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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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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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DUMMY

강혁은 완전히 바뀐 수면실을 보며 가끔 여기서 자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정도로 깔끔하게 잘 치워놓았다.


“여기서 살림이라도 차리려고?”

“그, 그게 아니라.”

“우리야 좋은데··· 바로 갈 건데 굳이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치울 필요가 있었나 싶다.”


그러자 갑자기 여문량이 무릎을 털썩 꿇었다.


“대, 대형. 제가 갈 곳이 없습니다. 당분간만이라도 여기서 머물게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갑작스러운 말에 백수범을 쳐다보니 자기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렸다.


“코치님. 갈 곳이 없다고 당분간 여기 있으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데요?”

“뭐? 그건 내 소관이 아닌데? 대표님한테 허락을 받아야지.”


불쌍해서 데려와 몰래 치료까지 해주긴 했지만, 머무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당당하게 있어야 서로 편했다.


물론 강혁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만, 강호에서의 일이 생각나서 그런지 이상하게 마음이 쓰였다.

괜찮은 방법이 없나 잠시 생각을 하던 강혁에게 백수범이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고민해? 저 녀석 더블H 선수로 계약하면 되잖아. 선수들 편의를 위해서 만든 곳인데 선수가 되면 당당하게 이용이 가능한 거지.”

“하려고 할까요?”

“싫으면 나가라고 해.”

“아니요. 저넘이 아니라 대표님이요. 당연히 저넘은 싫다고 하면 나가야죠.”


그 말에 백수범도 즉답은 할 수 없었다.

여문량은 중국인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다.

뭐 어디 가둬놓고 키우지 않는 한 불안한 건 사실이었다.


“귀화시킬까?”

“불법체류자인데 귀화가 될까요?”

“안 되겠지.”


둘은 여문량을 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을 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귀찮겠지만 다시 중국 들어가서 비행기 타고 다시 올래?”

“대형. 저 비행기 못 타는데요.”

“비행기를 왜 못 타? 고소공포증 있냐?”

“그게 아니라··· 제가 호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차나 비행기 같은 걸 못 탑니다.”

“뭐?”


강혁은 조금 황당하다는 듯 백수범에게도 그대로 통역했다.

그러자 대뜸 나오는 말이 있었다.


“너 흑해자(黑孩子)냐?”

“코치님 그게 뭐죠?”


과거 중국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로 인해 식량 문제가 불거지자 인구 조절을 위해 산아 제한 정책을 강제로 시행했다.


이때는 한 가정에서 아이 하나만 호적에 올릴 수 있었고, 둘째부터는 높은 벌금이 부과되었다.

부유한 사람들이야 벌금을 내고 키웠지만, 서민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호적에 올리지 못하고 유령처럼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런 아이들을 흑해자라고 불렀다.


물론 지금은 폐지되어 사라진 정책이었다.


대충 설명을 들은 강혁이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자 여문량은 오해하지 말라며 손을 저었다.


“아! 그렇게 불쌍하게 보실 필요 없습니다. 흑해자는 아닙니다. 그냥 갓난아기 때 길거리에 버려져 있던 걸 사부님께서 주워서 키웠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더 불쌍해 임마!”

“예, 예?”


갓난아기 때 버려졌다는 말을 전하자 백수범은 대번에 애처로운 눈빛이 되어 버렸다.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모양이었다.


백수범은 일단 거처라도 마련하려면 더블H와 계약부터 하라고 했다.

일단 방법은 나왔고, 여문량의 생각은 어떤지 알아야 했다.


“너 여기 있고 싶으면 내가 있는 팀에 들어와야 하는데 괜찮겠어?”


순간 여문량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는 게 보일 정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대형과는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요?”

“같은 팀인데 어떻게 싸워? 싸가지 없는 짓을 하면 팰 수는 있겠지만···.”

“조, 좋습니다!”

“근데 우리 대표님이 허락을 해야 되는데···.”

“안되면 여기 경비라도 하겠습니다.”

“오! 그런 자세 좋아. 여기 코치님한테도 깍듯하게 대해.”

“예, 대형!”


그런데 걱정과는 달리 여문량이 계약 의사를 밝히자 천만근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물론 속으로만 말이다.


