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미친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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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정강
작품등록일 :
2024.08.02 21:04
최근연재일 :
2024.09.11 20:2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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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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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DUMMY

김정수와의 추억은 길지 않다.


우연히 생존자 무리해 합류했다가 몬스터를 사냥한 이후 무리의 수호자가 된 나는 신사도를 따르다가 정신이 분열해서 민중의 신뢰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그때쯤 내가 발견한 인물이 김정수다.


꼴에 헌터라고 낮은 등급 몬스터를 잡아먹으며 살고 있었는데 죽을 뻔한 걸 내가 구해줬다.


이후로는 내 무리에 합류해 신임을 잃은 나 대신 실질적인 수호자 역할을 떠맡았다.


그는 점점 우정도 생기고 생존자들에게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며 살다가 죽은, 다소 뻔한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또한 끊임없이 미친놈 대접을 받으며 한때는 산업폐기물 이상의 취급을 받지 못하던 나를 스스럼없이 대해 준 몇 안 되는 인물이다.


저런 몬스터 따위에게 죽는 결말을 맞을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정말 오랜만의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상대를 분석할 때는 침착해야 한다.


인면수 타입은 모두 신종으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황.


당연히도 저 애벌레 놈에 대해서는 최소 A급이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다.


하지만 상관없다.


S급이 아니라는 건, 최소 죽일 수 있다는 거니까.


“이상천!! 뭐 해!”


최민정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녀와는 최근에 부쩍 친해졌지만 아직 타인이다. 나를 위해 목숨을 걸어 줄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왼손을 내려다봤다.


S급의 공격을 받은 그 손은 아직 충분히 회복하지 못했다.


가장 정교한 기술들은 쓸 수 없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내 약한 육신과 달리 은빛 검신은 단단하게 빛나고 있다.


수많은 전투를 겪고도 흠집 하나 없다. 언제까지고 나의 곁에서 나를 버티게 해 줄 물건이다.


이 또한, 몬스터 따위에게 주인을 잃을 물건이 아니다.


몬스터는 아직 대가리 부분만을 드러낸 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수의 시체를 삼킨 놈보다 두 배, 어쩌면 세 배 이상 작지만 크기를 짐작할 수 없다.


저런 놈을 상대하자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끼이이이이익!!


몬스터에게서 쇠를 긁는 것 같은 괴성이 들려왔다. 마치 내게 덤비라고 싸움을 거는 듯하다.


나는 대답했다.


“니애미.”


전투는 곧바로 시작되었다.




***




솔직히 박진감 넘치는 전투는 아니었다.


몸이 어딘가에 걸린 듯 진체를 드러내지 못한 몬스터는 나의 검격에 무력하게 상흔을 허용했고 나는 무자비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크기에 비해 너무나도 약해서 의문이 느껴질 정도였다.


어떤 A급도 크기에 모든 것을 투자한 채 무력하게 당해주지는 않는다.


그 사실은 단순히 내가 운이 좋은 상황에 처해 있음을 나타냈다.


놈의 대가리가 상처로 가득해질 무렵 마침내 놈의 몸체가 바닥을 뚫고 올라왔고 그 크기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다란 몸통이 땅을 강타했고 어마어마한 울림이 일어났다.


천지를 진동시키는 충격파에 나는 멀리 날아가 기절하고 말았고 그 이상의 기억은 없다.


최민정이 기절한 나를 회수해서 본부를 향했다는 것, 그리고 그 몬스터는 S급의 새끼 정도에 해당한다는 사실 정도가 내가 아는 전부다.


“깼냐?”


눈을 뜨고 보니 낯선 천장이···씹, 너무 전형적인 상황인데?


나는 나를 클리셰 속에 방치할 생각이 없었으므로 곧바로 침대에서 뛰어올랐다.


쾅!!


“씨발!! 뭐 하는 거야!!”


천장을 반쯤 부수고 내려오며 최민정의 비명을 감상했다.


아아, 클래식 오페라처럼 길게 늘어지는 저 고음. 마치 오케스트라의 클라이맥스 같다.


그러고 보니 그 죽은 남매는 저 하늘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


나는 그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며 바닥에 착지했다.


탁!


몸을 내려다보니 눈에 띄는 상처는 없다.


보아하니 갈비뼈 한두 대가 나간 모양인데 이 정도는 어차피 금방 낫는다.


