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미친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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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정강
작품등록일 :
2024.08.02 21:04
최근연재일 :
2024.09.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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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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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맨 댄스

DUMMY

저번에 내가 음악에 조예가 깊다고 말했듯, 나는 음악의 친구나 다름없는 춤과도 상당히 가깝다.


사실 이건 거의 모든 헌터들의 특징인데, 신체를 완벽에 가깝게 통제하는 그들은 춤을 잘 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민정이 적들을 목격하고 빛의 속도로 도망치기 시작한 순간 나는 그녀의 모습에서 상당한 영감을 받았다.


돌더미를 뛰어넘으며 감행한 회전 동작이 감미로웠던 것이다.


“오오!”


나는 그녀와 같은 회전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 번 제자리에서 돌았는데, 슬프게도 나의 예술을 알아보지 못한 적들이 나를 공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원 부르지 마. 내가 혼자 저 새끼 죽일 거니까.”


어느새 내게 도달한 여자가 말했다. 칼날이 꼬인 이상한 무기를 양손에 들고 있었는데, 명백히 살의를 드러낸 모습이다.


그녀가 상당히 높은 직급에 있는 듯, 뒤에 도열한 남자들은 아무 말도 않고 그 명령을 따랐다. 나는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회전하고 있다. 이 동작을 발전시켜 춤으로 만들어 볼 생각인데, 동작이 빠르고 정확하기만 해서 우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역시 미친 새끼였네. 지금 시발 설마 춤 추는 거야?”


내 모습에 대한 조금의 실망감과 함께 어디선가 본 여자 아이돌 안무를 떠올렸다. 옛 친구가 광적으로 좋아하던 그룹인데 그래서 나도 몇 번 본 적이 있다.


“후···.”


회전을 멈추고 나에게 다가오던 여자를 노려봤다. 그녀가 긴장하며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알 바 아니고 나는 아이돌 안무를 충실히 재현했다.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춤 연습할 때는 이런 식으로 박자를 불러 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문적으로 보이기 위해 기억을 그대로 재현하며 춤을 췄다.


어느새 나의 관객이 된 4명의 사람이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보는데, 제법 놀란 게 분명하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현학적인 동작이기는 하다.


“미친 새끼, 뒤져!!”


나를 지켜보던 여자는 결국 그 상태를 참지 못했는지 내게 달려들었다. 춤 덕분에 나에 대한 분노를 잠시 잊은 듯했는데, 역시 춤과 노래는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


잊혀졌던 분노를 문득 자각한 여자의 분노는 오히려 커진 듯했다. 내 춤이 흐느적거리는 동작으로 바뀌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샤악!


아슬아슬하게 얼굴 옆을 스치는 칼날. 중절모를 쓴 고개를 젖히며 우아한 회피 동작을 취한다.


마이클 잭슨과 같은 섬세하고도 과격한 동작. 나는 아이돌 안무에 문워크를 끼워넣는 기염을 토했다.


“개새끼!!”


달려드는 여자를 보고서야 나는 상대의 의도를 깨달았다. 나의 동작에 맞춰 칼을 휘두르는 걸 보니 확실하다.


그녀는 나의 춤에 동참한 것이다!


“원!! 투!! 쓰리!!!!”


박자에 하나도 안 맞는 그녀의 동작을 교정하기 위해 박자를 불러줬다. 동작과 동작이 얽혀들고 공격과 회피의 춤이 점점 현란하게 변했다.


“이 씨발···.”


왜 이렇게 욕을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춤은 흐르고 흘러 절정에 달했다.


스릉!


양쪽에서 날아드는 칼날을 쳐내고 부드럽게 칼을 뽑는다. 그새 새로운 횡격이 더해졌지만 내가 그녀의 칼질보다 빠르다.


바로 목을 겨냥했다.


사아악!!


내가 좋아하는 종이 자르는 듯한 소리. 손끝에 걸리는 감각이 없다.


“ㅆ···.”


철퍽.


적의 목이 떨어졌다.


즉사다.


“그럼 안녕히, 레이디.”


한바탕 춤추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나는 목 부분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시체에 인사했다.


“저승에서도 욕질하다가 처맞지 않기를.”


나의 인사에 감격했는지 지켜보던 남자들이 얼굴이 하얗게 된 채 도망쳤다. 그들이 이 춤에 대한 평가를 전해준다면 눈물나는 일이겠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막았다.


푸확!!


마찬가지로 피를 뿜는 목들. 나는 사람을 많이 죽여봐서 사실 큰 감흥은 없다.


살인에 어떤 감정을 느낀 것은 한참 전의 일이다.


“뭐야? 그걸 잡았어?”