겉으로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고, 랭커에 버금가는 실력자를 계약금도 없이 계약했다.


물론 그렇다고 거저먹은 것은 아니었다.

일단 생활을 책임져 주고 신분도 변호사를 써서 한국인으로 만들어주기로 했다.

당연히 파이트머니나 승리 수당은 선수의 몫이었다.


하지만 한국인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필요했다.

한국말을 한국인처럼 잘해야 했는데, 최소한 조금 덜 떨어지는 이미지로 어눌하게 할 정도는 되어야 했다.


며칠 뒤, 구체적인 방법이 나온 것인지 청소를 하고 있는 여문량의 곁으로 백수범이 다가왔다.


“문량아. 너 이제 무연고 무적자로 한국인 되자.”


백수범이 어깨동무를 하며 친근하게 대하자, 여문량도 웃으며 말했다.


“꼬치야 밥 먹었어?”

“아니 이 새끼는 반말만 배우나? 뒤에 님 자를 붙이라고!”

“꼬치야 밥 먹었님?”

“너 이 새끼 일부로 이러는 거지?”


여문량이 더블H에 들어온 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 둘은 무척이나 친해져 있었다.


* * *


2억이 들어왔다.

그때부터 지윤진은 한 사내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를 시작했다.


성격, 취미, 학력, 신체 조건, 가족관계 등 모든 걸 알아야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니 지금까지 해온 조사 중 가장 짧고 쉽게 끝이 났다.


‘이 남자 뭐지?’


학창 시절은 별거 없었다.

거의 있는 듯 없는 듯 유령처럼 학교를 다녔다.

물론 공부도 안 했는지 성적도 개판이었다.


동창생들이야 있었지만 절친하다고 할만한 친구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군대도 갔다 왔고, 현재 무직인 것을 빼면 딱히 흠잡을 만한 게 보이지가 않았다.

오히려 자기 몸을 던져 사람을 구하고,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우는 의인이라 할 수 있었다.


딱 하나.


블랙아고라를 뛰는 선수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걸 폭로하면 자신은 확실히 죽은 목숨이었다.


블랙아고라에는 거대 권력자들뿐만이 아니라 사회 기득권들과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전부 연관되어 있었다.

경찰, 판사, 검사, 정치인은 물론이고 언론과 고위 관료, 군 장성까지 없는 곳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이면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대한민국이었다.


이 거대한 카르텔을 혼자서 폭로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잘 믿지도 않겠지만, 솔직히 불법 지하 격투는 그리 충격적인 이슈도 아니었다.


삽시간에 다른 이슈에 묻혀 사라지고 자신도 드럼통에 들어가 동해나 서해에 던져질 것이었다.


그리고 폭로해서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전혀 없었다.

정의 구현?

노예로 끌려가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선수들 스스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였다.


거의 스포츠화 되어 이적도 자유롭고, 합법적인 격투 시합을 뛰는 것보다 돈도 훨씬 많이 번다.

또 중국이나 동남아 같은 곳에서는 블랙아고라와 같은 지하 격투 단체가 버젓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재도 없었다.


합법적인 경기로 챔피언이나 네임드 랭커가 된다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들은 거의 헐값에 경기를 뛰고 소모품 취급을 당한다.


그러니 제안이 왔을 때, 돈이라도 많이 벌 수 있는 블랙아고라를 선호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아무에게나 제안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수집한 정보들이 이제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갑자기 왜?’


명성에서 의뢰를 취소했다.

착수금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니 상관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조사한 것과 잔금 8억이 눈에 밟혔다.


늦은 시각, 각자의 차를 타고 차태민과 만난 지윤진은 따질 수밖에 없었다.

밤인데도 차태민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이미 조사가 끝나서 실행만 하면 되는데 일방적으로 이러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잘 들어. 니가 뭘 하든 잔금을 주는 일은 없을 거다. 착수금도 돌려받고 싶었지만, 입 닫고 조용히 있으라는 뜻으로 그냥 주는 거니까 그거 먹고 떨어져.”

“호호! 지금 협박하는 건가요? 감히 나한테?”