“몬스터는?”


“깨자마자 지랄하고는 묻는 게 그거야?”


최민정이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몬스터는?”


그녀는 몇 번째일지 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다.


그녀의 말은 잠시 시간을 두고 나왔다.


“사상자만 잔뜩 내고 사라졌어.”


나는 구석에 놓인 내 칼을 발견했다. 최민정이 이어 물었다.


“다른 짓거리는 그렇다 쳐. 이번엔 왜 그런 거야? 나름 진지해 보이던데.”


나는 짧게 답했다.


“원한.”


“너한테 그런 것도 있었니?”


이 시대에 몬스터에게 원한을 갖는 건 일상적인 일이므로 최민정은 그것 자체에 대해선 의문을 품진 않았다.


다만 내게 정상적인 사고 능력이 남아있는지 의심했을 뿐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창문을 발견해서 밖을 내다봤다.


바람이 불어오던 그 운동장이 보였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지?”


“작전 참가가 어제야. 이제 내일이면 본부로 가게 될 거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오래 기절해 있지는 않았다.


“작전은 성공했어. 빼앗긴 지역은 모두 회복했고 적은 대부분 사살했지.”


최민정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오늘 하루는 이제 할 일이 없어. 그러니 미친짓 하지 말고 쉬기나 해. 너가 문제를 더 만들면 이제 구제받을 수단도 없으니까 사고 치지 말고.”


최민정은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


나는 내가 더 이상 칠 사고는 없는지 확인한 뒤 벽에 걸린 옷걸이에 다가갔다.


양복으로 갈아입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놀랍게도 예전에 선물받은 이 옷은 찢어지지도 않고 먼지도 한 점 없이 깨끗했다.


“오?”


심지어 누군가 잘 다려놓기까지 했다.


최소한 그 누군가가 최민정은 아닐 거라 생각하며 옷을 들었다.


그때였다.


“그거, 아티팩트더라고요?”


나는 뒤를 돌아봤다. 기척의 형태로 보건대 암살자는 아니다.


사무적인 발걸음이 마치 정부 요원 같았다.


아니나다를까.


최민정이 열어놓고 간 문 앞에 몇 번이고 나를 귀찮게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박 어쩌고였는데 이름은 기억 안 난다.


그보다 내 주의를 끈 것은 따로 있었다.


“아티팩트?’


“맞아요. 등록이 안 되어 있어서 등급은 모르겠는데 게이트 너머의 에너지가 감지됐어요.”


게이트 자체의 에너지와 게이트 너머의 에너지는 다르다.


전자는 몬스터의 것이고 후자는 아티팩트의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학자들은 게이트 너머의 공간은 게이트 현상에 의해 멸망한 다른 세계이고 게이트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는 추측도 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실로 무서운 얘기다.


인류의 기술력으로는 흉내도 못 내는 아티팩트를 잔뜩 보유한 세계마저도 게이트를 견뎌내지 못했다는 뜻이니.


“모르고 있으셨나 봐요?”


내 반응을 떠보는 듯한 눈빛.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가 거짓인 것 같지는 않다.


지금 나는 잘 보이진 않겠지만 두 손에 엄청난 힘을 주고 있으니까.


뿌드득···.


손과 거칠게 마찰할 뿐 옷은 찢어지지 않았다. 특유의 윤기도 전혀 바래지 않았다. 나는 헛웃음이 났다.


지금까지 이거 안 찢어 먹으려고 노력한 게 얼만데. 애초에 찢어질 일이 없었던 건가.


“몰랐다. 그런 얘기는 없었던 데다가 형태도 너무 일반적이었으니까. 그리고 너. 이름이 뭐였지?”


“예? 뭐, 뭐라고요? 진심으로 하는 소리세요?”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황당해한다. 하긴 소개를 두 번인가 세 번인가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무시하고 물었다.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박혜민! 박혜민이요. 아니, 제가 이 말을 몇 번을···.”


“여긴 왜 왔지?”


나는 말 끊기 신공을 사용했다. 박혜민은 입술을 깨물고 나를 노려보았다.


화가 난 모양이다.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설마 이게 아티팩트라는 거 알려주러 왔을 리는 없을 테고.”


“···스카우트 제의예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심으로?”


지금까지 나에게 한 일들을 고려하면 적어도 처맞을 각오는 하고 해야 할 말이다.


