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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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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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DUMMY

백화점에 들어오자마자 강혁은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직감했다.


“저기요? 누나? 남성복은 7층입니다만?”

“배도 고픈데 일단 먹고 시작하자.”

“식당은 올라가야 하는데? 지하는 식품관이야.”

“아! 거참 쫑알쫑알 시끄럽게 말이 많네. 너는 그냥 따라오기나 해!”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시식이란 시식은 전부 하게 될 줄은···.

식품관을 모두 돌고도 조금 모자랐던지 이강희는 한 번 더 돌고 1층으로 올라왔다.


강혁에게도 신박한 체험이었다.

시식으로 배를 채워 보기는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역시 백화점은 시식부터 시작이지. 이제 배를 채웠으니 다시 시작하자.”

“뭘 또 시작해? 정장 사러 온 거 아니야?”

“정장 살 거야. 나중에.”


그때부터 이강희의 쇼핑이 시작되었고, 강혁의 의문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왜 사지도 않을 거면서 처 보기만 하는 거야? 내가 모르는 정신병인가?’


한 층씩 돌며 사지도 않을 거면서 만져보고 구경하며 올라갔고, 그렇게 2시간이 지나서야 남성복이 있는 7층에 도착했다.


에스컬레이터가 점점 올라가면서 남성복이 보이자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 모습을 보던 이강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왜? 힘들어? 애인 생기면 주말마다 할 수도 있어. 연습한다고 생각해.”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강혁은 속으로 욕을 하는 중이었다.


‘······힘드네. 어떻게 수련하는 것보다 더 힘들 수가 있는 거지? 여자는 생각도 말아야겠다. 이게 지금 무슨 개고생이야?’


천신만고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이제 정장만 빨리 사서 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혁은 자신의 누나를 몰라도 너무 몰랐다.


‘정말 미친 건가?’


정장을 지금 몇 번이나 갈아입고 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다가 또 사지 않고 다른 가게에 가서도 똑같은 짓을 하겠지?’


과거 강혁도 백화점에서 옷을 산 경험이 있었다.

집에서 오후 1시쯤에 나갔는데, 돌아오니 3시도 되지 않았었다.

이동 시간을 빼면 백화점에 머문 시간은 10분? 15분?


입어보지도 않고 눈대중으로 샀는데, 지금은 가게에 있는 옷을 전부 한 번씩 입어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또다시 나왔다.

7층의 마지막 가게였다.


이강희도 조금은 눈치가 보이는지 재빨리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타며 말했다.


“음··· 이상하네. 그냥 옷만 보면 이쁜데 어떻게 니가 입으면 왜 싸구려처럼 보이지?”

“뭐야? 말하는 대로 다 따라 줬더니만 오히려 옷걸이가 개판이라고 욕하는 거여?”

“그게 아니라 반대지. 옷이 옷걸이를 못 따라 오는 것 같다는 말이야.”

“무슨 말이야?”

“내 동생이 백수지만 워낙 잘나서 말이지.”

“제정신이야?”


딱!


날아온 딱밤을 피하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지만 그래도 예의상 이마를 문질렀다.


“1층에 다시 가보자.”


* * *


1층에 도착한 강혁은 이강희를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이강희가 들어가려는 곳은 자신과는 전혀 동떨어진 곳이었다.


“저기 가자고?”

“왜?”

“정신 나갔어? 딱 봐도 엄청 비싸 보이잖아!”

“뭐 어때? 비싸면 그냥 나오면 되는 거지. 일단 어울리는 옷이 있는지만 보자.”


강혁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이강희를 보았다.


“정말 이유를 모르겠어?”

“뭔데?”

“아놔! 어쨌든 안 돼!”

“돼! 안되는 게 어디 있어!”


이강희가 강혁을 억지로 끌고 들어가자 매니저로 보이는 남자가 다가왔다.

명품 브랜드라 조금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이강희는 7층에 있는 가게처럼 자연스럽기만 했다.


“남자 정장으로 구경 좀 하려고요.”


남성 정장이라는 말에 매니저는 옆에 있는 강혁을 보았다.

키도 크고 멀끔하게 생겼다.

그런데 옷차림이 실망스러웠다.

그건 여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천만 원대의 옷을 살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고객님께서 구매하시기에 적합한 상품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정장을 찾으신다고 하셨죠?”

“네.”

“천이백만 원대부터 시작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처, 천이백이요?”


가격을 듣고 당황해하는 모습이 우스웠는지 매니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기분이 나쁠 만도 한데 이강희의 낯짝에 깔린 철판은 매니저도 어쩌지 못했다.


