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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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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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DUMMY

지이잉!


시작을 알리는 벨소리와 함께 청무겸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여유로웠다.


마치 저녁 식사를 하고 집 근처 공원에 산책을 나온 중년의 아저씨처럼 보였다.


검은색으로 통일한 쿵푸복과 신발, 2:8 포마드 머리는 단정하고 수양을 쌓은 기품마저 보이고 있었다.


그에 반해 강혁의 걸음은 빨랐다.

훨씬 늦게 움직였지만, 중앙에서 만나는 건 비슷했다.


강혁을 본 청무겸은 비릿하게 웃었다.


“표정을 보니 애비가 아직 살아있는 모양이로군. 운이 좋아.”

“불법체류자 새끼가 간도 크지, 감히 국회의원을 노려?”

“크크크크큭! 어려서 그런지 겁이 없군. 나중에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걸 보는 재미가 있겠어.”

“혀가 왜 이렇게 길어? 계집애처럼 말로 싸울 거야?”

“뭐야!”


순간 청무겸의 발이 진각을 밟으며 앞으로 크게 나아갔다.

왼발과 주먹 쥔 왼손이 날듯이 동시에 나아가 강혁의 명치를 노리고 들어갔다.


기습적으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그런데 강혁은 한 발을 뒤로 빼며 몸을 옆으로 트는 간단한 동작만으로 청무겸의 주먹을 피해냈다.


검은 주먹이 명치를 스치며 지나가자 바로 앞에 청무겸의 턱이 보였다.


퍽!


그걸 잽으로 가볍게 두드리자, 순간 다리가 풀렸는지 그대로 픽! 하고 주저앉았다.


‘뭐, 뭐야! 이거 뭐··· 엇!’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황한 청무겸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얼굴이 찌릿찌릿 해지고 있었다.


앞에서 휘몰아치는 거친 기류가 느껴지자마자 앉은 그대로 옆으로 굴렀다.

몸을 피하자마자 강혁의 정강이가 살벌하게 지나갔다.


거의 얼굴 정면이었다.

맞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이 한 번의 반격으로 인해 청무겸은 여유를 잃어버렸다.

얼마나 간담이 서늘했는지, 피했는데도 얼굴이 저릿저릿한 느낌이었다.


“당나귀처럼 구를 줄은 몰랐는데?”

“치잇!”


강혁은 나려타곤을 들먹이며 청무겸을 조롱했다.

급해서 하긴 했지만, 무인에게 있어 나려타곤은 수치스러운 모습이었다.


청무겸은 빠르게 감정을 다스리고 이성을 다잡았다.

방금처럼 큰 동작은 상대에 따라 큰 허점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상대를 너무 깔보며 방심한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거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을 섞다가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었다. 혀가 대단한 놈이다!’


공격은 콤팩트한 동작으로 하되 작은 빈틈도 내어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진각과 함께 다시 근거리로 접근한 청무겸은 주먹과 팔꿈치를 이용해 연타 공격을 시작했다.


마치 목인장을 치는 모습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타가 이어졌다.

하지만 강혁은 워킹과 더빙, 스웨이 등 복싱의 수비 동작으로 대부분의 공격을 피하고 비켜냈다.


‘이, 이걸 다 피한다고?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할 테냐?’


청무겸이 생각을 바꾸자마자 강혁의 주변으로 피가 튀기기 시작했다.

달라진 건 없었다.


정타는 물론 스치는 주먹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청무겸의 주먹이 지나갈 때마다 허공에는 피가 튀었다.


잠시 떨어져 소강상태에 이르러서야 강혁의 몸을 자세히 볼 수 있었는데, 마치 채찍에 맞은 것처럼 온몸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늙어서 그런지 잔대가리만 늘었네. 계집애처럼 이게 뭐하는 짓이야?”


자신의 몸을 보던 강혁이 무심하게 내뱉자, 청무겸은 웃으며 주먹을 들어 보였다.

특이하게도 엄지손가락이 곧게 펴져 있었다.


엄지손가락을 편 채로 주먹을 뻗으며 손톱으로 강혁의 몸을 긁은 것이다.

몸에 생채기가 났다면 이미 중독되었다는 뜻이었다.


“너도 곧 애비 곁으로 가게 될 거다.”

“가긴 가야 돼. 곧 퇴원 하시거든.”

“허허···.”


말로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독이 충분히 퍼지도록 시간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강혁은 더 이상 어울려주지 않았다.


이제는 수비만 하지 않겠다는 듯,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 살벌해져 있었다.

