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미친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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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정강
작품등록일 :
2024.08.02 21:04
최근연재일 :
2024.09.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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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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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등장

DUMMY

몬스터는 모두 씹앰창으로 개명해야만 한다.


나의 오랜 지론이다.




***




어머니 없이 태어나 세계를 활보하는 놈들이 있다. 우리는 그걸 고아라 부르지 않는데,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엄마가 없기 때문이다.


“애미!!”


즉 놈들은 생명의 뱃속에서 잉태되는 것들이 아니다. 그렇기에 놈들은 생명이 아니다.


지구가 삼류 아포칼립스 소설마냥 변모한 지 칠 년. 이 이상천마저도 나이가 들어 스물일곱이 되었다.


“나도 늙은 건가.”


물론 아직 이십대라 할 수 있는 말이다. 진짜 늙으면 이때의 나를 욕하겠지.


아무튼 인류의 문명을 파괴하는 몬스터에게 엿을 먹이기 위해, 나는 오늘도 신사도를 지킨다. 아니, 기사도인가? 모르겠다. 일단 넘어가자.


나의 사랑스런 서류가방 안에는 접이식 탁자와 홍차 세트가 잠들어 있다. A급에 준하는 헌터로서 홍차잎을 돌멩이에 가깝게 압축해놓았는데, 덕분인지 홍차가 썩어서인지 차에는 똥맛이 난다.


물론 난 굴하지 않는다.


생존자 삼백 명이 모여있는 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은 이미 예전에 무너졌다. 작게 남은 공동에 어렵사리 삼백 명이 모여 사는데, 그들의 생명줄은 나와 병신헌터 한 명이다.


즉 헌터 두 명이 삼백 명 떨거지를 책임진다.


그들이 앉아있는 지하주차장의 입구는 좁게 뚫려 있지만 몬스터가 오지 않아 신사의 티타임을 보낼 수 있다. 나는 언제나 그 구멍 앞에서 탁자를 편다.


물을 데울 수는 없어서 사실 홍차가 우러나는지 안 우러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게 중요할까? 나에게는 신사의 마음이 있는데?


찬물에 담긴 홍차잎을 바라보다가 단숨에 홍차를 처먹었다. 홍차잎도 씹어 삼키는 걸 잊지 않았는데, 맛은 물론 없다.


“똥맛이로구나.”


원래도 홍차잎을 먹는 걸까? 아니라면 남은 잎들은 어떻게 하는 거지?


진지한 고민과 평가 후엔 뒷정리가 있다. 열었던 홍차 뚜껑을 닫고 탁자를 접는다. 가방에 넣고 옆에 세워둔 지팡이도 주워 들고 안쪽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길에는 놀라울 만큼의 무시가 있는데, 그 중 일부는 나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이유는 아마, 음, 나에 대한 선망의 표시가 아닐까?


“저 미친 인간···.”


어디선가 욕설이 들려온다. 나는 신사다운 마음가짐을 발휘하여 그 욕설의 대상을 애도했다. 얼마나 깊은 원한이 쌓였기에 저런 말을 할까. 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


저 멀리 내가 정수기라 부르는 놈이 보였다.


나와 반대로 고작 C급 헌터이며 대신 초능력을 가진 김정수는 인기가 대단히 많다. 놈의 초능력이 화려하기 때문이리라. 그렇지만 신사는 질투하지 않는다.


길게 늘어진 프록코트를 정리하고 아무도 없는 구석에 앉았다. 지금은 정수기 같은 정수 놈이 순찰을 돌 때라 나는 놀아도 좋다.


그다음 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책의 제목은 ‘신사의 품격에 대한 882가지 팁’이다. 제목처럼 매우 두껍다.


신사의 상징인 단안경과 망토가 없지만 나는 빼입은 양복과 중절모, 그리고 소드 스틱을 겸하는 지팡이에 만족한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신사가 될 수 있다.


“형님!”


책을 읽다가 졸았는데 사실 존 게 아니라 잠을 잔 거다. 그 둘은 분명히 다르다. 그 차이를 설명하자면···.


“형님! 뭐 하십니까!”


정수기 자식. 뭐가 좋다고 나를 부르는 것이냐.


“왜?!”


