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사천제일루라는 간판, 내려주셔야겠습니다 (4)
17.
소문은 성도 전역으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하는 소리가 백서군의 귓가에도 심심찮게 들릴 정도였다.
“그거 들었나?”
“응? 뭐 말인가?”
“명해루가 사천제일루 현판을 걸고 백운관하고 매출 내기를 한다는 이야기 말이야.”
“아 그거 말인가? 명해루주가 뭐 잘못 먹은 거 아닌가? 다른 것도 아니고 그 현판이면 천금(千金)으로도 값이 모자랄 물건인데.”
“음, 그도 그렇지. 하지만 명해루가 그간 백운관을 괴롭혀 온 게 있지 않은가.”
“명해루가 백운관을 괴롭혔던가?”
“자네도 알지 않나. 백운관 점주, 성도에 정착할 때까지 죽어라 괴롭힌 게 명해루주라는 걸.”
“아, 그거 말인가. 알고 있지. 명해루주의 제안을 걷어찼다지?”
“하남 사람인데 사천까지 온 것도 놀랍지만, 명해루주의 제안을 거절한 배짱이 부러워.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숙이고 들어갈 것 아닌가.”
“으음.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이지 않나. 게다가 그 청성의 운검진인과도 연이 있다고 하니···.”
백서군과 명해루가 사천지회 기간 동안 노점의 매출을 겨루는 내기를 한다는 소문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순식간에 퍼졌다.
당소군이 당가를 통해 뿌린 바람잡이들이 여기저기서 떠들어대기 시작하면서, 명해루에 드나드는 손님들도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하는 게 명해루주의 귓가까지 화살처럼 틀어박힐 지경이었다.
“이런 빌어먹을!”
쾅, 쾅, 쾅!
책상을 거칠게 내리치는 명해루주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참기 힘들 정도로 분노했다는 증거였다.
시뻘겋게 달궈진 쇳물처럼 벌개진 얼굴이 푸짐한 살들과 어울려서 역동적인 땀방울들로 이루어진 춤사위를 자아낸다.
백서군이 봤으면 기겁했을 광경이었다.
“총관!!”
“면목이 없습니다, 루주님!!”
총관이 바닥에 머리를 짓찧는다.
고두(叩頭)였다.
명해루주는 지금 당장이라도 총관을 걷어차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지만, 꾹 눌러 참았다. 그가 명해루를 지금까지 경영하는 동안 그와 함께 한 충실한 심복이다.
그를 여기서 내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를 내쳤다간 명해루의 살림을 담당할 자가 없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괜히 명해루의 총관이 아니다.
이 거대한 주루 겸 다루를 명해루주 대신 총괄해 온 것이 총관, 조첨이다. 능력이 부족한 자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소문을 퍼트린 자는 찾았나?”
“찾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빌어먹을, 백가 놈에게 바람잡이를 그렇게 많이 고용할 돈 따위는 없을 텐데!”
명해루주는 바보가 아니다.
성도 전역에 이토록 짧은 시간 안에 소문이 쫙 퍼졌다는 건, 한 두 명 정도의 바람잡이로는 안 된다.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단위의 바람잡이들이 뿌려져야만 가능한 전파 속도였다.
하지만 백서군에게는 그 정도의 돈을 유용할 자금력이 없다.
아무리 청성파나 지역 유지들이 자주 찾는다곤 하나, 명해루처럼 하루 종일 손님이 꽉 차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바람잡이 수백을 부린다는 건 그만큼 많은 돈을 소비하는 일이다.
“총관,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방법이 없습니다. 누가 짠 판인지는 명확하니, 결국 백가를 쓰러뜨려야 끝날 일입니다.”
총관의 말에 명해루주는 이를 빠드득 갈아붙였다.
“백가, 이놈···!”
“차라리 석 대협께 연통을 넣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습니다. 얼마 전에 사천으로 들어오셨다는 말이 있었던지라.”
“석 대협께 말인가?”
“예. 공정성을 위해서라면 석 대협 같은 분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명해루주는 총관의 말에 냉정을 되찾았다.
반설괴 석요명.
