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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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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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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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7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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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 면접

DUMMY

개명할까?


지원자들 이름을 매끄럽게 부르던 면접 진행요원이 내 이름만 더듬더듬 읽는 걸 듣고 있자니 충동이 일었다.


하긴, 27년 동안 이 이름으로 살면서 한 번도 개명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


“제가 김너바나예요.”


면접 진행요원이 내 얼굴과 명단표를 번갈아 바라봤다.


“아, 죄송해요. 이름이 특이해서 제가 잘 못 부른 줄 알고. 너바나 씨 맞죠?”


당황한 기색을 빠르게 지운 진행요원이 자신의 옆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바로 입장하시면 됩니다.”


여긴 9급 지방 공무원 면접장이다. 나는 3년간 공시를 했고, 처음으로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여 간신히 2차 면접을 코앞에 두고 있다.


이 문만 열면 바로 면접장이 있다는 소리다.


그러니까 제발!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산신령님!


제발 면접 때 어려운 질문 나오지 않게 해주세요!


제가 교회도 절도 안다니기는 한데 어쨌든 들어주세요!


헛소리와 함께 문을 어깨로 밀자, 면접실에 고여있던 따사로운 오후 햇빛이 몰려와 날 덮쳤다.


그 속에 있는 세 면접관의 인영. 왼쪽 끝엔 중년 여성이, 오른쪽 끝엔 중년 남성이 통유리창을 등지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가운데에 앉은 사람은-


“···?”


잠깐만. 가운데 뭐지? 용두사지 철당간 끝에 거꾸로 매달려 봐도 공무원이 아닌데?


햇빛 속에서 떠다니는 먼지들처럼 빛나는 은발. 피부가 새하얀 탓에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눈동자. 이목구비 배치도 친숙한 한국인의 상이 아니다. 저 날렵한 콧날과 턱선을 봐라. 어디 게임에 나오는 미남 캐릭터가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다. 코스프레인가?


통유리창으로 쏟아지는 햇볕에 시야가 익숙해지자 남자의 모습이 더 잘 보였다. 다부진 목과 딱 벌어진 어깨, 가슴, 아니 내가 사람 외모 평가질 안하려고 얼마나 조심해서 살아왔는데.


눈앞의 남자 앞에서 모든 게 무너졌다. 미모에 대한 찬양을 금속활자로 찍어 책으로 만들고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전하더라도 후손들이 납득할 것 같다.


“저···. 여기 공무원 면접장 맞나요?”


도저히 안묻고 배길 수가 없다. 엄숙한 장소에 코스프레인지 뭔지를 한 듯한 남자 앞에서 자기소개가 나오겠냐고.


“하하, 맞습니다. 우선 옆에 있는 자리에 앉고 자기소개부터 해보시겠어요?”


중년 남성의 따뜻한 목소리를 듣자마자 얼굴에 열이 올랐다.


면접장에 들어오자마자 인사부터 하지 못할망정, 자리에 앉지도 않고 멀뚱히 서서 코스프레 미남만 빤히 쳐다봤다니!


누가 봐도 면접 망했잖아!


***


가운데 남자는 면접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공무원으로서의 기본자세가 무엇이냐는 거나, 상사와의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거냐는 멀쩡한 질문을 하는 건 양쪽의 두 중년 면접관 뿐이었다.


이 상황이 나만 이상한가? 유X브 콘텐츠 몰카인가? 저 중년 면접관들도 한 패인가?


“마지막으로 제가 질문 드리겠습니다.”


코스프레 남자가 돌연 입을 연 건 면접 막바지에 치달았을 때였다.


“아무리 봐도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면접 내내 입 다물고 앉아만 있다가 갑자기? 당황한 마음과는 별개로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공시 3년. 또래들이 신입사원으로 일하기 위해 스펙을 쌓을 때 난 공부만 했다.


공시 기간은 사측에서 경험 취급도 안해준다더라.


난 떨어지면 끝이야.


“일단 해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남자는 왼손을 들어 출구를 가리켰다.


명백한 퇴장의 의미.


갑자기? 나가라고요? 당황해서 중년 면접관들을 쳐다봤지만, 그들은 그저 실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내 3년의 노력이 이렇게 바로 끝난다고?


정말 끝이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구질구질하게 굴다가 태도 점수가 깎이기라도 하면 어쩌지.


눈치를 보며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무도 날 말리지 않았다. 이쯤 되니 정말로 감사합니다, 한 마디 던지고 곧장 출입구 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이 자리에서 벗어나자. 그리고 면접진행부서에 코스프레 문의를 해보자. 굳게 결심을 하며 도착한 출구 문을 어깨로 밀었다. 문이 무거워 온 몸에 힘을 줘야 했다.


“어!?”


갑자기 문이 활짝 열렸다. 문에 기대다시피 했던 내 몸뚱어리가 의지할 곳을 잃고, 바닥을 향해 곧장 쓰러지고 시작했다.


빠르게 가까워지는 바닥을 보고 반사적으로 눈을 감자마자,


“괜찮으십니까?”


귓가에 들려오는 부드러운 음성에 눈이 도로 뜨였다. 난 졸지에 심봉사가 됐고, 덩달아 심청이 된 코스프레 남자가 날 반쯤 안고 있었다.


아, 이 사람이 내 뒤를 따라와 문을 뒤에서 같이 밀어줘서 문이 활짝 열렸구나.


아니 근데, 넌 왜 나와?


재빨리 남자의 팔에서 벗어났다. 남자는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며 중얼거리더니 곧바로 힘 있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김너바나 씨. 당신은 합격하셨습니다.”


