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미친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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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정강
작품등록일 :
2024.08.0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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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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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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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귀환

DUMMY

차가 길을 따라 가는지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가는지는 자동기술법의 대가만이 알겠지만 나는 일단 차가 구불구불 간다는 걸 알았다.


당연하지만 길이 험한 것이다.


우리가 가는 곳은 인간이 죽어 변이한 좀비가 있는 곳인데, 수백 마리가 포진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솔직히 헌터 입장에서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D급 헌터라도 좀비는 한번에 여럿 상대할 수 있다. B급은 수십 마리도 상대할 수 있고 A급 이상부턴 숫자가 의미 없는 수준이다.


베타 4팀이 고급 인력이라면 이런 일에 동원될 리가 없다.


‘전부 C급 이하인가보군.’


수준이 딱 보인다. 심지어 한 명은 좀비 상대하는데 긴장한 것처럼 보인다.


예상대로 이들은 전멸해도 상관없는 더미 팀이다.


물론 이런 사실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은 신사의 덕목이다. 나는 신사도를 지키기 위해 이들을 긍휼히 여기기로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말했다시피 이곳의 좀비들은 피난소로 진격할 가능성이 있는 바. 우리는 여기서 놈들을 전멸시킨다.”


팀장의 말에 각자 냉병기를 꺼내는 모습이 사뭇 진지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똑같이 진지한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흡···.”


“저, 저기, 왜 그러세요···?”


옆에 있던 소녀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던 듯하다.


십대 중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 나는 표정을 유지한 채 말했다.


“진지는 언제나 신사한 법.”


“예?”


회심의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나는 슬픈 눈으로 표정을 바꿨다.


그제서야 소녀는 상황을 파악한 듯 내게서 멀어졌다.


그래, 나는 농담이 통하지 않아 슬프단다. 혼자 있게 해 주렴.


소녀의 태도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려던 순간, 누군가 내 어깨를 잡았다.


“형씨. 어린애 놀리지 말고 이리 오쇼. 그쪽도 등급 위조했지? 보통 우리 팀 들어오는 놈들은 그렇더라고. 우리 뒤에 잘 붙어 있어.”


누군가 보니 내게 재밌는 놈이라고 한 청년이다. 팀장 빼고 아무도 내게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기에 이름은 모른다.


다만 이렇게 말해 주는 걸 보니 야박한 사람들은 아닌 듯했다. 왜인지 나를 측은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지만.


폐건물로 들어가며 나는 그들이 왜 나를 그렇게 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리미트 해제자는 맞는 거 같은데. 결국 이 난세를 버티지 못하고 미친 모양이야.”


“불쌍한 사람이네. 지켜줘야겠다.”


그들은 나의 신사도를 모욕하고 있었다! 나는 분노에 차 돌진을 감행했다.


“으아아아아!!!!!”


나의 돌진에 그들이 기겁하며 물러섰다. 동시에 내게 말한다.


“미친 새끼야! 조용, 조용히 해! 좀비 몰려들잖아!”


“으아아아아아아아!!!!!!”


나는 더욱 크게 외쳤다. 저 멀리 좀비들이 몰려오는 게 보였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에게 오는군.”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보던 팀원들이 이제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시선이 바뀌었으니 그걸로 됐다.


그런데 저 멀리서 보이는 좀비들의 행태가 실로 처참하다. 마치 신사도를 짓밟으려는 듯 찢어진 양복을 입은 자들이 즐비했기 때문.


나는 내가 왜 고함을 질렀는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하다가 그걸 보고 깨달았다.


저놈들을 처치하기 위해서구나!


나의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나는 나의 소드 스틱을 빼 들었다.


“저거 칼이었어?!”


“도망쳐! 여기 있어 봐야 개죽음이야!”


“누가 저 새끼 좀 챙겨!!”


아비규환의 상황. 역시 이들은 내가 구원해줘야 할 불쌍한 종자들이다.


“모두 진정해라.”


나는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좀비 무리를 향해 달렸다.


캬아아아악!!


크웨에엑!


다채로운 울부짖음 사이에는 작은 슬픔이 있다. 나는 그들은 측은하게 여기며 칼을 든 손을 뒤로 당겼다.


