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미친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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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정강
작품등록일 :
2024.08.02 21:04
최근연재일 :
2024.09.11 20:21
연재수 :
2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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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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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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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S급

DUMMY

“이상천.”


이상천? 많이 들어 본 이름이긴 하다. 누군지는 모르겠다.


“지금이면 모두 죽일 수 있어.”


틀린 말이 아니다. 상대는 스스로를 무력화했고 우리는 그 틈바구니 안에 있다.


별다른 수고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칼질 몇 번이면 이들은 전멸한다.


하지만 그래야 할까?


지금 당장은 정부가 옳은지 이들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추악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정의를 추구하며 버티기 위한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기에,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신사도를 따르는 나의 입장에서, 적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학살할 수는 없다. 인류의 마지막 인간성으로서 나는 그래서는 안 된다.


물론 나는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거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이들이 전멸한다면 반군은 무너질 것이고 반군이 수용한 버려진 국민들도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고작 수십 명의 죽음이, 많게는 수십만 명의 목숨을 결정할 수 있다.


악독한 약탈자라면 몰라도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하는 건, 적어도 아직까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지나간다.”


나는 짧게 말했다. 훔쳐 입은 티셔츠가 불편했다.


최민정은 묘한 눈길로 나를 보더니 피식 웃었다.


“뭐야, 갑자기 없던 인류애라도 생긴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가자.”


한강의 물길을 향해 걸었다. 몇 명의 경계병을 지나쳤지만 그들은 우리가 나오는 방향을 보고는 공격하지 않았다.


계획은 성공했다.


한강에 가까이 다가가니 길게 이어진 방어선이 있다. 돌이건 포대건 일단 들고 날라서 막아 놓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게 제법 장엄했다.


아마 한강 반대편에도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으리라.


“무슨 용무입니까?”


누군가 다가온다. 어둠에 가려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최민정과 눈빛을 교환했다.


지금이다.


풍덩!!


방어선을 뛰어넘어 한강에 잠수했다. 뒤에서 작은 소란이 일지만 전진에만 집중했다.


물을 강하게 박차고 팔로 밀어낸다. 일어나는 물보라를 무시하며 미친 듯이 나아갔다.


그렇게 약 일 분 뒤였다.


“읍! 으읍!!”


최민정이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나보다 한참 뒤쳐져 있다.


그녀의 속도는 고려하지 못했다. 나는 헌터 시절 배웠던 기초 수영의 요령을 떠올리며 최민정에게 다가갔다.


타타타타탕!!


그때쯤 설치되어 있던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도대체 어떻게 고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위력은 역시 절륜했다.


“읍···!”


수면에 조금 가깝던 최민정이 총알에 맞았다. 피가 물감처럼 번지는 가운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곧장 전속력이다.


촤아악!!


힘껏 발을 박차며 물을 밀어냈다. 차라리 더 깊게 잠수해서 강바닥을 차며 이동했다.


타타타탕···


기관총 소리가 아득하게 들려오는 가운데 웬만한 모터보트와 비슷할 속도로 나아갔다. 순식간에 이백 미터쯤 갔을 때 숨이 부족해서 물 밖으로 나왔다.


“허억!!”


최민정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와중에 우리를 향한 저격이 시작되었는지 총알 한 발이 날았다.


피잉!!


야간에 강에 대고 사격을 하면 그 난이도는 상상하기 어렵다. 총알은 조금 떨어진 곳에 날아들었다가 그대로 가라앉았다.


“헉, 헉...씨, 발, 이거 맞아?”


“총 맞은 곳은?”


어두워서 총상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최민정은 숨을 몰아쉬다가 말했다.


“상처는, 됐고. 아까처럼, 끌고 가 줘. 지금 상처 살펴서 할 수 있는 거 없어.”


초인이라 해도 C급이면 총탄에 사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최민정이 멀쩡하게 말하는 걸 보면 치명상은 아니겠지만 피를 오래 흘려서 좋을 게 없다.


이번엔 아예 허리를 잡았다. 숨 쉬기는 더 어렵겠지만 팔은 잘못하면 빠질 수 있으므로 이쪽이 더 안전했다.


파앙!!


걷어차인 물이 폭탄에 맞은 것처럼 터져 나갔다.



***



뭍에 올랐을 때 우리는 이미 수십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각자 총기부터 냉병기, 기이한 아티팩트 등 무기를 들고 있었는데 모두 헌터였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동안 이미 반대편의 감지 능력자에게 적발된 것이다.


빠르게 이동했으니 수준 높은 해제자임도 알려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헌터라는 고급 전력을 수십 명이나 집중시킬 리 없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무언가 말하려던 차, 최민정이 선수를 쳤다.


“제 16피난소 베타 4팀 최민정, 이상천. 임무 중 이탈했다가 귀환했습니다.”


