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시청 웹소설국 로맨스판타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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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내리화
작품등록일 :
2024.08.17 21:54
최근연재일 :
2024.09.1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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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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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713

작성
24.08.23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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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면담

DUMMY

“지금 퇴근하라고요? 황녀가 데뷔당트 할 즈음에 퇴근한다고 하셨잖아요?”


제일 재밌어질 때 끊는 게 어딨어···! 나는 서로를 마주 본 채로 멈춘 황녀와 남주를 가자미눈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계산을 잘못한 것 같군요.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경력이 좀 쌓이면 감으로 잘 맞춘다는데, 저도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라···.”


커쥬어마이걸···. 익숙한 음을 읊조리며 플루토키아가 가리킨 방향을 음울하게 쳐다봤다.


수풀 속에 돌연 문이 놓여 있었다. 학교에 있는 음악실 문을 닮은, 날 이 로판 세계관으로 들여보낸 그 문 말이다.


이렇게 보니까 옆 나라 고딩처럼 문단속이라도 해야 할 것 같고.


“아무튼 5분 안에 나가셔야 합니다. 김 씨는 저승사자가 아닌 생자시기 때문에, 시간 내로 나가지 않으시면 이 로맨스판타지 세계관에 하루 더 갇히게 될 거예요.”


뭐? 퇴근이 막히면 안 되지! 나는 모든 양심과 미련을 버리고 문 앞으로 달려가다, 못 박힌 듯 제자리에 선 플루토키아에게 물었다.


“어, 왜 안 오세요?”


“생자들은 이승의 노동법이 적용되지만, 나머지는 아니거든요. 5분 뒤에 다시 이곳의 시간이 흐를 겁니다. 전 계속 여기서 데이지 황녀를 지켜봐야 해요.”


그게 무슨. 당신 산 사람이 아니야···? 자기소개 할 때 저승사자라고 안 했잖아. 그래서 진짜 컨셉 단단하게 잡은 사수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 사람,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생판 처음 듣는 고향이며 비현실적인 머리색과 홍채까지.


정체가 뭐지? 물어봐도 되나?


“문이 사라지기까지 3분. 뭉그적거릴수록 퇴근 시간은 미뤄질 겁니다.”


플루토키아가 시계를 다시 확인하며 독촉했다. 일단 지금은 안 되겠다, 우물쭈물하던 난 어깨로 문짝을 밀었다.


“저 진짜 가요?”


“예. 내일 봅시다.”


플루토키아가 오른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그 모습에 나도 떨떠름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문에 짓눌린 어깨가 슬슬 아팠으므로, 살짝 열린 문틈을 비집고 안으로 잽싸게 들어갔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반사적으로 설이설 팀장의 자리를 쳐다봤다. 비어있는 의자를 확인하자 비로소 사무실에 가득한 향 내음이 맡아졌다.


“아, 팀장들도 지금 다른 로판 빙의자 쪽으로 가서 없어.”


깜짝이야!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안도의 한숨을 뱉으려다 덜컥 삼켰다. 횡격막이 불만을 품고 날뛰기 시작했다.


딸꾹, 숨을 참으며 옆을 돌아봤다. 낙뢰 팀장이 시선을 노트북에 고정한 채 무언가 바쁘게 클릭하며 홀로 앉아 있었다.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으니 정말로 어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보습학원에 앉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럼에도 묘한 카리스마가 느껴져서 공손한 자세가 절로 나온다. 방해하면 안 될 것 같군.


숨을 참아 횡격막을 제압하며 내 자리로 천천히 걸어가는데, 마우스 딸깍딸깍 소리가 우뚝 그쳤다.


“퇴근하기 전에 잠깐 얘기 좀 할래요?”


-딸↘국↗!?


안경을 벗던 낙뢰 과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쳐다봤다. 나도 모든 전의를 상실하고 마주 봤다.


아, 오늘 일진 실화야? 왜 첫날부터 내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만 보이는 건데?


웃음을 터뜨린 낙뢰 과장 앞에서 얼굴을 불태우며 생각했다. 쪽팔려 죽고 싶다고.


