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미친 젠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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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정강
작품등록일 :
2024.08.02 21:04
최근연재일 :
2024.09.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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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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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DUMMY

내 생각과 행동이 다소 난잡한 것은 신사도가 지나치게 어렵기 때문이다. 아직 나는 내가 만든 그 체계에 완전히 익숙해지지 못했다.


일반 헌터 시절의 사고방식과 신사도적인 태도가 뒤섞여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상태가 안정되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때까지 미친놈 취급을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편린처럼만 드러나던 신사도가 자리를 잡으면 그들은 놀라운 현실에 무릎꿇고 경배할지어니.


“나를 따르라!!”


나를 따라오는 열렬한 추종자들을 향해 외쳤다. 정황상 남매로 보이는 헌터 두 명인데 A급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됐다.


“씨발!!”


“저 새끼 존나 빨라!!”


다만 달리기 속도는 조금 느려서 내가 봐주고 있었다. 팀과 놈들의 거리를 벌리려는 의도도 있다.


움직임에도 박자라는 게 있다. 속으로 숫자를 세며 박자를 맞췄다.


건물 벽면을 밟으며 하나, 웬 미친놈의 면상을 즈려밟고 둘, 도로에 하나, 미친놈2의 면상에 둘···.


“알레그레토!! 포, 포···포르쉐? 포레그리토?”


조금 빠르게였나? 차 이름과 비슷한 거 보니 매우 빠르게일 것 같다.


적진을 맨몸으로 가로지는 발걸음이 상쾌했다. 나도 모르게 지휘자의 본능을 각성할 정도였는데 생각해 보니 옛 신사들은 모두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잡게 되는 것일까. 내 몸속에서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불처럼 피어올랐다.


“포리그라토!!!”


두 명으로 이뤄진 오페라를 지휘한다. 내 말에 따라 그들이 돌을 던지거나 바닥을 때렸다.


쾅! 쾅!!


“개새끼야!”


“좀 맞아라, 씨발!!”


두 사람의 말대로 박자가 좀 안 맞는 것 같지만 상관없다. 난 안 듣고 있으니까.


“오오, 디 팬텀 오브 디 오페라아아···!!!”


노래를 부르며 갑작스럽게 좌회전. 머릿속 내비가 내게 말을 건다.



-전방 0.2m에서 우회전하십시오.



휘릭!


내비의 지도를 놓칠 뻔했다. 나는 지리에 밝지 않아서 내비의 역할이 중요하다.



-전방 8km 전속력으로 직진하십시오.


-전방에 과속 주걱턱이 있습니다.



이제야 속도를 낼 수 있다. 운석마저 회피한 나의 초월적인 주력이 발휘될 때다.


“흡!”


작은 기합을 내지르자 주변의 풍경이 길쭉하게 늘어나며 거리가 쭉쭉 당겨졌다. 8km쯤이야 몇 분이면 도착하지 않을까?


“이···.!잡..죽···!”


“누···씨발! 배···.”


남매의 목소리도 저 멀리 사라진다. 미안한데 바람소리 때문에 뭐라는지 안 들려. 아, 씨발은 들었어.


나의 두 연주자는 그렇게 멀리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나는 피로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휴우···.”


전속력으로 생각보다 오래 달렸다. 8km는 예전에 넘긴 것 같은데 상관없다. 애초에 내가 왜 8km를 가려고 했더라.


뜬금없이 자세한 수치다. 나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작은 에피소드로 생각해서 넘겼다.


“여기가 어딜까.”


달리다가 힘들어서 멈춘 곳은 작은 건물 내부. 건물 밖에 달랑거리는 ‘만사빌딩’ 이라는 이름을 보니 여기가 어딘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서울 어딘가일 테고 나는 전쟁에 관심이 없으니 잠시 숨어 지낼까. 팀원들이 걱정되었지만 알아서 잘 살아남을 사람들이다.


잠시 숨을 돌렸다. 이 주변을 조금 둘러보고 할 수 있으면 조금 눌러앉을 생각이다.


건물 이 층으로 올라가니 물건들이 다 박살나고 창문은 사라진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는 사무실이었던 듯한데 곳곳에는 사람이 숨어 살던 흔적도 있었다.


그들은 여기 남아 있지 않다. 핏자국을 보니 죽었거나 떠났을 것이다.


“후···.”


더 올라가 봐도 비슷한 광경뿐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버려둔 생활용품이 조금 있어서 잠시 지내기엔 적합할 것 같았다.


만사빌딩에서 나와 주변 건물들을 뒤졌다. 발견된 건 식량뿐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식량 창고로 쓰려 한 것인지 한 건물의 냉동실에 비상식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 시대에는 아주 드문 행운이다.


상태를 보니 관리하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씩 빼먹으면 모르겠지.