남자는 잠시 말이 없다가 옆에 서 있던 사람에게 말했다.


“확인하도록.”


곧 대답이 들려왔다.


“확인했습니다. 팀 베타4 최민정, 이상천. 임무 중 실종 처리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습니까?”


의심을 담은 질문. 일반적인 경우에는 당연히 적의 본진에 떨어졌다가 살아 돌아올 수 없으니 당연한 처사였다.


최민정이 적들의 실태를 전했다. 충격적인 광경이었던 마약 파티의 모습이 남자에게 전해졌다.


“···개 같은 놈들.”


그는 작게 읊조리더니 돌아섰다.


“따라오십시오. 일단 혐의가 완전히 벗겨진 건 아니니 취조실로 오셔야겠습니다.”


그가 잠시 최민정을 돌아보았다.


“······치료실부터 안내해드리죠.”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를 포위했던 헌터들은 경계를 풀고 제각기 흩어졌다. 강변 방비를 책임지는 자들인 듯했다.


나는 내 홍차 가방 외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최민정은 궁금한 게 많은지 계속 질문했다.


“정부군이 패배한 거예요? 피해는 어느 정도죠?”


“저희 팀원들은 무사한가요?”


“구체적으로 어떤 취조를 받는 거죠?”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은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였다. 최민정도 곧 빈정이 상했는지 더는 질문하지 않았다.


최민정을 치료실에 버려두고 나부터 취조실로 들어갔다. 우릴 안내해준 남자는 목례를 하고 나갔다.


취조는 한 시간 뒤에 시작되었다.


강직한 인상의 여자 한 명이 들어왔는데, 영화에서 본 것과 똑같은 차림이었다.


“홍차 있습니까?”


기다림에 지친 내 질문에 그녀는 표정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당신은 아직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할 처지가 아닙니다. 명심하십시오. 당신은 객관적으로 적의 첩자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처음부터 나를 경계하는 기색이 아주 강하다.


게다가 마치 기계 같은 언행이었다. 나는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후후!! 허허!! 끼하학학학학학!!!!”


이럴 때는 거짓된 모습을 조금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 여자는 웃는 나를 주의 깊게 보다가 말했다.


“소개가 늦었군요. 김민정 수사관입니다.”


“오! 민정이 한 명 추가네요?”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 몇 가지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임무 중 실종된 10월 11일. 갑자기 임무 중 이탈한 이유가 뭡니까?”


“그, 제가 음악에 눈을 떠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느라 그렇게 되었습니다. 두 명의 연주자가 있었는데 실력은 형편없어서 박자와 음정 모두 틀렸지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작은 분노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수사관은 차가운 눈으로 나를 보다가 물었다.


“10월 12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 잠깐 숨어 있었는데 하루가 지나갔더라고요? 나가서 보니 민정 영애가 죽은 척을 하고 있고 저 멀리서는 나의 사랑스러운 연주자 중 한 명이 뛰어오는데 아, 그때의 영감이란! 저는 춤을 추고 말았답니다. 그러다 보니 연주자가 감동에 미쳐서 죽었더군요.”


그 대목에서 나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오케스트라에 지휘자 포함 두 명밖에 남지 않은 거지요.”


또 다시 정적. 수사관은 옆에 놓았던 서류를 슬쩍 보더니 그대로 가져와서 읽기 시작했다. 한참 뒤에야 그녀가 말했다.


“그래요. 어차피 당신은 고문을 당해도 정상적인 말을 할 것 같진 않군요. 어쩔 수 없이 최민정 씨에게해야겠어요. 그럼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나는 과거의 향취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바로 말부터 했다.


“아뇨? 질문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최민정 영애를 고문하겠다고요?”


수사관이 피식 웃었다. 갑자기 차가웠던 인상이 저열하게 변했다.


“상천 씨. 그럼 내가 적진 가운데에서 넘어온 당신들을 믿을 것 같습니까? 당신은 서류 보니 정신병자라서 넘어가지만 다른 년은 좋은 꼴 못 볼 거예요.”


그녀는 계속 말했다.


“이런 제 조치는 당연한 겁니다. 기쁘게 고문받으라고 전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저한테 한 개소리. 다 그년한테 돌아갈 겁니다.”


그녀는 이상할 만큼 나에게 화가 나 있었다. 나는 곧 그녀에게서 그런 행동의 원인을 찾아냈다.


흥분이다.


남을 짓밟는 데서 오는 쾌감에 미친 사람. 보나마나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이유 없이 고문실에 밀어 넣었을 것이다.


멸망이 만들어낸 인간상이다.


이런 사람은 많다. 절망에 못 이겨 어딘가가 망가진 사람. 이 시대에 다소 뜬금없고 공감도 안 되는 분노는 그런 것에서 기인한다.


수사관은 마치 자신의 역할은 다 했다는 듯한 표정인데, 그녀는 취조를 마무리하겠다는 듯 물었다.