그 어떤 다른 것보다 미식을 즐기는 고수다. 중원 천하에 그 이름이 드높은 열세 명의 절대자, 신주십삼좌 가운데서도 진심으로 먹는 것에서 희열을 느끼는 무인.
오죽하면 신필수사라는 별호보다 반설괴, 온갖 미식을 맛보고 다니는 혀라는 별호로 유명할까.
신주십삼좌의 일괴(一怪)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공정성이라···.”
명해루주는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당가가 공증을 선다 해도 결국 당소군이 공증인으로 참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가 백운관을 자주 찾는다는 건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으니까.
당가에서 공증을 선다 해도 백운관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게만 하지 않으면 된다.
“아미파까지 끌어들이지.”
“아미, 석 대협, 그리고 당가주 정도면 균형이 맞을 듯 합니다. 수를 쓰겠습니다.”
“그래, 총관. 자네만 믿네.”
어깨를 두드리는 명해루주의 손길에 총관은 움찔 떨었다.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간 어떻게 될지 미래가 보인 탓이다.
‘실패하면 안 된다!’
총관의 눈이 의지로 불타올랐다.
아미산에 사람을 보내야 한다. 그리고 석요명이 어디에 머무르는지도 최대한 빠르게 알아내야 했고.
시간이 촉박하다.
명해루주의 축객령이 떨어지자마자, 총관은 화살처럼 방을 물러났다.
서둘러야 했다. 루주의 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간 이번엔 목이 떨어질지도 몰랐으니까.
지금까지 지켜온 총관의 자리지만, 그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이 없을 리 없다.
그가 명해루주의 명을 지키지 못해 자리에서 밀려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명해루주와 함께 한 시간이 적지 않으나, 백서군이 얽혀 있는 일이다.
루주의 자존심에 상처를 낸 놈.
그래서 루주가 저렇게 냉정하지 못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고.
복도를 걸으며 총관은 생각을 가다듬었다.
‘우선 아가씨께 연통을 넣어야 한다.’
아미파의 속가지만, 그 속가 중에서도 뛰어난 성취를 보여 본산 입문이 확실시되고 있는 루주의 딸.
그녀라면 스승을 움직여, 아미파 장문까지도 불러올 수 있을 터였다.
“서둘러야겠어.”
총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
푸드득.
새하얀 전서구 한 마리가 아미산에 있는 은정당(隱偵堂)에 날아내린 것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도에서 온 것을 의미하는 노란 전서통을 달고 온 것은 실로 오랜만에 있는 일이었다.
서신을 전하러 온 은정당 제자로부터 서찰을 받아든 여인이 반가운 기색을 비쳤다.
“아버지가 아니라 조 총관에게서 온 거구나.”
조금은 실망한 기색을 비친 여인은 서찰의 내용을 천천히 읽었다.
서찰을 다 읽은 여인, 설화영(雪華玲)은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내가 없는 사이에 또 무슨 일이···. 내기? 게다가 석 대협까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아버지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걸까.
그녀가 아미산 본산에 입산(入山)하는 것이 거의 결정되기 직전인데,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총관의 간곡한 부탁이 적혀 있는 서신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성도에 돌아가자마자 물어봐야겠어.”
스승, 스승을 건너 장문인을 필요로 한다는 총관의 말.
쓸데없는 일이 아니길 바라며 설화영은 아미파 제자들이 머무르는 수검각(修劍閣)을 나섰다. 그녀의 스승을 찾아가야 했다.
***
‘···판을 아예 역으로 키워버릴 줄은.’
백서군은 수많은 인파가 보내오는 눈길에 식은땀을 흘렸다.
일이 커졌다.
상대가 피할 수 없게 몰아넣을 작정이었는데, 오히려 상대 쪽에서 판을 더 키워버릴 줄은 몰랐다.
자연스럽게 마른침이 넘어간다.
그의 시야에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명해루주와 총관이 들어왔다.
‘한 방 제대로 먹었는데.’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로 유명한 무림의 고수들이 세 명이나 눈앞에 있다.
살면서 중원 천하에서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는 신주십삼좌의 일익, 반설괴 석요명이 직접 성도까지 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이 모여들 이유는 충분하다.
