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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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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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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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9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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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4) 조연

DUMMY

“빙의한 망자들의 이야기를 이승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요?”


“저희가 웹소설로 써서 이승에 퍼뜨립니다. 지금은 일손이 부족해서 낙뢰 과장님이 담당하고 계시죠.”


“···쉽지 않을 텐데 대단하시네요.”


듣자 하니 대학생 시절 수강했던, 소설 전공 시간에 교수님이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


“오르락내리락하는 삶의 풍파를 몸소 겪어온 어르신들이 ‘내 인생은 책 여러 권으로 써도 모자라다’라고 하시는 말, 들어본 적 있지? 사실 그렇지 않아. 인생을 그대로 옮겨 적기만 해서는 소설이 될 수 없어.”


동의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사람들은 예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당사자야 직접 겪은 일들이니 자신의 인생을 육하원칙에 따라 낱낱이 서술하고 싶겠지만, 제3자로선 노잼구간이 나올 수밖에 없다.


빼야 할 부분은 과감히 빼고, 독자가 흥미를 느낄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약간의 허구도 섞어야 하고.


쉽지 않은 작업인데 낙뢰 과장이 맡았다니, 대단하다는 말은 진심이다. 글을 되게 잘 쓰시나 봐.


그나저나 웹소설 쓰는 고조선 사람이라니 어떤 의미론 엄청나기는 한데.


“혹시 그 웹소설로 작성하는 과정 때문에 절 뽑으셨나요? 제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해서?”


“이제 막 입사하셨으니 바로 그 일을 드리진 않을 겁니다.”


아니라곤 안 하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는데, 플루토키아도 살짝 미소 지었다. 부드럽게 올라간 입꼬리를 보고 있으니 문득 묻고 싶어졌다.


입사한 지 1시간 만에 사고 친 신입한테 여전히 일을 맡기고 싶냐고.


서늘한 그늘 아래인데도 온몸이 후끈해졌다. 날 향해 미간을 잔뜩 찌푸리던, 덩달아 일그러진 설 팀장의 진한 갈매기 눈썹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떠올랐다.


짜증 나, 나 자신이. 날씨가 너무 좋아서 비참했다.


한숨을 쉬는 대신 들판의 바람을 한 움큼 머금고 어금니로 씹었다. 풀잎을 흐트러뜨리다 입에 잘못 들어온 바람이라 쓰디쓴 풀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내 심정과는 별개로, 오두막집을 향해 뛰어가는 데이지 황녀의 뒤통수는 귀여웠다. 넘어질라. 점점 작아지는 뒤통수가 돌연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다시 들판으로 돌아오는 건가? 의아하게 보고 있는데 어딘가 달라 보였다. 데이지의 머리끝과 발끝을 번갈아 보고 나서야 방금과 다른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키가 두 뼘 정도 자라있군.


“한순간에 몇 살을 먹은 거야···. 시간이 이 정도로 빠르다고요?”


요약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심X 게임 속 어린애도 이렇게 빨리 크진 않는다!


“속도만 보면, 아무래도 황궁 입성부터 소설에 들어갈 모양이군요.”


플루토키아는 특유의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어깨에 매고있던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는 노트북이 들어있었다.


“황궁에서 찾아오려면 더 기다려야 할 듯하니, 그사이에 조연들 이름을 정해둡시다.”


“!”


어깨가 파드득 떨렸다. 나더러 이름을 또 지으라고? 아니 주인공 이름만 덜렁 정하고 이야기를 시작한 거야? 망자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면서! 그런 것 치곤 일이 너무 주먹구구식 아냐!?


따지고 싶은 말은 많았다. 하지만···. 경직된 얼굴 근육에 힘을 주며 어렵게 말했다.


“저, 저는··· 못해요. 당장은요. 전 아직 이 일을 잘 모르고 또 실수 했잖아요···. 좀 더 일이 익숙해지고 난 후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날 내려다보는 플루토키아의 동공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 붉은 심연을 더 들여다보기 무서워 시선을 돌렸다.


“···김너바나 씨가 생각하기엔, 제 이름의 유래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음? 갑자기 무슨 소리야. 플루토키아는 노트북을 켜 언어사전 화면을 보여줬다.