“그렇다고 구경도 못 해요?”

“네, 네?”

“구경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지금 우리 무시해요?”

“그게 무슨···.”


점점 진상화 되어가고 있는 누나가 쪽팔렸는지 강혁이 나서서 말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향이 좀 이상했다.


“거봐! 내가 우리 옷차림 보고 분명히 무시할 거라고 했지!”

“언제?”


이강희는 황당한 표정이었지만 말을 곰곰이 들어 보더니 무언가를 깨닫기 시작했다.


“아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 저기 독두꺼비 같은 남자가 우리 옷차림 보고 나가라고 할 것 같다고 했잖아!”

“그, 그랬지.”

“근데 왜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 정도로 저질은 아닐 거라고 하면서 끌고 들어온 거야? 거 봐 관상은 과학이 맞잖아!”

“맞지. 관상은 과학이지.”


동생의 말에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앞에서 듣고 있던 독두꺼비처럼 생긴 매니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누나는 작가라면서 이런 뻔한 클리셰도 몰라? 요즘에는 이런 상황이 너무 식상해서 거의 안 나온다고. 왜인지 알아?”

“왜 안 나오는데?”

“드라마나 영화에 이런 클리셰가 너무 많이 나와서 명품 매장 직원들도 다 아는 거지. 고객을 함부로 무시했다가 개같이 털릴 수도 있는데 빡대가리가 아닌 이상 이런 멍청한 짓을 하겠어?”

“그렇지! 빡대가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짓이지. 맞아. 내가 잘못했네. 이런 빡대가리가 직원으로 있는 곳에 오는 게 아니었는데···.”


순간 빡대가리에 독두꺼비처럼 생긴 매니저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지만 끙끙거리며 참아야만 했다.

소란을 감지했는지 이미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며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구경 중이던 아줌마가 상황이 재밌었는지 옆에 있는 다른 아줌마를 보며 말했다.


“이거 드라마 촬영하는 중인가요? 역시 드라마는 막장이네. 이런 식상한 장면도 오랜만에 보니까 재밌네요. 호호.”

“어머! 드라마에요? 어쩐지··· 난 또 이런 개 같은 상황이 진짜인 줄 알았네.”

“그쵸? 근데 요즘은 기술이 좋은지 카메라도 안 보이네요.”

“아! 그래서 현실처럼 너무 리얼했구나?”


아줌마들의 상상 속에서 대환장 파티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어머, 저기 총각이 연기를 너무 잘하네. 생긴 것도 멀끔하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완전 내 스타일이야! 신인인가?”

“근데 두꺼비처럼 생긴 배우는 평생 주연은 못할 것 같네.”

“그래도 진짜 연기는 잘하지 않아요? 지금도 멍청한 직원 역할을 하는 거 보면 연기로는 못 깔 것 같은데··· 근데 진짜 밉상은 밉상이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던 직원이 결국 지금 이 상황을 혼자서는 해결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고 보안요원을 호출했다.


그 사이에 이 난리를 만든 원흉인 이가(李家) 남매는 조용히 매장을 빠져나와 백화점을 나가려 했다.


강혁은 다시는 누나와 단둘이 외출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완전 사고뭉치에 골칫덩어리였다.

살다 살다 이런 말썽쟁이는 처음이었다.


사건을 일부러 일으키려고 해도 이렇게 하지는 못할 듯했다.


‘오늘 이후로 웬만하면 누나는 생까자.’


그렇게 다짐하며 백화점 문을 나서는데 또다시 돌아서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희 언니?”


돌아서자 강혁에게도 낯익은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과거 자신이 방송국에서 몸을 던져가며 구한 정은혜였다.


“은혜야!”


이미 이강희는 반갑다며 뛰어가 정은혜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밖에서 우연히 만나서 그런지 더 오버를 떠는 모습이었다.


“쇼핑은 다 하신 거예요?”

“아니. 다른 곳에 가보려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놀라서 뒷걸음질 치자, 이강희는 자연스럽게 강혁을 인사시켰다.


“근데 왜 둘 다 서로 모르는 척을 해?”

“네?”


정은혜는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무슨 말인지 다시 물었다.


“여기 서 있는 이 남자 몰라?”

“누구···.”

“생명의 은인을 몰라보다니··· 아! 그러고 보니 은혜 너 우리 혁이 안 본 지 좀 되었구나.”

