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미친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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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정강
작품등록일 :
2024.08.0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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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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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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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장상

DUMMY

우리가 습격당한 이유는 고가치의 장비 때문이었다. 우리가 몬스터에 당한 것으로 위장하면 정부와 대립할 일도 없으니 나름 계산을 거친 판단이었다.


적들에게도 감지계 능력자가 있었다고 하니 우리의 전력을 얕보기엔 충분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너무 고차원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감지가 어려운 법이다.


“미친놈은 아무것도 읽을 수 없지.”


김정진이 뭐라고 했지만 내 말이 더 정확하다. 나는 아직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한 동료들과 함께 피난소로 귀환했다.


적당한 휴식과 적당한 포상이 기다렸다. 나는 팀원들과 함께 회의실에서 사람을 기다렸다.


“홍차, 최대한 많이.”


내가 포상으로 요구한 항목이다. 근래 들어 이토록 기쁜 적이 없다.


나는 내게 배정된 아파트에서 홍차잎을 씹으며 시간을 보냈다. 원래라면 신사의 덕목에 관한 책을 읽었겠지만 그 책은 운석과 함께 사라졌으므로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의 내 거취에 대해 생각했다.


이대로 산다면 망한 세상에서 몬스터나 잡다가 언젠가 죽을 것이다. 세상이 재건되는 걸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니 확률이 아주 높다.


싸움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싸워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다음 임무나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의실에 모이게 된 건 이틀 뒤.


김정진은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가 말했다.


“그날 우리가 마주했던 인면수 종류의 몬스터의 출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그놈들은 평균 등급이 높아. 긍정적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김정진이 다음 말을 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불길한 느낌이 엄습함과 동시, 최민정이 물었다.


“왜, 뭔데? 어차피 우리 상황이 여기서 더 나빠질 거 있어?”


김정진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우리는, 제17피난소 공격을 준비하는 척후다.”


“!?!?”


놀란 나와 다르게 팀원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하나같이 씁쓸한 미소를 짓거나 체념한 표정이었는데, 그들은 이미 이 상황은 예견한 듯했다.


김정진이 상황을 모르는 내게 설명해줬다.


“이상천. 이런 명령이 내려온 게 이상하게 여겨질 거다.”


김정진이 나를 똑바로 보았다.


“정부의 군사조직이 사조직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건 제법 오래된 일이다. 각 피난소 지부들은 정부 본진과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됐고 지원은 멈췄다.”


그가 계속 말했다.


“식량과 물자가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벌써 피난소 간 전쟁이 시작된 장소들도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가 무너지기 시작했군.”


“반말하지 마라. 그나마 위안이 되는 사실은, 17피난소는 이미 여러 차례 피난소들을 공격한 주범이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노예가 되었고 피해 측 수뇌부는 고문당해 죽었다.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뜻이다.”


김정진이 마지막으로 팀을 돌아보며 한 마디를 했다.


“이번에도, 살아 돌아오자.”


그렇게 그날의 회의는 끝났다.




나는 일개 대원이기에 팀장급 이상만이 참석하는 고위급 회의에 참가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A급 헌터라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번 작전에 대해 아무런 발언권도 없다는 뜻이다. 나는 졸지에 민간인을 죽여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두 번이나 처하게 되었다.


물론 적측 수뇌부에 대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그들은 살려 둘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들을 공격해 주살하는 과정에서 민간인 피해도 엄청날 것이다.


따라서 나는 독단적인 판단을 내렸다.


‘내가 먼저 친다.’


그 17피난소라는 곳을 찾아 수뇌부와 전투 인력만 죽이고 돌아온다. 그게 나의 신사도가 내린 결론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위대한 생각은 시작되기도 전에 무너지고 말았다.


“모든 작전 중지 명령이 내려왔다. 서울 피난정부 본진과 연락망이 수복되었다.”


정체모를 기술과 게이트 너머의 아티팩트를 이용해 고장난 연락망을 고쳐냈다는 것.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현재 서울에서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정부 세력과 비정부 민간 세력이 전쟁을 시작했다. 각 피난소는 전투가 가능한 인선을 추려서 보내야 한다.”


이런 상황에 정부 명령이 무슨 소용이겠냐만은 전쟁이 정부 측 승리로 끝날 경우 돌아올 보복은 감당이 안 된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인력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베타 4팀, 베타 3팀이 파견되기로 결정났다.”


가장 쓸모없는 두 팀이 지원 병력으로 정해진 것은 당연지사. 김정진의 수심이 깊어졌다.