도망간 줄 알았던 최민정이 바위 뒤에서 나왔다. 자꾸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것이 이능을 이용해 기척을 숨기는 게 분명했다.


C급이라곤 해도 엘리트 집단인 헌터가 맞다.


“적들 A급 중에서도 악명 높은 년인데···너 A급 맞아?”


불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레이디에게 한 마디 했다.


“남자는 전력을 드러내지 않는 법.”


거짓말이다. 피하느라 정말 힘들었다.


“···일단 도망가자.”


상황은 일단락됐지만 A급 헌터의 연락이 끊어진 걸 알면 적들이 여기로 올 게 분명했다. 어쩌면 벌써 상황을 짐작하고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빨리 도망가야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나의 관객들에게 궁정식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여느 때와 같이 최민정의 시선은 무시했다.


나의 길은 힘든 법이다.




최민정은 주변 지리를 잘 알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나와는 달랐다.


교양을 갖춰야 하는 내 입장에서 조금 샘나는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지리 공부를 할 순 없다.


방금 전에 만난 순찰대가 벌써 8번째로 만나는 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명도 죽이지 않았고 발각당하지도 않았다. 우리는 많은 대화 없이 묵묵히 길을 갔다.


“여기부터는 경계 수준이 높아서 발각당하지 않고 통과할 방법이 없어. 이쯤 숨어 있다가 전투가 시작되면 그때 한강을 넘어야 돼.”


최민정이 길을 가다 갑자기 멈추며 말했다. 사수다운 높은 시력으로 사방을 훑는데 나도 몇 가지를 발견했다.


곳곳에서 느껴지는 생활감과 작은 기척들. 가끔 저 멀리서 스치듯 지나가는 초인들의 모습도 있었다.


한 마디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말 그대로 적진 한 가운데인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 걸리지 않고 온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아닌가, 지금 가야 하나?”


이 정도로 경계가 풀어진 걸 보면 어디서 큰 전투가 시작됐을지도 모른다는 설명이었다. 우리는 일단 숨어서 적들의 동태를 살피기로 했다.


작은 건물에 들어가서 기척을 숨기고 있었는데 최민정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무전기다.


게이트 사태 이후에도 이용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원거리 교신 수단 중 하나. 무전기 한 대 한 대의 가치가 대단히 높다.


“예전에 꿍쳐 뒀지.”


자랑스럽게 말하는 모습이 장난스러워서 작게 웃음이 났다. 최민정이 정색했다.


“쪼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최민정이 무전기의 주파수를 조작하며 감청을 시도했다. 암호화된 무전은 듣기 어렵지만 지금은 교신 수단 부족으로 보안 수준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했다.


감청당할 위험이 있어도 그냥 쓸 수밖에 없는 거다.


곧 주파수가 맞으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A3 지역 적범 출현. 이상.


-카피.


-B4 진압. 이상.


-카피.


-A3 전멸 위기. 지원 바람. 이상.


-카피. 백조 투입.


···



“···이래선 뭐라는지 모르겠네.”


보안이 취약한 대신 암어를 쓰는 모양이다. 결국 엿들어봐야 의미가 없다.


“···그냥 기다려야겠네.”


결론은 빠르게 내려졌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T-3 귀환했습니다!!”


“빨리 옮겨! 시간이 없다!!”


“백조 대장 외 7인 전원 귀환.”


“방어선 구축 완료되었습니다!!”


사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저 잡다한 이야기들을 종합해보자면 적들의 주요 전력이 전투를 마치고 전원 귀환했다는 뜻이다.


즉 우리는 독 안에 든 쥐가 되었다.


“씨발, 운 더럽게 나쁘네.”


레이디는 이런 상황에 크게 절망해서 차마 밖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신사로서 그녀를 잘 달래줄 생각은 없고 그냥 지켜봤다.


“아, 어떡하지······이대로면 진짜 죽는 건데···.”


나는 그녀에게 희망을 알려줬다.


“레이디, 저 놈들 파티 시작하고 있다.”


그 말에 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창을 깨버릴 기세로 밖을 내다봤는데 물론 술 마시는 병사들은 자기 자리에 잘 있었다.


아마 곧 정신이 나가 버릴 그들을 보며 최민정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을 설명했다.


“우리, 이 틈을 타서 바깥쪽으로 빠질 수도 있고 아니면 여길 돌파해서 한강을 넘는 방법도 있어. 물론 한강을 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한강을 넘는다.”


“?”


나는 바로 결정했다. 내 옷은 세탁이 필요했고 나는 홍차가 필요했다.


따라서 지금이 마지막 기회다.


“진심이야? 저길 뚫고 가겠다고?”


“뚫을 필요는 없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그냥 걸어서 지나가면 될 일이다.”