질문과 외침, 불만을 한 단어에 담아 보낸다. 물론 정수기에 불과한 놈이 그 깊은 뜻을 알아먹을 리 없다.


“사냥 좀 해오십쇼. 그 바보 같은 책 좀 갖다 버리시고.”


이놈이 나의 신사도에 불만을 가진 지는 한참 되었기에 나는 내색하지 않고 책을 내려놓았다. 이제는 분노조차 끓어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숨겨둔 철제 금고에 책과 가방을 넣고 잠갔다. 그걸 보던 정수가 한 마디 했다.


“형님, 그 금고 안에 시체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요. 제발 미친짓 좀 그만하면 안 되겠습니까?”


가벼운 무시는 신사의 덕목이다. 예컨대 수준 떨어지는 자와 말하지 않는다. 신사의 철칙이다.


사냥은 전부터 신사들의 유흥이었으므로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불만을 가지진 않는다. 나는 내 옷의 맵시를 점검한 뒤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에휴, 저 미친 새끼···.”


누군지 모를 인물의 욕설이 또 들려왔지만 무시한다. 다시 말하지만 신사는 수준 떨어지는 자와는 말도 섞지 않는 법이다.


본래 차가 드나들던 주차장 입구를 지나 지상에 올라오자 신성한 공기가 나를 맞았다. 주차장 천장에 뚫린 구멍에서 들어오는 햇살과 공기에 이 신선함을 비교할 순 없다.


“오늘도 신사 숙녀 여러분의 안락한 여생과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칼을 빼 들고 나는···.”


열심히 나의 사명을 나열하며 길을 걷는다. 지하에는 비축 식량이 제법 있지만 몬스터 고기는 그 식량을 아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A급 헌터에게 저레벨 몬스터 따위는 개미나 마찬가지다.


사방에 널린 몬스터를 잡아먹는 건 상당히 효율이 좋다는 뜻이다.


나는 게이트 너머의 멸망한 세계에서 얻은 소드 스틱을 점검했다. 파괴 불가라는 유일한 능력을 지닌 이 아티팩트는 나의 자랑이다.


저 멀리 멧돼지를 닮은 몬스터가 보였다.


“흠···.”


칠 년 전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가 넘어오기 시작한 뒤로 화기는 모두 힘을 잃었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미사일 등을 거의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최초의 헌터들이 냉병기를 쓴 이유도 그것이다.


이후 인류 유일의 S급 헌터였던 류천진이 최초로 신체의 한계인 ‘리미트’를 해제해 S급 몬스터를 도륙했고, 그 후로 강함의 한계를 부순 인물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신체의 한계가 사라진 인물들과 함께 초능력도 그때 나타났다.


하지만 S급에 준하는 힘을 가진 자는 없었다. 리미트는 단련을 통해 강해질 수 있는 한계였기 때문에 평소에 단련하지 않던 자는 힘이 별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인간의 극한에 서 있던 류천진만이 S급이 되었다.


류천진은 미국 어딘가에 나타난 초대형 게이트와 함께 실종됐다. 그가 최초로 게이트를 닫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 후에 뒤늦게 S급에 오른 자들은 누구도 게이트를 닫지 못했다. 헌터의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했고 결국 인류는 멸망했다.


그게 저 몬스터 놈이 거리를 활보하는 이유다.


몬스터를 사냥할 헌터가 없다.


다행히도 저 멧돼지 자식의 등급은 내가 알기로 C. 손목 스냅만으로 사냥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야이 앰창아!!”


아차. 신사도를 잊었다.


하지만 욕설은 확실히 효과가 있는지 놈은 나를 돌아보더니 곧 돌진하기 시작했다.


“끼이이이익!!”


몬스터들은 성대가 없는지 모두 이상한 소음을 낸다. 곧 지팡이로 위장하던 나의 얇은 검이 놈의 소음을 끊어냈다.


돌진을 피하며 목을 노려 한 번. 길게 벤 자국이 실선으로 새겨지는 듯하다가 머리가 분리되었다.


키익!


쿠웅···.


높이만 3미터인 거체가 쓰러지자 대지가 울리는 듯했다.


