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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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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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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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1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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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2) 작명

DUMMY


“일단 저희 팀원 소개부터 하죠.”


성별을 알 수 없으며 제일 자그마한, 그럼에도 표정과 제스처에 여유가 보이는 이 사람이 팀의 리더인가 보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입술을 닫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저는 로맨스판타지과의 과장이자 최고참 차사, 고조선 출신의 낙뢰라고 합니다.”


···음? 어디 출신이라고? 내 청력을 의심하는 사이에 순서는 다음 사람으로 넘어갔다.


키가 가장 크고 호리호리한, 길게 늘어진 금색 안경 줄이 인상적인 남자였다. 내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자신을 소개했다.


“···로맨스판타지 교정교열팀장 설이설. 통일신라 출신입니다. 저도 차사입니다.”


다음은 코스프레 남자였다.


“플루토키아 폴라리스입니다. 본래 코스마니움 제국 출신입니다만 현재 로맨스판타지과에 파견되어 근무 중입니다.”


예? 내가 잠시 얼은 틈을 타 발랄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탈색을 했는지 노랗게 푸석하고, 검은 뿌리모가 올라오는 머리카락을 어떻게든 하나로 땋은 여성이었다.


“로맨스판타지과 기획팀장인 저승사자 안립입니다. 전 대한제국 출신인데, 태어난 시기가 비교적 가까워서 반갑네요! 100년 조금 넘게 차이 나긴 하지만.”


중간에 함정이 있는 것 같은데? 누가 봐도 한반도에 있었던 적이 없는 국가 이름을 들은 것 같은데?


하···. 나는 포기했다. 지적하려면 이미 면접부터 지적을 때려야 했는데 너무 늦은 것 같다.


“저어는··· 김너바나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어요.”


일단 나도 소개양식을 맞춰야 할 것 같아서 비슷하게 따라 해봤다. 낙뢰 과장과 안립 팀장이 부지런히 박수를 치더니 곧장 물었다.


“글쓰기가 취미라고 하던데 많이 써봤나요?”


“대학을 문창과로 나와서 많이는 써봤습니다. 그, 소설 쓰고 시 쓰고 극본도 쓰는 학과인데요.”


안립 팀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더 잘됐네! 우리가 일이 너무 많아서 바로 투입이 가능한 신입이 절실했거든요!”


“글을 쓰려면 그만큼 많이 읽어봤을 테니까! 웹소설도 많이 읽었을 테고! 로판도 읽었을 테고!”


아니야! 나를 믿지 마! 4년간 날 가르친 현직 작가 교수님도 날 안 믿었는데 초면인 날 왜 믿어!


그리고 3년 동안 공부하느라 바빴는데 뭔 웹소설이야! 비문학 2분 안에 읽기 연습한 게 내 독서의 전부였는데!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걸 보니 싸하다. 가슴이 떨리는 걸 보면 조상신이 비상버튼과 탈주버튼을 리듬 타면서 누르고 계신 것 같은데, 조상신보다 저승사자가 더 쌔겠지···? 못 이기겠지?


“일단 오늘을 돌아가서 푹 쉬어요! 그동안 공부했으니까 조금 놀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해요!”


안립 팀장이 내 등을 꾹꾹 밀어 들어왔던 문으로 날 돌려보냈다. 플루토키아 어쩌구가 당연하다는 듯 따라왔다.


내게 설명할 게 더 있다고 나불거리는 것을, 팔뚝을 잡아채어 조용히 만들었다.


너 이···, 나랑 얘기 좀 하자.


***


이미 취직한 친구들이 나더러 어디서 일하냐길래 저승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자기들도 저승에서 근무한다며 점심에 만나 커피나 한잔하잔다.


리얼 저승에서 근무하나 리얼 이승에서 근무하나 도긴개긴이라니 짜릿하군.


나는 대교 위를 터덜터덜 걸었다. 지난주 면접장에서 플루토키아가 헤어지기 전 한 말이 귀에 맴돌았다.


“저승으로 출근하는 법은 출근 시간에 맞춰 강을 건너는 겁니다.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강을 건너십시오. 작은 시냇물이라도 괜찮습니다.”