“···네?”


“지금 바로 저랑 가시죠.”


“제가요? 어, 어디를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리오라며 손짓하곤 먼저 앞서 걸어갈 뿐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나는 그의 그림자 속에서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머릿속에 엉킨 질문들을 어떻게 물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별다른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그대로 내뱉었다.


“아니, 잠시만요. 합격 발표는 엄연히 한 달 뒤인데 어떻게 이렇게 바로 합격통보가 떨어져요? 이거 몰카예요?”


“특수직이라 그렇습니다. 몰카는 무엇입니까?”


“네? 전 일반직을 지원했는데요? 몰레카메라 모르세요?”


“김너바나 씨가 적임자라 그렇게 됐습니다. 카메라···는 알겠는데 몰레는 무엇입니까? 물레방아는 들어봤는데 비슷한 겁니까?”


아, 말이 안 통해! 내가 이마를 부여잡자마자 남자도 어느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붉은 빛을 띠는 갈색 문에 창호지. 굳이 표현하자면 어디 한옥에서나 볼 것 같은 고풍스러운 문.


나는 한참 전에 생각해야 했던 말을 되뇌었다.


뭔가 잘못됐어.


남자는 내 눈치를 살짝 보더니 이내 문을 열었다. 면접장 문을 열었을 때 쏟아졌던 빛이 생각나 반사적으로 눈을 찌푸렸는데, 흘러나온 건 빛이 아니라 은은한 향이었다.


제사 지낼 때 피우는 그 향 말이다.


방 내부는 향과 어울리지 않는 단란한 사무실이었다. 창문 너머 하늘이 새빨갛고, 구름이 검지만 않았다면 다른 중소 회사와 비슷해 보였을 것이다.


“왔다!”

“신입이다!”

“됐다!”


사무용 책상 칸막이 너머로 세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두더지인가? 상황파악을 하려고 미친 듯이 돌아가는 내 눈동자 앞에 세 인물이 달려와 옹기종기 섰다.


“로맨스판타지과에 온 걸 환영합니다.”


그중 액면가가 제일 어려보이는 사람이 인자한 웃음으로 내게 환영의 말을 건넸다.


기껏해야 15, 16살처럼 보이는데. 성별도 생김새로 쉽사리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시각적 충격, 그리고 로맨스어쩌구라는 청각적 충격을 동시에 흡수하느라 내 뇌는 정신이 없었다.


이런 내 혼란이 표정에 다 드러난 모양이었다. 세 사람의 낯빛이 천천히 의아해지더니 코스프레 남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신입 반응 왜이래. 키아야, 너 면접 끝나자마자 바로 데려왔니? 설명같은 거 안하고?”


“급하다고 바로 데려오라 하셔서···. 죄송합니다.”


“아니 그냥 인사나 먼저 해두려고 불렀던 건데···. 아니다, 잘했어.”


남자는 황당해하는 사무실 일원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이어 내게도 고개를 숙여가며 귓속말하듯 나지막이 말했다.


“당신은 저승에서 주관하는 웹소설 프로젝트에 선발되셨습니다. 이곳은 개중에도 로판 부분을 담당하는 로맨스판타지과입니다.”


전혀 설명이 안 된다. 의문을 해결해주기는커녕 얹어만 주는구나.


“앞으로 이곳 소속이 되어 저희와 함께 근무하시면서, 죽은 망자들이 로맨스판타지 세계관 속 인물이 되어 새 삶을 살도록 도우십시오.”


“제가요?”


제어할 틈도 없이 팝콘처럼 튀겨저 나간 진심에도 남자는, 사무실 사람들은 눈썹 까딱하지 않았다.


“왜 저예요?”


“면접보는 동안 제출하신 자기소개서를 읽었는데, 글쓰기를 좋아하신다고 적으셨더군요. 그래서 이 일에 적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글 쓰는 게 취미인 거랑 로판 빙의랑 무슨 관계가 있죠···?”


정신이 아득해졌다. 태클 걸고 싶은 부분이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감도 안 온다.


“일단은, 그, 저승이라뇨? 여기가 저승이예요? 저 면접보다가 죽었나요?”


사인은 ‘면접장에서 코스프레한 남자 보고 황당해서 사망’ 정도가 될 것 같은데.


“아닙니다. 본래 저승에서 저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주관하던 빙의 프로젝트인데, 올해부터 현생을 살아가는 생자도 고용하기로 했거든요.”


“너바나씨는 이번에 저희 팀 신입으로 합격한 거니까, 특별히 저승 출입이 가능해진 거예요.”


다들 한마디씩 얹는 와중에 내 표정을 침착하게 살피던, 중성적인 사람이 어르고 달래듯 사근사근한 목소리를 내었다.


“저승시청 소속 로맨스판타지과는 쉽게 말해, 망자가 빙의한 로맨스판타지 소설 하나를 제작하는 곳이에요. 로판 주인공에 빙의한 망자가 제2의 삶을 누리고, 저희는 그걸 지켜보면서 이야기가 재미있게 진행되도록 보정합니다. 마침내 망자가 결말을 이뤄내면, 저희가 웹소설로 제작해 이승에 전파하죠.”


“저승에서 별걸 다 하네요···.”


너무 솔직하게 말했다. 스스로 입을 부여잡고 나 자신을 매우 치는 상상을 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다는 듯 내 말을 흘러 넘기며 말했다.


“직접 일해 보면 서서히 감이 잡힐 겁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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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5) 알현 24.08.20 10 1 11쪽
5 4) 조연 24.08.19 11 1 10쪽
4 3) 최악 24.08.18 12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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