나는 조용한 남자라서 숨어있는 것도 잘한다. 작정하고 숨으면 내 시체는 아무도 찾지 못하는 곳에 처박혀 세월을 풍파를 맞고···아무튼 그럴 테니 적당히 숨겠다.


몸이 상당히 단단해서 길바닥에서 자도 문제는 없다. 나는 버려진 이불 한 개를 집어들고 사무실 가운데에 누웠다.


조금 이르지만 잠이나 잘까 생각하던 찰나.


저벅. 저벅.


멀리서 들려오는 발소리. 나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숨겼다.


창문 쪽으로 천천히 다가가 내가 들키지 않았는지 가늠했다.


살짝 보니 각자 무기를 든 5명의 인원이다. 이들은 해제자가 아니다.


내가 아까 큰 소리를 내며 돌아다녔음에도 모른다면 그건 분명 일반인이다.


일대를 순찰 중인 걸로 보였다.


"흠...."


그들은 곧 사라졌지만 비슷한 놈들이 계속 올 것 같았다.


그중에 해제자나 감지 이능력자라도 있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나는 졸지에 나의 아늑한 은신처를 뺏길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고민하고 있는데 다음 무리가 다가왔다. 그런데 아까 본 자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그들은 웬 여자 한 명을 끌고 가고 있었다.


상태를 보니 여자는 이미 죽었다. 이런 시대에 죽은 사람을 기어이 끌고 가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목을 자르든 능지처참을 하든 해서 효수하려는 거다.


아마 큰 죄를 지은 자거나 적군일 것이었다.


불쌍한 사람이지만 지금 죽은 사람을 돕자고 여기서 튀어나가는 건 정신이 나간 발상이다. 나는 슬픈 눈으로 그들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나는 어느새 헌터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낮은 자세로 숨어서 헌터 같은 발상에 헌터 같은 자세를 취했다. 교육받던 시절의 기억이 난다.


엄폐 4번 자세다.


나는 거기서 밤이 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적측 순찰자들은 계속해서 지나다녔고 밤이 되자 조금 뜸해졌다.


자세를 풀고 건물 내부로 돌아갔다. 지금까지 지켜본 바에 따르면 순찰하는 놈들 중 해제자나 초능력자는 없다. 워낙 주요 전력이다보니 이런 이른 하지 않는 듯했다.


나는 프록코트를 벗어 사무실 책상에 잘 올려 놓고 이불을 덮었다. 피가 조금 묻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침구다.


잠이 들었다.


꿈은 나의 신사도에 다항하는 숙녀도가 등장하여 날 괴롭히는 내용이었는데 잘 기억나지는 않아서 넘어가겠다.




눈을 뜨자 내 체내시계가 2시를 알렸다. 정확하진 않지만 제법 믿을 만하다.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니 사람은 없다. 밥부터 먹기로 하고 식량 창고로 갔다.


아침 겸 점심은 통조림 2개. 냉동실에 있어서 차가웠지만 그런 걸 가릴 때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내 짐과 그 안에 든 홍차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지프에서 갖고 내린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이후로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나는 모르는 게 참 많은 사람이라 모르는 것들에 대해 알빠노를 시전하며 살고 있다.


홍차는 다른 팀원이 챙겨줬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만 아쉬워하기로 했다. 참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옥상에 올라가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드넓은 도시가 통째로 폐허가 된 광경은 언제나 내게 이상한 기분을 가져다줬다.


누군가가 살던 집, 떡볶이 팔던 가게, 기업인의 사무실 등 수많은 이해관계와 인식, 기호 등에 얽혀 있던 복잡한 사회가 미사일 한 방에 분쇄된다.


아무것도 없던 원시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의 회귀가 존재한다면 이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류 자신의 손으로 시간을 되감는 일. 게이트 사태 이전에 유행했던 회귀물이나 전생물들이 생각났다.


그 매체들의 주인공 같은 인물들이 이 세계에 있었다면. 이 망해가는 행성도 희망을 논할 수 있지 않을까.


애석하게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저 영웅 류천진도 그런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이미 죽고 7년 동안이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모르지. 또 언젠가 갑자기 나타나서 세계를 구원할지.


폐허로부터 눈을 돌리려는데 무언가 내 시선을 스쳐지나갔다. 나는 고개를 홱 돌렸다.


무너진 간판더미에서 기어 나오는 그것은,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실로 익숙하다. 잠시 생각해 보니 어제 끌려가던 죽은 여자다.


좀비라도 된 걸까? 전투복을 입고 숨을 고르는 등이 내가 아는 사람과 닮았다.


조금 더 관찰하다 보니 문득 생각났다.


아.


쟤, 내 팀원이었지?




내가 발견한 인물은 최민정이다. 팀에서 가장 날카로운 성격을 가졌고 아티팩트로 만든 커다란 총기를 쓴다.


