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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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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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9.0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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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서천

DUMMY

“아, 그렇게 좀 부르지 마십쇼.”


뒤를 돌아본 설 팀장이 지겹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쏘아붙였다. 나도 줄기를 밟은 발을 슬쩍 치우며 돌아섰다. 다행히 살짝 꺾인 정도군.


40대 초중반 정도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다. 그는 웃음기 어린 눈으로 설 팀장을 바라보며 단소로 제 어깨를 툭툭 치고 있었다.


굉장히 뜬금없는 아이템인 단소는 의외로 이질감을 일으키지 않았는데, 그가 개량한복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외려 잘 어울린달까.


저거 중고등학생 시절 한번쯤 만나봤다던 선생님 룩 아니냐? 도덕, 사회, 한문, 한국사 중 하나를 담당할 것 같은 남자가 느긋하게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설이설이라고 부르는 게 뭐 어때서~”


“어린애들 부르듯이 부르지 말라니까요. 제가 나이를 얼마나 먹었는지 아십니까? 차사들 사이에서도 저 정도면 고참입니다.”


“네 생년(生年)이, 어디보자~. 872년이었던가? 먹을 만큼 먹기야 했다만 내 눈엔 어린애지 뭐.”


설 팀장이 872년 생? 공시생 시절 지엽적인 문제도 맞추겠다며 한국사 년도를 미친 듯이 외웠던 내 머리가 세 자리 숫자를 듣자 팽팽 돌아갔다.


키워드는 872년. 통일신라 시대다. 공무원 시험 필수로 외워야 했던 키워드 중, 872년과 날짜가 가장 가까운 사건은 원종‧애노의 난. 이 반란은 889년 진성여왕 재위 시절 발생했으니까···


맙소사, 설 팀장 상당히 어지러운 시대상을 살았겠는데? 안 그래도 귀족들의 왕위 찬탈 싸움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통일신라는, 진성여왕 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노답 상태에 빠지지 않았던가.


내 상사가 한국사 한복판에 살았다는 사실이 세삼스럽게 피부로 와닿는다. 나는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품을 보듯 설 팀장의 옆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그래서, 옆에 갓난애는 누구야? 설마‒”


남자가 나를 곁눈질하며 묻자, 설 팀장이 작게 한숨을 쉬며 내 팔뚝을 잡아 제 옆에 날 가까이 세웠다.


“낙뢰 과장님께 미리 전달받으셨겠지만, 최근에 로맨스판타지과로 입사한 생자 신규입니다. 인사드려.”


“? 아, 안녕하세요. 김너바나입니다.”


내 이름을 들은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몇 초가 지나서야 뒤늦게 빵 터졌다.


그 시원한 웃음소리에 아이들이 또 시작이라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하하하, 아니 미안해, 사람 이름가지고 웃으면 안 되는데~, 어떻게 이름이 저승 시청에서 일할 이름으로 딱 지어졌는지 너무 신기하네~?”


“괜찮습니다, 익숙해요.”


나도 영혼없이 허허 웃었다. 초등학생 시절 쉬는 시간마다 김바나나라고 시비걸렸던 게 훈련이 됐다.


“그래, 이해해줘서 고마워~. 너바나 친구는 몇 년생인가?”


“어, 199X생입니다.”


“어우, 진짜 방금 태어났네···.”


남자와 설 팀장이 순간 식겁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야 872년과 비교하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긴 했다만, 이승에서는 반오십이 넘어서 늙은이라고 자학 개그 하는 나이인데 말이지···.


“그래, 내 소개도 해야지. 나는 이 서천 꽃밭의 관리자야. 편하게 사라도령이라고 불러~.”


뭐! 나는 그제서야 머릿속에서 기억이 날락 말락했던 설화를 온전히 떠올렸다.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바리데기 설화에 나오는 그 사천 꽃밭이요? 그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온갖 꽃들이 핀다는···?!”


바리데기 설화. 할아버지가 나와 동생이 잠들기 전 들려주었던 옛날이야기다. 하도 자주 들어서 아직도 줄거리가 기억나.


자신을 버렸던 친부모를 살리고자, 생자의 몸으로 저승에 있는 사천 꽃밭을 찾아가서 피와 살, 숨이 돌아오는 꽃을 꺾어온 희대의 효녀 이야기 아니던가.


혼자서 식겁하고 있는데, 내가 잘못 말한 부분을 설 팀장이 정정해주었다.


“‘사’천이 아니라 ‘서’천 꽃밭. 사천 꽃밭은 뭐 사천 원 주면 꽃 주는 꽃밭이냐.”


“그거 웃기다~, 사 달라 꽃밭이라고 이름 바꿀까. 이승에서 ‘사 달라’가 유행어라며. 뭔 드라마에 나왔다는데~”


이 양반들도 아제개그를 하네. 참고로 야X시대 드라마 유행어 말하는 거면, 그거 유행 지난 지 오래다.


