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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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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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DUMMY

한 발자국을 내디뎠을 뿐인데 이정민과의 거리가 벌써 반이나 줄어들었다.

그에 반해 강혁은 용진호 보다 두 배 이상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정민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솥뚜껑처럼 거칠고 커다란 손이 천천히 자신의 목을 옥죄어 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곧 다가와야 할 충격과 고통은 오지 않고 예상하지 못한 소리가 연속해서 들려왔다.


퍼억!

와장창!


용진호가 이정민을 덮치기 직전 강혁의 발이 먼저였다.

근육으로 쌓인 용진호의 옆구리를 그대로 걷어찼다.

용진호는 몸이 거의 반으로 접히면서 날아갔다.


“으갸가갹!”


발차기가 얼마나 셌으면 짐승 같은 신음 소리와 함께 통유리로 된 창을 부수며 뒤쪽 정원까지 나가떨어졌다.

충격이 꽤 컸는지 용진호는 바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정원을 나뒹굴었다.


눈을 뜬 이정민 앞에는 짐승 같았던 거인 대신 강혁이 서 있었다.

그가 자신을 구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위기를 넘겼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대로 주저앉다가 뒤늦게 힘을 줬더니 몸이 튕기듯 뒤로 넘어갔다.


그때 옆에서 반사적으로 나간 팔이 넘어지려는 이정민의 등을 받아주었다.


“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그만··· 구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럴 수 있죠. 신경 쓰지 마세요.”


이상하게도 이정민은 강혁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아까처럼 헤어 나오지 못할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슬쩍 강혁을 보았다.


멀리 있을 때는 눈빛만 보였는데, 가까이 있으니 생김새나 옷 위로 두드러지는 몸매가 전부 보였다.


더군다나 자신을 한 팔로 안고 있음에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자신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힘이 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배우나 모델처럼 급이 다를 정도로 잘생기지는 않았지만, 멀끔한 생김새의 호남형이었다.


용진호가 있는 정원 쪽을 보며 흔들리지 않는 어둡고 차가운 눈빛과 굳게 닫힌 입술이 조금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고집이 있어 보이는데··· 아니 소신이라고 하자!’


이정민은 굳이 좋게 평가하며 다시 살폈다.


옷차림은 간편했다.

반팔 티셔츠에 운동복 하의가 끝이었다.


스포츠 의류라면 유명한 브랜드가 많았지만, 강혁이 입고 있는 건 자신도 모르는 브랜드였다.


아무리 백화점 대표라지만 사이즈가 잘 없어서 직수입해서 입는 헬스 의류까지 알 리는 없었다.

큰 외국인 사이즈로 팔다리가 굵어도 움직이기 편하게 만든 옷이었다.


나름 패션을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런 스타일은 처음이었다.

많이 편해 보이기는 했지만, 밖에 입고 나오기에는 좀 낯선 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시선이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헐렁한 티셔츠 사이로 보이는 꽉꽉 들어찬 근육들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키가 크면 자연적으로 근육을 붙이기가 결코 쉽지 않다.

190센티미터 정도의 키에 팔과 상체에는 길고 탄력적인 큰 근육들과 작은 근육들이 오밀조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보디빌더들처럼 근육이 너무 커서 둔하고 부담스러운 느낌이 아니었다.

야생에서 자연스럽게 뛰어노는 야생마 같은 느낌이었다.


시선이 마지막까지 내려가자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게 나왔다.

자신도 잘 아는 유명 브랜드의 흰색 운동화였다.


“혼자 못 서겠어요?”

“아, 아뇨. 이제 괜찮아요.”


처음 보는 사내인데도 이상하게 계속 안겨 있고 싶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몰라도 너무 편안하고 안정감이 들었던 것이다.


“신고를 했으니 곧 경찰들이 올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위험하니까 일단 여기서 벗어나세요. 제가 막고 있을 테니까요.”

“아, 아니에요! 여기 있을게요. 있고 싶어요!”

“잘못해서 인질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그래요? 어서 가세요.”

“아! 네··· 그럼 조심하세요.”


이정민은 자신의 안전을 먼저 걱정하는 강혁의 모습이 완전 감동이었다.

집안의 인정을 받기 위해 29년간 공부와 일에만 빠져 있던 이정민에게 위기가 가고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실은 걱정 같은 게 아니라, 강혁은 귀찮은 일을 사전에 방지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이정민이 현관으로 달려 나가는 것을 보고, 강혁은 옆에 던져둔 가방을 들었다.