그 무기 때문에 달리기가 느려서 잡힌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이상한 건 그녀가 어째서 여기까지 왔냐는 거다.


나는 분명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을 텐데···?


“아닌가?”


생각해 보니 방향을 여러 번 바꿨기 때문에 한 바퀴 돌아서 원래 있던 곳으로 왔을지도 모르겠다. 그 망할 놈의 8km직진 후에 일어난 일이다.


그녀가 내 중얼거림을 먼 거리에서도 들었는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소리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모습. C급답다.


일단 그녀와 접촉하기 위해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오이오이!!”


일본식 인사를 건네며 다가갔다. 원래 신사는 여러 나라의 말에 정통해야 한다.


“씨발 뭐야!! 너 왜 살아있어!


그녀가 욕을 하며 내 쪽을 돌아봤다. 나는 여전히 쓸데없이 기만 센 그녀를 달래기 위해 일단 발로 깠다.


퍽!


“이, 씨···.”


욕을 하려는 입을 틀어막은 뒤 나의 보금자리 만사빌딩으로 끌고 갔다.


“와 여깄노?”


나는 일단 질문부터 했다. 물론 그녀가 순순히 답할 리 없다.


“왜 때리고 지랄이야!! 씹탱아!!”


바락바락 악을 쓰는 그녀를 다시 한번 후릴까 생각하다 신사의 체면을 생각해 그러지 않았다. 다행히 최민정은 곧 진정했다.


“아으, 머리···.”


그녀는 맞은 곳을 문지르다가 내게 말했다.


“그래서 너 왜 여깄냐?”


“도망치다 보니 여기까지 왔소, 레이디.”


“이젠 또 레이디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재빨리 물었다.


“설명 좀.”


최민정이 나를 노려봤다. 나도 그녀를 노려봤다.


곧 그녀가 한숨을 내쉬고는 설명했다.


“하아, 그래. 설명해줄게. 네가 사라지고 추격이 계속됐어. 대부분은 정부 쪽에 합류한 것 같은데 나는 길을 잘못 들어서 죽은 척이나 해야 했지.”


“그게 레이디의 이능인가?”


“응. 의외로 쓸모가 많지.”


그녀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내 은신처를 둘러봤다.


“만사빌딩? 여기 숨어 있던 거야? 왜 합류는 안 하고?”


안타까움을 담아 말했다.


“A급 헌터가 둘이나 따라붙었다. 사실상 수배 상태인데 대놓고 돌아다녔다간 죽을지도 모르지.”


“잠깐, 그래! 그 말투! 그대로 유지해.”


그녀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녀의 말에 다소 불만이 생겼지만 소통의 원활함을 위해 그러기로 했다.


최민정의 이유 없는 분노를 대면하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순 없고, 큰 전투가 시작되거나 해서 틈이 생기면 빠져나갈 생각이다. 그 전까진 여기 숨어서···.”


자꾸 바뀌는 내 말투에 나조차 적응되지 않았지만 계속 말하려던 때였다.


“저깁니다! 생체신호가 감지···.”


거기까지 듣고 최민정을 바라봤다. 그녀도 들었는지 혀를 찼다.


“쯧, 벌써 들켰네. 간신히 도망쳤는데.”


아마도 최민정을 따라온 자들일 것이다. 나의 위장은 완벽하니까.


밖을 빼꼼히 내다보니 화난 여자 한 명이 날아오고 있다.


내 오케스트라의 두 연주자 중 한 명이 분명하다.


“안녕! 오랜만!!”


나는 반갑게 인사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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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라산? 24.09.10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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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제주 24.09.06 12 0 12쪽
18 젠틀맨 발작 24.09.05 10 0 12쪽
17 안 죽임 24.09.04 11 0 11쪽
16 젠틀맨 티칭 24.09.03 12 0 12쪽
15 젠틀맨 탭댄스 24.09.02 12 0 12쪽
14 젠틀맨 심판 24.08.30 12 0 12쪽
13 젠틀-맨 24.08.29 13 0 11쪽
12 호상 24.08.28 13 0 11쪽
11 마지막 오케스트라 24.08.27 15 0 12쪽
10 문제해결 24.08.26 14 0 11쪽
9 S급 24.08.23 14 0 12쪽
8 젠틀맨 댄스 24.08.22 16 0 12쪽
» 재회 24.08.21 14 0 12쪽
6 왕후장상 24.08.20 16 0 12쪽
5 젠틀맨, 승리 24.08.19 18 0 12쪽
4 젠틀맨, 조우 24.08.16 20 0 12쪽
3 젠틀맨, 귀환 24.08.15 24 0 11쪽
2 젠틀맨, 임무 투입 24.08.14 26 0 12쪽
1 젠틀맨, 등장 24.08.13 78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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