초능력은 없지만, 신체 능력은 좀 된다.


사아악!


종이 잘리는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지는 좀비 세 마리.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신사의 품격을 위하여.”


나는 학살을 시작했다.






한 시간 뒤.


“와, 아저씨 진짜 A급이었네? 나 그렇게 잘 싸우는 사람 처음 봤어.”


“꼬라지는 왜 그러고 다니는 거야? 컨셉이야?”


질문 공세에는 의미 불명의 미소로 답해주는 게 인지상정. 나는 옷에 잡힌 주름을 체크하며 그들의 질문을 흘러넘겼다.


그때였다.


꺄아아아악!!


저 멀리서 비명이 들려왔다. 이건 분명한 사람의 소리다.


“······!”


“사람인 거 같은데?”


“가 보자!”


임무는 좀비 섬멸이지만 베타 4팀은 떨거지인 만큼 자유 행동을 해도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우리는 그 비명 소리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우리는 참혹한 것을 보았다.


전신을 뜯어먹힌 시체가 수십에 달했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그 사이에 있었다.


“으, 끄으으···.”


작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시체의 산 밑에 있어서 덜 뜯어먹혔지만 죽음에 이르는 상처다.


“기절했다가 고통으로 인해 깨어난 것 같군. 공격당한 지 얼마 안 됐어.”


팀장 김정진의 말이었다. 그는 여자의 상처를 살피더니 곧 고개를 저었다.


“이미 사망 직전이야. 보내 주자.”


그렇게 말하며 김정진은 그녀를 고통으로부터 해방했다. 잠시 그는 말이 없었다.


조금 전의 다소 코믹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없다. 시체에 익숙한 헌터들이지만 그 앞에서 웃음지을 만큼 망가지지는 않았다.


“팀장. 좀비가 될 수도 있어요. 전부 태워야 합니다.”


내게 말을 걸던 청년이다. 그의 손에는 작은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순간 정수가 떠오른다.


같은 파이로키네시스 계열의 능력. 허무하게 죽은 생존자들도 생각났다.


이제는 그들을 생존자라 부를 수 없겠지.


나는 곧 김정진의 허락에 따라 불타는 시체들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죽은 여자가 좀비가 되려는 듯 일어나다 불타 무너지고 있다.


“······우리는 돌아간다.”


김정진이 말했다. 곧 모두가 몸을 돌려 폐건물을 빠져나갔다.


돌아가는 길은 똑같이 험했지만 몬스터를 만나지는 않았다. 아, 약탈자 한 무리를 만나기는 했다.


일반인들로 이루어져 있고 구식 무기를 든 그들은 우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평화 속에서 우리는 돌아왔다.


피난소에 상처 하나 없이, 심지어 핏자국도 묻지 않은 채로 귀환하자 경비병들은 퍽 놀라는 눈치였다. 듣자하니 베타 4팀은 임무에서 멀쩡히 돌아온 적이 없는 모양.


나는 돌아오는 동안 분위기를 풀고자 이들에게 나의 신사도를 강의했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내가 실수로 노려봤던 착한 소녀만이 잠시 흥미를 보이는 듯했다.


우리는 피난소를 가로질러 기지로 돌아갔다. 시체를 보고 와서 그런지 이제야 눈에 밟히는 것들이 있다.


죽은 눈을 한 사람들이다.


몇천 쌍의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어디에서도 희망을 담은 눈길을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망가진 모양이다.




나를 버티게 한 건 나의 신사도다. 어쩌면 종교에 교리에 가까울지도 모르는 그것은 사람을 강하게 하고 눈물을 틀어막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신사도를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가끔 사람들이 공포에 떨며 죽어갈 때, 나는 그들에게 신사도를 가르치지 못한 것을 깊게 후회한다.


지금의 상황도 그렇다.


운 좋게 운석을 피해 간 피난소였지만 아무도 그 운석이 재앙의 시작이었음은 알지 못한 모양이다.


운석의 침공 이후 몬스터 발생량이 훨씬 늘었다.


무려 178%. 거의 두 배다.