“이상천 씨. 당신은 첩자입니까? 아, 대답은 필요 없어요. 형식적인 질문이니까. 알죠?”


그러고서는 또 웃는다. 나는 그녀의 태도에 대해 0.02초 정도 고민했다. 그러다가 말했다.


“내가 좆으로 보이나?”


김민정 수사관은 전혀 당황한 눈치가 아니었다. 나도 그녀를 당황시키려고 한 말은 아니니 상호 간 의도는 얼추 들어맞았다 할 수 있다.


“내 앞에서 내 팀원을 고문하겠다고 해 놓고 살아서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그 말에 뒤에 서 있던 헌터 한 명이 움직였다. 뭔지 모를 철봉을 들고 다가오는데, 내버려 둘 내가 아니다.


빠악!!


수사관이 가져온 볼펜을 튕겨 손가락 힘으로 날렸다. 쓰러지는 헌터의 모습이 저 멀리 설치된 CCTV의 작은 렌즈에 비친다.


확인할 필요도 없다. 조금만 더 힘을 줬으면 즉사였다.


“······.”


수사관은 나를 노려봤다.


“이상천 씨. 당신 무력은 잘못 평가된 데가 있어요. 그렇지 않고서야 ‘여왕’년을 죽일 수 있었을 리 없죠. 단지 사리분별을 못 하니까 등급이 낮게 나온 거예요. A급에 턱걸이로 붙었다? 그런 사람은 이런 일을 할 수도 없고 할 생각도 못 하죠.”


그녀는 침착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실력에 자신이 없으면 이런 일을 벌일 깜냥이 못 되거든.”


그녀는 사무적인 태도였다. 의자에 걸쳐 놨던 외투를 걸치는 모습이 여유롭다.


“어차피 당신은 나 못 건드려요. 정부 전체를 상대할 순 없을 테니까. 지금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 것만 봐도···.아아아악!!!”


멍청한 사람이다. 조금 전에 내가 사리분별을 못 한다고 해놓고 내가 합리적인 결정을 할 거라 생각하다니?


재수 없게도 나의 팀원과 이름이 같은 수사관은 지금 양팔이 떨어졌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고통일 것이다.


“능지처참이라 하죠? 머리는 남겨 드릴게. 하하하하하!!!”


스릉!


검광이 번뜩이고 그녀의 남은 두 다리가 잘려 나갔다.


“아악!! 아아아아악!!!”


동시에 문을 박차고 달려드는 사람이 있다. 보아하니 A급 헌터다.


이런 상황을 대비하고 CCTV로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너무 늦었다.


쾅!!


취조실 벽을 부수고 건물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차피 이곳은 한강 유역을 관리하는 또 다른 정부의 지부일 뿐이다. S급 헌터가 상주할 확률은 낮다.


쏴아아-


밖엔 비가 오고 있었다.


“아, 맞다. 우리 레이디.”


최민정을 두고 나왔다. 내가 판을 벌였으니 데리고 나와야 하는데.


A급 헌터 놈이 나를 잡겠다고 뛰어오는 가운데 나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일단 한강 근처에는 헌터가 많으므로 건물 뒤쪽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쿠궁-


선명하게 울리는 천둥. 번개가 친 곳은 바로 건물 위다.


거대한 전류가 건물과 하늘을 이으며 사라지지 않고 있다. 분명히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 천둥 안에 뒷짐을 지고 선 인영을.


분명했다.


S급이다.


이런 씨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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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오귀스트 24.09.11 7 0 12쪽
21 한라산? 24.09.10 9 0 12쪽
20 백두산 24.09.09 12 0 12쪽
19 제주 24.09.06 12 0 12쪽
18 젠틀맨 발작 24.09.05 10 0 12쪽
17 안 죽임 24.09.04 11 0 11쪽
16 젠틀맨 티칭 24.09.03 12 0 12쪽
15 젠틀맨 탭댄스 24.09.02 12 0 12쪽
14 젠틀맨 심판 24.08.30 13 0 12쪽
13 젠틀-맨 24.08.29 13 0 11쪽
12 호상 24.08.28 13 0 11쪽
11 마지막 오케스트라 24.08.27 15 0 12쪽
10 문제해결 24.08.26 14 0 11쪽
» S급 24.08.23 15 0 12쪽
8 젠틀맨 댄스 24.08.22 16 0 12쪽
7 재회 24.08.21 14 0 12쪽
6 왕후장상 24.08.20 16 0 12쪽
5 젠틀맨, 승리 24.08.19 18 0 12쪽
4 젠틀맨, 조우 24.08.16 20 0 12쪽
3 젠틀맨, 귀환 24.08.15 24 0 11쪽
2 젠틀맨, 임무 투입 24.08.14 26 0 12쪽
1 젠틀맨, 등장 24.08.13 7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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