실제로 그 말을 한 박혜민도 진심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저도 이런 말 이상한 거 알아요. 근데 상부에서 당신 이력을 열람한 뒤 스카우트하라고 난리를 치지 뭐예요.”


그녀는 마치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당신,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던 모양이죠?”


물론 나는 그 수작에 넘어갈 줄 생각이 없었다. 박혜민은 계속 말했다.


“조건은 이미 최대한으로 정해졌어요. 먼저 특수 보직을 줘서 각종 편의는 물론이고 명예와 안전도 보장하고, 관련 권한도···어차피 안 하실 거죠?”


내 표정을 보고 짐작했나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딴 방에 나를 처박으려 한 사람들한테 스카우트될 수는 없지.”


“당신이 창밖으로 던진 쓰레기 때문에 요원 한 명 다리가 작살난 건 알아요?”


조금은 장난스러운 표정.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방 안으로 발을 내딛는다.


나는 곧장 그녀에게 지팡이를 들이댔다.


“꺼져라. 민정이2처럼 되고 싶지 않으면.”


“아, 알았어요. 사실 용건은 또 있어요.”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개수작을 두 개나? 부랄 두 짝 같은 건가?”


박혜민이 표정을 찌푸렸다.


“참 뭐 같은 비유네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정부 본부로 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내 정신병력 때문인가?”


최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거예요. 위험성이 있는 인물은 아무리 강해도 인정하지 않는 게 정부 고위층이예요. 하물며 그 본부의 콧대 높은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박혜민은 바로 답했다.


“저, 충주 쪽 군벌에 연이 있어요. 거기로 같이 가요. 직접적인 전력이 중요한 곳이니 여기보다는 훨씬 대우가 좋을 거예요.”


나는 그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널 왜 따라갈 거라고 생각하지? 그것도 내 팀원들까지 버리고?”


박혜민이 부정했다.


“아뇨, 당신 팀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당신 같은 사람에게 그들이 그렇게 중요할 리가 없죠.”


“어떻게 그렇게 속단하지? 그리고 그들이 덜 중요하다 해도, 너보단 중요하지 않을까?”


박혜민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당신에게만 알려 주는 건데, 정부 본부가 공격받을 위험이 있어요. 거기엔 S급 헌터가 있으니까, 몬스터의 집중 공세가 곧 시작될 거예요. 알잖아요? S급들이 공격받기 시작한 거.”


나는 그녀에게 엿을 날렸다.


“나라는 전력을 이용해서 본인 가치를 좀 높여 보려는 모양인데. 나는 도구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너 같은 것과 동행할 이유도 없고.”


박혜민이 나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곧 악당들의 유서 깊은 대사를 뱉었다.


“당신, 후회할 거예요.”


그러고 그녀는 몸을 홱 돌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녀가 사라진 곳에 엿을 한 번 더 날리며 뇌까렸다.


“진짜 병신인가.”


진심으로 내가 저 말에 혹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정말 놀라운 여자다.


나는 고개를 돌리다가 문득 벽에 걸린 거울을 보았다.


환자복을 입고 있음에도 드러나는 단단한 몸태와 거기서 묻어나오는 여유.


거기에 깊디깊은 우수에 찬 눈빛까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래, 저런 젠틀맨을 보면 누구라도 혹하지 않을까?


내 매력을 생각하면 그녀의 행동은 실로 합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님 말고.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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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안 죽임 24.09.04 12 0 11쪽
16 젠틀맨 티칭 24.09.03 12 0 12쪽
15 젠틀맨 탭댄스 24.09.02 12 0 12쪽
14 젠틀맨 심판 24.08.30 13 0 12쪽
» 젠틀-맨 24.08.29 14 0 11쪽
12 호상 24.08.28 13 0 11쪽
11 마지막 오케스트라 24.08.27 15 0 12쪽
10 문제해결 24.08.26 15 0 11쪽
9 S급 24.08.23 15 0 12쪽
8 젠틀맨 댄스 24.08.22 16 0 12쪽
7 재회 24.08.21 14 0 12쪽
6 왕후장상 24.08.20 17 0 12쪽
5 젠틀맨, 승리 24.08.19 18 0 12쪽
4 젠틀맨, 조우 24.08.16 20 0 12쪽
3 젠틀맨, 귀환 24.08.15 25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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