮬레이션. 빗나가는 것도 학습하면 다음엔 더 나아질 테다. 유화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캐논을 쏘아냈다.

그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거수가 빙하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퍼엉!

시뻘건 플라즈마 캐논이 뻗어져 나가며 뛰어오른 거수를 공중에서 정확히 요격했다. 조금 놀란 유화가 눈썹을 치켜올리는 사이 처참하게 터져 나간 거수의 사체가 빙하에서 미끄러졌다.


[아까의 타격으로 외피가 약해져 있어 캐논이 치명적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담담한 목소리로 분석 결과를 중얼거리는 아테나.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원래 자신이 쏘려는 대로 쏘아도 맞긴 맞았을 테지만, 이 정도의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을 것이다. 조금 똑똑한 소프트웨어 수준에 머무르는 여타 인공지능과는 확실히 다르다.


‘심지어 이게 처음이라는 건가.’


데이터를 많이 분석하고 학습을 반복할수록 개선되는 성질을 가진 인공지능의 특성상 앞으로 더 개선될 것이다.


[경고.]


바다 거인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의 4.5세대 메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시야를 제공하고 무기의 조준 보정까지 해주는 인공지능.


[적 뮤 급 개체, 스킬라 접근 중. 16초 후 충돌 예정.]


가변형 무장을 다루는 5세대 메카닉 아테나.

그 메카와 여기서 더 발전한 ‘아테나’를 갖춘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을까.

고양감으로 손이 떨려왔다. 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공중에서 덮쳐오는 익룡 형 거수를 향해 왼팔을 뻗었다.


[동력을 전환합니다.]


아테나가 알아서 동력을 오른팔의 캐논에서 왼팔로 돌렸다. 유화가 반격할 때 동력이 공급되는 부위를 전환해 거수보다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을 학습한 모양이었다.


터억!

거수의 부리가 콕핏을 꿰뚫기 직전 워록이 놈의 목을 낚아챘다. 유화는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어 거수를 공중에서 끌어내려 빙하 표면에 처박았다.


쩌저저적!

빙판이 갈라질 정도로 강한 충돌. 날기 위해 동급의 거수보다 훨씬 가벼운 거수에게는 어마어마한 위력의 타격이었다. 사지를 움찔거리며 일시적으로 기절한 놈을 보며 유화는 캐논암을 가동했다.


[경고. 빙하가 약해져 있습니다. 캐논을 사용하면 빙하가 부서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관없어. 난 물속에서도 잘 싸우거든.”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빙하가 갈라졌다.


“저 아래에서도 합을 맞춰보자고.”




#




마지막 거수를 처리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속에서 캐논암의 위력이 줄어들고 육탄전에도 제한이 생겼지만 그건 거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존재 자체가 흉기나 다름없는 워록-2와 수중전 경험이 많은 유화에게 시뮬레이터 속 거수 한 마리를 처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뮬레이션을 종료합니다.]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유화는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한 까닭에 인상을 찌푸렸다.


[시뮬레이션 데이터의 학습을 완료했습니다.]

“직접 겪을 실전은 이것보다 더 어려울 거야. 이번 데이터는 참고만 해.”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가 의문을 표시합니다. 시뮬레이션 데이터와 실전 데이터 사이의 간극 때문입니까?]

“시뮬레이터가 북극에 대해 가진 데이터 자체가 부족한 것 같아. 들었던 거랑 달라.”


허태수는 사람의 근육이 차가운 곳에서 수축하듯 메카 역시 북극해의 차가운 바다 아래에서 움직임이 느려졌다고 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은 그렇지 않았다. 계기판에 찍힌 온도는 영하 30도를 오갔으나 허태수의 말처럼 움직임 자체에 제한은 없었다.


“메카 자체는 영하 수십 도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어. 당장 강원도도 겨울만 되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니까. 그런데 북극해에서는 메카 활동에 제한이 있어. 시뮬레이터만큼 수월하게 움직이진 못할 거야.”

[이해했습니다. 피드백을 수용합니다.]

“그래. 얼마나 더 해봐야 할 것 같아?”

[21가지 조건에서 33개의 훈련 설정을 준비했습니다.]

“오케이.”


유화는 그렇게 대답하고선 헬멧을 살짝 들어올려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냈다.

그 사이 아테나는 알아서 시뮬레이터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다음 훈련 설정이 준비되는 사이 유화가 아테나를 향해 말했다.


“그런데, 내가 널 어떻게 부르면 될까?”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가 의문을 제기합니다. 지시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네가 스스로 지칭할 때 일일히 아테나 프로젝트의 아테나라고 하면 너무 말이 길어지잖아. 메카 아테나랑 인공지능 아테나를 구분할 수는 있는데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부르면 불편할 거야. 내가 널 아테나 말고 다른 이름으로 부를까 해서.”

[···지시를 이행하겠습니다.]


훈련 설정이 조정되던 화면이 멈추었다. 나름 괜찮은 이름을 짓기 위해서 고민하고 있는 모양.

5분이 넘도록 대답이 없다. 유화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세나(Thena)가 좋을 것 같습니다.]

"세나?"

[아테나와 연관성이 있으면서도 구분할 수 있도록 지었습니다. 괜, 찮으십니까?]

"괜찮아. 좋네. 이름 잘 지었어."

[감, 사합니다.]


대답을 들은 유화는 헬멧을 다시 썼다. 시뮬레이센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그를 향해 아테나가 말했다.


[파일럿님에 대한 호칭도 새롭게 지어도 되겠습니까?]

"나?"

[네. 코드명인 A1으로 호칭하면 헷갈릴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롭게 지어도 되겠습니까?]

"그래. 지어봐."


아까와 같은 정적이 흘렀다. 조금 더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세나가 천천히 말했다.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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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북극 작전 +6 24.09.01 6,456 134 14쪽
33 북극 작전 +6 24.08.31 6,609 138 14쪽
32 북극 작전 +7 24.08.30 6,736 138 12쪽
31 북극 작전 +4 24.08.29 6,928 145 14쪽
30 슈퍼스타 +7 24.08.28 7,003 155 13쪽
29 슈퍼스타 +6 24.08.27 6,991 139 15쪽
28 슈퍼스타 +8 24.08.26 7,049 144 14쪽
27 슈퍼스타 +10 24.08.25 7,344 140 13쪽
26 슈퍼스타 +3 24.08.24 7,440 149 12쪽
25 슈퍼스타 +6 24.08.23 7,477 144 13쪽
24 변화 +11 24.08.22 7,499 146 14쪽
23 변화 +6 24.08.21 7,575 14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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