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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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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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DUMMY

헬스장으로 들어서는 여성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누군가를 찾는 듯 보였다.

분홍 레깅스와 브라탑을 입고 가벼운 바람막이를 걸친 지윤진이었다.


운동을 꾸준히 해 온 것인지 몸매가 아주 탄탄해 보였다.

그녀는 물통에 물을 받으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며 강혁을 찾았다.


‘이 자식은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조사를 할 때는 그렇게 정확한 시간에 다니더니 지금은 완전 마음대로잖아!’


지윤진은 첫 계획이 실패하자 결국 강혁이 다니는 헬스장에 찾아가야 했다.

어떻게 하고 싶어도 만나야 뭘 할 수 있을 텐데, 그날 이후로 만날 수가 없었다.


‘근데 여긴 뭔데 이 시간에 웬 여자들이 이렇게 많아?’


정오가 조금 넘어 있었다.

점심을 먹고 운동하려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자 운동하던 여성들이 하나둘 빠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친구처럼 보이는 여성 둘이 지나가면서 나누는 대화가 남 일 같지 않았다.


“그 사람 여기 다니는 건 확실해? 벌써 며칠째야?”

“저번 주에 내가 직접 봤다니까!”

“그래? 근데 왜 안 오지?”

“나도 모르지. 언제 오든 그거야 그 사람 마음인데 내가 어떻게 알아?”

“아··· 직접 보고 같이 사진이라도 한 장 찍고 싶었는데···.”

“근데 너 괜찮아? 점심시간 끝난 거 아냐?”

“빨리도 물어본다. 불금이라 반차 쓰고 왔지. 나가서 치맥 콜?”

“반차 쓰더니 정신도 같이 나갔네. 지금 오후 3시도 안 됐거든!”


지윤진도 이번 주부터 더블H gym에 등록해 다니기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강혁과 마주쳤을 때가 점심시간 직전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점심시간쯤 오면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운동을 다닌 지 일주일이 다 되었는데도 볼 수가 없었다.


운동시간이 바뀐 건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벌써 일주일을 이러고 있었는데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누가 말을 걸었다.


“누구를 그렇게 찾으시는 거죠?”


돌아보자 영화에서 나오는 아마존 여전사처럼 건강미가 돋보이는 미녀가 서있었다.

지윤진도 나름 한 몸매 한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눈앞의 그녀와 비교하면 자신은 그냥 어린아이나 같았다.


“차, 찾다니요? 누구를요?”

“여기 월요일부터 다니셨죠?”

“그런데요?”

“운동은 하지도 않고 이리저리 눈만 굴리면서 있다가 가니까 그렇죠.”


어이가 없었다.

남이사 눈을 굴리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문제가 되나요?”

“그건 문제가 아닌데 다른 건 문제죠.”

“다른 문제가 뭐죠?”

“한남동 철벽남.”

“헉!”


직업 특성상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짐작도 못 한 곳에서 갑자기 정곡이 찔리자 지윤진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고 말았다.


그러자 김민주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다는 듯 좀 더 공격적인 말투로 바뀌고 있었다.


“이거 봐! 이거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요즘 내가 관리를 좀 못했더니 아무나 막 들이대려고 하네.”

“드, 들이댄다니요?”

“여기 언니 같은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요?”


언니라고 부르자 나이에 민감한 30대라 그런지 지윤진은 발끈하고 나섰다.


“내가 몇 살 인줄 알고 갑자기 언니래요? 저보다 그쪽이 더 언니 같은데요?”


그 말에 김민주는 피식거리며 웃어버렸다.


“딱 봐도 30대인데 속일 사람을 속이세요. 아니라면 서로 민증 까볼까요?”


항상 라이브 방송을 하면서 운동을 하는 김민주였다.

뒤쪽에 세워둔 스마트폰 속 채팅창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어라? 싸운다, 싸워! 근데 민주가 저래도 되는 거냐?]

[야생에서 동물들이 암컷 한 마리를 두고 싸우는 수컷들은 봤지만, 수컷도 없는데 서로 차지하려고 암컷들끼리 싸우는 건 처음보네. 무섭다.]

[민주 포스 개쩌는데! 앞에 여자 개쫄았닼ㅋㅋㅋ]

[나 같아도 쫀다. 저 다리가 보통 다리냐? 말 뒷다리에 차인다고 생각하면 거의 교통사고 급이다!]

[근데 민주가 철벽남하고 사귀는 사이가 맞긴 맞아?]

[아닐걸?]

[그럼 이거 거의 스토킹 아니냐?]


당연히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납치 사건이 있었던 이후로 자신은 이미 이강혁의 마누라가 되어 있었다.

혼자서.