강혁이 정원으로 나가자 용진호는 정원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

충격을 해소하고 강혁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용진호는 상의를 벗고 있었는데 옆구리에 운동화 바닥의 무늬가 그대로 찍혀 있었다.


발차기에 사람이 5미터를 넘게 날아갔다.

솔직히 차에 받혀야 일어날 수 있는 교통사고 급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맞고 날아갔으면 골절이라도 되었어야 하는데 그저 붉게 달아오른 정도가 다였다.


“회복 능력이 거의 플라나리아 급인데? 힐링팩터라도 있는 거냐?”

“곧 뒈질 새끼가 알아서 뭐 하려고?”


아까 강혁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용진호였다.

뭔가 차분해진 느낌이었다.

아까는 냄비에서 펄펄 끓는 물이 언제 넘칠지 몰랐다.


그런데 지금은 운무가 가득 찬 새벽의 호수처럼 차갑고 고요하게만 느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뭐야? 정신 차린 거냐?”

“덕분에. 지금까지 살면서 그렇게 큰 충격은 처음이었다. 근데 넌 뭐냐?”

“뭐라니?”

“너도 무언가를 배운 거냐? 아니면 받은 거냐?”

“무언가를? 받다니? 도대체 뭘? 알 수 없는 말만 하지 말고 이해가 되도록 설명을 해.”


모른다고 부정을 했지만 용진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짐작이 되었다.

용진호도 보통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여문량과 같은 무인인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다음에 나온 용진호의 말은 강혁의 짐작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기(氣)라는 것을 아나?”

“알지.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오는 허구일 뿐.”


강혁이 또다시 부정했지만, 용진호는 같잖다는 듯 비웃기 시작했다.


“크크큭! 거짓말이 서툴러. 이미 네 발차기를 맞고 확신을 했다. 너도 분명 알고 있고, 익히고 있다. 부정하려면 해. 상관없으니까.”

“너도라니? 넌 뭘 익혔다는 거냐?”

“크크크크크! 알고 싶어? 가르쳐 줘?”

“니 꼴리는 대로 해봐.”


솔직히 알고 싶었다.

현실에 당문이나 청성파도 있는데, 마교나 사파가 없을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사람 악력이 300킬로그램이 넘는다는 것부터가 말이다.


이런 의문을 용진호 스스로가 풀어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가 없었다.


“납치한 자들의 흔적을 지우고 있을 때였지. 붉은 사내는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던 용진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과거를 회상하듯 말을 이어나갔다.


과거 붉은 사내와의 만남과 블랙아고라에서 보낸 처단자까지 말하자 할 말은 거의 끝나는 듯 보였다.


그 말을 듣자 강혁은 끄집어내고 싶지 않은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애써 부정하며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용진호만 처리하고 잊어버리기로 했다.


“난 선택받았다. 두 번 죽었지만, 두 번 다 다시 살아났다.”

“걱정 마. 이번에는 확실하게 죽여줄게. 나는 걔네들처럼 그렇게 무르지 않거든.”


그 말에 피식거리며 용진호가 일어났다.

대화는 끝이라는 뜻이었다.


주절주절 떠들던 모습과 달리 용진호는 일어서자마자 거세게 쏘아져 들어왔다.

거구에서 오는 위압감이 엄청났다.


코앞까지 다가온 용진호는 900킬로그램급의 거대한 회색곰처럼 양팔을 좌우로 펼쳐 들었다.

몽골리안 촙(Mongolian chop)을 닮은 공격은 각각 머리와 허리를 노리며 양쪽에서 후려쳐졌다.


종(縱)이 아니라 횡(橫)으로 움직이는 공격이었다.

제대로 맞는다면 머리와 몸이 분리될 수도 있었다.


우웅!


강혁은 크게 한걸음 뒤로 빠지는 것만으로 용진호의 공격을 간단하게 피해냈다.

무거운 바람 소리가 얼굴 바로 앞을 지나갔다.


용진호는 공격이 통하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후속 공격이 연쇄적으로 이루어졌다.


교차되어 엉킨 팔을 다시 교차시키며 손등으로 강혁의 얼굴을 노렸으나 맞지 않자 다시 몸을 회전시켜 팔꿈치로 얼굴을 노렸다.

하지만 역시나 맞지 않았다.


강혁은 뒤로 몇 걸음을 옮기는 것만으로 용진호의 공격을 모두 피해낸 것이었다.