나의 검은 레이피어에 필적할 정도로 얇지만 절대 휘지도 부러지지도 않는다. 삼백 톤까지도 간단히 버텨 낸 전과가 있다.


내 목표는 언젠가 재건될 사회의 가장 큰 건물 기둥에 이걸 박아 넣는 것. 건물의 무게를 집중시켜도 쉽게 견뎌내리라.


우산처럼 끝이 굽은 손잡이를 잡고 막대기처럼 생긴 칼집에 검을 넣는다. 피는 조금도 묻지 않았다.


나는 놈을 근처에 숨겨두고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 삼백 명을 먹여 살리려면 몇 마리 더 잡아야 한다.




몇 톤 분량의 사냥감을 끌고 돌아오자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밝아졌다. 어차피 매일 있는 일이긴 하다.


“바비큐나 해 보아라, 정수기야.”


김정수는 물을 싸지를 것 같은 이름과 달리 불꽃을 다루는 초능력자다. 놈이 내가 적당히 손질해 온 고기를 해체하고 불로 굽기 시작했다.


치익-


삽시간에 사방에 좋은 냄새가 퍼진다.


“형님, 하나 먼저 받아가십쇼.”


나는 살덩이 하나를 먼저 받아들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헌터가 있는 집단은 이런 식으로 그럭저럭 먹고 산다.


식사를 마치고 책을 꺼내려 할 때였다.


“형님.”


정수가 나를 불렀다. 그가 말했다.


“이번 사냥에 다섯 시간이 걸리셨습니다. 먹을 만한 몬스터들이 안 보인 거지요?”


질문의 의도를 이해했다. 내가 되물었다.


“근거지를 옮기자고?”


“예.”


답은 바로 나왔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조금 더 버틸 만해. 최대한 뽕 뽑고 가야지.”


“예···.”


정수는 조금 걱정스러운 눈빛이었지만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직 먹을 게 씨가 마른 건 아니다.


그렇게 이 주차장에 도착한 지 백두 번째 날이 지나갔다.


다음 날.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어제 남은 고기로 식사를 하고 홍차를 마신다. 정수와 돌아가며 순찰을 한다. 그게 백 번이 넘게 반복된 이곳에서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생존자들 사이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독감인 것 같습니다.”


생존자 중 한 명이 전한 말이다.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하루만에 여덟 명이나 발견됐다. 전염병은 심각한 문제이기에 곧바로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남은 약국이나 병원이 없을 텐데요···.”


정수가 고민하며 말했다. 나는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다른 생존자들을 만나봐야겠다.”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걸 내줄까요? 우리는 가진 것도 없는데···.”


“일단 가보긴 해야지. 우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상류층의 예의가 아니냐.”


“아, 예···.”


정수도 나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을 보니 마음이 충만해졌다.


“그럼 너는 여기 남아라. 사람들을 지켜줘야지. 내가 다른 무리를 찾아보마.”


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속 이동이 가능한 내가 길을 떠나는 게 맞았다.


한국에는 제법 생존자 무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인구 대비 헌터의 비율이 높기 때문. 나는 그 날 바로 준비를 하고 주차장을 떠났다.


“잘 다녀오십쇼.”


정수는 웃는 낯으로 날 배웅했다. 그가 말했다.


“형님 돌아오시면 바비큐나 합시다. 저 양념 숨겨 놓은 거 있어요.”


“씨발놈! 플래그 세우지 마라!!”


욕설은 신사도에서도 용인해주지 않을까? 그냥 해 본 생각이다.


나는 그렇게 찰나의 결정으로 길을 떠나게 되었다. 나의 보물인 책과 가방은 금고 안에 잘 보관되어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때 떠난 게 문제였다. 애초에 정수를 보내거나 길을 떠나질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여정을 시작하자마자 등장한 앰창련 무리는 나의 마음에 분노를 지폈고 나의 결정을 되돌아볼 수 없게 했다.


그게 내가 이 세상이 지옥임을 다시금 깨닫게 된 원인이다.


설마, 지난 7년까지의 공격은 모두 척후병들의 간보기였음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전 인류의 S급 헌터가 전멸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우 쒰!!!"


길을 떠난 지 두 시간, 나는 하늘이 열리고 쏟아져나오는 운석들을 목격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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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호상 24.08.28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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