***


내 앞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찻잔이 놓였다. 이 잔이 식기 전에 퇴근하면 안 되겠소···? 음, 안 되겠지.


낙뢰 과장은 절도 있는 자세로 찻주전자를 기울여 차를 따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잠시 침묵이 뜨자 내 시선이 초점을 잃고 공중을 방황했다. 이때다 싶었는지 과장의 질문이 기습해 왔다.


“오늘 일해 보니 어땠어요?”


그 말을 듣자마자 황녀의 이름 입력 칸에 별생각 없이 키보드를 두드려 ‘데이지’라고 치던 순간, 황녀 일행과 너무 가까이 서 있다가 황제랑 눈싸움 게임을 한 순간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이거 주마등인가? 내가 죽을 때가 됐나. 하긴 여기가 저승이긴 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제가 실수를 좀 해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름 건은 자책하지 말아요. 말했다시피 일을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은 저희 책임도 있고, 무엇보다 신입은 실수해야 배우거든요.”


자신의 잔에도 차를 다 따른 낙뢰 과장이 어설프게 웃었다.


“일하다 보니 느껴지지 않던가요? 업무 방식이 생각보다 체계적이진 않다는 게.”


그것 정말 느끼지 않았다고는 아니할 수 없구만.


그럼에도 난 섣불리 입을 열 수 없었다. 과연 일한 지 하루 된 신규가 어디까지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는 걸까?


다행히 팀장이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 듯, 평온한 목소리로 하던 말을 이어갔다.


“이곳에 더 다녀보면 알겠지만, 저승시청 안에 웹소설국이 생긴 지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어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차사들만 모여 신세대 출신 망인들이 빙의할 웹소설 세계관을 제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이번에 생자들도 고용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뜨거운 차를 살짝 들이킨 낙뢰 과장이 말했다.


“전 너바나 씨가 계속 같이 일해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살짝 식어 따끈해진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며 조용히 물었다.


“저,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얼마든지.”


“왜 저승에서 망자들을 웹소설에 빙의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됬나요?”


낙뢰 과장이 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벌써 찻잔 바닥이 드러난 게 보였다.


“···요즘 젊은 생자들이 망자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지요.”


“···.”


“전 위만 조선 때부터 저승사자 일을 해왔습니다. 크고 작은 전쟁들, 끔찍한 역병들이 잊을 만하면 나타나 사람들을 여럿 죽일 때마다 영혼들을 거두며 무력감을 느끼곤 했죠. 전쟁과 질병이 이 땅에 사라질 순 없겠지만, 수그러든다면 다들 행복해질 거라 믿었어요.”


그렇지만 아니었겠지.


“제 이상이 그저 꽃밭임을 알고 난 뒤에, 저와 뜻을 같이하는 차사들이 모여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가’를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렇게 생겨난 곳이 웹소설국이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낙뢰 과장도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더 물어볼 건 없나요?”


“나중에 생각나면 물어볼게요.”


언제든지 물어봐요, 하고 나지막이 중얼거린 낙뢰 과장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사무실 출입문으로 가는 날 따라오며 신신당부했다.


첫째, 돌아갈 때 강 건너편에 서 있는 망자들을 신경 쓰지 말고 앞만 보며 걸어라.


둘째,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나도 뒤돌아보지 말라.


셋째, 발자국 소리가 돌연 멈춘다면 잠시 서 있다가 속으로 1부터 49까지 센 뒤 뛰어라.


넷째, 갑자기 건너던 대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뒤를 돌아봐야 한다.


다섯째, 대교 위 가로등은 양옆으로 각각 6개뿐이니 혼동하지 마라.


아니 세상에 어느 시청 공무원 퇴근법이 나폴리탄 괴담 같단 말이냐? 미치겠네. 이제야 저승에서 일하는 게 실감 난다.


내 안의 쫄보 DNA가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출입문 문을 열 때, 낙뢰 과장이 돌연 딴소리를 덧붙였다.