맞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때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크흐흐··· 이러면 나야 고맙지!’


상처가 늘어날수록 중독되는 독의 양은 더 많아질 것이고, 중독 증상은 더 빠르고 강하게 나타날 것이었다.


청무겸은 속으로 비웃음을 흘리며 강혁의 공격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맞불을 놓으며 강대강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쿵푸 특유의 움직임으로 반격해 강혁의 턱이 들리고 어깨가 들썩였다.

다리가 풀릴 만도 한데 강혁은 끄떡도 하지 않고 다시 돌진해 들어왔다.


독수에 당해 피가 튀기고 몸에 구멍이 뚫렸다.

그럼에도 잠시 잠깐 움찔거리기만 할 뿐 공격의 템포가 전혀 꺾이지 않았다.


‘도, 도대체 어떻게 된 몸이야? 지금쯤이면 독이 돌고도 남을 시간인데!’


시간이 지나도 중독 증상이 나오지 않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청무겸이었다.

더 이상 강혁의 압박을 견디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터져 나온 근거리 스트레이트가 상황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이건 주먹이 아니라 작은 번개였다.

앞이 번쩍거리면, 별이 보이고 머리에서 천둥이 쳤다.


퍽!


“어헉!”


퍼퍽! 퍽! 퍼버버벅!


한 대 맞고 ‘어어’ 거리다 서너 대를 더 처맞았다.

청무겸은 뒤로 빠져 다시 자세를 잡고 들어오는 강혁을 반격기로 강하게 때렸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앞발로 복부를 밀어 차며 거리를 조금 벌렸다.

순간 눈을 번쩍인 청무겸에게서 삼중수(三中手)가 펼쳐졌다.


제자리에서 강하게 밟은 진각과 함께 인중, 목, 명치를 동시에 찌르고 들어갔다.


퍼퍼퍽!


!!!


청무겸은 자신이 공격하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삼중수는 비기라면 비기였다.


“이, 이런 미친···.”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부를 뚫었던 손가락이 지금은 철벽을 때린 것 마냥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불괴공의 특성, 증강(增強) 때문이었다.


삼중수를 맞고도 잠시 움찔거린 강혁은 다시 주먹을 뻗었다.

맞는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가 할 공격만 꿋꿋하게 하고 있었다.


전의가 거의 꺾이는 순간이었고, 그때부터 청무겸의 지옥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퍼퍽! 퍽! 퍼퍽! 퍼퍼퍼퍼퍽!


입술이 터지고 코가 부러져 쌍코피가 흘렀다.

그 때문인지 숨쉬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눈도 퉁퉁 부어 앞이 잘 보이지 않았고, 온몸이 저리고 아파 왔다.


많이 때리기도 했지만, 청무겸은 너무 많이 맞고 있었다.


아무리 신체를 단련한다지만, 소모적이기만 한 이런 진흙탕 싸움에서 20대의 젊고 싱싱한 육체를 이길 수는 없었다.


무차별적인 공격을 견디지 못한 청무겸은 일단 빠져서 숨이라도 돌리려고 몸을 빼는 순간이었다.


탁!


청무겸은 양쪽 손목에 구렁이가 감기는 느낌이 들었다.

코앞에서 웃고 있는 강혁의 얼굴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독수라 불리는 청무겸이었다.

악력이라면 자신 있었고, 자신도 곧바로 강혁의 손목을 마주 잡으려고 했다.


빠각!


!!!


손목 바로 위 팔뚝이 완전히 부러져 덜렁거리고 있었다.

고통도 고통이지만, 사람의 힘으로 이렇게 쉽게 부러트릴 수 있다는 게 잘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의문스러운 것은 따로 있었다.


‘이, 이놈은 왜 중독 증상이 일어나지 않는 거지? 도대체 왜!’


보통은 생채기가 생겼을 때부터 조금씩이라도 증상이 나타났어야 했다.


그런데 강혁은 잠깐씩 움찔거리기만 할 뿐,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

완전히 일그러진 얼굴로 청무겸이 물었다.


“도, 도대체 뭐 하는 놈이냐?”

“무직이다! 불법체류자 새끼야!”


강혁은 뻗고 있던 주먹을 거두며 힘차게 발을 차올렸다.

아론을 실신하게 만든 고간차기였다.


퍼억!


“끄으아아아악아으아아어억아!”


고통이 심한지 아론과 비슷한 괴성을 질러대며 바닥을 뒹굴었다.

밖에서 그것을 본 심판이 뛰어 들어오려고 하자 강혁이 손을 들어 막았다.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구르고 있는 청무겸의 무릎을 걷어찼다.