벙 찐 내가 별 반응이 없자, 살짝 민망한 듯 눈을 내리깐 남자-그러니까 사라도령이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듯 호탕하게 웃으며 딴소리를 했다.


“아 뭐, 이 나이 먹고 다 큰 아들도 있는데 아직도 도령이라 불리는 게 좀 쑥스럽긴 해~”


단소로 뒷머리를 긁는 사라도령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무 신경 쓰여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단소는 무슨 용도인가요?”


“아 이거~? 아무래도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꽃이 심겨진 곳이다 보니 뭐~. 이상한 놈들 침입할 때 쓰는 거지.”


하하 웃으며 단소를 휘두르는데 폼이 예사롭지 않다. 분명 저걸로 머리를 후려친다던가 목젖도 찔러봤을 거야. 당연한 말이지만 까불지 말아야겠다···.


“그래서, 이 갓난애 데리고 여긴 왜 왔어?”


“지금 저희가 담당중인 로판 세계관에 치명적인 전염병이 도는 중입니다. 빙의자가 전염병을 치료할 약초를 발견해야 하는데, 그 약초 역할을 해줄 꽃이 필요해요.”


“아하~. 그 전염병 증상은 어떤데?”


“고열이 심합니다.”


으흠, 하고 턱을 매만지던 사라도령이 드넓은 꽃밭을 둘러봤다. 그 사이에 난 설 팀장의 옷소매를 살짝 잡고 질문했다.


“저희가 로판 속 약초도 따로 개발해야 하는 건가요?”


“지금 데이지 황녀의 세계관에선 현실 이승에서 피는 꽃들밖에 없으니까. 특이한 효능을 가진 약초가 자연적으로 발생하기 힘드니 우리가 자체 제작해 몰래 심어둘 거다.”


이상한 물건과 틀린 대사 찾기도 버거운데, 작중에 쓰일 중요 물품도 제작해 조달까지 해야 한다고?


이런 미친, 최저시급도 안 되는 월급에 비해 업무량이 미쳤다! 낙뢰 과장한테 보너스 있냐고 절대 물어봐!


나 혼자 굳은 결심을 다지던 중, 생각을 마친 사라도령이 앓는 소리와 함께 설 팀장에게 말했다.


“물리적으로 다친 거면 ‘뼈오를 꽃’을 베이스로 다른 약초들을 교배해 금방 만들 수 있는데~, 고열은 조금 까다로워. 외과 약초보다 내과 약초가 제작 시간이 더 걸리는데 괜찮아~?”


“안 괜찮습니다. 빨리 만들어주십시오.”


“하하, 싸가지 여전하네~.”


서로 아무렇지도 않게 딜을 넣는 모습을 보아하니 친한가보다. 아까 안립 팀장과 통화할 땐 그리 오기 싫어하더니 은근 죽이 맞는 듯···.


나도 모르게 멍을 때리려던 찰나 누군가 내 옷을 아래로 당기는 게 느껴졌다. 시선을 내리니 어린애들 네다섯 명이 내 옷자락을 쥐고 있었다.


“이리와.”

“이리와.”

“이리와.”

“이리와.”


뭐, 뭐야? 놀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합창하듯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옷을 무턱대고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당황한 내가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려하자, 가장 키가 큰 아이가 저쪽에 놓인 플라스틱 탁자와 의자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있으라고?”


“응.”

“응.”

“응.”

“응.”


애들의 손아귀에 끌려가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편의점 앞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외용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였다. 저승에도 이런 게 있나.


나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등받이에 탄산음료 마크가 커다랗게 그려진 의자에 앉았다.


여러 꽃을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사라도령과 끊임없이 싸움···, 아니 의견을 교환하던 설 팀장이 날 흘끗 쳐다봤지만 제지하지 않는다. 나는 마음 놓고 주변을 둘러봤다.


꽃밭이 얼마나 넓은지, 꽃들이 수평선 끝까지 와글와글 피어 있다. 분명 내가 보지 못하는 수평선 너머로도 피어있겠지. 나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완전히 기댔다.


내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자 아이들은 흥미를 잃었다. 제각기 흩어져 꽃밭 이곳저곳으로 파고드는 아이들 중 가장 밍기적대던 아이를 붙잡아 물었다.


“너흰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놀아.”


“···여기서 살아?”


“응.”


“그럼 이곳에서 태어난 거야?”


아이는 질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저승에선 사람이 태어날 수 없어.”