“제 풀네임은 ‘플루토키아 아스트론 스텔스 본 폴라리스’입니다. 전 몰랐는데, 알고 보니 별과 관련된 이름들이 많더군요.”


나는 플루토키아에게 노트북을 받아 그의 이름을 한 단어씩 검색해 보았다. 이름이 그대로 검색되진 않았지만, 유사 단어로써 이름의 유래가 된 단어들이 속속히 보였다.


플루토키아는 플루토(명왕성), 아스트론은 별이나 우주와 관련된 접두사, 폴라리스는 단어 그대로 북극성이다.


스텔스는 은밀하다는 뜻이고, 본은 뼈나 태어남을 의미한다는데. 은밀하게 태어나다? 태양계에서 퇴출당해 존재감이 흐려진 명왕성과 결은 비슷한 듯···.


“제 이름 어떻습니까?”


“반짝반짝하고 웅장하고 좋은 것 같아요.”


학습된 사회성이 모범 답안을 내놓았다. 다소 부자연스러운 목소리 톤을 들은 플루토키아가 씩 웃었다.


“제 주변 사람들도 우주와 별에 관련된 이름이 많았죠. 데이지 황녀를 위한 조연들도 꽃과 관련된 이름을 가져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디서 살았길래 지인들 이름도 우주 관련인거지? 무슨 제국인지 왕국인지에 살았다고 했던 것 같긴 한데 컨셉이 아니었나?


핑핑 돌아가는 머리를 따라잡느라 말이 없어지자, 플루토키아는 망설이는 거라 생각했는지 열띤 목소리로 설득을 이어갔다.


“주요 등장인물을 제외한 조연들은 빙의자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등장 직전 혹은 즉석에서 결정되거든요. 애초에 주인공 이름처럼 깊이 생각하고 지을 수가 없습니다. 비교적 편하게 지어도 괜찮아요.”


아하, 운영 방식이 이유 없이 주먹구구인 건 아니라서 다행인데. 머릿속 한편에서 불안이 새삼 떠올랐다.


“그렇지만 데이지는 흔한 꽃이라, 황녀의 이름이 오히려 묻히지 않을까요?”


“더 눈에 띄고, 황녀의 순수함을 더 강조할 수도 있겠죠. 저희가 하기 나름입니다.”


미남이 검지만으로 자판을 토독토독 두드리며 꽃의 종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흰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타자를 치는 모습에 문득 깨달았다.


아, 이 사람은 지금 내게 수습의 기회를 주고 있는 거구나.


나는 턱에 힘을 주고 플루토키아에게서 노트북을 가져왔다. 일단 타자 속도가 너무 느렸다.


“···어느 조연 이름을 정해줘야 하죠?”


플루토키아는 데이지를 향해 뛰어가는 갈색 머리 남자아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첫 번째는 데이지 황녀의 첫사랑이 될 조연입니다.”


야이···, 그 정도면 중요한 조연 아냐? 모르겠다. 나는 눈동자를 이쪽저쪽 굴리다가 자판을 쳤다.


“안개꽃에 관련된 이름은 어떨까요? 꽃다발에서 다른 꽃을 돋보이게 받쳐주는 꽃이고, 또 제가 옛날에 시 쓸 때 첫사랑은 마치 안개 같다 어쩌구 구절을 썼었는데–”


물론 저렇게 쓰고 교수님께 표현이 너무 두루뭉술하다며 까였지만. 여기는 교수님이 없지.


안개꽃 영문명은 집소필라(gypsophila)였다. 같이 산골에서 자란 평민 이름으로는 과하지 않나? 입술을 삐죽이고 있으니 플루토키아가 옆에서 조언해 주었다.


“가끔 조연 이름을 특이하게 지으면, 작품 중후반부쯤에 주요인물로 급부상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이름이 아닌 성으로 정해 봐도 괜찮을 것 같군요.”


우리는 잠깐의 토론 끝에, 너무 특이하지 않도록 글자 하나를 빼 성씨로 삼기로 했다. 그렇게 ‘집’을 뺀 ‘소필라’가 이름으로 정해졌다.


한번 이름을 짓고 나자, 그다음부턴 속도가 빨라졌다. 데이지 황녀가 사귄 동성 소꿉친구,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이웃집 아기, 곧 황녀를 황궁으로 데리러 올 기사 등의 이름이 순식간에 노트북에 입력되었다.


