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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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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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DUMMY

정은혜의 말처럼 JH백화점의 뒷문 쪽은 정문과 비교해 많이 한산했다.

주차장 들어가는 입구는 다른 곳에 있어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었다.


백화점 입구를 앞에 두고 이강희가 은근한 어조로 물어왔다.

정은혜에게 들리지 않도록 말하려는 듯했지만, 바로 옆에 있는데 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정은혜는 모르는 척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은혜 어때? 저 정도면 얼굴 이쁘지, 성격 좋지, 몸매 좋지, 직업까지 좋아! 어디 빠지는 곳 없이 거의 완벽한데 관심 없어?”

“정신 차려. 백수한테 누굴 갖다 대는 거야? 욕 처먹고 싶어서 그래?”

“그런가? 그래도 은혜가 좋다고 할 수도 있잖아. 여자 마음은 모른다니까?”

“헛소리 그만하고 앞에 은혜 씨나 챙겨. 나는 뒤따라갈 테니까.”


갑자기 자신이 말을 꺼내 놓고 몰입해 버린 이강희는 동생이 백수라서 좋아한다는 말도 못 하는 거라 생각했다.

어차피 거절당할 테니까 말이다.


직업이 문제라면 이강희도 생각하는 게 있었다.


“백수라서 자신이 없는 거야? 그런 거라면 차라리 그쪽으로 나가보는 건 어때? 소질이 있어 보이던데···.”

“무슨 말이야?”


강혁의 모르쇠에 이강희는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대기업 면접을 보라는 말은 했지만,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건 누구보다 더 잘 안다.


하지만 이번에 일어난 사건의 영상을 보면서, 저번 길거리 스파링에서 오대수와 석두철을 잡은 것이 요행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격투기를 잘 모르는 이강희도 석두철은 알고 있었다.

UFL 경기가 있을 때마다 각종 언론매체에서 광고가 수도 없이 나온다.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이긴 무슨 말이야! 격투기지! 저번에 무려 석두철을 이겼는데 그냥 백수로 살겠다고?”

“제대로 본 거 맞아? 나는 맞기만 했어.”

“웃기고 자빠졌네. 맞기만 한 거 맞지. 맞아. 근데 내가 여자라고 해태 눈인 줄 알아? 어디서 개소리로 사기를 때리려고···.”


갑자기 발광을 하려던 이강희를 강혁은 한마디로 멈춰 세웠다.


“엄마가 허락할 거 같아?”

“어? 그, 그거야 그렇지···.”

“누나가 한번 말해볼래?”


집에서는 웨이트 트레이닝, 그러니까 그냥 헬스 정도 하는 줄 알고 있었다.


이번 명성과의 일도 어머니는 어쩔 수 없는 사고 같은 일이라 생각해서 그냥 넘어간 것이었지, 만약 길거리 스파링을 봤다면 한동안 난리가 났을 터였다.


그러니 누나가 대신 말해주면 오히려 좋았다.

은근슬쩍 떠보는 말에 이강희가 강혁에게서 한 발짝 떨어지며 슬쩍 몸을 떨었다.


“누나 머리채 다 뜯기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그렇겠지?”

“그래. 내 생각이 짧았네. 아! 혹시 스파링 영상이라도 엄마가 보면 어떻게 해? 크, 큰일인데!”


그러자 강혁은 1초도 생각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나는 무조건 누나가 하라고 해서 했다고 할 거니까 누나도 알아서 살길 찾아.”

“너무하네. 큰돈 벌게 해줬잖아!”

“아니 내가 스파링 이겨서 딴 돈인데 왜 누나가 숟가락을 올리지? 그리고 나는 분명 처음에는 하기 싫다고 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누나가 부탁해서 내가 들어준 거잖아.”

“야이 양아치야! 의리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네. 혼자만 살겠다고 누나를 팔아!”


그렇게 JH백화점 앞에서 남매가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듣고만 있던 정은혜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기 누가 오는데요?”


시커먼 누군가가 다가왔다.

강혁의 시선이 돌아가자 이강희의 시선도 따라갔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는 다가와 낮은 어조였지만 조금은 강압적으로 말했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사내는 백화점 보안 요원처럼 보였다.

백화점 입구 근처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란도 그냥 넘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강혁은 굳이 이런 일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강희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크게 소리를 지르며 장난을 친 것도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대화였다.

소란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문 바로 앞을 막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길거리에서 이 정도 대화도 못 하게 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던 것이다.