나는 이 딱딱한 말투를 유지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조금 있었지만 아직은 참고 있었다.


최민정은 나의 계획에 반신반의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계획을 강행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사실 준비랄 건 없고 그냥 밖을 열심히 봤을 뿐이다.


들려오는 무전이나 바깥 음성에 따르면 이 파티는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것. 패배한 정부 쪽이 걱정되지만 일단은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건 이 파티 내에서 벌어지는 방탕한 일들에 대해 사실상 묵인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사실이다.


즉 이 안에서는 나와 최민정이 대놓고 걸어가도 신경쓰는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가 없을 것이며, 여기서 나가도 파티에 참여한 고위 계층으로 생각될 테니 쫓기지도 않을 것이다.


모두 우리가 자리를 잘 잡은 덕이다. 우리가 정확히 승전 파티가 벌어지는 지역에 눌러앉을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계획은 간단했다.


자연스럽게 나타나서 그대로 지나가는 것. 여기만 지나면 한강이라서 수영으로 정부군 쪽에 도착할 수 있다.


최민정은 몰라도 내 복장은 눈에 띌 우려가 있고 무엇보다 물 속에 갖고 들어갈 수 없다. 따라서 나에게는 더 일반적인 복장이 필요했는데, 다행히도 금방 구할 수 있을 듯했다.


술과 마약, 성행위에 정신이 팔린 적군 장교-이렇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지만-들이 벗어놓은 옷가지가 잔뜩 있었기 때문이다.


“공을 세운 병사들에게 연회를 베푸는 건 아주 고전적인 방법이지.”


나는 마약에 절은 장교 한 명의 옷을 훔쳐왔다. 이들은 군대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집단이라서 입고 있는 옷도 군복이 아니었다.


따라서 정부군 쪽에 갔다가 적군으로 오인받고 죽을 일도 없다.


최민정이 뒤돌아선 동안 재빨리 갈아입고 양복은 비닐봉지에 넣어 밀봉했다.


“그 옷은 왜 가져가는데?”


레이디의 불만 섞인 말이 들려왔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체면과 관련된 문제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준비가 끝났다.


“간다?”


최민정은 긴장했는지 문을 잡고 내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끼이익-


숨어있던 폐건물의 문이 열리고, 나와 최민정은 사람들이 그물처럼 얽힌 광란의 파티 현장으로 진입했다.


애초에 건물이 파티장 안쪽에 있어서 경계병에게 걸릴 일은 없었다.


나도 솔직히 적들에게 걸릴까 조금 불안했는데 나와 보니 의미 없는 가정이었다.


우리가 목격한 광경 탓에 그랬다.


파티 현장에 이성 따위는 한 줌도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한 명도 빠짐없이 마약을 투약했다.


“이 새끼들 생각보다 존나 더럽게 노네.”


최민정이 경멸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훑었다. 오직 쾌락만을 탐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 사이에는 멸망이 초래한 인간 군상의 극한이 담겨 있었다.


하나같이 마약에 절어 눈을 까뒤집고는 체액을 질질 흘리는데, 누가 봐도 반군 수뇌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듯했다.


살아남기 위해 매춘부가 된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역시 마약을 투약했는지 제정신이 아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이런 것들이 정부와 맞선다고?”


바닥을 미친 듯이 핥고 있는 남자를 건너뛰었다. 다음은 석상처럼 몸이 기이한 자세로 굳어 버린 여자. 동공이 엄청나게 이완되어 있다.


“혐오스럽네.”


최민정은 결국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을 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저런 것들이 내가 신사도를 만든 이유다.


멸망 앞에서 한없이 망가져, 인류가 자랑하던 ‘인간성’을 버린 모습. 그것은 달리 말하면 결국 굴복이다.


멸망을 견디기 위해 미쳐야 한다면, 짐승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인간성의 편린을 붙잡고 미쳐야 한다.


설령 그것이, 한없이 추하게 보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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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젠틀-맨 24.08.29 13 0 11쪽
12 호상 24.08.28 12 0 11쪽
11 마지막 오케스트라 24.08.27 14 0 12쪽
10 문제해결 24.08.26 14 0 11쪽
9 S급 24.08.23 14 0 12쪽
» 젠틀맨 댄스 24.08.22 16 0 12쪽
7 재회 24.08.21 13 0 12쪽
6 왕후장상 24.08.20 16 0 12쪽
5 젠틀맨, 승리 24.08.19 17 0 12쪽
4 젠틀맨, 조우 24.08.16 20 0 12쪽
3 젠틀맨, 귀환 24.08.15 24 0 11쪽
2 젠틀맨, 임무 투입 24.08.14 25 0 12쪽
1 젠틀맨, 등장 24.08.13 7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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