꽃들의 학명이 터무니없이 긴 경우가 많아, 조연에게 주기엔 무리가 있기에 일부만 따다 붙여야 하긴 했지만.


“마침 왔군요.”


뭐가? 플루토키아의 말에 왼편을 보니, 조그맣게 난 흙길 위로 기사 세 명이 말을 탄 채 달려오고 있었다. 셋 다 투구까지 쓴 완전무장을 갖춘 터라 얼굴을 볼 순 없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에 칼까지 찬 기사 등장이라. 재밌어지겠는걸. 나는 두뇌를 거치지 않고 말을 했다.


“세금 뜯으러 왔나?”


“···양옆의 기사들이 든 깃발을 보십시오. 황가의 문장입니다.”


과연, 양옆으로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치솟은 깃대 위에 두꺼운 천이 휘날리고 있었다.


거대한 태양을 중심으로 기다란 이파리가 퍼지는 문장. 황가의 느낌이 물씬 난다.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오두막집에서 나오고 있었다. 시력이 좋은 몇 명은 황가의 문장을 보고 급히 바닥에 엎드려 예를 표하기도 했다.


기사들은 우리가 앉은 나무 그늘 옆을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던 난 문득 걱정이 돼 물었다.


“저희도 가서 절하는 척해야 하지 않나요? 그늘에 있으면 예의 없는 백성이라고 욕먹을 수 있잖아요.”


“현재 저희는 이곳 인물들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면 인식되지 않습니다. 만약 저택 사용인이나 엑스트라로 위장해 개입할 시에는 옷을 맞춰 입어야겠지만요.”


플루토키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멀어서 대화가 잘 안 들릴 것 같군요. 가까이 가보시겠습니까?”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기사들 뒤를 휘적휘적 쫓아가는데, 돌연 플루토키아가 질문을 건네왔다.


“김 씨는 엑스트라로 위장해 더 가까이 접근 해보고 싶으신 겁니까?”


“? 아, 아뇨. 그건 아닌데.”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궁금해서라도 물어봐야겠다.


“···왜 절 김 씨라고 부르세요?”


“김 씨잖습니까.”


플루토키아는 당황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말꼬리도 늘였다. 아니 맞긴 한데. 그는 설명을 이것저것 덧붙이기 시작했다.


“레이디께 다짜고짜 이름을 부르는 건 실례 아닙니까? 그간 풀네임으로 불러드리긴 했지만, 앞으로 같이 일할 텐데 계속 풀네임으로 칭하긴 번거로우니까요.”


그러고 보니 날 ‘너바나 씨’라고 부른 건 낙뢰 과장과 안 팀장뿐이었지. 이 사람은 날 풀네임으로 부르거나 당신이라고 했고···. 나 참.


호칭을 어떻게 바로잡을지 고민하던 중, 기사들이 마을 사람들 앞에 멈춰 섰다.


주변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가장 큰 말을 타고 있던 가운데 기사가 몇 발자국 앞으로 나오더니, 큰 목소리로 모두에게 외쳤다.


“—여기 ‘데이지’라는 소녀가 있나?”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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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황자 24.09.06 8 0 11쪽
18 17) 간섭 24.09.05 7 0 12쪽
17 16) 서천 24.09.04 10 0 12쪽
16 15) 꽃밭 24.09.03 7 0 11쪽
15 14) 마석 24.09.02 7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0 1 11쪽
13 12) 업무 +1 24.08.29 8 1 10쪽
12 11) 청춘 24.08.28 9 1 11쪽
11 10) 사진 24.08.27 9 1 11쪽
10 9) 사과 24.08.26 9 1 10쪽
9 8) 면담 +1 24.08.23 9 1 11쪽
8 7) 중립 24.08.22 10 1 11쪽
7 6) 조작 24.08.21 9 1 11쪽
6 5) 알현 24.08.20 9 1 11쪽
» 4) 조연 24.08.19 11 1 10쪽
4 3) 최악 24.08.18 11 1 11쪽
3 2) 작명 +1 24.08.18 13 1 10쪽
2 1) 면접 24.08.17 1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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