이런 김민주의 갑작스러운 도발에 지윤진은 평정심이 거의 바닥나고 있었다.


자신이 누구이던가?

뒷세계에서도 암거미라 불리는 청부업자였다.


의뢰를 받으면 대상의 숨겨진 진실을 밝혀내거나 조작된 증거를 이용해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린다.

대부분이 재벌과 유명인들로 잃을 게 많은 사람이 대상이었다.


이런 사람들만 상대하다가 김민주 같은 이상한 일반인을 상대하려니 허파가 뒤집어지는 것 같았다.


여자의 약점은 역시 나이와 외모라고 할 수 있었다.

김민주는 이걸 놓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이 정도면 거의 사생팬 수준이었다.


“갑자기 머리채라도 잡을 기세네요? 나이 얘기 나오니까 화는 나는데 민증은 못까겠죠? 민증 까봐요. 나보다 어리면 바로 사과 하죠.”

“내가 굳이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럼 30대인 거 인정하는 거네요?”

“뭐라고요!”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면서 도대체 남의 남자를 왜 넘보는 거예요?”

“이, 이게 진짜!”


한순간에 파렴치한으로 몰리고 있었다.

다투는 소리를 듣고 주변으로 몰려든 사람들이 전부 김민주 말만 듣고 자신을 벌레처럼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건 분명 자신이 하던 일이었다.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거나 망신을 줘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도록 만든다.

유명인 같은 경우 법적 처벌이 끝나도 도덕적으로는 끊이지 않고 욕을 먹었다.


암거미가 하는 일이 바로 이런 것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자신이 그렇게 당하고 있었다.


[진상이다! 진상이 나타났다!]

[근데 저 여자는 왜 계속 상대를 해주고 있는 거지?]

[한남동 철벽남 때문이겠지. 지금 피해도 어차피 언젠가는 외나무다리에서 다시 만날 거다 이건가?]

[철벽남이 뭐라고 여자들이 이러는 거야? 아주 환장을 하네!]

[니가 한소윤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다!]

[씨발아! 한소윤은 건드리지 말라고!]

[개새야! 민주가 지금 너처럼 그 말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근데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어째 분위기가 살벌한데··· 어? 머리채 잡았다!]


채팅창에 올라온 말처럼 분위기는 살벌하게 흘러갔다.

처음에는 황당해하던 지윤진이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김민주의 머리채를 먼저 잡았다.


“아악! 이거 놔!”

“안 놓으면 어쩔 건데 싸가지 없는 년아!”


그러면서 머리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

그런데 그 순간 무언가가 자신의 얼굴을 후리고 지나갔다.


퍽!


얼굴의 충격과 함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지윤진은 잡은 머리채를 놓치며 옆으로 푹 쓰러졌다.


“대, 대박!”

“라이트 훅?”

“그냥 개싸움인 줄 알았는데 갑자기 UFL이네!”

“잘한다!”

“저런 파렴치한 년은 맞아야 정신 차리지! 어디 남의 남자를 넘봐!”


구경하던 사람들은 머리채를 잡힌 김민주가 라이트훅을 날리자 놀람과 함께 감탄사를 터트렸다.

맞고 쓰러진 지윤진을 욕하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작게 박수까지 치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벌떡 일어난 지윤진은 벽에 있는 거울을 보자 쌍코피가 줄줄 흐르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 이런··· 개 같은 년이! 죽엇!”


두 손을 앞으로 뻗으며 이성을 잃고 마치 좀비처럼 달려들었다.


퍽!


앞 손 잽에 얼굴 정면을 얻어맞고 그대로 다시 뒤로 넘어졌다.


콰당!


코가 사라진 것처럼 감각이 없었다.

놀라서 손을 가져가니 있기는 있었다.


다만 부러진 것이 고통과 함께 손에 느껴졌다.


납치 사건 이후 김민주는 헬스장 밑에 있는 MMA체육관도 다니며 복싱과 킥복싱을 독하게 수련하고 있었다.

이러니 타격 거리에서 머리채부터 잡는 지윤진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언니가 먼저 시작한 거야!”


김민주의 말은 뇌관을 터트려 지윤진의 이성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갑자기 앞으로 구르더니 엎드린 상태로 김민주의 발목을 잡아당기며 어깨로 무릎을 밀었다.


버티려 했다가는 무릎이 망가질 수 있었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자 지윤진은 자세를 바꿔 김민주의 발을 겨드랑이로 넣으며 발목을 팔로 감았다.

그리고 두 다리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앵클락은 발목을 꺾는 기술이지만, 어느 방향으로 구르느냐에 따라서 잡은 다리의 무릎도 꺾이기 때문에 시합에서는 꺾이지 않는 방향으로 돌아야 한다.