“전 너바나 씨의 이름을 처음 봤을 때 우리와 함께 일할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이유는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난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운명론자신가봐요?”


“이 업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네. 그렇게 되지요.”


낙뢰 과장은 생초짜 신입이 걱정되었는지 대교 앞까지 마중 나와 주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뒤돌아보지 말라며 어찌나 소리치던지.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잖아요!


나는 앞만 보고 걸으며 뒤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대교를 반쯤 걸어오자, 붉었던 하늘이 순간 깜빡이더니 아침에 건넜던 무심천 풍경으로 돌아왔다.


이승도 노을이 질 시간이다 보니 붉은 저승 하늘과 별 차이 없는 듯했다.


대교 아래로 무심천이 무심하게 흐르고, 그 옆에 난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센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 거의 연락도 하지 않는 유일한 가족에게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끊기면서 아빠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웬일일까, 꼭 내 전화를 기다렸던 것처럼.


-웬일로 전화를 다 하냐? 오늘 일 가서 사고 쳤어?


치긴 했다. 어떻게 바로 알았지? 역시 부모는 부모다 이건가?


“치긴 했지만 수습은 했거든요. 전화 받자마자 뭘 그런 걸 물어봐요?”


-괜찮아, 신입은 실수해도 돼. 오늘 처음 일 나가보니까 어때?


아빠는 늘 그랬듯 내 질문에 미묘하게 핀트가 어긋나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래서 나도 질문에 아예 다른 질문으로 대답했다.


“왜 제 이름은 너바나예요?”


-음? 나야 모르지, 니 할아버지가 지은 걸 어찌 아냐.


본인 아버지를 남처럼 말하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딸 이름 짓기도 남 일처럼 말씀하시네요···.


아니 나도 오늘 주인공 이름 잘못 지었다가 깨졌는데. 이름 대충 짓는 버릇도 유전이 되나? 휴대폰을 쥔 오른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왜 충동적으로 전화를 걸어선 스스로 혈압을 올리고 있지? 정말로 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아빠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할아버지가 절을 열심히 다니셨잖아. 거기 말로 좋은 뜻이라 그랬어. 


“뜻을 떠나서, 너바나를 국어사전에 검색하면 잘못된 표기법으로 나오는 건 알아요?”


니르바나(Nirvana)가 옳은 표기법이다.


-그러냐? 뭐 별 차이 없잖아. ‘열반’이랬나, 암튼 좋은 뜻이야.


‘열반’ 좋죠, 속세의 미련을 떨쳐내고 진리를 깨달아 도달한 해탈의 경지를 말하는 거니까. 하지만 아빠,


너바나는 ‘죽음’이라는 뜻도 있거든요.


손녀 이름을 ‘죽음’이라고 지은 할아버지와 딸 이름을 잘못된 표기법으로 등록한 아버지가 있다!?


피로가 급격히 몰려와 이마를 짚었다. 그렇지만 노을 진 하늘은 아름다웠고, 무심천에는 윤슬이 반짝거려 마음이 간지러웠다.


가족을 원망하는 데에 기력을 쓰기엔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니 근데 평생을 김너봤나와 김바나나라는 별명으로 살면 뜻이고 뭐고 짜증나서 개명하고 싶다니까요···.


풍경을 압도하는 빡침에 전화 통화를 대충 끝냈다. 내일 출근할 생각을 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참았다.


그래도 오늘이 엉망이었으니 내일은 좀 낫지 않을까, 하는 미지근한 희망을 품으면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 작성자
    Lv.13 폭거
    작성일
    24.08.30 13:20
    No. 1

    예전에는 동사무소에 이름 지으러 갈 때 술 한잔 걸치고 짓다가 이상하게 이름 짓는 경우가 비일비제 했었는데.. 혹시 김너바나씨 할머니도 술 한잔 걸치시고??

    찬성: 1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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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 서천 24.09.04 1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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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1) 청춘 24.08.28 10 1 11쪽
11 10) 사진 24.08.27 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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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면담 +1 24.08.23 1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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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6) 조작 24.08.21 9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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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최악 24.08.18 11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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