빠각!


다리 하나가 기이하게 꺾였다.


“끄아아아악!”


다음은 손이었다.


쾅! 쾅! 쾅!


그대로 밟고 또 밟았다.

원래도 사람 같지 않았던 손이었는데, 이제는 찌부러져 거의 걸레가 되어 있었다.


보다 못한 심판 하나가 말리려고 다가왔지만, 강혁의 눈빛을 보자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겠는지 멈춰 서서 지켜보기만 했다.


청무겸의 가슴 위로 올라탄 강혁은 주먹을 계속해서 내려쳤다.


“개 같은 새끼가 감히 아버지를 죽이려고 해!”


퍽! 퍽! 퍼퍽! 퍼퍼퍽! 퍼퍼퍼퍼퍽!


끝없이 이어지던 주먹을 막은 것은 백수범이었다.


“그만! 그만해!”


때리다 보니 화가 올라와 눈이 잠시 돌아간 강혁이었다.

백수범이 말리고 나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앞에는 청무겸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바닥까지 초토화되어 있었다.


“으··· 으··· 으···.”


미약한 신음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많이 맞았는데도, 청무겸은 바퀴벌레처럼 살아 있었다.


백수범은 강혁을 위해서라도 살인만은 막고 싶었다.

선을 넘게 되면 언제든지 다시 넘을 수 있었다.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쉬웠다.


“이미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기적적으로 산다고 해도 이제 이 짓은 하지 못할 거다.”


숨통을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짓기로 했다.


강혁이 돌아서자 심판은 그제야 손을 들어 의료팀을 불러들였다.


* * *


“이, 이럴 수가···.”


조장원은 찢어질 듯 커진 두 눈이 곧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차태민조차도 놀란 표정을 숨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건 이강철 회장과 김선우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저번 경기처럼 가능성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이렇게 이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때 모니터에 뜬 배율과 금액을 보고 김 실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회장님! 배당금만 사, 삼천팔백억입니다!”

“어허! 김 실장, 방금 미래의 사옥을 잃은 사람 앞에서 그게 할 소린가?”

“아··· 죄송합니다.”


청무겸이 질 수도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러니 몇천억짜리 건물로 내기를 했지, 승부가 반반이었다면 절대 이런 도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블랙뱅크가 중간에 낀 이상, 없던 일로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조장원은 눈앞이 깜깜해지고 있었다.


이 회장은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조장원을 언제까지 기다려 줄 수는 없었다.


“오늘은 내가 운이 좋았어. 사옥은 잘 쓰도록 하지.”


이 회장이 간단한 인사를 남기고 밖으로 나가자, 화를 이기지 못한 조장원은 앞에 놓인 유리 테이블을 내려쳤다.


통유리로 만들어 튼튼해 보였지만, 산산조각이 났다.


인사라고 하지만, 아픈 속을 곡괭이로 파고 있었다.

속이 부글부글 끓고 열이 올라 눈알이 아플 정도였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잘 갚았다고 소문이 날까?”

“돈을 다시 돌려받으려면 블랙아고라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그리고 이강혁 이 새끼도 조져야겠어.”

“다시 청부를 할까요?”

“아니. 청무겸이 저리된 이상 웬만한 놈들로는 소용이 없을 거다.”


다른 생각이 떠올랐는지 차태민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암거미에게 의뢰하면 어떨까요?”


암거미라는 말을 듣자마자 조장원은 짝! 하고 박수를 쳤다.


“아! 내가 왜 그 재수 없는 년을 생각 못 했지? 돈은 좀 들겠지만, 사람 하나 나락 보내는 기술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년인데··· 바로 연락해 봐.”

“알겠습니다.”

“그리고 영상은 어떻게 됐어?”


잠시 고민하던 차태민은 있는 그대로 보고하기로 했다.


“김민주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뭐? 사라져?”

“청무겸이 이정석 의원을 습격한 날부터 집에 오지 않고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년이네.”


자신도 표적이 되었다는 걸 눈치채고 몸을 숨겼다는 게 느껴졌다.


“호텔들 위주로 돌고 있는데 아직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못 찾아. 그냥 집만 지키고 있어. 언제 한번은 다녀갈 테니까.”


오늘 하루에 몇천억을 잃었는데도 조장원은 금세 털어버렸다.

전 재산도 아니었고, 다음에 만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딸 때문에 말려들긴 했지만, 조장원은 이미 전쟁 중이었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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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6 24.09.13 3,567 72 12쪽
38 38화 +3 24.09.12 3,545 7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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