거기에 더해 당대 사천십대고수 중 하나인 사천당가주 당효기, 아미파의 장문인인 무련(武蓮) 사태까지 모였으니 사람들이 흥분하지 않을 수 없다.
“당가의 공증인만으로는 공정하지 않을 것 같아, 이 설 모(某)가 두 분께 따로 청을 드렸소. 다행히 이 두 분께서 청을 들어주셨기에 이 자리에 모실 수 있었소. 이 설모의 청을 받아주신 석 대협, 그리고 무련사태께 감사드립니다.”
석요명의 입이 열렸다.
“그래서, 겨루는 건 노점의 매출뿐인가? 입이 심심한데.”
“사천지회 동안은 석 대협께 본 루의 음식을 무상으로 제공해 드릴 예정이니, 섭섭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명해루주의 말에서 자신감이 돋보인다.
백서군이 사천 땅에 발을 들이기도 전부터, 명해루주는 성도 밑바닥부터 시작해 지금의 주루를 일궈낸 대단한 요리사라 들었다.
지금의 명해루를 일궈내는 데 있어 그 요리가 어마어마한 공헌을 했다는 소리다.
석요명이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흐흐. 그거 좋군. 음식이나 잘 차려오게. 나는 지금 배가 고프니. 루주, 간만에 솜씨 좀 발휘해 주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석 대협께서 오셨는데 이 설 모가 직접 칼을 잡아야지요.”
“기대하지.”
석요명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듯이 자리를 떠나간다.
석요명이 떠나간 자리의 왼편에 앉은 당가주, 당효기는 냉담한 얼굴이었다. 그 시선을 마주한 백서군의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이 사람이 당가의 가주···.’
금독효군이라 했다.
양어깨에 부엉이 두 마리가 수놓아진 장포를 걸친 것도 그렇고, 보기만 해도 위험하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당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음험하고 사나운 이미지의 형상화, 그 자체라고 해야 할까.
‘공정성 때문이라도 당 소저가 나올 수 없으니 대신 나온 거겠지만···.’
냉막한 얼굴에 목소리까지 높지 않고 낮은 저음이라 목소리마저도 공포스럽게 들렸다.
“본가가 이번 일의 공증을 맡게 된 만큼, 최대한 공정함을 기할 것을 약속하지.”
“당 대협께서 그 누구보다도 공정하게 보아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명해루주의 아첨하는 말에도 당효기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사천지회는 당장 내일부터 시작이다. 일주일. 그 안에 결착을 보겠지. 서로 허튼수작은 부리지 말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지요.”
무련사태가 합장을 하며 답했다.
“빈니(貧尼) 또한 최대한 공정함을 기할 것을 약속하지요.”
“아미산에서 성도까지 와주시다니, 감읍할 따름입니다.”
“설 시주께서 본산에 시주하신 것이 있으니···.”
“제 딸아이는 어떻습니까?”
“화영이라면 성취가 적지 않습니다. 속가 가운데서 그만한 성취를 이룬 아이도 또 없지요. 곧 본산으로 들일 것입니다.”
“허허, 그 정도라니! 기쁜 일입니다. 사태께서도 바로 돌아가시지 말고 루에 들러주시지요. 융숭히 대접하겠습니다.”
그 이후로도 명해루주와 무련사태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백서군만이 그저 할 말이 없어 우두커니 서 있을 뿐.
무련사태와 당효기마저 자리를 떠난 후에야, 명해루주가 이죽거리며 백서군 쪽으로 다가왔다.
사람들도 슬슬 흩어지는 게 보였다.
“기분이 좀 어떤가, 백씨.”
“글쎄요. 어찌 되었든 루주님이 원하시는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자네가 원하는 바도 이루었지.”
명해루주는 백서군을 내기에 참가시키는 것이 목적.
백서군은 명해루주가 사천제일루의 현판을 내걸고 내기에 임하게 하는 것이었으니, 서로 소기의 목적은 이루었다.
“이렇게 판을 키우셨으니, 뒷감당은 어찌하시렵니까?”