그런데 순간 접혀 있던 팔꿈치가 갑자기 펴지며 커다란 손등이 눈앞에서 나타났다.


퍽!


주먹에는 반동에 의한 힘만 실려 있었고, 그마저도 강혁이 힘을 흘리면서 맞았기 때문에 충격이 크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이미 용진호는 데미지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짐작하고, 강혁이 맞는 순간 몸을 말아 어깨에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더 강하게 힘을 실어 빠르게 들이받았다.


프로레슬링에서나 보던 ‘숄더 어택’이었다.


퍼억!


결코 가벼운 체중이 아니었는데도 몇 미터 뒤에 있는 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벽이 부서질 듯 흔들리다 겨우 버텨냈다.


강혁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서려는데 커다란 정강이가 눈앞에 와있었다.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으려는 듯 빠르게 다가온 용진호가 죽일 듯이 차올리고 있었다.


피하기에는 너무 가까이 와있었다.

허리를 숙인 상태에서 급하게 양손으로 막자 몸이 크게 들썩이며 균형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충격이 들어왔다.


그런데 정강이가 끝이 아니었다.


강혁은 등으로 바위가 떨어지는 줄 알았다.

거대한 충격이 등을 때리자 강혁은 그대로 꼬꾸라지며 바닥에 처박혔다.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커다란 발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첫발은 머리를 옆으로 한껏 기울여 피하고, 두 번째부터는 옆으로 구르며 피해냈다.

구르기로 거리가 조금 벌어지자, 강혁은 흙을 뿌리며 일어났다.


용진호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뒤로 빠져버렸다.


일어선 강혁은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엉망이었다.

귀환하고 이렇게까지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다 정강이를 막은 손과 어깨에 들이박힌 가슴, 내려치는 주먹에 맞은 등까지.

처음 당해본 거센 충격에 막고 맞은 곳이 고통스럽게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몇 초 사이에 벌어진 용진호의 공격은 연쇄적으로 일어나 강혁을 압박하며 두드렸다.

용진호는 승기를 잡았음에도 무리하지 않고 물러나는 걸 보면 분노조절장애가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찌된 게 용진호의 표정이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뭔가 좀··· 이상한데? 무슨 짓을 꾸미고 있는 거냐?”

“이런 미친 새끼가! 맞고만 있었는데 내가 하긴 뭘 하냐고!”

“흐음···.”


이상하게도 때릴 때마다 임팩트 되는 느낌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불괴공의 채기로 인해 기운이 빠져나간다고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기분 탓이거나 강혁의 회피 스킬이겠거니 생각하며 찜찜한 느낌을 지워버렸다.

괜한 의혹으로 조심하다 보면 움직임이 소심해지고 싸움에 영향을 미친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

계속 때리다 보면 언젠가는 죽을 거라 판단했다.


결정을 내린 용진호는 양팔을 내리며 손을 폈다.

어깨를 앞뒤 좌우로 천천히 움직이자, 아래로 내린 팔들이 바람을 맞은 버들잎처럼 흔들거렸다.


강혁이 보기에는 용진호가 춤을 추듯 흐느적거리며 리듬을 타는 것 같았다.

보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내가 다 민망하네. 나를 웃겨서 죽이려고?”

“이게 웃긴다면 그렇겠지.”


순간 칼바람 소리가 들리며 강혁의 얼굴이 홱 돌아갔다.

팔과 주먹이 마치 채찍처럼 얼굴을 치고 지나갔다.

대번에 입술이 터지며 피가 흘렀다.


토마스 헌즈의 플리커 잽이 생각나긴 했지만, 빠르기가 상상 이상이었다.

번쩍하는 순간 타격이 들어왔다.


용진호의 어깨가 다시 요동치는 듯하자 강혁은 거리를 벌리며 물러났다.

그런데!


퍽!

쿠당탕!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했는데도 턱을 맞고 뒤로 넘어졌다.

생각지도 못한 타격이었다.

갑작스럽게 맞아서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주먹이 닿을 거리가 아닌데도 맞았다.

무기라도 들고 있나 봤지만 맨손이었다.


“팔에다 무슨 짓을 한 거냐!”


이번에는 강혁이 따져 물었다.

물론 대답을 기대하고 물은 건 아니었다.


“크크크··· 웃겨서 죽이는 짓!”


싸늘하게 웃으며 용진호는 다시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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