이런 소식은 쩌리지만 꼴에 팀장인 김정진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최근 파견 나간 헌터 팀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중에는 A급도 있었다.”


그는 나를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팀 회의실 소파에 품위 있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S급 헌터들과 초능력자들이 공격을 받고 있어. 벌써 S급 한 명이 죽었다. 좋은 소식이 아니야.”


그의 눈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명백히 약체인 팀이 살아 돌아올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전투력을 확인하던 그의 눈은 조금 희망을 보는 듯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도 죽은 눈으로 돌아왔다.


나는 이들 중 유일하게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 있다.


“안면개그?”


옆에서 공격이 들어왔지만 잘 막아냈다. 나는 공격을 감행한 사람을 돌아봤다.


내게 장난을 걸던 청년, 정지훈이다.


“와우쒸!!! 어, 얼굴 치워!! 존나 끔찍하네! 시발!!”


그는 내 눈빛을 보더니 감동하며 도망갔다. 나는 다시 앞을 보았다.


유일한 10대인 초능력자 다혜가 나를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보았다가 놀라서 고개를 홱 돌린다.


우리의 팀장은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 역시 우수에 찬 눈빛을 유지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임무가 한참 밀린 관계로 우린 바로 작전에 들어간다. 지난 작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데다 이틀이나 지났으니 피로는 없을 거라 믿는다.”


그는 그러고는 임무가 적힌 서류를 벽에 붙였다. 글씨가 작지만 저 정도도 못 읽는 사람은 여기 없다.


-북쪽 30km지점에 좀비 대량 출현.


-저레벨 몬스터도 함께 출현. 인근에 400명 규모 민간 단체 존재.


-세를 불리기 전에 사살할 것.


-유사시 민간인 사살 허용


“베타 1,2,3,4팀 모두에게 내려온 임무 내용이고 아무도 맡지 않아 우리가 간다. 민간인도 죽여야 할 수 있으니 유의하도록.”


그 말에 분위기가 일순 굳었다. 김정진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민간인 사살의 가능성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던 것.


중세 기사도에 입각한 신사도를 신봉하는 나로서도 민간인 사살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냉혹한 신사라서 우리를 먼저 공격한 자들은 살려두지 않는다. 신사를 공격하는 자를 살려둔다면 그것은 또 신사도에 위배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각자 결의를 다지는 가운데 뚱한 표정의 여자가 물었다.


제법 미인인데 이름은 최민정. 초능력은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아무도 안 맡은 거면 그거 엄청 위험한 거 아니야?”


김정진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일은 맞다. 하지만 아무도 안 맡은 건 민간인 사살 가능성 때문이야. 우리는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아야 한다. 게다가.”


김정진이 팀을 돌아보고 말했다.


“우리, 실적 안 쌓으면 팀 해체다. 그렇게 되면 우리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상상에 맡기지.”


팀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왜인지 알 것 같았다.


몸 성히 돌아온 적이 없을 정도로 힘든 싸움을 하던 팀이 실적 부족으로 해체 위기라니. 나라도 분노할 상황이다.


하지만 지구는 이미 망했고 과정이 중시되던 과거의 풍속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아무리 목숨을 걸고 싸워도 이득이 없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오로지 결과와 그에 따른 생존 가능성만을 본다.


그렇기에 지금이 아포칼립스 시대인 것이다.


그날 밤, 군용 지프 한 대가 피난소를 뒤로했다.


그것은 한 명의 신사와 다섯 명의 헌터를 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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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젠틀맨 티칭 24.09.03 12 0 12쪽
15 젠틀맨 탭댄스 24.09.02 12 0 12쪽
14 젠틀맨 심판 24.08.30 13 0 12쪽
13 젠틀-맨 24.08.29 13 0 11쪽
12 호상 24.08.28 13 0 11쪽
11 마지막 오케스트라 24.08.27 15 0 12쪽
10 문제해결 24.08.26 15 0 11쪽
9 S급 24.08.23 15 0 12쪽
8 젠틀맨 댄스 24.08.22 16 0 12쪽
7 재회 24.08.21 14 0 12쪽
6 왕후장상 24.08.20 17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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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젠틀맨, 귀환 24.08.15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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