허리를 펴며 발목을 꺾는 건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눈이 돌아간 지윤진은 상대방의 무릎이 꺾이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최대한 파괴하려 들것이었다.


앵클락은 이미 완성되었고, 상대를 부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지윤진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건 주짓수 시합이 아니고 싸움이었다.


순간 운동화 바닥이 크게 확대되면서 턱에 충격을 느끼며 의식이 날아갔다.

완전히 뻗은 지윤진을 보며 김민주도 간담이 서늘해졌다.


무릎과 발목에 부하가 일어나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반대 발로 업킥을 적중시키지 못했다면 지금 자신의 무릎과 발목은 꺾여 있었을지도 몰랐다.


짐작도 못 한 주짓수를 숨기고 있었다니 운이 나빴다면 꼼짝없이 당할 뻔했다.


바로 옆에서 이걸 지켜보던 사람들도 난리가 났지만, 라이브 방송 채팅창은 완전한 혼돈 그 자체였다.


[뭐, 뭐냐 이거? 처음에 머리채 잡으며 시작한 거 아니야?]

[저번 주에 본 UFL보다 더 박진감 있고 스릴이 넘치는데! 여자들 싸움이 이렇게 재미있다고?]

[내가 방금 뭘 본거지?]

[상대편 여자도 바닥에서 몸놀림이 장난이 아니던데? 난 무슨 영화 보는 줄 알았네.]

[근데 이거 괜찮은 거 맞아? 저 여자가 고소라도 하면 어떻게 하냐?]

[응. 쌍방이라 괜찮아!]

[응. 쌍방인데 저 여자 얼굴만 묵사발 남!]


대자로 완전히 뻗어 실신한 지윤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앞에서 기다리던 김민주가 물수건을 던져주었다.


“맞은 게 억울하면 경찰 부를까?”

“뭐? 경찰?”


경찰이란 말에 정신이 확 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싸움까지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연약한 여자로만 포장되어 있어야 했는데, 이성을 잃고 주짓수까지 써버린 것이다.

물론 업킥에 맞아 실신해 버렸지만 말이다.


싸운 여자는 무슨 뒷배라도 있는지 먼저 경찰을 부를까 물어보기까지 했다.

지윤진은 여러 사건에 피해자나 목격자 또는 증인 등으로 올라가 있었다.

재수 없이 잘못 걸리면 곤란해지는 쪽은 자신일 수 있었다.


“쳇! 코피 좀 난 걸로 경찰은 무슨. 됐어!”


혹시라도 구경하던 누군가가 신고를 했을 수도 있으니 이곳을 빠르게 벗어나야 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가려는데 뒤에서 김민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벽남은 내 꺼야. 명심해. 다음에는 말로 안 해!”


보고 배운 것이겠지만,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말투까지 거의 비슷해지고 있었다.


‘이년아! 이미 말로 안 했잖아!’


대꾸할 기운도 없었다.

지윤진은 그 말을 듣고도 분을 삼키며 급히 가방만 챙겨 헬스장을 나갔다.


* * *


톡. 톡. 톡.


사내는 양손의 검지만으로 물구나무를 서 있었다.

정수리로 모여든 땀은 방울이 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검지가 큰 만큼 손도 컸고, 팔은 여자 허리통만 했다.

몸통도 곰 같았고, 다리는 나무 기둥처럼 굵고 단단해 보였다.


탕탕!


밖에 서있던 교도관이 교도봉으로 창살을 두드렸다.

그러자 곧바로 물구나무를 그만둔 사내는 수건으로 땀을 닦기 시작했다.

마치 교도관이 운동 시간을 체크해 주는 것만 같았다.


신체가 대단한 사내였다.

2미터가 넘어 보이는데도 근육이 크고 선명도가 좋았다.


이 정도 신체라면 체중이 못해도 140킬로그램은 되어 보였다.

그런 체중을 가지고 검지 두 개로 물구나무를 설 수 있는 인물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신체 곳곳에는 길고 짧은 칼자국들이 남겨져 있었는데, 그중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로 내려오는 흉터는 압권이라 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뒤통수와 귀 옆에만 조금 남아 있는 대머리였고, 일본 순사 느낌의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운동 후 안경을 낀 사내는 책을 집어 읽기 시작했다.

노자의 도덕경이었다.


잠시 뒤 다시 교도관이 다가왔다.


“면회다.”


책을 덮은 용진호가 쳐다보자 교도관은 흠칫하며 누구인지 말했다.


“JH에서 왔다.”


무표정하던 얼굴은 싸늘한 미소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JH에서 찾아온 것이라면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잠깐이나마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껏 살육을 펼칠 수 있는 날이 다가온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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