하며 내 손을 뿌리치고 친구들을 향해 뛰어갔다. 무례한 질문이었나? 머쓱해져 내가 했던 질문을 복기하고 있을 때, 설 팀장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빼 앉았다. 다 싸웠나? 어느새 사라진 사라도령을 눈으로 찾는데 설 팀장이 돌연 말을 걸어왔다.


“이승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뒤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 한다지?”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나는 떨떠름하게 입을 다시다 긍정의 답을 내놓았다.


“아무래도··· 그렇죠?”


“본인 국적이랑 종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긴 하는데, 한반도는 일반적으로 염라를 필두로 한 대왕들이 망자가 이승에서 살아온 궤적을 살피고 그 예후를 결정해.


그런데 궤적이 거의 없다시피 한 어린 애들이 망자가 될 때가 가끔 있거든. 그런 애들이 쟤들이야.”


설 팀장이 꽃밭 사이를 뛰노는 아이들을 향해 턱짓했다.


“너무 어린 망자라 이승에서의 삶도 거의 없어서 대왕들의 판결을 받기도 어렵고, 홀로 살아갈 힘조차 없으니 웹소설에 빙의를 시킬 수도 없지.


서천 꽃밭의 관리자는 그런 영혼들을 모아 15세가 될 때까지 키운다. 그 이후는 본인들이 뭐, 원하는 대로.”


나는 착잡한 기분에 휩싸여 입을 다물었다. 괜히 손만 만지막대며 꽃이 만개한 지평선을 응시하는 척 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애들이 웹소설에 빙의했다는 이야기는 거의 본 적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애초에 웹소설을 읽어본 적이 거의 없지···.


날 잡고 로판을 좀 읽어봐야겠다. 내 안에 작은 결심을 세우며 은근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아이들 옷은 왜 각기 시대상이 다르죠? 요즘 애들이 입을만한 옷도 있고, 삼국시대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옷도 있고. 다양하네요.”


“한때 서천 꽃밭에서 자랐던 이들이 남기고 간 옷을 물려 입거든. 건강하게 자란 아이의 옷을 물려 입으면 무사히 큰다는 미신이 있다나. 맞죠?”


눈을 감고 있던 설 팀장이 등 뒤로 다가온 상대를 쳐다보지도 않고 동의를 구했다.


“그렇긴 하지~. 저기 저 버드나무 우물에서 빨래를 하면 옷이 상하지 않아서 계속 물려줄 수 있거든. 워낙 신기한 우물이라 저기 물로 꽃밭 물도 준다니까. 자 샘플 확인해봐라~.”


사라도령이 작은 화분에 심겨진 화초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오래 걸린다면서 이렇게나 빨리? 별 생각 없이 허리를 숙여 들여다봤다가 히익, 하고 의자를 뒤로 뺐다.


새빨간 암술이 퉁퉁 불은 채로 축 늘어져있었다. 길이도 10cm는 되어 보이는데 끝이 살짝 꼬부라진 게 꼭 혀 같군.


꽃잎의 색깔은 연보라색이라 예뻤지만 그럼 뭐하나. 암술이 모든 걸 망치고 있었다.


보다보니 구역질이 날 것 같아 시선을 돌렸다. 나처럼 안색이 창백해진 설 팀장도 항의했다.


“영감님 드디어 노망나셨습니까!? 너무 징그럽게 생겼잖아요! 빨리 만들어 달랬다고 지금 일부러 이렇게 만든 겁니까!?”


“아니 이게 어쩔 수가 없다니까~! ‘오장육부 간담 꽃’에 ‘웃음웃음 꽃’을 교배하면 암술이 이 모양이 돼요, 근데 그 두 꽃을 뺄 순 없거든~.”


“‘웃음웃음 꽃’은 왜 넣습니까, 열나서 뒤지기 직전인데 왜 웃어요!! 그리고 호러물이 아니라 로맨스판타지 소설에 써야 한다니까요!! 생긴 것도 아름다워야 합니다!!”


“열이 내리고 시원하게 웃어야 할 거 아냐~!”


두 남자가 또 아웅다웅 다투기 시작한다. 갑작스럽게 터진 큰소리에 아이들도 잠시 이쪽을 봤지만, 이내 적응하고 마저 술래잡기를 한다.


아, 피곤해. 나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았다. 나 퇴근 언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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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서천 24.09.04 11 0 12쪽
16 15) 꽃밭 24.09.03 8 0 11쪽
15 14) 마석 24.09.02 7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0 1 11쪽
13 12) 업무 +1 24.08.29 8 1 10쪽
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11 10) 사진 24.08.27 9 1 11쪽
10 9) 사과 24.08.26 10 1 10쪽
9 8) 면담 +1 24.08.23 9 1 11쪽
8 7) 중립 24.08.22 10 1 11쪽
7 6) 조작 24.08.21 9 1 11쪽
6 5) 알현 24.08.20 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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