“협박? 크큭! 이게 협박처럼 들리나 보지? 이건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협박 맞네.”

“아! 아니라니까··· 크크크큭! 알았어. 그냥 좋도록 생각해라.”


건방진 차태민의 모습에 지윤진의 반발심은 계속해서 커지고 있었다.


“계약 파기 위약금으로 잔금의 절반, 4억 보내주시죠.”

“넌 뉴스도 안 보냐? 널 고용한 사람이 구속된 상태야.”

“차 실장님이 해결하세요.”

“뭐? 이거 완전 돌아이네. 내가 그 돈을 집행할 수 있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일이라고. 의뢰는 취소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 명성에서 의뢰를 취소하는 건 구속된 조장원 사장 때문에 다시 시끄러워지는 걸 막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지윤진은 이걸 이용하면 잔금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한 오산이었다.


“만약 제가 이걸 계속한다고 하면 어쩔 건데요?”

“뭐?”

“위약금이 아니라 잔금 8억을 모두 입금하세요. 그럼 그냥 조용히 있어 줄게요.”

“허··· 욕심은 끝이 없다더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런데 난 분명 말했다. 의뢰 취소라고!”


차태민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그대로 사라졌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지윤진은 자신이 움직이며 결국 명성에서 잔금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시동을 켜고 한강을 벗어나려는데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윤진의 차 위로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 * *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너무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강혁의 생활 패턴은 너무 일정했다.

아니, 거의 없다고 하는 게 맞았다.


일주일 정도를 지켜봤는데 집과 더블H 센터를 빼면 다른 건 일절 안 했다.

어디 파고들 만한 곳이 보이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을 직접 만들어야 했다.

리스크가 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지윤진은 화사하게 차려입고 강혁이 지나다니는 길목에 주차를 한 상태였다.

작지 않은 키에 늘씬한 몸매, 긴 생머리 귀여운 인상의 여성이 되어 강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예쁘면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다.

외모는 평균 이상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편한 느낌으로 화장을 했다.

호감은 확실히 챙길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저기요?”


운동 가방을 들고 지나가던 강혁은 처음 보는 여자가 부르자 자신을 부르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윤진은 자신과 눈을 마주쳤음에도 강혁이 무시하고 그냥 지나가자 황당해 하면서도 다시 불러 세웠다.


“저, 저기요!”


그래도 강혁의 발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그냥 보내고 내일 또 와서 부를 수도 없었고, 자신의 얼굴을 보였으니 기회는 지금밖에 없었다.


급히 뛰어가 강혁의 팔을 잡았다.


“잠깐만요! 왜 봤으면서 그냥 가는 거예요!”

“누구세요? 저 아세요?”

“그, 그게 아니라 잠깐만 도와주시면 안 돼요?”


많이 해본 솜씨인지, 귀여운 인상에 큰 눈망울을 껌뻑거리며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해 내고 있었다.


“일단 팔부터 놓으세요.”


갑자기 분위기가 싸한 것이 느껴졌지만, 지윤진은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저기 제 차 좀 빼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운전한 지 아직 얼마 되지 않아서요. 한 번만 도와주시면 시원한 커피 살게요. 헤헤!”


여자가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운전석이 열린 차가 보였다.

앞뒤로 공간이 너무 없기는 없었다.


문제는 여자 차뿐만이 아니라 앞뒤로 주차되어 있는 차들도 비싸 보이는 외제 차라는 것이었다.


“저 운전 못합니다.”

“네?”


도와줄 것도 아닌데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강혁이 떠나는데도 지윤진은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 운전을 못 한다고?’


운전을 하고 못 하고를 떠나서 사내라면 자신을 보고 도와주는 척이라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부터 귀찮다는 느낌이 확 느껴졌다.


‘이 새끼 고자 아냐?’


지윤진은 30대 초반의 나이지만, 꾸미고 보면 누가 봐도 20대 중반으로 보인다고 자부했다.

물론 화장이 아니라 거의 변장 수준이지만 말이다.


‘이 고자 새끼! 내가 꼭 꼬시고 만다!’


계획이 실패한 것보다 자신의 외모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는 것이 더 충격으로 다가온 지윤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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