“건너는 방법은 뭐, 배 타고 건너야 해요?”


“배를 타든 다리를 건너든 상관없습니다. 흐르는 물 위를 건너가는 행위 자체만 이루어지면 되거든요.”


한국의 망인이 삼도천을 건너고, 그리스의 망인이 스틱스강을 건너듯이.


대교 아래에서 조용히 흐르는 물을 힐끗 내려다봤다. 내가 태어나 쭉 살고 있는 이 지역에서 흐르는 물 중 가장 유명한 건 무심천이었다.


없을 무에 마음 심.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이름 뜻 하나는 차갑게 지었구만. 뒤숭숭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 다리를 건너봤자 시내 나오는데 저승은 어떻게 간다는 거···.”


내 기분은 상관없다는 듯 새파랗던 하늘이 돌연 시뻘겋게 뒤집어진 건, 대교를 다 건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


비명을 지르려던 입술에서 거친 손바닥이 덮였다. 퍼뜩 위를 올려다보니 역시나 플루토키아였다.


“혹시 몰라 마중 나왔는데, 나오길 잘했군요.”


플루토키아가 내가 건너온 강 건너편을 바라보기에 나도 슬쩍 돌아봤다. 투명하던 무심천이 시꺼먼 삼도천으로 변해있었고,


강변에 우후죽순 서 있는 검은 인영들이 보였다.


보아하니 죽은 영혼들이군.


“망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면 번거로워집니다. 조용히 가시죠.”


나는 플루토키아가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대교 바로 앞에 있는 건물 4층이 우리 사무실이었다.


“오, 산 채로 저승에 걸어 들어와 보니 어때요? 이승이랑 크게 다르진 않죠?”


제일 먼저 날 발견한 안립 팀장이 넉살 좋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죽은 영혼들이 보인다는 것부터 이승과는 딴판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다가온 낙뢰 과장이 내 좌석을 보여줬다. 깨끗한 책상 위에 모니터와 마우스, 키보드가 세팅되어 있었다.


“여기가 지정석입니다. 일은 바로 어려운 업무를 드리진 않을 테니 너무 걱정 마세요. 안 팀장, 오늘 해야 할 일 알려줘요.”


안립 팀장이 날 자리에 앉혀 친절하게 컴퓨터까지 켜주었다.


“전 로맨스 판타지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의 기획 및 설정 제작 담당이에요. 너바나 씨는 이제부터 제 일을 도와주시면 돼요.”


그리고 굉장히 불길한 말을 덧붙였다.


“원래 설 팀장 밑으로 넣으려 했는데 너바나 씨가 글을 전공했다고 하니까···.”


뭐지 이 뉘앙스? 원래 설 팀장 밑이라면, 신입 업무는 본래 그쪽인데 특별히 날 본인 밑으로 넣었다는 건가?


안 돼, 헛된 믿음 멈춰! 난 굳이 따지면 순문학 전공이라 웹소설은 몇 번 읽어본 게 다라고! 자기방어를 위해 안립 팀장에게 다급히 속삭였다.


“저기, 전 로맨스 판타지 소설을 읽어본 지가 꽤 됐는데요! 오히려 전 순문학 쪽을 파서 웹소설은 잘···!”


“괜찮아요! 일하면서 배우면 되죠.”


모니터가 켜지더니 한 여성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을 띄웠다. 생판 모르는 사람의 얼굴을 보자 눈이 절로 크게 뜨였다.


“며칠 전 트럭에 치여 사망한 20대 여성입니다. 곧 로맨스판타지 속 인물로 빙의되어 새롭게 태어날 거예요.”


“아···.”


“이제 빙의될 인물의 이름을 정해주시면 됩니다.”


뒤이어 작은 창 하나가 더 떴다.


“태어날 인물의 기본 설정들이에요. 이것들을 고려해서 예쁜 이름으로 정해주시면 되요. 소설 전공하면서 캐릭터 이름 지어봤겠죠? 그거랑 별반 다를 거 없어요.”


“아니 일단 전 시 전공인데요!!”


세 사람은 넉살 좋게 웃으며 본인들 자리로 급히 돌아갔다. 제 자리에 앉아 있던 설이설 팀장이 밀린 일들 빨리 처리하라며 투덜대는 소리가 들렸다.