입구 쪽을 보니 누가 오는 것인지 사람들의 출입을 아예 막기 시작했고, JH백화점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와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열이 뻗쳤는지 이강희의 성격이 나오기 시작했다.


“백화점에 누가 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길을 막고 시민을 쫓아내도 되는 건가요?

“옆을 한 번 보시죠. 백화점 건물이 보일 텐데요? 백화점은 사유지입니다.”

“백화점은 사유지가 맞죠. 근데 여기는 백화점 앞 인도인데요? 국가 소유의 땅입니다만?”

“말꼬리 잡지 말고 그냥 갈 길 가십시오. 여기서 이런다고 달라지는 것 없습니다.”


사적으로 시민의 길을 막는다는 게 좋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보안 요원이 끝까지 존댓말을 하며 싸움을 피하려는 것을 보면 그리 막돼먹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누나. 그냥 가자.”

“정장 사러 여기까지 왔는데 가긴 어딜 가? 들어가자.”


그런데 보안 요원이 이강희의 앞을 막아섰다.


“여기 문은 폐쇄되었으니, 백화점을 이용하시려면 돌아가서 다른 문을 이용하십시오.”

“뭐라고요? 활짝 열린 백화점 입구가 바로 앞에 보이는데 돌아가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뒤에서 보고만 있던 정은혜도 거들었다.


“저기요! 오는 방향이 이쪽이라 JH백화점 올 때마다 여기로 출입했어요. 한 번도 이런 적 없었는데 이러는 이유가 뭔가요? 단순히 높은 사람이 온다는 이유로 길을 막는 거라면 불법인 거 아시죠? 아직 오지도 않은 것 같은데 그냥 빨리 들어가면 되잖아요.”


따지고 드는 여자의 얼굴이 낯이 익었지만, 곧바로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났는지 보안요원은 자기도 모르게 이름을 불렀다.


“정은혜 아나운서?”

“네. 맞아요. 자꾸 이러면 저 이거 제보할 수도 있어요.”

“휴··· 큰일나기 전에 그냥 가십시오. 팀장님 오시면 저도 못 막습니다.”


옆에서 듣다가 기분이 나빴는지 이강희가 발끈했다.


“지금 협박하는 거죠?”


이에 깊게 한숨을 쉰 보안 요원이 다시 말하려는데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야! 거기 뭐해! 왜 아직도 그러고 있어!”


고함친 사내가 걸어오는데 그를 본 이강희와 정은혜의 눈이 커졌다.

사내의 키가 2m 정도 되어 보이고 덩치가 장난이 아니었다.


짧은 스포츠머리를 했는데 눈두덩이가 툭 튀어나와 있고 각진 턱 때문에 얼굴이 거의 사각형에 가까웠다.

일견 사내답게 보이기도 했지만 매우 거칠어 보이는 인상이었다.


“한민우.”

“팀장님. 이분들 지금 막 가시려고···.”

“뭐야? 내가 뒤에서 다 봤는데도 구라를 치네.”

“아, 아닙니다.”

“이런 일도 제대로 처리 못 해? 회사에 시험치고 정규직으로 들어왔다고 떠받들어 주니까 정신 못 차리지?”


순간 이강희는 이들이 보안 요원인지 조폭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팀장이라고 나타난 거구의 사내는 소매 밖으로 손등까지 문신이 내려와 있었고, 얼굴에도 흉터 자국이 짧은 것과 긴 것 두 개가 있었다.


한민우라 불린 사내는 그나마 보안 요원처럼 보였으나, 정작 팀장이라는 사내의 행동거지는 조폭 건달 양아치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강희가 겉모습만으로 겁먹고 물러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누나를 보자 그냥 끝날 것 같지가 않아 강혁은 미리 정은혜를 자신의 뒤로 숨기고 있었다.


“직원 교육은 나중에 시키고 그만 비켜요! 백화점 좀 들어가게.”


JH백화점 보안팀장 양강인은 이강희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고 무시했다.


“한민우. 내가 이럴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지?”

“그러다가 경찰이라도 부르면···.”

“여기 우리 구역이야. CCTV가 있어도 상관없어. 어떤 법적 증거라도 우리 허락이 있어야 나간다. 그게 여의도의 이면법(裏面法)이다.”


그 말에 강혁의 눈이 순간적으로 이채를 띠었다.

분란을 일으키지 않으려고 그냥 피하려고만 했는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피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뭐야 이 사람?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여기는 법도 없어?”