“대공녀와 청성파의 비호를 받는다 해서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걸세, 백씨.”
“이렇게 되면 조건을 바꿀 수밖에 없겠군요.”
“뭐?”
백서군은 명해루주와 눈을 마주한 채 웃었다.
“내기에서 이기면 현판, 제가 가져가렵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명해루주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떠나가던 사람들이 다시금 모여들 정도로 커다란 웃음이었다.
“그게 어떤 현판인지 알고 있느냐? 신필수사 석요명 대협, 석 대협께서 직접 본 루에 선물하신 귀한 물건이다! 감히 그걸 받아가겠다고?”
“백운관을 통으로 넘겨야 하는데 그 정도쯤은 괜찮지 않습니까? 오히려 제가 더 불리한데, 설마 겁이라도 먹으셨는지요.”
명해루주의 웃음이 날카로웠다.
도발이다. 같잖은 도발.
‘그런다고 내가 넘어갈 것 같나? 어리석기는.’
명해루주가 들을 생각도 없는 말이라며 돌아서려는 순간, 자리를 떠난 줄 알았던 석요명이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다.
명해루로 갔을 거라 생각했던 석요명이 나타나자 명해루주가 급히 허리를 꺾었다.
“서, 석 대협. 오셨습니까.”
“잠깐 지켜보다 명해루로 갈 생각이었거늘. 자네, 꽤 재미있는 친구구만.”
석요명의 말에 백서군이 포권을 했다.
“촌부 백서군이 신필 석 대협을 뵙습니다.”
“크흐흐. 됐네, 됐어. 인사는 됐고. 그래, 내가 써준 사천제일루라는 현판을 떼어가고 싶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이겼을 때입니다만.”
푸하핫, 하고 석요명이 웃음을 터트린다.
홍소(哄笑)였다.
웃음을 참을 수 없는지, 입을 벌리고 침을 튀겨가며 웃던 석요명이 웃음을 뚝 그쳤다.
“재미있군.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소리겠지?”
“불합리하게 당하기만 하는 건 성미에 안 맞습니다. 상대가 성도제일이라면 꺾고 성도제일을 쟁취할 뿐입니다.”
“이놈이···.”
“입 좀 닥치고 있게. 지금 내가 이 친구에게 묻고 있지 않나.”
석요명이 낮게 으르렁거리자, 명해루주는 꼬리를 말았다.
아무리 명해루주라 하더라도 감히 반발할 수 없는 상대였다.
일개 주루의 주인과 강호에서도 절대자로 손꼽히는 무인 사이의 격차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법이었으니까.
“말해보게. 정말로 명해루를 꺾을 자신이 있나, 자네?”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에잉, 쯔쯔. 패기가 없구먼!”
석요명이 진심으로 혀를 차는 소리에 백서군이 웃었다.
여기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길고 짧은 건 언제나 맞대어 보기 전엔 모릅니다. 감히 한 가지 청을 드리고자 하는데, 들어주실 수 있으신지요.”
“뭔가?”
“사천지회의 첫 날, 제 노점에 들러주실 수 있으실지.”
백서군도 알고 있다.
미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먼 길도 마다하지 않는 강호제일의 괴인. 그런 석요명이라면 백서군의 다과에도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신주십삼좌의 반설괴 석요명이라면, 도박을 걸어볼 만 했다.
백서군의 말에 석요명이 웃음을 터트렸다.
“맹랑하군. 감히 내게?”
“석 대협께서 바라신다면 지금이라도 차 한 잔 정도는 대접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크흐흐. 간도 크구만. 하지만 지금 차를 마시고픈 생각이 없어. 자네의 제안은 생각해보지. 난 엉덩이가 제법 무거운 편이거든.”
석요명이 돌아선다.
명해루주와 그의 눈이 마주쳤다.
“명해루가 만약에 진다면 사천제일루의 현판은 본좌의 손으로 떼어내겠다.”
명해루주의 표정이 암담해진다.
석요명의 시선이 백서군을 향했다.
“자네가 이긴다면 본좌의 손으로 새 현판을 써주지. 그 정도면 불만 없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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