하···. 보통 문창과 안에서 소설 전공, 시 전공 등 본인의 주력 전공을 선택하긴 하지만 다른 전공 강의도 듣는 경우는 많다. 나도 그런 케이스니 소설 강의 들으면서 소설을 써본 적은 있지.


다만 문제가 있다. 당시 난 소설 캐릭터 이름 석 글자 짓기가 힘들어서 지인들 이름을 허락받아 빌려 쓰곤 했는데, 이 방법은 여기서 못 쓴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일단, 서양 이름이 태반인 로맨스 판타지에 내 지인들 이름을 가져올 순 없잖아! 누가 봐도 한국 이름들인데!


어쩌면 난 문예창작학이 아니라 성명학을 공부해야 했을지도···.


1. 황제의 고명딸(이후 전개에 따라 동생이 생길 수 있음)

2. 500년 만에 황가에 태어난 딸

3. 외향: 백발과 금안


인물의 기본 설정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봐도 감이 안 온다. 어떻게 참고하라는 거지?


수많은 서양 이름 중에 황제의 딸만 쓰는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500년 만에 태어난 귀한 딸에게만 붙이는 고유명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백발과 금안 조합의 여자아이에게만 특별히 붙는 호칭이 있을 리가 없고.


사무실에서 울리는 타자 소리를 듣고 있으니 손바닥에 땀이 났다. 손이 놀고 있는 건 신입인 나뿐이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몇 번의 클릭 끝에 초록 창을 띄웠다. 저승에서도 인터넷이 되는구나···. 짤막한 감상과 함께 키보드를 두드렸다.


예쁜 여자 영어 이름


이게 맞나? 치면서 현타가 오는데? 오른손 검지가 스크롤 휠을 돌리며 자꾸 멈칫거렸다. 알파벳순으로 정리된 이름들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앨리스, 브리트니, 샬럿, 도라, 에밀리···


다른 게시글을 검색해서 나오는 이름들도 비슷했다. 어쨌든 황제의 딸이라니 뭔가 고풍스러운 이름을 지어야 할 것 같은데.


난 그 고풍스러운 이름의 기준을 모르겠다···. 애초에 해외 콘텐츠를 즐겨 보지도 않아서 영문 이름이 낯선데. 고전 소설 여주인공 이름들을 가져와야 할까? 그러면 이미지가 겹쳐버리진 않을까?


어쨌든 예쁜 이름이어야 하잖아. 초등학생 때 같이 영어 학원을 다녔던 친구들의 영어 이름을 떠올렸다. 걔네는 무슨 이름이었더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보니 시간은 벌써 한 시간 정도 지나있었다. 더 미루면 안될 것 같아 결단을 내리고, 이름 입력 창에 입력했다. 됐어, 일 하나 끝냈다!


혼자 소리 없는 손뼉을 치며 숨을 돌렸다. 이제 할 일 더 없나? 안 팀장에게 가 물어보려던 순간,


“신입!!!”


설이설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잔뜩 일그러진 미간, 불규칙한 호흡소리, 창백한 낯빛이 내게 위험신호를 보내왔다.


이번에도 무언가 잘못됐어.


“너야? 황제의 딸 이름을 데이지로 지은 게?”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13 폭거
    작성일
    24.08.30 12:46
    No. 1

    와.. 바로 윗선배랑 나이차가 100년.. 저기는 진급이 느린가봐요. 과장다신분이 고조선부터 일해 왔으면..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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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서천 24.09.04 10 0 12쪽
16 15) 꽃밭 24.09.03 7 0 11쪽
15 14) 마석 24.09.02 7 1 11쪽
14 13) 간호 24.08.30 1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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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11 10) 사진 24.08.27 9 1 11쪽
10 9) 사과 24.08.26 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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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7) 중립 24.08.22 10 1 11쪽
7 6) 조작 24.08.21 9 1 11쪽
6 5) 알현 24.08.20 9 1 11쪽
5 4) 조연 24.08.19 11 1 10쪽
4 3) 최악 24.08.18 1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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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면접 24.08.17 1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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