조금은 이상함을 감지한 이강희가 법을 들먹이자 양강인이 돌아보며 낮게 웃었다.


“이거 봐. 좋게 말로 하면 처 듣지를 않아. 법만 믿고 무서운 게 없어. 개처럼 맞아봐야 세상이 법만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겠지.”

“팀장님.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냥 보내시죠.”

“아니! 이미 내 말은 들었으니 적절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끼자, 이강희는 주위를 둘러봤다.

이미 사람들이 통제되어 주위에는 백화점 관련자와 자신들밖에 없었다.


도로가 있지만 일방통행이었다.

아마 처음부터 이 출입문은 VIP들을 생각하고 만들어 놓은 입구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도로로 지나다니는 차나 뒷문으로 출입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CCTV를 찾았지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로 쪽에 있는 CCTV는 방향이 맞지 않았고, 건너편은 나무에 가려져 확인이 되지 않았다.


눈에 띄는 건 백화점 쪽인데 보안팀장의 말대로라면 수사 협조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아니, 이 정도 자신감이라면 경찰도 믿을 수 없었다.


이강희는 여의도 한복판에서 이런 곳이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CCTV가 보이는 것만 3대인데 백화점과 관련이 되면 실질적으로는 CCTV 사각지대나 다름이 없었다.


“혀, 혁아 빨리 경찰 불러!”


그런데 대답은 양강인이 했다.


“어디 불러봐. 경찰보다 앰뷸런스가 먼저 와서 태워 갈 거니까. 고소하려면 해. 그런데 누구한테 맞았다고 할 거지? 후후···.”


대낮에 그것도 길거리에서 폭력과 직접 마주했다.

이강희는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 여기가 과연 대한민국이 맞는지가 더 의문이었다.


‘내가 다른 세상에 있는 건가?’


석두철을 이긴 동생이 옆에 있다지만 상대는 거구의 괴물이었다.

거기다 몰려온 보안 요원만 넷이 더 있었다.

강혁이 여섯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명성 경호원들과 싸우는 영상과 비교하면 숫자상으로 여유가 있었지만, 영상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마주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었다.


막상 마주하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압박감이 엄청났다.

법과 공권력이 없다고 생각하니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강혁 뒤에 숨은 정은혜도 연신 너무하는 게 아니냐고 외쳤지만, 이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두려움과 함께 굳어버린 이강희를 보며 양강인은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양강인은 폭력이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이강희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잡으려고 손부터 뻗었다.

그런데 순간 이상한 소리가 팔에서 들려왔다.


빠각! 우두둑!


양강인과 이강희 사이에 갑자기 끼어든 강혁이 손목을 잡고 돌리자, 손목이 부러지면서 팔꿈치까지 탈골되어 버렸다.


“어억! 이, 이게 뭐야! 으으윽···.”


방금 전까지만 해도 강인하게 보이던 팔뚝이 힘없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곧바로 강혁의 카프킥이 날아와 양강인의 발목과 종아리 사이를 때렸다.


콰직!


끔찍한 소리가 났다.

얼마나 아팠는지 이번에는 비명까지 지르며 그대로 쓰러졌다.


“끄아아아악!”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보안 요원들은 팀장이 당하는 걸 보면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괴물 같은 팀장이 비명까지 지르며 쓰러지는 모습이 그들에게 너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대단한 덩치와 힘, 맷집으로 요원들에게 금강역사라 불리며 무적으로 통하는 팀장이었다.


“팀장님!”

“다, 다리가···.”


양강인의 발목이 완전히 부러져 팔처럼 덜렁거리고 있었다.

보안 요원들은 그제야 정신 차리고 양강인을 뒤로 끌어내며 앞을 막아섰다.


“그쪽에서 먼저 손을 썼다. 더 할 건가? 막지 않겠다면 그냥 가겠다.”


강혁이 물러서는 듯하자 보안 요원들은 솔직히 그냥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팀장의 팔다리를 작살낸 강혁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것은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강혁을 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팀장 때문이기도 했다.


“저, 저 새끼 잡아! 절대 그냥 보내지 마! 애들 더 부르고 일단 뒤에 있는 계집들부터 잡아!”


선을 넘어도 많이 넘었다.

이제 강혁도 그냥 갈 생각을 접었다.

저런 말을 듣고도 그냥 갔다가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은 잔인해지겠지만···.

상관없다.

이면법은 강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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