“사실상 생환은 불가능한 작전이다. 나는······너희가 여기서 작전을 포기하고 피난소를 떠나겠다면 도울 생각이다.”


듣고 있던 최민정이 말했다.


“팀장, 우리 여기 떠나 봐야 얼마 못 살아. 탈영병은 즉결처분 가능하니까. 전 피난소에 반역자로 프로필 전송될 거, 알잖아?”


김정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곧 팀원들이 한두명씩 최민정의 의견에 동의했다.


“오히려 서울 가서 정부 쪽 들어가면 살 수도 있어. 우리도 나름 해제자니까···한 명의 인력도 아까운 전쟁통에는 나름 대우받지 않겠어?”


“그냥 가요. 여기서 죽나 거기서 죽나.”


언제나 죽음을 목전에 둔 이들답게 그다지 미련이 없다.


김정진이 짧게 말했다.


“모두 동의했으니 가야겠군. 모두 준비해라. 내일 새벽 출발이다.”


나는 동의 안 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사람 취급도 못 받는 것 같다.




이른 새벽.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은 지프 두 대였다.


한 대에 팀 하나가 낑겨 앉아야 하는 상황. 각자 짐도 있었기에 자리는 더욱 좁았다.


이런 상태로 약 100km를 가야 서울에 도착할 수 있다. 좁다고 생각했던 땅덩이가 오늘따라 넓게만 느껴졌다.


“그럼, 출발.”


짧은 말과 함께 지프 두 대가 전장을 향해 떠났다. 나는 앞 차에 앉은 베타 3팀 팀원들을 보다가 홍차를 홀짝 마셨다.


덜컹!


차가 흔들렸고, 얼굴에 홍차를 쏟았다.


“니미!!!!”


나의 외침에 앞 차에서 몇 명이 돌아보고 4팀 팀원들은 킥킥거렸다.


애석한 일이다.


서울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100km나 되는 거리 사이에 어떤 세력이 있는지는 피난소도 알 수 없어서 우리는 사실상 사지를 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딘가에서 약탈자 무리나 거대 세력이 등장해 우리를 공격해도 이상할 게 없다.


내 뛰어난 시력으로 보건대 앞 차에 탄 3팀은 상당히 긴장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우리 팀은 다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달렸다. 게이트 사태 이전의 유명했던 가요들이 한 번씩은 나왔다.


원래부터 분위기가 이랬나?


상황이 위험할수록 정신줄을 놓는 모양이다. 나는 품위를 지키기 위해 눈을 감고 감상했다.


“이상천 개새끼!!”


“병신새끼!!!”


“미친놈!!”


감미롭다.




첫 번째 공격이 시작된 것은 약 삼십 분이 지났을 때였다. 도로가 거의 망가져서 멀리 돌아가야 했는데 벌써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멸망 전이었다면 1시간만에 갈 거리를 2시간에서 길게는 3시간 움직여야 갈 수 있다. 각국 정부가 몬스터에 대한 최후의 발악으로 미사일을 열심히 날려 준 덕분이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방이 폐허다. 초록색 생명의 기운은 작은 점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당연시된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고작 7년이란 시간이 지구의 생명을 부정할 만한 시간이란 말인가?


공격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시작되었다.


콰앙!!


멀리서 날아온 것은 다름아닌 포탄이다. 게이트가 등장하고 기계들이 망가지기 시작한 지 7년. 인류가 일부 망가진 기계들을 고치기 위한 방법을 찾을 시간으로는 충분했다.


“꺾어!! 5시 방향에 포탄!”


최민정이 외치며 자신의 무기를 들었다. 하급 아티팩트를 이용해 만든 총기다. 이름은 들었는데 까먹었다.


콰앙!!


멀리 보이는 적들을 향한 대응사격이 이어졌다. 무식하게 큰 크기만큼 위력과 사거리도 뛰어나다.


다만 적들도 만만치 않았다. 이 시기에 포탄을 발사할 무기를 갖고 있다는 건 결국 아티팩트를 이용했다는 소리. 상당한 규모의 적일 가능성이 높다.


“끼얏호우!!”


지팡이를 들고 날아오는 포탄 세 개를 쳐냈다. 동시에 직감했다.


“뭘 직감했더라?”


알 바 아니고 열심히 싸워야지. 공격은 적들의 사거리에서 벗어날 때까지 이어졌다.


다행히 적들은 우리를 쫓아오진 않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휴···.”


“시발, 뒤지는 줄 알았네.”