“네? 그럼 저분이 혁이 씨라고요?”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미라 같았던 모습과 재활 할 때 한두 번 본 것이 전부였다.

퇴원하고부터는 못 봤으니 1년 이상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퇴원하고 육체 개조를 시작하기 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전혀 딴판이었다.


정은혜의 단아하던 눈이 경악으로 커지자 그제야 강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어요?”

“저, 정말 혁이 씨에요?”

“네. 그동안 운동해서 건강해졌습니다. 걱정해 주신 덕분이에요.”

“대박··· 앗! 그게 아니라 모습이 너무 달라져서···.”

“하하! 칭찬이죠?”

“그럼요!”


정은혜의 눈빛이 달라진 걸 눈치챈 이강희는 또 백수 동생을 위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호··· 이것들 보게! 분위기가 완전 핑크핑크 하잖아!’


정말 강혁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말썽쟁이였다.


“은혜 너도 뭐 사려고? 백화점 이제 들어오는 거야?”

“아, 아뇨. 저도 나가는 길이었어요. 여기는 찾는 게 없어서요.”


그 말에 강혁의 머리에 물음표가 떴다.

분명 들어가는 모습을 지나치다 보았다.

누나야 모를 수도 있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자신의 영역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이 무인의 기감이다.

물론 거짓말인 줄 알지만 그걸 굳이 따질 필요는 없었다.


“그래? 잘됐다! 그럼 우리 같이 다닐까? 좀 이따 저녁도 같이 먹고!”

“좋아요!”


강혁의 의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앞으로의 계획을 둘이서 결정했다.


“우리 집에 가는 거 아니었어?”

“이왕 나왔으니 저녁도 먹고 은혜도 만났는데 한잔 빨아야지!”


술까지 마음대로 추가 되는 순간이었다.


“저기요? 갑자기 술은 왜? 누나?”

“너 정장도 사야지.”


말과 달리 이강희의 머릿속에서 정장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정은혜는 백화점에 이제 막 들어오는 길이었지만, 이가 남매를 만나고서는 백화점에 볼 일 따윈 없었다.


“어디로 갈래?”

“가까운 곳부터 갈까요?”


순간 강혁이 화들짝 놀라며 정은혜를 쳐다보았다.


“가까운 곳··· 부터요?”

“네.”

“지금 시간이 꽤 되었는데 밥이나 먹고 헤어지는 게 어떨까요?”


그러자 이강희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며 펄쩍 뛰었다.


“이제 오후 3시 좀 넘었는데 무슨 말이야? 아직 두 군데는 더 갈 수 있어!”

“밥도 먹고 술도 마신다매! 그것만 해!”

“아니 너 정장도 사야지. 저번에도 못 샀잖아.”


듣고 있던 정은혜가 그 말에 바로 반응 했다.


“혁이 씨 정장 사려고요?”

“응. 집에 있긴 있는데 작아서 하나 사주려고.”

“그럼 그거 제가 사도 될까요? 예전부터 선물하나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마땅치가 않아서 못 하고 있었는데···.”

“에이! 뭘 그런 것까지 신경 쓰고 있어? 됐어. 마음만 받을게. 신경 쓰지 마.”


그 모습을 보던 강혁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걸 왜 누나가 말해? 닝겐, 당신이 구했나요?’


그럼에도 정은혜는 꼭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제가 꼭 선물하고 싶어서 그래요. 제가 사게 해 주세요.”


이강희는 그런 정은혜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동생을 보다가 다시 정은혜를 쳐다봤다.


‘음··· 백수와 아나운서라··· 요고요고 잘만 하면 가능할지도?’


처음에야 장난처럼 생각했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불가능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그렇게 해. 근데 니들 서로 전화번호는 알고 있는 거야?”

“아, 아니요.”


이강희는 갑자기 강혁의 휴대폰을 뺏어서 정은혜의 전화번호를 입력시키고 전화를 걸었다.


“그거 혁이 번호야. 저장해 둬.”

“네.”

“그럼 정장부터 사러 갈까? 어디로 가지?”

“여기 말고 바로 앞에 JH백화점에 가볼까요? 걸어서 10분이면 도착해요. 뒷문 쪽으로 가면 한산하고 좋아요.”

“좋아! 그럼 출발!”


둘은 강혁의 의견 따위는 묻지도 않았다.

어이없어하던 강혁은 순간 피식 웃으며 둘의 뒤를 따라갔다.


나이는 어렸지만, 살아온 세월은 훨씬 길었다.

그러니 아무리 누나고 연상이라지만 하는 짓이 귀여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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