곳곳에서 안도의 말이 흘러나왔다. 거리가 거리라서 그런지 우리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입힌 포탄은 전무했다.


지나친 회피기동으로 차가 한 번 전복될 뻔한 걸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안심할 틈이 없었다. 숨을 돌리던 김정진이 무언갈 발견한 것이다.


“······전방 도로에 약탈자 집단.”


그의 말에 팀원들이 고개를 홱 돌렸다. 포탄 날아오는 사지를 벗어나자마자 공격이다.


약탈자들은 도로에 스파이크를 깔아두고 숨어 있었다. 전투는 불가피했다.


몬스터를 잡는 사냥꾼들은 결국 수십 명의 인간을 도륙할 수밖에 없었다.




“도착했습니다.”


두 번의 공격을 제외하면 특기할 만한 사항은 없었다. 지금 시국에 원거리 공격을 할 수단이 무척 부족하다는 사실이 한몫 했다.


화기가 멀쩡했다면 오는 길에 이미 벌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폐허가 된 서울에 들어섰다. 정부 본진이 차지한 곳은 종로구. 아직 조금 더 이동해야 했다.


“엄폐.”


3팀에서 신호를 보냈다. 우리가 종로구에 가기 위해서는 민간 단체가 장악한 한강 남쪽을 지나야 한다.


비정부 단체가 장악한 지역을 우회할 수도 있었지만 차에 기름이 부족했다. 지금 시기에 연료는 몹시 귀해서 피난소 측에서는 연료를 얼마 주지 않았다.


우리가 죽으러 가는 잉여병력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이미 두 번의 공격을 넘겼지만 고난은 남아 있었다.


“저기다! 피난소 놈들이다!!”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고요하던 폐허 한복판에 무기를 든 사람들이 나타났다. 고위계 해제자나 초능력자로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이미 무전을 날렸다.


사방에서 적들이 우리를 옥죄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탕!!


반대편에서는 심지어 총성이 들렸다.


“씨발, 총 다 망가졌잖아?! 근데 이게 뭐야!!”


정지훈이 외치며 팀을 따라 달렸다. 나도 팀을 따라가려던 그때였다.


쾅!!


내가 서 있던 곳에 웬 바위가 날아들었다. 일행의 가장 뒤편에 있던 것이 문제였다.


“이상천!!”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들을 따라가기엔 이미 늦었다.


"안녕?"


순식간에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은 두 명의 초인. 일 톤은 될 바위를 가볍게 집어던진 자들이다.


‘B급 이상, 최악의 경우 둘 모두 A급.’


내가 판단의 적의 전력이다. 전력을 다한다면 이들을 뿌리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속도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적당히 상처 입고 말겠지.


하지만 내가 이대로 팀을 따라간다면 이들도 팀을 따를 것이고 신체능력이 떨어지는 팀원들은 전멸한 것이다.


따라가선 안 된다.


오른편에서 나를 가로막던 여자가 몸을 구부정하게 굽혔다. 마치 뱀 같은 눈동자가 나를 훑었다.


“이놈. 탈취한 헌터 명부에서 본 적이 있어. A급이야.”


왼쪽에 선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마스크를 써서 얼굴을 가리고 있었는데 이쪽도 눈빛이 뱀과 같았다.


“남매야? 누가 더 늙었어? 너야? 아님 너야?”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물었다. 내가 뭐라고 씨부리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여자가 나를 위협하려는 듯하기에 나도 ‘양아치 자세’를 취했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지팡이를 목 뒤에 걸쳤다.


“누가 감히 왕후장상의 씨를 가로막느냐!!!!”


왕후장상의 씨가 무슨 뜻인지는 까먹었지만 상류층을 가리키는 거겠지? 나는 일단 외치고 봤다.


“미친 새낀가?”


“죽이자. 이런 놈들을 상대해봐서 아는데 말려들면 안 돼.”


두 사람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각자 무기를 꺼냈다. 둘 모두 아티팩트를 들었다.


상황 파악은 끝났다.


“왕후장상 도망치기!!”


나는 결연하게 외치며 뒤로 뛰었다. 뛰고 보니 오늘따라 하늘이 맑았다.


“오우, 예아.”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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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호상 24.08.28 13 0 11쪽
11 마지막 오케스트라 24.08.27 15 0 12쪽
10 문제해결 24.08.26 15 0 11쪽
9 S급 24.08.23 15 0 12쪽
8 젠틀맨 댄스 24.08.22 16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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